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사리 뜻 — 부처님과 고승의 유골 '사리',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통도사·오대산 중대·봉정암·법흥사·정암사)과 사리장엄구·다비·승탑(부도)까지 정리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6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리(舍利)는 산스크리트어 '샤리라(śarīra)'를 소리대로 옮긴 말로, 원래는 몸 또는 유골을 뜻하며 불교에서는 부처님이나 고승의 시신을 화장(다비)한 뒤 수습한 유골, 특히 구슬 모양의 결정을 가리킵니다. 이 가운데 석가모니 부처님의 유골을 '진신사리(眞身舍利)'라고 하며, 진신사리를 모셔 법당 안에 불상을 따로 두지 않는 전각을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5대 적멸보궁은 양산 통도사, 평창 오대산 중대(상원사 위 사자암 위쪽), 인제 설악산 봉정암, 영월 사자산 법흥사, 정선 태백산 정암사입니다. 사리를 탑 안에 모실 때 쓰는 그릇과 공양물 일체는 '사리장엄구', 스님의 사리를 모신 묘탑은 '승탑' 또는 '부도'라고 부릅니다.

절에 가면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라 불상이 없다"는 안내문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사리', '사리장치', '적멸보궁', '다비', '부도', '탑비' 항목과 각 적멸보궁 관련 항목,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 국가유산포털과 보도자료, 불교신문 기사를 바탕으로 사리의 뜻과 종류, 5대 적멸보궁, 사리장엄구, 다비, 승탑까지 차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리 뜻 — '몸'이라는 말에서 '수행의 결정'으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사리를 "참된 수행의 결과로 생겨난다고 여겨지는 구슬 모양의 유골을 가리키는 불교용어"라고 정의합니다. 유신(遺身), 신골(身骨)이라고도 하며, 당나라 때의 불교 사전인 『현응음의』에는 "사리는 곧 설리라(設利羅)이며 번역하면 신골"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위키백과 한국어판도 산스크리트어 샤리라가 본래 시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처음에는 단순히 '몸, 유골'이라는 뜻이었으나, 불교 신앙 속에서 수행의 공덕이 맺힌 신성한 유골이라는 의미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사리는 형태에 따라 전신사리(全身舍利)와 쇄신사리(碎身舍利)로 나뉩니다. 몸 전체가 그대로 남은 것이 전신사리이고, 다비한 뒤 수습한 뼈가 쇄신사리입니다. 쇄신사리는 잘게 부서진 뼈나 흰 가루 형태도 있지만, 북방불교 계통에서는 사리신앙이 더욱 깊어져 둥근 구슬 모양의 영골(靈骨), 영주(靈珠)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황금빛 가루에서 진주 같은 구슬에 이르기까지 다비 후 남은 것이 사리로 받들어졌습니다.

모셔진 대상에 따라서도 구분합니다. 부처님의 유골은 진신사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은 법사리(法舍利), 고승의 사리는 승사리(僧舍利)라고 부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리장치' 항목은 진신사리와 함께 '법신사리'를 설명하면서, 불경뿐 아니라 부처님의 정신이 깃든 옷, 바리때, 지팡이, 앉는 자리(좌구)와 금·은·유리·수정·마노 같은 보배까지 법신사리가 될 수 있다고 소개합니다. 우리말샘 풀이로는 진신사리가 본래 석가모니의 유골이지만, 후세에는 화장한 뒤에 나온 구슬 모양의 것만을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리가 어떻게 생기는지는 예전부터 궁금증의 대상이었습니다. 백과사전에는 조선 태조가 "사리가 어찌하여 생기느냐"고 묻자 하륜이 "정기가 쌓인 것"이라고 답하면서 조개의 진주를 예로 들었고, 이에 왕이 웃었다는 일화가 실려 있습니다. 위키백과는 사리가 생기는 원인이 아직 과학적으로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진신사리의 역사 — 사리팔분에서 자장율사까지

