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구 서성로, 높은 빌딩과 상가 사이를 걷다 보면 갑자기 시간이 백 년쯤 거꾸로 흐르는 듯한 풍경을 만나게 됩니다. 붉은 벽돌 위로 두 개의 뾰족한 첨탑이 나란히 솟은 성당, 바로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인 계산성당(대구 계산동성당)입니다. 옛 대구 사람들이 '뾰족집'이라 불렀던 이 성당은 대구에 처음 세워진 서양식 건물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디지털대구문화대전(대구역사문화대전)』, 국가유산청 자료,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지 안내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계산성당 이야기를 차분히 들려드리겠습니다.
■ 초가 한 채에서 시작된 영남 첫 본당
계산성당의 역사는 한 프랑스 선교사의 발걸음에서 시작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지 안내에 따르면 계산 본당은 1886년 블랑 주교에 의해 대구·경북 지역 최초의 본당(당시 대구 본당)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초대 주임은 파리외방전교회의 아실 폴 로베르(Achille Paul Robert, 한국 이름 김보록) 신부였지요.
박해의 기억이 채 가시지 않았던 시절이라, 로베르 신부는 처음에 칠곡의 신나무골 교우촌에 머물다 대구로 들어왔습니다. 1891년에는 이른바 '대구 교안'으로 불리는 축출 사건을 겪고 대구에서 쫓겨나기도 했지만, 그해 다시 돌아와 임시 성당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897년, 지금의 계산동 땅을 마련해 그 자리에 있던 초가집을 임시 성당으로 쓰면서 본격적으로 성당을 지을 계획을 세웠습니다(부지 매입 시기는 자료에 따라 1894년으로 적기도 합니다).
■ 불타 버린 한옥 성당, 그리고 다시 쌓은 벽돌
1899년, 마침내 한식 목조로 지은 십자형 성당이 완공되었습니다.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를 주보로 모시고 축성식도 올렸지요. 그런데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디지털대구문화대전』은 1901년 2월 4일 밤 지진으로 일어난 화재로 이 한옥 성당이 불타 버렸다고 전합니다.
로베르 신부는 낙심하는 대신 더 크고, 다시는 불에 타지 않을 벽돌 성당을 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훗날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서상돈을 비롯해 정규옥, 김종학 등 신자들이 힘을 모아 건립 기금을 마련했습니다. 설계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프와넬(Poisnel) 신부가 맡았다고 되어 있고, 국가유산청과 『디지털대구문화대전』은 로베르 신부가 직접 설계했다고 전해, 두 이야기가 함께 내려옵니다.
당시 대구에는 서양식 건물을 지어 본 기술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울 명동성당 공사에 참여했던 중국인(화교) 기술자들이 내려와 공사를 맡았습니다. 굿뉴스 자료실에 실린 연구 논문에 따르면 석공·목수 등이 차례로 도착했고, 현장에서 직접 벽돌을 구워 몇 달 만에 17만 장에 이르는 벽돌을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스테인드글라스와 함석처럼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자재는 프랑스와 홍콩에서 들여왔습니다. 그렇게 1902년 새 성당이 완공되었고, 그해 11월 30일 새 성당에서 첫 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이듬해인 1903년 11월 1일에는 뮈텔 주교의 주례로 축성식이 열렸는데, 매일신문은 사방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처음 보는 '뾰족집'을 구경했다고 전합니다.
■ '뾰족집'의 모습 — 로마네스크에 고딕을 더하다
계산성당은 순수한 고딕 양식이라기보다 고딕 장식을 더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입니다. 화강석 기단 위에 붉은 벽돌을 쌓고, 부벽과 출입구 아치, 처마 돌림띠, 내부 기둥과 천장의 갈빗대(리브) 같은 부분은 회색(검은) 벽돌로 쌓아 무늬를 냈습니다. 평면은 라틴 십자형의 삼랑식이고, 정면 양쪽 종탑에는 팔각의 높은 첨탑을, 박공에는 장미창을 두었습니다.
