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시 해미면, 600년 넘은 해미읍성에서 조금 걸어 나오면 해미천을 따라 넓은 성지가 펼쳐집니다. 대전교구 해미순교자국제성지예요. 유명한 성인이 묻힌 곳도, 특별한 기적이 일어난 곳도 아니지만, 이곳은 교황청이 '국제성지'로 선포한 국내 첫 단일 성지입니다. 오늘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드릴게요.
■ 박해의 땅, 해미
해미라는 이름이 한국 천주교회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1799년, 서른 살에 순교한 '하느님의 종' 박취득 라우렌시오의 행적을 통해서라고 합니다. 그 뒤 1839년 기해박해와 1866년 병인박해를 거치며 충청·경기 지역의 많은 신자들이 해미 진영으로 끌려왔어요. 기록에 이름이나 세례명이 남은 순교자는 132명뿐이고, 나머지는 이름 석 자도 남기지 못한 무명 순교자들입니다. 그 수는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수천 명에 이른다고 전하는 기록도 있어요.
■ '예수 마리아'가 '여숫골'이 되기까지
1866년부터 1868년까지 이어진 병인박해 때 처형할 신자가 너무 많아지자, 관아는 해미천 변 들판에 큰 구덩이를 파고 사람들을 산 채로 묻었습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자료에 따르면 박해 1세기 동안 생매장형 순교는 홍주와 해미에서만 나타난다고 해요. 끌려가던 신자들은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기도했는데, 멀리서 지켜보던 주민들 귀에는 그 소리가 '여수(여우) 머리'로 들렸다고 합니다. "여우에게 홀려서 저렇게 죽는구나" 하던 그 말이 지금의 지명 '여숫골'로 남았어요. 가장 처참한 자리에서 나온 가장 간절한 기도가 땅의 이름이 된 셈입니다.
■ 진둠벙, 자리개돌, 회화나무
성지를 걷다 보면 박해의 흔적을 하나씩 만나게 됩니다. 신자들을 꽁꽁 묶어 물웅덩이에 빠뜨렸던 '죄인 둠벙'은 세월이 흐르며 이름이 변해 지금은 '진둠벙'이라 불려요. 그 곁에는 신자의 팔다리를 들어 내리쳐 처형하던 '자리개질'에 쓰인 자리개돌이 놓여 있습니다. 이 돌은 1956년 성당으로 옮겨졌다가 1986년 읍성 서문 밖 제자리로 돌아갔고, 2009년 1월 여숫골로 다시 옮겨져 보존되고 있어요. 해미읍성 안에는 신자들의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했다는 회화나무, 충청도 말로 '호야나무'도 아직 서 있습니다.
■ 교황이 찾은 곳, 그리고 국제성지로
2014년 8월 17일,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로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 해미성지에서 아시아 주교들을 만났습니다. 교황은 "우리가 아직까지도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명 순교자들이 많이 있다고 들었다"며 "그들은 이름 없는 성인들"이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2020년 11월 29일 대림 제1주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탄생 200주년 희년에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가 해미를 국제성지로 설정하는 교령을 냈고, 2021년 3월 1일 공식 선포되었습니다. 국내 국제성지로는 2018년 서울대교구 순례길에 이어 두 번째이고, 아시아에서는 세 번째예요.
■ 슬픔보다 생명을 묵상하는 자리
오늘의 해미성지에는 대성당과 소성당, 무명순교자 묘와 순교탑, 순교자의 무덤을 본뜬 둥근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935년 발굴된 유해는 1995년 순교자대축일에 생매장 순교지의 순교탑 앞으로 돌아왔어요. 성지 측은 이곳을 "슬픈 역사의 땅이라기보다 기쁨과 생명의 현재를 묵상하는 곳"이라고 소개합니다. 가을 하늘 아래 해미천 둑길을 천천히 걸으며, 이름 없이 믿음을 지킨 평범한 이웃들을 한 번쯤 떠올려 보시면 어떨까요.
출처: 해미국제성지 공식 홈페이지(haemi.or.kr) 성지 소개·역사·교령, 교황청 누리집 프란치스코 교황 해미 순교성지 연설(2014.8.17),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관련 성지', 가톨릭신문 「대전교구 해미순교자국제성지」(2024.8), 연합뉴스·문화일보(2021.3.9), 디지털서산문화대전 '여숫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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