진신사리 신앙의 출발점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부처님이 열반에 든 뒤 제자들이 인도의 장례법대로 다비를 하자 '8곡 4두'나 되는 많은 사리가 나왔고, 이를 여덟 나라에 나누어 각각 탑을 세워 모셨습니다. 이를 '사리팔분(舍利八分)' 또는 '분사리'라고 하며, 사리신앙의 시작이자 불탑의 기원으로 봅니다. 기원전 3세기 중엽에는 인도의 아소카왕(아육왕)이 여덟 탑 가운데 일곱 탑에서 사리를 꺼내 8만 4천 개의 탑을 세웠다고 전하며, 이는 불교가 널리 퍼지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중국으로 경전을 구하러 갔던 현장 법사도 돌아올 때 여래의 사리 150립을 가져왔다고 『대당서역기』는 전합니다.

우리나라에 사리가 들어온 첫 기록은 549년(신라 진흥왕 10)입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중국 양나라가 사신을 보내 불사리를 전해 오자 왕이 백관과 함께 흥륜사에서 맞이했습니다. 이후 가장 중요한 인물이 자장율사(590~658)입니다. 자장은 636년(선덕여왕 5) 당나라에 들어가 오대산 태화지 가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부처님의 정골(정수리뼈)과 치아사리 등을 받아 645년에 귀국했다고 전합니다. 그는 왕에게 건의해 황룡사 9층탑을 세워 사리를 모셨고, 오대산 중대에 적멸궁을 세워 그 아래에 정골을 봉안했으며, 통도사와 정암사, 봉정암 등에도 사리를 나누어 모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귀국 연도는 자료에 따라 643년으로 적기도 합니다.

통일신라 이후에도 사리신앙은 이어졌습니다. 751년(경덕왕 10)에는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에 사리를 봉안했고, 고려와 조선 초기에도 왕실을 중심으로 사리신앙이 성행했습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조선 태조는 1393년 정릉 흥천사에 사리각을 세워 7일 동안 기도했으며, 1398년 명나라가 사신을 보내 사리를 구하자 각 도에서 모은 사리와 태조가 가지고 있던 사리 303매를 더해 모두 800매를 금은합에 넣어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적멸보궁 뜻 — 왜 불상 없이 불단만 둘까

적멸보궁은 '적멸의 보배로운 궁전'이라는 뜻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적멸보궁을 "사찰에서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는 불교건축물"로 정의하면서, 이름이 부처님이 『화엄경』을 설한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 남쪽 보리수 아래의 적멸도량(寂滅道場)에서 왔다고 설명합니다. 불사리를 모심으로써 부처님이 늘 이곳에서 적멸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음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적멸(寂滅)은 번뇌의 불길이 완전히 꺼진 열반의 고요함을 가리킵니다.

가장 큰 특징은 법당 안에 불상이 없다는 점입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진신인 사리를 모신 전각에는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만 두는데, 불사리가 곧 법신불(法身佛)로서 석가모니의 진신이 머물고 있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적멸보궁 바깥쪽에 사리탑을 세우거나 계단(戒壇)을 만들어 사리를 모십니다. 그래서 적멸보궁에 들어가면 참배객은 불상 대신 법당 뒤편 창이나 유리벽 너머의 사리탑, 계단을 향해 절을 올립니다. 국가유산청도 2020년 보도자료에서 적멸보궁을 "법당 내 부처의 불상을 모시는 대신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법당으로 바깥이나 뒤쪽에 사리탑이나 계단을 설치해 봉안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백과사전은 5대 적멸보궁이 불교도의 순례지이자 기도처로서 가장 신봉되는 성지라고 소개합니다. 5대 적멸보궁 외에도 비슬산 용연사에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통도사의 사리를 나누어 모신 적멸보궁이 있습니다.

