천주교

절두산 순교성지 — 누에머리 잠두봉이 '머리 잘린 산'이 된 사연, 한강변 순교의 언덕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5

서울 지하철 2·6호선 합정역에서 한강 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강물 위로 우뚝 솟은 작은 암벽 봉우리가 보입니다. 그 위에 단정하게 앉은 성당과 박물관, 바로 절두산 순교성지예요. 양화대교를 지나는 차 안에서 무심코 바라보던 그 언덕에, 사실은 한국 천주교회의 아픈 기억과 깊은 신앙이 함께 서려 있습니다. 오늘은 절두산 순교성지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려드릴게요.

■ 누에머리 잠두봉이 '절두산'이 되기까지

절두산은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한강변에 있는 봉우리입니다. 조선 시대 이곳 양화진은 교통의 요지이자 병선을 훈련하던 곳이었고, 그 동쪽 봉우리는 생김새가 누에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잠두봉(蠶頭峰)', 또는 '가을두'라 불렸어요. 중국 사신들이 칭송할 만큼 경치가 빼어난 곳이었지요. 그런데 1866년 병인박해 때 이곳에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되면서, 사람들은 이 언덕을 '머리를 자른 산', 곧 절두산(切頭山)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 병인박해와 양화진의 순교자들

흥선대원군이 천주교 박해령을 내린 뒤, 살아남은 리델 신부가 청나라로 건너가 조선 교회의 사정을 알렸고, 로즈 제독의 프랑스 함대가 1866년 9월과 10월 두 차례 조선에 들어왔습니다. 조선 정부는 프랑스 함대가 양화진까지 거슬러 올라온 것이 신자들의 도움 때문이라고 여겼어요. 그래서 1866년 10월 23일(음력 9월 15일)부터는 새남터나 서소문 밖이 아닌 이곳 양화진에서 신자들을 처형했습니다. 기록으로 확인된 순교자는 무명 순교자 5명을 포함해 29명이지만, 재판 없이 처형된 이들이 많았던 시절이라 실제로 목숨을 잃은 신자는 훨씬 많았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실제 처형 장소가 봉우리 꼭대기가 아니라 양화 나루터의 약간 언덕진 평지였을 것으로 보고 있어요.

■ 성지가 되기까지 — 1956년부터 1967년까지

1956년 한국 천주교 순교자 현양회가 "절두산 치명터를 확보하자"는 호소문을 내고, 그해 12월 7일 잠두봉 일대를 매입했습니다. 이어 병인박해 100주년을 맞아 1966년 3월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인 1967년 10월 병인순교 100주년 기념성당과 기념관이 완공되었어요. 절두산의 원래 모습을 해치지 않도록 지었다고 합니다. 기념성당 지하 성해실에는 현재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비롯한 순교 성인 27위와 무명 순교자 1위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과 사적 제399호

1984년 5월,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절두산 성지를 방문해 한국 순교자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했습니다. 이 방한 때 한국 순교자 103위가 성인 반열에 올랐지요. 그리고 1997년 11월, 정부는 절두산 순교성지 일원을 '양화나루·잠두봉 유적'이라는 이름으로 사적 제399호로 지정했습니다. 순교성지 가운데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곳은 이곳뿐이라고 해요.

■ 한강 바람 속에서 걷는 순례

오늘의 절두산에는 김대건 신부 동상과 순교자 현양비, 성모 동굴이 자리하고 있고, 바로 곁에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도 이웃해 있습니다. 가을 저녁 노을이 한강에 번질 때 언덕을 천천히 걸어 보세요. 믿음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았던 이들의 마음이, 바람결처럼 조용히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출처: 절두산 순교성지 공식 홈페이지 http://www.jeoldusan.or.kr/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관련 성지 – 절두산 순교 성지' https://cbck.or.kr/koreanmartyrs/Shrines/73 , 한국가톨릭대사전 '절두산 순교 성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5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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