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돌이는 사월 초파일(부처님오신날)이나 큰 재(齋)가 있을 때 승려와 신도가 탑을 돌며 부처의 공덕을 찬탄하고 소원을 비는 불교 의식이자 민속놀이입니다. 원래는 승려가 염주를 들고 탑을 돌며 부처의 큰 뜻과 공덕을 노래하면 신도들이 등을 밝혀 들고 뒤를 따르며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식이었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거의 끊겼다가 1970년대 속리산 법주사 탑돌이가 재연되면서 명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탑돌이 뜻과 탑을 도는 이유, 삼국유사에 남은 신라의 탑돌이 이야기, 고려·조선을 거친 역사, 법주사 탑돌이의 십바라밀 순서, 월정사·충주 중앙탑 등 오늘날 재현되는 탑돌이, 그리고 직접 참여할 때 알아 두면 좋은 점을 차례로 정리합니다.
탑돌이 뜻, 왜 탑을 도는 걸까
탑(塔)은 본래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건축물로, 불교에서는 탑 자체를 부처님의 몸처럼 여겨 예경의 대상으로 삼아 왔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탑돌이를 사월 초파일 또는 큰 재가 있을 때 사찰에서 거행하는 불교의식 또는 성인남녀놀이로 정의합니다. 즉 탑을 돈다는 것은 부처님 곁을 맴돌며 공경을 표하고, 그 공덕에 기대어 마음의 서원을 세우는 행위입니다.
학계에서도 탑돌이는 특별한 의례 절차나 의식 도구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쉬운 기도로 평가됩니다. 합장하거나 등을 들고, 때로는 발원문을 독송하며 탑을 도는 것만으로 소원을 빌 수 있었기 때문에 신분이 낮고 가난한 사람들도 쉽게 의지할 수 있는 대중적 기원신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도는 집단적·공동체적 의식이라는 점이 한국 탑돌이의 중요한 특성으로 꼽힙니다.
그래서 탑돌이는 거창한 준비 없이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의례로 여겨집니다. 부처님오신날에 사찰 마당의 석탑을 따라 등불 행렬이 천천히 이어지는 풍경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대표적인 불교 문화 장면이며, 가족의 건강이나 시험 합격, 돌아가신 분의 극락왕생처럼 저마다의 바람을 담아 걷는 시간이 됩니다.
삼국유사에 남은 신라의 탑돌이
탑돌이의 오래된 흔적은 삼국유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신라에서는 해마다 봄(음력 2월) 8일부터 15일까지 서라벌의 남녀가 흥륜사의 탑을 다투어 돌며 복을 빌었다고 전하며, 그 가운데 김현이라는 청년이 사람으로 변한 호랑이 처녀와 함께 탑돌이를 하다가 신이한 일을 겪었다는 '김현감호'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또 유가종의 고승 태현이 경주 남산 용장사의 미륵보살상 주위를 늘 돌았더니 보살상도 그를 따라 얼굴을 돌렸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신라에는 절과 절이 별처럼 늘어서고 탑과 탑이 기러기가 줄지어 나는 듯했다는 표현이 있을 만큼 탑이 많았는데, 그만큼 탑을 중심으로 한 신앙과 의례가 생활 가까이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고려·조선을 거쳐 사라졌다가 다시 살아나기까지
고려시대에는 많은 사람이 모이는 각종 법회와 도량에서 탑돌이가 성행했고, 풍수지리와 비보 사상에 따라 절뿐 아니라 산꼭대기와 마을 어귀에도 탑이 세워졌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서울 원각사의 탑돌이가 연등회의 하나로 진행되며 많은 대중이 참여하는 축제의 한마당이 되었습니다. 원각사 십층석탑은 1467년 사월초파일에 완공되어 연등회를 베풀고 낙성했으며, 지금은 탑골공원에 국보 원각사지 십층석탑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탑돌이는 시대마다 형식은 달라도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탑을 돌며 복을 비는 공동체 의례라는 성격을 꾸준히 지켜 왔습니다. 조선시대 이후 등장한 여러 탑돌이 노래도 혼자가 아니라 대중이 함께 부르는 노래여서 일체감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고 연구자들은 설명합니다.
