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미리내성지는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리내성지로 420(미산리)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의 순교성지로, 한국인 첫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가 순교 후 묻혔던 곳입니다. 지금도 성지의 103위 시성 기념 성당 제대와 경당에 성인의 유해 일부가 모셔져 있고, 용인 은이성지에서 이곳까지 이어지는 '청년 김대건길' 순례 코스는 10.3km, 걸어서 약 4시간 거리입니다.
'미리내'는 은하수를 뜻하는 순우리말입니다. 박해를 피해 산골짜기에 숨어 살던 교우들의 집에서 새어 나온 불빛이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보였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지지요. 이름만큼이나 고요하고 아름다운 이 골짜기에는, 한 젊은 신부의 시신을 품에 안고 밤길을 걸었던 열일곱 살 소년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천주교 주교회의 자료, 가톨릭신문 기사를 바탕으로 미리내성지가 걸어온 길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미리내 뜻과 유래 — 은하수 마을이 된 교우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미리내'를 한자로 처음 적은 기록은 1842~1843년 무렵 만들어진 『경기지』 양성현 조의 '미이천리(彌迤川里)'입니다. 이후 '미리천'으로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을 합치면서 '미리천'과 이웃 '산촌'의 첫 글자를 따 지금의 '미산리'가 되었습니다.
이 골짜기는 1840년 이전부터 박해를 피해 온 신자들이 모여 사는 교우촌이었습니다. 산이 깊어 관헌의 눈을 피하기 좋았기 때문입니다. 1846년 초 조선에 들어온 김대건 신부는 약 넉 달 동안 용인 은이를 중심으로 사목했는데, 학계에서는 이때 미리내 공소에도 들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훗날 병인박해 직전에는 프랑스 선교사 칼레 신부와 오메트르 신부가 이곳을 사목 거점이자 은신처로 삼기도 했습니다.
이민식 빈첸시오 — 김대건 신부를 업고 밤길을 걸은 소년
1846년 9월 16일, 스물다섯 살의 김대건 신부는 한강변 새남터에서 참수되어 순교했습니다. 시신은 형장 모래밭에 묻힌 채 포졸들의 감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다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미리내 인근 검은정이 출신의 이민식 빈첸시오와 서울 교우 등 십여 명이 밤중에 시신을 거두었습니다.
가톨릭신문에 따르면 당시 이민식은 겨우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그는 신부의 시신을 짊어지고 지금의 흑석동과 남태령, 판교와 용인 땅을 지나 산길과 고개를 넘었습니다. 그렇게 순교 40일 만인 10월 26일, 김대건 신부는 이민식 집안의 선산이 있던 미리내에 묻혔습니다. 이민식은 그 뒤 한동안 몸을 피했다가 돌아와 평생 무덤을 돌보았고, 1921년 12월 9일 아흔두 살로 세상을 떠나 신부의 곁에 묻혔습니다.
그는 신부의 무덤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자기 집을 공소로 내놓았고, 늦은 나이에 사제가 되려고 라틴어 공부에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끝내 그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명동의 종현성당에서 복사로 봉사하며 교회 일을 도왔다고 가톨릭신문은 전합니다. 오늘날 새남터에서 미리내까지 이 길을 순례하는 신자들도 있는데, 걸어서 30여km, 8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고 합니다. 한밤중에 시신을 업고 그 길을 걸었을 소년의 두려움과 정성을 떠올리면 발걸음이 저절로 무거워집니다.
페레올 주교와 어머니 고 우르술라 — 곁을 지킨 사람들
미리내에는 김대건 신부 혼자 잠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에게 부제품과 사제품을 준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는 1853년 2월 세상을 떠나며 "거룩한 순교자 곁에 있고 싶다"는 뜻을 남겼고, 그 유언대로 김 신부의 무덤 곁에 안장되었습니다.