5대 적멸보궁 — 통도사·오대산 중대·봉정암·법흥사·정암사

첫째, 양산 영축산 통도사입니다. 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통도사는 646년(선덕여왕 15) 자장율사가 세운 절로, 대웅전 안에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건물 뒤쪽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설치해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습니다. 절 이름 '통도(通度)'도 금강계단을 통해 도를 얻는다는 뜻에서 왔다고 합니다. 지금의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45년(인조 23)에 다시 지은 것이며,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은 1997년 1월 1일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건물은 삼면에 방향마다 '대웅전', '금강계단', '적멸보궁'이라는 서로 다른 편액이 걸린 특이한 구성이고, 금강계단은 첫 단 너비 약 9.9m, 전체 높이 약 3m입니다. 계단 가운데에는 종 모양의 석조물을 두어 사리를 모셨습니다.

둘째, 평창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입니다. 월정사와 상원사를 지나 중대 사자암 위쪽에 있으며, 사자암은 적멸보궁의 관리와 예불을 맡는 노전 역할을 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정골과 사리 100과를 가져와 이곳에 모셨다고 전하며, 다른 보궁과 달리 사리를 모신 정확한 자리가 알려져 있지 않아 신비감을 더합니다. 건물 뒤에는 5층 목탑 모양을 돋을새김한 높이 84cm의 비석이 서 있는데, 사리탑을 상징하는 것으로 봅니다. 건물은 조선 후기에 세운 정면 3칸, 측면 3칸 팔작지붕 건물로 2018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넷째, 영월 사자산 법흥사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창건 당시 이름은 흥녕사였고,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여러 곳에 모신 뒤 마지막으로 이 절을 세워 사리를 봉안했다고 전합니다. 신라 말 징효대사 절중이 중창해 선문구산 가운데 사자산문의 중심 사찰이 되었고, 1902년 비구니 대원각의 중창 이후 법흥사라는 이름으로 정착했습니다. 지금의 적멸보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으로 1939년 중수했으며, 법당 안에 불상이 없고 뒤편 부도에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전합니다. 불교신문은 보궁 안에서 유리벽을 통해 사리탑을 바라보며 참배할 수 있고, 입구에서 보궁까지 약 500m의 소나무숲길이 이어진다고 소개했습니다.

다섯째, 정선 태백산 정암사입니다. 국가유산청 보도자료에 따르면 『삼국유사』에 자장율사가 643년 창건했다고 전하는 절로, 수마노탑(水瑪瑙塔)을 바라보는 자리에 적멸보궁이 있습니다. 자장율사가 귀국할 때 서해 용왕이 감화해 준 마노석으로 탑을 쌓았고, 물길을 따라 가져왔다 해서 '수(水)' 자를 붙였다는 설화가 전합니다. 높이 약 9m의 모전석탑(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탑)으로, 모전석탑으로 조성된 진신사리 봉안탑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는 평가를 받아 2020년 6월 25일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었습니다. 한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적멸보궁' 항목은 정암사 보궁의 사리가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통도사의 사리를 나누어 모신 것이라는 설을 함께 전하고 있어, 봉안 경위에는 여러 전승이 있습니다.

사리장엄구 — 사리를 모시는 겹겹의 그릇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는 사리를 탑 안에 모실 때 사용하는 사리병, 사리함과 함께 넣는 공양물 일체를 말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리장치' 항목에 따르면 사리는 대개 탑의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 안이나 지하의 중심선 위에 모십니다. 그릇의 재질로는 흙, 돌, 금속, 수정 등이 쓰이는데, 흙은 주로 바깥 그릇에, 수정은 사리를 직접 담는 데 쓰였습니다. 신라 때는 유리 사리병이, 고려 때는 금속제 병이 많이 쓰였습니다. 신성한 사리를 모시는 일에 온 정성을 쏟았기 때문에 사리장엄구는 각 시대 공예의 정수를 보여 주며, 제작 경위와 발원자를 적은 명문이 남아 있어 학술적으로도 귀중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사리장엄구입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1966년 10월 석탑을 보수하려고 해체하던 중 2층 탑신의 사리공에서 금동제 사리외함이 발견되었고, 금동외함 안에 금동합, 은제 내합과 외합, 녹색 유리 사리병이 겹겹이 들어 있었으며 그 안에 사리 46과가 모셔져 있었습니다. 함께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지금까지 알려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본으로 평가되며, 사리장엄구는 1967년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입니다. 2009년 서탑 해체 과정에서 1층 심주석 윗면의 사리공(가로·세로 25cm, 깊이 27cm) 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금동제 사리외호 안에 금제 사리내호, 그 안에 유리 사리병이 든 3중 구조였고, 함께 나온 금제 사리봉영기에는 좌평 사택적덕의 딸인 백제 왕후가 절을 세우고 기해년, 곧 639년(무왕 40)에 사리를 모셔 왕실의 안녕을 빌었다는 193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2018년 보물로 지정된 뒤 2022년 12월 27일 국보가 되었으며, 국립익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다비와 승탑(부도) — 스님의 사리를 모시는 법

