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하류,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의 나지막한 언덕 위에 기와지붕을 얹은 성당 하나가 서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오래된 한옥 같고, 가까이 다가가면 정면에 고딕식 벽돌 종탑이 솟아 있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곳, 바로 익산 나바위성당입니다. 사흘 전인 10월 12일은 181년 전 김대건 신부 일행이 이 강가로 조선 땅에 첫발을 디딘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국가유산청 기록, 천주교 전주교구와 주교회의 시복시성 자료를 따라, 강물을 거슬러 온 첫 한국인 사제의 귀국길과 한옥과 서양이 한 몸이 된 성당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 보려 합니다.
■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시작된 귀국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대건」 항목에 따르면, 1821년 지금의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김대건은 마카오에서 공부한 뒤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사제가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일주일 뒤인 8월 24일 횡당 성당에서 첫 미사를 드린 그는, 8월 31일 페레올 주교와 새 선교사 다블뤼 신부, 조선 신자들과 함께 조선에서 타고 간 배로 상해를 떠났습니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자료는 이 배를 '라파엘호'라고 부릅니다. 엔진 없는 작은 범선이었지요. 서해를 건너 한강으로 올라가려던 계획은 큰 폭풍우에 부서졌고, 일행은 바다를 떠돌다 상해 출발 29일 만인 9월 28일 제주 한경면 용수리 해안에 닿았습니다. 그곳에서 배를 고친 뒤 다시 뱃머리를 북쪽으로 돌렸습니다. 제주교구는 1999년 9월 19일 용수리 포구를 성지로 선포하고 라파엘호를 복원해 전시하고 있습니다.
■ 1845년 10월 12일, 어둠 속의 상륙
일행이 조선 본토에 닿은 것은 1845년 10월 12일 일요일 밤이었습니다. 한국교회사 연구 논문(「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일행의 1845년 입국 장소와 강경 유숙지 연구」)에 따르면, 그들은 발각을 피해 강경 황산포 인근 외딴 곳에 배를 대고 어둠을 틈타 내렸고, 프랑스 선교사들은 강경 신자들이 준비해 온 조선 상복으로 갈아입은 채 하선했습니다. 얼굴을 가리는 상복은 서양인의 모습을 감추기에 좋은 옷이었습니다.
다블뤼 신부와 신자들 대부분은 이튿날 길을 떠났지만, 페레올 주교는 강경에서 두 달 넘게 머물렀고 김대건 신부는 신자 구순오의 집에서 약 한 달을 지내며 교우들을 돌보았다고 같은 연구는 전합니다. 논산시 문화관광 안내가 강경을 '한국 천주교회 첫 사목지'라고 소개하는 까닭입니다.
다만 정확한 상륙 지점을 두고는 학자들 사이에 견해가 갈립니다. 위 연구는 '황산포 인근'으로 보고, 또 다른 논문(「1845년 김대건 신부 일행의 상륙 장소에 관한 연구」)은 1882년 생긴 나바위 공소 신자들의 증언과 본당 기록을 근거로 '강경 황산포 화산', 곧 지금의 나바위 일대로 봅니다. 금강을 사이에 둔 이웃 동네라 같은 장소를 다른 지명으로 불렀을 수 있다는 해석입니다. 어느 쪽이든, 이 강줄기가 첫 한국인 사제의 귀국길이었다는 사실은 같습니다.
■ 베르모렐 신부와 1907년 한옥 성당
나바위에 성당이 들어선 것은 그로부터 반세기 뒤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화산천주교회」 항목은 나바위 본당이 1897년에 설정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베르모렐(Vermorel) 신부가 부임했다고 적습니다. 그는 용안군 안대동 공소에 머물다가 1897년 7월 화산 아래 김여산의 집과 부속 건물을 사들여 자리를 잡았고, 1906년 공사를 시작해 1907년 성당을 완공했습니다. 국가유산청 설명에 따르면 설계와 감독은 베르모렐 신부가 직접 맡았고 중국인 기술자들이 함께 일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전주교구 성지 안내의 한 문장입니다. 베르모렐 신부가 성당을 지을 때는 김대건 신부 일행을 기념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으니, 이 자리에 성당이 선 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국가유산청 설명은 상륙을 기념해 지은 건물로 소개하고 있어, 그 뜻이 처음부터였는지 나중에 더해졌는지는 자료마다 결이 조금 다릅니다.
