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공주 황새바위 순교성지 — 이름의 유래부터 이존창의 순교, 337위를 새긴 성지가 되기까지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4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공주 황새바위 순교성지는 충청남도 공주시 왕릉로 118(교동)에 있는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지로, 1801년 신유박해 때 '내포의 사도'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이 처음 참수된 뒤 병인박해까지 수많은 신자가 목숨을 잃은 곳입니다. 지금은 공주에서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 337위의 이름을 새겨 기리는 성지이고, 2008년 12월 22일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공산성과 무령왕릉으로 유명한 공주에는 조용히 걸어 볼 만한 언덕이 하나 더 있습니다. 금강 가, 제민천이 흘러드는 자리에 자리한 황새바위 순교성지예요. 이름만 들으면 새가 쉬어 가는 한가로운 풍경이 떠오르지만, 이곳은 한국 천주교회가 '가장 참혹한 순교 현장' 가운데 하나로 기억하는 곳입니다. 오늘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황새바위성지 안내 자료를 바탕으로 이 언덕에 얽힌 이야기를 차분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황새바위'라는 이름에 담긴 두 가지 이야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이름의 유래를 두 갈래로 소개합니다. 통설은 예전에 이곳에 황새가 많이 살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는 것이에요. 그런데 다른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천주교 신자들이 '사학죄인'이라는 죄목으로 목에 '항쇄(項鎖)'라는 형구를 찬 채 이곳에 끌려 나와 처형되었기 때문에, '항쇄바위'가 '황새바위'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입니다.

어느 쪽이 맞든, 이 이름은 공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아픈 역사와 함께 불려 왔습니다. 백과사전에는 처형이 있을 때면 맞은편 산 위에 흰옷 입은 군중이 병풍처럼 둘러서서 지켜보았고, 참수된 이들의 머리를 나무 위에 오래 매달아 두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어요.

왜 하필 공주였을까

조선 후기 충청도는 천주교 신자가 많았던 만큼 박해의 피해도 컸습니다. 그 가운데 공주는 충청도 감영, 곧 도의 관찰사가 머물던 행정 중심지였어요. 그래서 붙잡힌 신자들이 이곳으로 끌려왔고, 배교를 거부하면 관찰사의 명령에 따라 형이 집행되었습니다.

황새바위성지 측 안내에 따르면, 박해 초기에는 사학죄인을 출신 고향에서 공개 처형해 백성들에게 경계로 삼는 '해읍정법'이 적용되었다고 합니다. 금강 본류와 제민천 지류가 만나는 모래사장은 많은 사람이 지켜볼 수 있는 자리였기에 공개 처형지로 쓰였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위키백과는 공주 감영이나 우영에 붙잡힌 교인들이 지금의 교동성당 근처 감옥에 갇혀 있다가 이곳에서 처형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내포의 사도 이존창, 그리고 이름 없이 떠난 이들

기록상 황새바위에서 처음 순교한 신자는 이존창(1759~1801)입니다. 충청도 내포 일대에 처음 복음을 전해 '내포의 사도'로 불린 인물로, 신유박해 때인 1801년 4월 9일 이곳에서 참수되었어요. 그 뒤로 이종국, 문윤진, 복자 이국승(바오로) 등이 같은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1812년 공주에서 참수된 것으로 기록된 장대원(마티아)과 황 바오로도 이곳에서 순교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백과사전은 덧붙입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공주에서 순교한 사람은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만 190여 명입니다. 감옥 안에서 은밀히 집행된 교수형이나 백지사형을 빼고, 참수형이나 장살형처럼 공개적으로 집행된 형벌을 받은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황새바위에서 순교했을 것으로 봅니다. 이름이 남은 이들보다 이름조차 남지 않은 이들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이 언덕이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잊혔던 언덕이 다시 성지가 되기까지

황새바위는 오랫동안 구전으로만 전해졌습니다. 1911년 독일 성 베네딕도회의 노르베르트 베버 아빠스가 한국을 여행하고 남긴 기행문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에 "참수당한 이들의 무덤에서 바라본 공주 형장"이라는 삽화가 실렸고, 1937년 공주성당 헌당 기념 책자에 이존창이 이곳에서 순교했다는 기록이 담겼어요.

본격적인 성지 조성은 1978년 공주 본당 신자 지재희 씨가 구전을 듣고 마을 어르신들에게 위치를 확인해 대전교구에 알리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980년 12월 언덕 부지 2,410평을 사들였고, 1985년에는 순교자 248위의 이름을 새긴 무덤 경당과 순교탑이 완공되어 축복식이 열렸어요. 이후 12사도를 상징하는 돌기둥과 고통의 성모자상, 십자가의 길이 놓였고 2002년 11월 순례자 성당이 들어섰습니다.

337위의 이름을 새긴 오늘의 황새바위

2008년 1월 황새바위 순교성지는 교동 본당에서 분리되어 전담 신부가 임명되었고, 같은 해 12월 22일 충청남도 기념물(제17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그보다 앞선 1997년 6월에는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기념물 제1호였다고 해요. 2012년 10월 무덤 경당을 새로 정비하면서, 기존 248위에 더해 공주에서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 337인의 명단을 지하에 새겨 기념하게 되었고, 2015년에는 순교 역사를 소개하는 기념관도 문을 열었습니다.

성지를 천천히 걷는다면 순서를 이렇게 잡아 보셔도 좋습니다. 먼저 순교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무덤 경당에 들러 잠시 이름들을 읽어 보고, 경당 앞 광장에 선 열두 개의 돌기둥과 고통의 성모자상을 지나, 십자가의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른 뒤 순례자 성당에서 마음을 정리하는 식이에요. 디지털집현전이 이 돌기둥들을 '열두 개의 빛돌'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할 만큼, 광장은 이 성지를 대표하는 풍경이기도 합니다.

공주 여행길에 공산성이나 제민천 골목을 걷다 잠시 들르셔도 좋겠습니다. 신앙이 있든 없든, 자기 믿음을 지키려다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사람들 앞에서 잠깐 걸음을 멈추는 일은 누구에게나 의미가 있을 거예요. 순례나 미사 시간 같은 세부 안내는 방문 전에 황새바위성지 누리집에서 꼭 확인해 주세요.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공주 황새바위 천주교 순교 유적」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9931 , 황새바위성지 「성지의미」 http://www.hwangsae.or.kr/sub0101 , 위키백과 「공주 황새바위 천주교순교유적」 https://ko.wikipedia.org/wiki/공주_황새바위_천주교순교유적 , 디지털집현전 「공주 황새바위 천주교순교유적」 https://k-knowledge.kr/srch/read.jsp?id=28445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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