불교가 대중화되면서 탑돌이의 모습도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범종·운판·목어·법고 같은 법악기를 치며 범패와 염불만 했지만, 뒤에는 삼현육각이 연주되고 '포념', '백팔정진가' 같은 민요풍 노래도 불렸습니다. 비는 내용도 부처 칭송과 극락왕생에서 크게는 국태민안, 작게는 개인의 소원으로 넓어졌고, 큰 절에서는 수백 명이 참가하는 장관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원형이 거의 사라져 1970년대 전문가들조차 자취를 감춘 지 60여 년이 되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법주사 탑돌이 순서, 십바라밀을 그리며 도는 의식
오늘날 탑돌이의 대표 사례는 충북 보은 속리산 법주사 탑돌이입니다. 법주사에는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목탑인 국보 팔상전이 있는데, 법주사 탑돌이는 이 팔상전을 돌며 진행됩니다. 1970년대 초 재연된 이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등을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순서는 먼저 귀의불양족존·귀의법이욕존·귀의승중중존을 부르는 삼귀의례로 시작하고, 이어 십바라밀다정진도를 그리며 돕니다. 보시는 둥근 달 모양(단월형), 지계는 반달 모양(반월형), 인욕은 신날 모양(혜경형), 정진은 가위 모양(전자형), 선정은 구름 모양, 지혜는 금강저 모양(금강저형), 방편은 좌우 두 우물 모양(좌우쌍정형), 원은 앞뒤 두 우물 모양(전후쌍정형), 역은 두 개의 이중고리 모양(탁환이주형), 지는 작은 원 셋을 감싼 큰 원 모양(성중단월형)을 그리며 도는 방식입니다. 민속놀이로 변했지만 본래 불교의식이었기 때문에 매우 경건하게 진행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월정사·충주 중앙탑 등 오늘날 재현되는 탑돌이
강원 평창 오대산 월정사 탑돌이는 1977년 제1회 태백문화제와 같은 해 제1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등을 계기로 재현되어 왔습니다. 반야심경을 외우며 스님과 신도가 입장해 삼보에 귀의하는 노래를 부르고, 범패로 부처님을 찬양한 뒤 탑을 돌며 장엄염불을 합니다. 이어 다게를 부르며 차를 올리고 승무를 추며, 마지막으로 신도들이 천수경을 외우며 서원을 빌고 탑을 돈 뒤 퇴장합니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중앙탑)을 무대로 한 중앙탑 탑돌이도 있습니다. 이 탑은 높이 14.5m로 통일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크고 높으며, 국토의 중앙에 있다고 해서 중앙탑이라 불립니다. 해인사에서는 정대불사 때 대장경 경판이나 판본을 머리에 이고 탑을 도는 의식이 이어지고, 이 밖에도 만복사, 원각사지, 통도사, 불국사 등에서 부처님오신날 행사나 지역 축제의 하나로 탑돌이가 진행됩니다.
탑돌이 참여할 때 알아 두면 좋은 점
탑돌이는 불자가 아니어도 부처님오신날 전후 사찰 행사에서 함께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개 등을 들거나 합장한 채 스님과 앞사람을 따라 천천히 돌면 되며, 전통적으로 탑을 오른쪽에 두고 시계 방향으로 도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행렬 중에는 사진 촬영으로 흐름을 끊지 않고, 염불이나 발원 순간에는 조용히 마음을 모으는 것이 예의입니다.
행사 일정과 방식은 사찰과 해마다 다르므로 방문 전 해당 사찰 공지를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로 연등회 뜻, 천수경 뜻, 반야심경 뜻을 다룬 글도 신이말했다 불교 게시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탑돌이', '속리산 법주사', '서울 원각사' 항목, 불교저널 '불교의 무형문화재 - 탑돌이', 「한국 탑돌이의 역사와 현황」(earticle), 『삼국유사』 '김현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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