■ 한옥과 고딕이 한 몸이 된 '한양절충식' 성당
처음의 나바위성당은 순수한 목조 한옥이었습니다.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정면 5칸, 측면 13칸 크기에 정면과 양옆 툇간은 마루였고, 정면 가운데에 나무로 만든 종탑과 십자가가 서 있었습니다. 1916~1917년 고쳐 지으면서 목조 종탑을 없애고 고딕식 벽돌 종각을 덧붙였으며, 흙과 나무로 된 벽을 벽돌로 바꾸고 옆 툇마루는 회랑으로 만들었습니다. 국가유산청 연혁에는 1922년 까다르 신부가 바깥 기둥 아래쪽을 돌로 바꾼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모습은 팔작지붕 한옥 위에 서양식 종탑이 붙은 독특한 얼굴입니다. 대백과사전은 서로 전혀 다른 양식을 합각머리에 붙여 지었는데도 서양 성당의 장중함이나 낯섦보다 인간적인 친근감을 준다고 평합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천장은 판자, 바닥은 널마루이고, 전주교구 안내에 따르면 당시 관습에 따라 남녀 자리를 칸막이로 나누던 기둥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제대 둘레에는 중국 남경의 성 라자로 수도원에서 만든 세례대와 벽 제대가 옛 모습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 화산에서 나바위로, 이름과 기념비 이야기
성당의 옛 이름은 '화산성당'이었습니다. 위키백과는 우암 송시열이 주변 산세가 아름답다며 '화산'이라 이름 붙였다는 유래를 전하고, 완주군 화산면과 이름이 겹쳐 산 끝자락의 너른 바위 '나바위'에서 지금 이름을 따왔다고 설명합니다. 1982년 전라북도 기념물 제60호로 지정되었다가 1987년 7월 18일 국가 사적 제318호가 되었고, 2012년 10월 15일 국가유산 명칭도 '화산천주교회'에서 '익산 나바위성당'으로 바뀌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오늘이 그 명칭 변경 14주년입니다.
성당 곁에는 1954년 세운 베르모렐 신부 공훈기념비와 1955년 세운 김대건 신부 순교기념비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는 귀국 이듬해인 1846년 선교사들의 바닷길을 열려고 황해도로 갔다가 붙잡혀, 그해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했습니다. 강가 언덕의 두 비석은 그 짧고 뜨거웠던 1년을 조용히 기억하게 합니다.
■ 오늘 나바위를 걷는다면
전주교구는 나바위성지를 '김대건 신부의 최초 기착지'라 부르며 지금도 미사와 순례객을 맞이합니다. 주소는 익산시 망성면 나바위1길 146이고, 미사 시간과 피정·식사 예약은 성지에 미리 확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성당 뒤 화산 언덕에 오르면 금강이 내려다보여, 181년 전 어둠 속에 작은 범선이 닿았을 강물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폭풍에 부서진 작은 배, 상복으로 얼굴을 가린 선교사들, 그리고 반세기 뒤 그 강가에 한옥의 모습으로 지어진 성당. 나바위성당은 낯선 신앙이 이 땅의 집 모양을 빌려 사람들 곁에 자리 잡은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 줍니다. 단풍이 드는 이 가을, 금강 변 언덕에서 기와지붕과 벽돌 종탑이 어우러진 풍경을 한번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믿음이 있든 없든, 오래 버텨 온 집이 건네는 위로는 누구에게나 따뜻할 테니까요.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화산천주교회」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4649 , 「김대건」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8902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익산 나바위성당」 https://digital.khs.go.kr/heri/heriDetail.do?ctptNo=1333503180000&ctptUid=13898859676726300931 , 천주교 전주교구 「나바위성지」 https://www.jcatholic.or.kr/theme/main/pages/terrasanta07.php ,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제주 표착지」 https://cbck.or.kr/koreanmartyrs/Shrines/4?page=8 , KCI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일행의 1845년 입국 장소와 강경 유숙지 연구」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952132 , 논산시 문화관광 「강경성당과 라파엘호」 https://yangchon.nonsan.go.kr/tour/html/sub02/020509.html , 위키백과 「나바위성당」 https://ko.wikipedia.org/wiki/나바위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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