신부의 어머니 고 우르술라의 무덤도 이곳에 있습니다. 열다섯 살에 신학생으로 떠난 아들을 십 년 가까이 기다렸고, 돌아온 아들을 겨우 몇 달 만에 다시 잃은 어머니였습니다. 그는 아들이 순교한 지 18년 뒤인 1864년 5월 17일 예순여섯 살로 세상을 떠났고, 1928년 경당이 지어지면서 아들의 무덤 가까이로 옮겨졌습니다. 순례자들이 이 작은 두 무덤 앞에서 오래 머무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강도영 신부와 1928년 기념 경당 — 성지가 된 무덤
1896년, 미리내 공소는 본당이 되었습니다. 초대 주임은 한국인으로서 세 번째로 사제품을 받은 강도영 마르코 신부(1863~1929)였습니다. 그는 선종할 때까지 30년 넘게 미리내에서 사목하며 김대건 신부의 무덤을 공적인 현양의 자리로 가꾸었습니다. 1907년에는 주민들을 위한 해성학원을 세웠고, 1924년 무렵에는 제사 공장과 잠업 전수소를 열어 양잠 기술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김대건 신부의 유해는 시복 조사 과정에서 1901년 발굴되어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로 옮겨졌습니다. 그러자 강 신부는 원래 무덤이 있던 자리에 기념관을 짓자고 꾸준히 제안했고, 마침내 1928년 9월 '치명자의 모후'를 주보로 하는 김대건 신부 기념 경당이 축복되었습니다. 가톨릭신문은 이 경당을 오늘날 미리내성지의 직접적인 출발점으로 평가합니다. 1960년에는 성인의 유해 가운데 아래턱뼈가 이 경당으로 모셔졌습니다.
103위 시성 기념 성당과 무명 순교자 묘역
1963년 수원교구가 생긴 뒤 미리내에서는 해마다 교구 순교자 현양대회가 열렸습니다. 1984년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한국 순교자 103위가 성인품에 오르자, 이를 기념해 1991년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 성당'이 세워졌습니다. 주교회의 시복시성 특별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이 성당 제대에도 성인의 유해 일부가 모셔져 있습니다.
성지 입구 오른쪽 언덕 위 성직자 묘지 맨 위에는 '무명 순교자의 묘'가 있습니다. 1976년 4월 용인 양지면 음다라니의 '목 없는 줄무덤'을 발굴해 옮겨 온 것을 시작으로 모두 17위가 이곳에 모셔졌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은 이윤일 요한 성인으로 밝혀져 1986년 대구로 옮겨졌고, 네 분은 손골성지로 옮겨져 지금은 12위가 잠들어 있습니다. 이름도 고향도 남기지 못한 이들의 무덤은 미리내에서 가장 조용하고 깊은 기도 자리입니다.
청년 김대건길 — 은이성지에서 미리내까지 걷는 순례길
미리내성지를 더 깊이 만나고 싶다면 용인 은이성지에서 출발하는 '청년 김대건길'을 걸어 보셔도 좋습니다. 용인시 문화관광포털에 따르면 순례 코스는 은이성지, 신덕고개, 망덕고개, 애덕고개를 거쳐 미리내성지에 이르는 10.3km이고, 공공데이터 기준 소요 시간은 약 4시간입니다. 세 고개의 이름은 천주교의 세 가지 덕인 믿음(신덕), 희망(망덕), 사랑(애덕)에서 따왔습니다.
은이성지는 김대건 신부가 1836년 세례를 받고 신학생으로 뽑혀 떠난 곳이자, 사제가 되어 돌아와 첫 사목을 한 곳입니다. 등산로와 마을길, 도로변이 섞인 길이라 편한 산책로라기보다 순례길에 가깝고, 출발지와 도착지가 다르니 돌아갈 교통편을 먼저 챙기시는 게 좋습니다. 걷기가 부담스럽다면 성지 안의 십자가의 길과 경당, 성인의 무덤만 천천히 둘러보아도 충분합니다.
가을 햇살이 비치는 미리내 골짜기에 서면, 은하수처럼 빛났을 교우촌의 등불과 밤길을 걷던 소년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이번 주말, 마음이 지친 분이라면 미리내에서 잠시 쉬어 가셔도 좋겠습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미리내 천주교 유적」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9927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미리내성당」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9928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관련 성지 — 미리내 성지」 https://cbck.or.kr/koreanmartyrs/Shrines/42?page=3 , 가톨릭신문 「님의 발자취 따라 11 묻힌곳 미리내」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203260229484 , 가톨릭신문 「미리내성지와 강도영 신부」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209200136091 , 가톨릭신문 「미리내성지 무명 순교자 묘역」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802260250127 , 가톨릭대학교 전례박물관 「유해 보존 과정」 https://songsin.catholic.ac.kr/museum/pilgrimage/saintandrewkim02.do , 용인시 문화관광포털 「청년 김대건길」 https://www.yongin.go.kr/home/yitour/ytour01/yttour09_02.jsp , KCI 「미리내 성지의 교회사적 의의」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303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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