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위령 성월 — 11월,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바치는 기도와 우리 가락 연도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3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천주교 신자들은 한 달 뒤 찾아올 '위령 성월'을 떠올립니다. 위령 성월은 해마다 11월 한 달 동안 세상을 떠난 가족과 친지, 그리고 죽은 모든 이의 영혼을 특별히 기억하며 기도하는 달이에요. 올해 11월 2일 '위령의 날'은 월요일입니다. 오늘은 위령 성월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지내는지, 그리고 한국 천주교만의 위령 기도인 '연도(煉禱)' 이야기까지 차근차근 들려드릴게요.

■ 위령 성월과 위령의 날은 어떤 날일까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매일미사 '주요 전례' 설명에 따르면, 교회는 해마다 11월 2일에 기념하는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과 연관하여 11월 한 달을 위령 성월로 지냅니다. 성월(聖月)이란 특정한 신심을 북돋기 위해 교회가 정한 한 달 동안의 특별 신심 기간을 말하는데요, 위령 성월에는 세상을 떠난 부모나 친지의 영혼은 물론 죽은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하고, 특히 연옥에서 정화를 받는 영혼들을 위해 많이 기도하기를 권고합니다.

11월 1일은 하느님 나라를 완성한 성인들을 기리는 '모든 성인 대축일'이고, 바로 다음 날이 위령의 날입니다. 하루는 천상의 성인들을 기쁘게 기념하고, 이튿날은 아직 정화의 길을 걷는 영혼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셈이지요. 그래서 이 이틀은 삶과 죽음을 함께 묵상하는 시간으로 여겨집니다. 또 11월은 전례력으로 연중 시기의 마지막에 속해서, 미사 독서에서도 세상의 종말에 관한 말씀을 많이 듣게 됩니다.

■ 998년 클뤼니 수도원에서 시작된 전통

죽은 이를 위한 기도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로마 카타콤바(지하 묘지)의 비문에는 세상을 떠난 이의 평안을 비는 기도가 새겨져 있고, 초대 교회의 교부들도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는 관습을 증언했어요. 다만 날짜는 지역마다 달라서, 6세기 베네딕토회 수도원들은 성령 강림 무렵에, 9세기 초 독일 풀다 수도원은 12월 17일에 죽은 이들을 기억했다고 전해집니다.

지금처럼 11월 2일로 자리 잡은 것은 998년 무렵 프랑스 클뤼니 수도원의 오딜로(Odilo) 원장 덕분입니다. 그는 소속 수도원들에 모든 성인 대축일 다음 날인 11월 2일을 위령의 날로 지내며 연옥 영혼을 위한 미사와 기도, 자선을 바치도록 했고, 미사를 청하는 이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예물을 내도록 해 기도와 나눔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이 관습은 프랑스·영국·독일로 퍼졌고, 로마에서는 13세기에 이르러 자리를 잡았습니다. 15세기 스페인 도미니코회에서는 이날 사제가 미사를 세 번 봉헌하는 풍습이 생겼고, 제1차 세계대전 중 수많은 전사자와 무너진 성당을 마주한 베네딕토 15세 교황이 모든 사제에게 위령의 날 미사 세 대를 봉헌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습니다.

■ '모든 성인의 통공' — 산 이와 죽은 이가 이어져 있다는 믿음

천주교가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는 바탕에는 사도 신경에 나오는 '모든 성인의 통공(通功)'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지상에서 순례 중인 신자, 정화가 필요한 세상을 떠난 이들, 하늘에 있는 성인들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교회를 이루며, 기도와 선행 안에서 서로 영적인 도움을 주고받는다는 뜻이에요.

가톨릭신문의 연옥 교리 해설(2021)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54항을 들어,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지만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이들은 구원이 보장되어 있되 하늘의 기쁨에 들어가기 전에 정화를 거친다고 설명합니다. 연옥은 흔히 장소로 오해되지만 오히려 그런 '상태'를 뜻하고, 그 영혼들은 스스로를 위해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지상의 신자들이 기도와 단식, 선행, 그리고 무엇보다 미사로 은총을 청한다는 것이지요. 구약의 마카베오기 하권 12장 45절에 나오는, 죽은 이들이 죄에서 벗어나도록 속죄 제물을 바쳤다는 구절이 자주 함께 인용됩니다. 교회는 이 가르침을 피렌체 공의회(1438~1445)와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 확정했습니다.

