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언니 대신 선 첫 굿판 — 진도 마지막 세습 당골 채정례
전라도에서는 대대로 무업을 잇는 세습무를 '당골(단골)'이라 부릅니다. 채정례(1925~2013)는 신안 하의도의 세습무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진도로 옮겨 왔고, 진도 무계 집안과 혼인했습니…
【무속 이야기】
무속과 관련된 이야기와 일화를 나누는 곳입니다.
전라도에서는 대대로 무업을 잇는 세습무를 '당골(단골)'이라 부릅니다. 채정례(1925~2013)는 신안 하의도의 세습무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진도로 옮겨 왔고, 진도 무계 집안과 혼인했습니…
동해안 별신굿에서는 무녀가 굿을 하고 남자 악사인 양중(화랭이)이 장구와 태평소로 굿을 받칩니다. 대개 부부와 가족이 함께 굿을 맡는 세습무 집안이지요. 김석출(1922~2005)의 집안 이야기는…
제주에서는 무당을 '심방'이라 부릅니다. 1928년 제주시 용담동에서 태어난 안사인은 제주를 대표하는 큰심방이었습니다. 디지털제주문화대전에 따르면 안씨 집안은 원래 무가가 아니었는데, 증조부가 1…
숙종 때인 1702년 무렵(자료에 따라 1703년)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은 제주의 풍속을 유교식으로 바꾸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디지털제주문화대전에 따르면 그는 광정당에서의 기도 풍습을 금하고…
1701년(숙종 27) 인현왕후가 세상을 떠난 뒤, 희빈 장씨가 취선당 서쪽에 몰래 신당을 차리고 왕비의 죽음과 자신의 복위를 빌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른바 '무고(巫蠱)의 옥'입니다. 국문…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인물로 알려진 안향은 1275년(충렬왕 원년) 상주판관으로 부임했습니다. 그 무렵 요신(妖神)을 받든다는 무녀 셋이 합주(지금의 합천) 쪽에서 여러 고을을 돌고 있었는데, 공…
고려 충렬왕 3년(1277), 나주에는 금성산 산신이 무당에게 내려 "진도와 탐라를 칠 때 내가 큰 힘을 보탰는데 장수와 군사만 상을 받고 나는 받지 못했다. 나를 정녕공(定寧公)으로 봉하라"고 …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의 문집 『동국이상국집』에는 '늙은 무당'을 노래한 시 「노무편(老巫篇)」이 실려 있습니다. 이웃에 사는 노무당 집에 날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시끄러운 것을 못마땅해하던 그는,…
고려 인종 9년(1131) 8월, 천문과 길흉을 맡던 관리 일관(日官)이 "무당의 풍속이 성해 음사가 날로 늘어난다"며 무당들을 멀리 내쫓자고 건의했고, 인종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고려사』에 …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뒤를 이은 남해왕은 서기 4년에 즉위해 약 21년간 나라를 다스렸다고 전합니다. 그에게만 붙은 특별한 칭호가 바로 '차차웅(次次雄)', 다른 표기로는 '자충(慈充)'입니다. …
'큰무당'으로 불린 김금화(1931~2019) 만신은 열일곱 살 무렵, 황해도의 이름난 만신이던 외할머니에게서 내림굿을 받았습니다. 유난히 손녀에게만 모질었던 외할머니가 그날 공수를 내리며 크게 …
1882년 임오군란 때 궁을 빠져나온 명성황후는 충주 장호원 민응식의 집에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황현의 『매천야록』은 이때 관우를 모시는 한 무녀가 찾아와 왕비가 머지않아 궁으로 돌아갈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