다비(茶毘)는 불교식 화장 의례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범어 '자피타(Jhāpita)'를 음역한 말로 '태운다'는 뜻입니다. 절차는 오방불께 귀의하며 망자의 영혼을 잘 인도해 달라고 발원하는 것으로 시작해, 삭발과 목욕, 옷과 관을 갖추는 의식, 정좌와 시식(음식을 베푸는 의식), 관을 옮기는 기관(起棺)으로 이어집니다. 이때 왕생극락을 바라는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계속합니다. 화장장에서는 거화(擧火)와 하화(下火) 의식으로 불을 붙이고, 영혼을 보내는 봉송의식과 창의의식을 행한 뒤 유골을 수습하는 기골, 습골, 쇄골 의식을 하며 환귀본토진언을 외웁니다. 백과사전은 이 의식이 죽음을 끝이 아니라 살아서 지은 업에 따라 변화하는 것으로 보는 불교의 생사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고승의 다비 뒤 수습된 사리가 바로 승사리입니다.

이렇게 수습한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신 묘탑을 승탑(僧塔) 또는 부도(浮屠)라고 합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부도'는 붓다(Buddha) 또는 탑을 뜻하는 스투파(stupa)의 음을 옮긴 말로 보며, 사리탑이라고도 부릅니다. 『삼국유사』에는 7세기 원광법사의 부도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지만 실물은 전하지 않고, 844년(문성왕 6)에 세운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부도로 추정됩니다. 9세기 당나라에서 선종이 들어온 뒤 각 선문의 제자들이 스승을 기리기 위해 부도를 세우면서 크게 유행했습니다.

부도의 기본형은 기단에서 지붕돌까지 모두 8각으로 만든 '팔각원당형'이며, 고려 말부터는 범종 모양의 '석종형 부도'도 널리 쓰였습니다. 대표 작품으로는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국보) 등이 꼽힙니다. 부도 곁에는 스님의 출생부터 입적까지 생애를 기록한 탑비를 함께 세워, 당시 불교계와 사회상을 알려 주는 귀중한 사료가 됩니다. 절 입구나 뒤편에 종 모양의 돌탑이 여러 기 모여 있는 '부도밭'이 바로 역대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곳입니다.

정리하면, 사리는 부처님과 고승의 유골이고,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 적멸보궁이며, 사리를 모시는 그릇이 사리장엄구, 스님의 사리를 모신 탑이 승탑(부도)입니다. 적멸보궁을 찾을 때는 법당 안에 불상이 없는 이유를 떠올리며 뒤편의 사리탑이나 계단을 향해 조용히 합장해 보세요. 일주문, 대웅전, 사천왕, 49재 이야기도 신이말했다 불교 게시판에서 함께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리'(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5545), '사리장치'(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5553), '적멸보궁'(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9146), '평창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1062), '봉정암'(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010), '사자산 법흥사'(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2783), '태백산 정암사'(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0538),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9274),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944),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6920), '다비'(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3459), '부도'(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122), '탑비'(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8843)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2020.6.25 보도자료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국보 지정 / 불교신문 '영월 법흥사'(2010.11.24, 제2674호) / 위키백과 '사리', '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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