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보령시 오천면, 충청수영성이 있던 오천항에서 바닷가 길을 따라 2km 남짓 내려가면 조개껍데기 모양 지붕을 얹은 성당이 소나무 숲 사이로 보입니다. 앞으로는 섬과 육지에 둘러싸여 연못처럼 잔잔한 바다가 펼쳐지지요. 이곳이 1866년 병인박해 때 다섯 성인이 순교한 갈매못 순교성지입니다. 풍경은 더없이 고요하지만, 이 모래사장에는 한국 천주교회가 잊지 않으려 애써 온 하루가 새겨져 있어요. 오늘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와 디지털보령문화대전, 보령시청, 가톨릭신문, 대전교구 신리성지 자료를 바탕으로 갈매못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따라가 보겠습니다.
■ '갈매못'이라는 이름과 바닷가 수영(水營)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에 따르면 '갈매못'이라는 이름은 영보리 앞바다가 좌우의 육지와 섬으로 둘러싸여 마치 연못처럼 보이는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바로 옆 오천항에 충청도 수군절도사의 군영인 수영(水營)이 있었는데, 지금으로 치면 해군 부대가 머물던 곳이에요. 디지털보령문화대전은 이곳을 충청수영성 인근 해변의 형장으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왜 서울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죄인들을 이렇게 먼 바닷가까지 데려왔을까요? 기록에 따르면 당시 궁중에서 고종의 왕비 간택이 예정되어 있어 서울이나 그 부근에서 처형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가톨릭신문은 1846년 천주교 탄압에 항의하며 무력시위를 벌였던 프랑스 함대가 머물렀던 외연도가 가깝다는 점도 이유였다고 전해요. 서양 선교사를 바로 그 바다 앞에서 처형해 뜻을 드러내려 했다는 것이지요.
■ 교구장이 된 지 나흘 만에 붙잡힌 다블뤼 주교
다섯 순교자의 중심에는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주교, 한국 이름 안돈이(安敦伊)가 있습니다. 1818년 프랑스 아미앵에서 태어난 그는 1845년 8월 31일 페레올 주교, 막 사제가 된 김대건 신부와 함께 작은 배를 타고 상하이를 떠나 그해 10월 12일 충청도 강경 땅에 몰래 들어왔습니다. 그 뒤 21년 동안 주로 충청도 내포 지방에서 신자들과 함께 살았지요.
다블뤼 주교는 조선의 말과 풍습을 누구보다 깊이 익힌 선교사로 꼽힙니다. 1856년 무렵부터 조선의 문화와 역사, 순교자들의 행적을 꾸준히 모아 프랑스어로 옮겨 파리로 보냈고, 이 자료는 1874년 달레 신부가 펴낸 『한국천주교회사』의 핵심 바탕이 되었습니다. 『신명초행』, 『회죄직지』 같은 신앙서도 그가 쓰거나 옮긴 책이에요.
1866년 3월 7일 베르뇌 주교가 순교하자 그는 제5대 교구장이 되었지만, 불과 나흘 뒤인 3월 11일 내포 지방 거더리에서 붙잡혔습니다. 신리성지 자료는 그가 교구장으로 지낸 기간이 23일에 불과했다고 전합니다.
■ 함께 자수한 두 젊은 신부와 두 조선인 신자
주교가 붙잡히자 인근에 숨어 있던 두 젊은 프랑스 신부가 스스로 나섰습니다. 1837년생 오메트르 신부는 바다로 피하려 배를 띄웠다가 거센 역풍으로 돌아온 뒤, 더 이상 신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자수했어요. 1836년생 위앵 신부는 1865년 5월 조선에 들어와 1년도 안 되어 고해성사를 줄 만큼 조선말을 익혔는데, 다블뤼 주교의 편지를 받고 그 뒤를 따랐습니다. 순교 당시 두 사람은 스물아홉, 서른 살이었다고 해요.
조선인 신자 두 사람도 함께였습니다. 충청도 연풍의 부유한 양반 집안 외아들이던 황석두 루카는 과거 시험을 보러 가던 길에 천주교를 알게 되어 "천당 가는 과거에 이미 급제했다"며 발길을 돌린 인물로 전해집니다. 다블뤼 주교의 복사이자 회장으로 책 번역과 저술을 도왔지요. 장주기 요셉은 1855년 제천 배론에 신학교가 세워질 때 자기 집을 신학교로 내어 준 회장이었습니다. 다섯 사람은 서울로 압송되어 신문을 받았고, 3월 23일 무렵 군문효수형을 선고받았습니다.
