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교우촌의 사립문을 두드리며 "신부님 오셨습니다" 하는 소리가 들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박해가 서슬 퍼렇던 조선 후기, 이름도 없이 숨어 살던 신자들을 찾아 해마다 수천 리 산길을 걸어 다닌 한 사제가 있었지요. 한국 천주교회의 두 번째 사제, 최양업 토마스 신부(1821~1861)입니다. 한국 교회는 첫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피의 순교자'로, 그리고 최양업 신부를 '땀의 순교자'로 부릅니다. 오늘은 그가 걸어간 길과, 그 발자취가 잠든 충북 제천 배론성지 이야기를 차근차근 따라가 보려 합니다.
■ 순교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한국 최초의 신학생
최양업 신부는 1821년 3월 충청도 홍주 다락골 인근 새터 교우촌(지금의 충남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1984년 성인품에 오른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어머니는 2014년 복자품에 오른 복자 이성례 마리아입니다. 신앙 때문에 박해를 피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던 집안에서 자란 그는 1835년 말,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 최초의 신학생으로 뽑힙니다.
1836년 12월 3일, 열다섯 살 안팎의 세 소년 최양업, 최방제, 김대건이 마카오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이들은 파리 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 신학교에서 공부했지만, 최방제 프란치스코는 1837년 11월 열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먼 이국땅에서 친구를 잃은 슬픔에 이어, 1839년 기해박해 때 아버지 최경환은 포도청에서 옥사하고 어머니 이성례는 1840년 1월 서울 당고개에서 순교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습니다. 어린 신학생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소식이었을 텐데, 그는 그 길을 끝내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 13년 만의 귀국, 그리고 홀로 남은 조선인 사제
1842년 최양업과 김대건은 마카오를 떠나 만주 소팔가자로 옮겨 공부를 이어 갔고, 1844년 함께 부제품을 받았습니다. 먼저 사제가 된 김대건 신부가 조선으로 들어간 뒤에도 최양업 부제는 귀국로를 찾으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1846년 병오박해로 김대건 신부가 순교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몇 차례 귀국 시도가 실패한 끝에 그는 1847년 상해로 옮겼고, 1849년 4월 15일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해 12월 3일, 밀사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조선 땅을 밟았습니다. 고향을 떠난 지 13년 만이었습니다.
김대건 신부가 사제가 된 지 1년 만에 순교했기 때문에, 이때부터 최양업 신부는 당대의 유일한 한국인 사제였습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두 사람을 두고 하느님께서 한국 교회에 마련해 주신 두 기둥, 곧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라고도 부른다고 소개합니다.
■ 11년 6개월, 해마다 7천 리를 걸은 '땀의 순교자'
귀국 직후부터 최양업 신부는 쉬지 않았습니다. 1850년 초부터 11년 6개월 동안 전국의 신자 공동체를 찾아 미사를 드리고 고해성사를 주었습니다. 프랑스 선교사들이 드나들기 어려운 지역을 도맡아, 해마다 7천 리가 넘는 산길을 걸으며 전국 120여 곳의 교우촌을 순방했다고 전해집니다. 배론성지의 기록에 따르면 그가 돌본 구역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등 다섯 개 도에 걸쳐 있었고, 6천여 명의 신자와 127개의 공소가 있었습니다.
1853년 여름에는 배티 교우촌에 있던 조선교구 소신학교의 지도 신부를 맡기도 했고, 1860년 경신박해 때는 지금의 울산 지역인 죽림 교우촌에 몸을 숨기기도 했습니다. 1861년 경상도 지방 사목 방문을 마친 그는 베르뇌 주교에게 결과를 보고하러 서울로 올라가던 길에, 과로에 장티푸스까지 겹쳐 6월 15일 문경 또는 진천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마흔 살이었습니다. 배론 신학교에 있던 푸르티에 신부가 170~180리를 달려가 임종을 지켰는데, 그는 숨을 거두면서도 예수와 마리아의 이름을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칼날 아래 피를 흘리지는 않았지만, 신자들을 위해 땀을 다 쏟아 낸 삶이었기에 '땀의 순교자'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 한글로 신앙을 전한 사람, 라틴어 편지를 남긴 사람
최양업 신부는 걷는 사이사이 붓을 들었습니다. 한문으로 된 교리서와 기도서를 한글로 옮겼고, 순교자들의 행적을 모아 기록해 다블뤼 주교에게 넘겼습니다. 1859~1860년에는 교리서와 기도서 번역·수정 작업을 집중적으로 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서울에 목판 인쇄소가 세워져 교리서 『성교요리문답』이 인쇄되었고, 1862년에는 기도서 『천주성교공과』가 인쇄되어 신자들에게 퍼졌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천주교 서적의 한글 번역에 그의 공헌이 컸다고 평가합니다.
