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통도사 — 불보사찰 금강계단에 모신 부처님 진신사리, 영축산의 국지대찰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2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영축산 자락에 들어서면, 일주문에 '불지종가 국지대찰(佛之宗家 國之大刹)'이라는 글씨가 반깁니다. 부처님의 종가이자 나라의 큰 절이라는 뜻이지요. 바로 한국 삼보사찰 가운데 불보사찰로 불리는 통도사입니다. 오늘은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과, 그 곁에서 1,300년 넘게 이어져 온 통도사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려드릴게요.

■ 자장율사가 연못을 메우고 세운 절

통도사는 646년(신라 선덕여왕 15) 자장율사가 창건하였습니다. 자장은 643년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 대장경 400여 함을 가져와 이곳에 봉안했어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대장경을 봉안한 사찰로서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라고 합니다. 산 이름을 영축산이라 한 것은 산세가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는 뜻이고, 절 이름 '통도(通度)'에는 금강계단에서 득도한다는 뜻, 만법을 통달해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 불상이 없는 대웅전, 그 뒤의 금강계단

통도사 대웅전 안에는 불상이 없습니다. 대신 건물 바로 뒤, 곧 남쪽 정면에 금강계단이 자리하고 그 안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기 때문이에요. 사리를 모신 계단이 곧 정전(正殿)인 셈이지요. 계단(戒壇)이란 계를 수여하는 의식이 행해지는 장소를 말합니다.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는 것은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계를 받는 것과 같다는 믿음이 신라 때부터 이어져, 이곳은 계율의 근본도량이 되었습니다. 대웅전과 금강계단은 1997년 국보로 지정되었고, 2021년 문화재 지정번호 체계 개편 이후에도 국보로 재지정되어 있습니다.

■ 전쟁의 시련을 넘긴 사리, 그리고 세계유산

고려 말 왜구의 침입과 임진왜란 때 금강계단은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 유정은 사리를 크고 작은 두 함에 나누어 은사 서산대사 휴정에게 보냈고, 휴정의 가르침에 따라 1603년(선조 36) 계단을 고쳐 사리를 다시 봉안하였어요.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의 모습이 이어졌습니다. 2018년 6월, 통도사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일곱 산사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이기도 하지요.

■ 영축산 바람에 기대어

일주문·천왕문·불이문을 지나 금강계단 앞에 서면, 화려한 불상 대신 고요한 석단과 석종형 부도가 마주합니다. 부처님의 몸을 상징하는 사리 앞에서 마음을 가다듬는 그 자리야말로, 통도사가 천 년이 넘도록 '불보사찰'이라 불려 온 이유일 거예요. 영축산 바람 속에서 계단을 바라보면, 계를 받고 수행하던 옛 스님들의 발걸음이 조용히 다가오는 듯합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영축산 통도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9253 , 영축총림 통도사 공식 누리집(금강계단의 역사) https://tongdosa.or.kr/bbs/content.php?co_id=menu01103_02 , 디지털양산문화대전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http://www.grandculture.net/yangsan/toc/GC014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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