■ 1866년 3월 30일 성금요일, 모래사장의 하루
신리성지 자료에 따르면 다블뤼 주교는 보령으로 끌려가던 길에 처형 날짜가 미뤄질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성금요일에 죽게 해 달라고 간곡히 청했다고 합니다. 그 바람대로 1866년 3월 30일 성금요일, 갈매못 모래사장에서 다섯 사람이 차례로 순교했습니다.
가톨릭신문은 첫 칼을 다블뤼 주교가 받았고, 이어 오메트르 신부, 위앵 신부, 황석두 루카, 장주기 요셉이 뒤를 이었다고 전합니다.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에는 다섯 분의 머리가 기둥 위에 내걸렸을 때 은빛 무지개가 하늘에서 내려와 주위를 놀라게 했다는 증언도 남아 있다고 해요. 황석두 루카의 유해는 가족이 곧 거두어 고향으로 모셨고, 나머지 네 분의 유해는 여러 곳을 거쳐 1882년 일본 나가사키로 옮겨졌다가 다시 돌아와, 1967년부터 서울 절두산 순교성지 지하 성당에 모셔져 있습니다. 다섯 순교자는 1968년 복자품에, 1984년 서울에서 열린 103위 시성식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 잊힌 형장에서 순례자가 찾는 성지로
순교 터는 오랫동안 바닷가의 이름 없는 모래밭이었습니다. 보령시청과 디지털보령문화대전에 따르면 1920년대 중반, 신부들이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모아 순교 현장을 확인하고 땅을 사들인 것이 성지 조성의 첫걸음이었다고 합니다.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1975년 9월 대천본당 주임 정용택 신부가 순교 터를 다시 확인하고 그 자리에 순교비를 세웠다고 전해요.
이후 1985년 시성비, 1999년 경당과 사제관, 수녀원이 들어섰고, 2006년에는 기념성당인 '승리의 성모성당'이 지어졌습니다. 2013년 2월에는 '보령 갈매못 천주교 순교지'라는 이름으로 충청남도 기념물 제188호가 되었지요. 보령시청은 해마다 4만~5만 명의 순례자가 이곳을 찾는다고 소개합니다.
■ 조개 지붕 성당 안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성지 마당에는 순교 터를 알리는 비석과 순교성인비, 다섯 성인의 첫 매장 터가 있고, 그 너머로 성인들이 마지막으로 보았을 바다가 펼쳐집니다. 맞은편 기념관에는 다블뤼 주교의 중백의와 저서, 친필 서명, 오메트르 신부의 제병기, 다블뤼 주교가 머물던 신리 공소 주교관의 주춧돌이 전시되어 있어요.
십자가의 길 14처를 따라 언덕을 오르면 승리의 성모성당이 나옵니다. 가톨릭신문에 따르면 조개껍데기 모양 지붕에는 진주를 품은 조개처럼 순례자들도 교회의 진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겼다고 해요. 제대 뒤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숲속에 숨은 신자들이 나무 사이로 모래사장의 순교 장면을 숨죽여 지켜보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미닫이로 된 이 창을 좌우로 열면 서해가 한눈에 들어온다고 합니다. 미사는 주일 오전 8시와 11시 30분,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11시 30분(월요일 없음)이며, 순례 미사는 예약이 필요하다고 성지 홈페이지는 안내합니다. 가을 바다가 맑은 요즘, 보령 바닷길을 지나신다면 잠시 들러 그날의 바다를 조용히 바라보셔도 좋겠습니다.
출처: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관련 성지 - 갈매못」 https://www.cbck.or.kr/koreanmartyrs/Shrines/68 , 디지털보령문화대전 「보령 갈매못 천주교 순교지」 https://boryeong.grandculture.net/boryeong/toc/GC08800910 , 보령시청 관광명소 「보령 갈매못 천주교 순교지」 https://www.brcn.go.kr/prog/attraction/tour/sub01_03/view.do?attractionCode=133 , 가톨릭신문 「[순례, 걷고 기도하고] 대전교구 갈매못순교성지」(2024.3.24)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40315500060 , 천주교 대전교구 신리성지 「성인 소개」 https://sinri.or.kr/kwa-2130 , 천주교 대전교구 갈매못순교성지 http://galmaemot.or.kr/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천주교회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1434 , Brother Anthony 「St. Antoine Daveluy」 http://anthony.sogang.ac.kr/index.html , 굿뉴스 「연풍 순교성지」 https://app.catholic.or.kr/web/holyplace/?seq=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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