1911년 대구대목구가 새로 설정되면서 계산성당은 주교좌 성당이 되었습니다. 늘어난 신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종탑을 두 배로 높이고 성당 뒤쪽을 넓혀 1918년 12월 24일 증축을 마쳤고, 이때의 모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디지털대구문화대전』은 계산성당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세워진 고딕 양식 성당이자 영남 지역 최초의 성당 건축이라고 평가합니다. 대구에 남아 있는 유일한 1900년대 성당 건축물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1981년 9월 25일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 스테인드글라스 속 한복 입은 성인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높고 둥근 아치형 천장과 회색 벽돌 기둥, 그리고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먼저 눈길을 붙잡습니다. 양쪽 벽 창에는 열두 사도가 그려져 있는데, 한국관광공사 열린관광 안내에 따르면 그 곁에 한복을 입은 인물들도 눈에 띕니다.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조선 시대 박해 때 순교한 우리나라 성인들이지요. 낯선 서양 성인들 사이에서 갓과 도포 차림의 얼굴을 찾아보는 일은 이 성당을 찾는 분들이 가장 오래 머무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 대구 사람들의 기억이 머무는 곳
계산성당은 대구 근현대사의 여러 장면과도 이어져 있습니다. 한국관광공사 안내는 1951년 김수환 추기경이 이곳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고 소개합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6·25 전쟁 중이던 1950년 12월 12일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이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주례를 맡은 허억 당시 대구시장이 신랑·신부의 이름을 바꿔 부르는 바람에 장내에 웃음이 터졌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화가 이인성의 대표작 「계산동성당」(국립현대미술관 소장)도 1930년대 이 성당을 그린 작품입니다. 경북일보는 그림 속 감나무가 지금도 성당 마당에 남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고 소개합니다. 1986년 본당 설립 100주년에는 성당 마당 한편에 로베르 신부의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 근대골목과 함께 걷는 계산성당
오늘날 계산성당은 대구 중구 근대골목투어의 중심 코스입니다. 3·1만세운동길 90계단을 사이에 두고 청라언덕과 마주하고 있어, 언덕 위에서 두 첨탑이 나란히 선 성당의 전체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근처에는 시인 이상화 고택과 서상돈 고택도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습니다. 주소는 대구 중구 서성로 10이고, 문의는 053-254-2300입니다. 성당은 미사와 기도가 이어지는 신앙의 공간이니, 방문하실 때는 조용히 머물러 주시고 미사 시간이나 관람 안내는 성당 공식 안내를 한 번 더 확인해 보세요.
가을 햇살이 비스듬히 드는 오후, 붉은 벽돌 앞에 잠시 서 보시면 어떨까요. 불타 버린 한옥 성당의 잿더미 위에 다시 벽돌을 쌓아 올린 사람들의 마음이, 백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두 개의 첨탑처럼 조용히 하늘을 향해 서 있습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구 계산동 성당」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4060 , 디지털대구문화대전 「대구 계산동성당」(이정은 집필) https://www.grandculture.net/daegu/toc/GC40001749 , 국가유산청 Heritage Search 「Gyesandong Cathedral, Daegu」 https://english.cha.go.kr/chaen/search/selectGeneralSearchDetail.do?ccebAsno=0002900000000&mn=EN_01_01&sCcebCtcd=22&sCcebKdcd=13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지와 사적지 「계산 주교좌성당」 https://m.catholic.or.kr/web/holyplace/?seq=2257 , 굿뉴스 자료실 「조선 화교의 성당건축 시공 활동」 https://pds.catholic.or.kr/pdsm/bbs_view.asp?id=167929&menu=4817&num=50 , 매일신문 「선과 공간 한국건축의 미학-(4)계산성당」 https://www.imaeil.com/page/view/1999011914410783023 , 한국관광공사 열린관광 「삶의 향기 그윽한 골목 따라 대구 여행」 https://access.visitkorea.or.kr/cos/detail.do?cotId=c5c706b5-d0c2-4447-b19b-ab515506f85f , 중앙일보 「실록 박정희시대 – 戰時 결혼식」 https://www.joongang.co.kr/article/3484422 , 경북일보 「[옛골목은 살아있다] 4. 계산성당」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21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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