■ 위령 성월에는 무엇을 하나요

위령 성월의 중심은 기도와 선행입니다. 위령의 날에는 모든 사제가 모든 연옥 영혼을 위해, 교황의 지향에 따라, 그리고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의 지향에 따라 미사를 세 대 드릴 수 있습니다. 신자들은 11월 1일부터 8일까지 묘지를 방문해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 연옥 영혼에게 양도할 수 있는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고해성사와 영성체, 교황의 지향에 따른 기도라는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그래서 11월 초가 되면 성당 묘원마다 꽃과 초를 들고 찾아온 가족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본당에서는 합동 위령 미사를 봉헌하기도 해요.

유럽과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도 이맘때 가족 묘를 깨끗이 손질하고 꽃과 촛불로 꾸미는 풍습이 있습니다. 촛불은 그리스도의 빛을 상징하고, 서로 다른 교파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묘지를 돌보며 기도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위령 성월은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동시에 나 자신의 삶과 죽음을 깊이 돌아보는 은총의 시기로 소개됩니다.

■ 우리 가락으로 바치는 위령 기도, 연도(煉禱)

한국 천주교에는 세계 어디서도 보기 드문 위령 기도가 있습니다. 바로 '연도'예요. 한자 뜻 그대로 연옥 영혼들을 위해 바치는 기도로, 요즘은 '위령 기도'라고도 부릅니다. 신자가 세상을 떠나면 빈소를 찾은 교우들이 두 패로 나뉘어 시편과 성인 호칭 기도를 주고받는데,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선소리(계)와 후소리(응)로 나뉘어 구성진 가락으로 읊어 나갑니다.

학계 연구에 따르면 1864년 간행된 기도서 『천주성교공과』의 저녁 기도에 연도가 실려 있었고, 같은 무렵 나온 첫 장례 예식서 『천주성교예규』에는 초상부터 하관까지 장례 절차마다 연도를 어떻게 부르는지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가락은 1992년 『성교예규』에 악보로 실렸고, 2003년 『상장예식』으로 표준화되었습니다. 가톨릭신문 연재 '한국의 위령기도'는 연도 가락이 상여소리의 메나리토리, 자장가, 서당에서 글을 소리 내어 읽던 독서성(讀書聲), 시조의 은근함과 닮았다고 소개합니다. 죽음을 끝이 아니라 하느님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로 믿기에, 지나치게 비통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소리가 되었다는 해석이지요. 그래서 연도는 가톨릭 예식 가운데 가장 잘 토착화된 기도로 꼽히고, 신자가 아닌 조문객도 낯설지 않게 함께하곤 합니다.

■ 기억하는 마음이 곧 기도입니다

위령 성월은 슬픔에 머무는 달이라기보다, 먼저 떠난 이들과 지금 여기의 우리가 여전히 이어져 있음을 확인하는 달입니다. 이번 11월에는 신앙이 있든 없든, 그리운 이름을 한 번 소리 내어 불러 보고 그분이 남긴 사랑을 떠올려 보시면 어떨까요. 그 따뜻한 기억 자체가 이미 하나의 기도일지도 모릅니다.

출처: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매일미사 '주요 전례 — 위령 성월' https://missa.cbck.or.kr/DailyMissaInfo/MM011 , 가톨릭신문 '연옥 교리, 제대로 알기'(2021.11.7, 춘천교구 게재본) https://www.cccatholic.or.kr/news/church/6112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연도(煉禱)는 우리나라에만 있나요?' https://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065 , 가톨릭신문 '[한국의 위령기도] (4) 위령기도 연도의 전통문화'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811200008752 , KCI 논문 '한국 천주교 장례예식서를 통해 본 장례문화와 연도의 노래문화'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250063 , Wikipedia 'All Souls' Day' https://en.wikipedia.org/wiki/All_Souls%27_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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