글을 모르는 신자들도 쉽게 외울 수 있도록 3·4조, 4·4조 가락에 교리를 담은 '천주가사'도 그의 이름과 함께 전해집니다. 「사향가」, 「선종가」, 「사심판가」, 「공심판가」 등이 그것인데, "어화 우리 벗님네야 / 우리 본향 찾아가세"로 시작하는 「사향가」가 특히 유명합니다. 다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가사들을 그가 지었다는 명확한 문헌 근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으니, '그가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확하겠습니다.
그가 스승 신부들에게 라틴어로 써 보낸 편지도 소중한 기록입니다. 1842년부터 1860년까지 쓴 19통이 알려져 있었고, 2013년 파리 외방전교회 문서에서 만주대목구장 베롤 주교에게 보낸 2통이 추가로 확인되어 지금은 21통이 전합니다. 편지에는 사목 활동과 교회 사정, 순교한 부모의 짧은 전기, 그리고 폭정에 시달리던 가난한 백성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스승들도 그의 라틴어 실력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 배 밑바닥을 닮은 골짜기, 제천 배론성지
최양업 신부가 잠든 곳은 충북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의 배론성지입니다. 골짜기가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 하여 처음에는 주론(舟論)이라 하다가 '배론'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박해를 피해 들어온 신자들이 옹기를 구우며 신앙을 지키던 교우촌이었습니다.
배론에는 세 가지 보물이 있습니다. 첫째는 황사영 백서 토굴입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황사영은 옹기굴처럼 꾸민 토굴에서 8개월 동안 숨어 지내며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낼 편지를 썼습니다. 가로 62cm, 세로 40cm의 명주천에 122행, 13,384자를 깨알같이 적은 이 '백서'의 원본은 지금 바티칸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성 요셉 신학당입니다. 1855년 교우촌 회장 장주기 요셉이 자기 집을 내놓아 메스트르 신부가 세운 곳으로, 1866년 병인박해로 문을 닫을 때까지 신학 교육이 이어졌습니다. 한국 교회 최초의 신학교로 꼽히며, 장주기 요셉은 훗날 103위 성인 가운데 한 분이 되었습니다. 셋째가 바로 최양업 신부의 묘소입니다. 선종지에 임시로 묻혔던 그의 시신은 1861년 11월 초 베르뇌 주교의 주례로 장례를 치른 뒤 신학교 뒷산에 안장되었습니다.
배론성지 일대는 2001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1999년 사제 서품 150주년을 맞아 지은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은 지명에 어울리게 배 모양으로 세워져 노아의 방주를 떠올리게 합니다. 성지 뒤편에는 그의 삶의 여정을 따라 걸으며 묵상할 수 있는 조각공원도 있습니다.
■ 가경자 선포, 그리고 남은 한 걸음
최양업 신부의 시복 추진은 1990년대 청주교구 배티 성지에서 그의 전기 자료집을 펴내며 시작되었습니다. 2005년 12월부터 2009년 5월까지 시복 법정이 13회 열렸고, 2009년 6월 관련 문서가 교황청 시성성에 제출되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 4월 2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의 영웅적 성덕을 인정하는 교령을 승인하면서, 최양업 신부는 '가경자(可敬者)'가 되었습니다.
순교자는 순교 자체를 기적으로 여겨 기적 심사가 면제되지만, 증거자인 최양업 신부는 그의 전구로 일어난 기적이 입증되어야 복자품에 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지금도 그의 시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가을 단풍이 내려앉는 요즘, 제천 배론의 골짜기를 천천히 걸어 보시면 어떨까요. 한 사람이 평생 걸어 낸 수천 리 길의 무게가 조금은 가까이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출처: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인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 가경자 선포'(2016.4.28) https://cbck.or.kr/Notice/13012015 ,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최양업 신부 생애' https://cbck.or.kr/koreanmartyrs/CHOE-Yang-eop/Life ,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관련 성지 - 배론' https://cbck.or.kr/koreanmartyrs/Shrines/26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최양업'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7456 , 배론성지 공식 홈페이지(최양업 신부님 묘소·황사영 백서 토굴·성 요셉 신학교) https://baeron.or.kr , 가톨릭신문(2013.8.11) '최양업 신부 서한 2통 새로 발견' http://surisan.kr/bb1/2968 , 디지털제천문화대전 '배론과 황사영' https://www.grandculture.net/jecheon/toc/GC03300013 , 굿뉴스 성지와 사적지 '배론' https://app.catholic.or.kr/web/holyplace/?seq=2275
👉 신이말했다 카페 가입하고 새 글 알림 받기: https://cafe.naver.com/910401
🌐 신이말했다 사이트: https://sinimalhaetda.com
💬 카카오톡 채널: http://pf.kakao.com/_XrLFX
![[광고] (주)아크 반려동물 용품 OEM 생산 010-6298-5336](/static/ads/ark_oem_banner_wide.jpg?v=2)
댓글 0
댓글은 승인된 회원만 쓸 수 있어요. 로그인 · 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