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약현성당 — 한국 최초의 벽돌 성당, 서소문 순교터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이야기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3

서울 중구 중림동, 만리동에서 서울역 쪽으로 넘어가는 언덕 위에 붉은 벽돌 성당이 서 있습니다. 종탑이 하늘을 가리키고, 창문마다 아치가 이어진 이곳이 바로 사적 제252호 서울 약현성당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곳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벽돌조 고딕 성당이라 소개합니다. 오늘은 그 기록과 국가유산청이 남긴 설명을 따라, 박해의 땅을 내려다보며 세워진 이 작은 성당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여다보려 합니다.

■ 약초밭 고개에서 성당 언덕으로

‘약현’이라는 이름은 지형에서 왔습니다.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만리동에서 서울역으로 넘어오는 고개 부근에 약초를 기르는 밭이 많아, 예부터 ‘약초밭이 있는 고개’라는 뜻의 약전현(藥田峴)이라 불렸고, 이를 줄여 약현이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고개 일대의 지명으로 굳어졌고, 그 언덕 위에 성당이 들어서며 이름도 함께 남았습니다. 중림동성당이라고도 불리는 까닭은 행정구역 이름이 바뀐 뒤에도 본당이 그 자리를 지켜 왔기 때문입니다.

■ 한불조약 이후, 서울 두 번째 본당이 되다

1886년 한불조약으로 선교의 길이 열리자 서울의 천주교 신자 수는 빠르게 늘었습니다. 대백과사전은 1887년 서울 문밖 수렛골[순화동]에 명동본당 산하 공소가 세워졌다고 적습니다. 이어 1891년 명동성당 주임이었던 두세(Camille Eugene Doucet) 신부가 합동(蛤洞)에 성당 터를 마련했고, 부주교였던 코스트(E. J. G. Coste, 한국명 고의선) 신부가 설계와 감독을 맡아 약현성당을 지었습니다. 대백과사전은 1892년 9월 준공으로 정리하고, 그해 5월 두세 신부가 이미 약현 본당 주임으로 부임해 서울에서 두 번째 본당이 되었다고 밝힙니다. 사대문 안을 담당하던 종현(명동)본당과 달리, 약현은 서울 문밖과 경기도 일원을 아우르는 사목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 작은 십자형 성당, 한국 교회건축의 첫걸음

국가유산청과 대백과사전이 공통으로 적는 규모는 길이 약 32m, 너비 12m의 십자형 평면입니다. 대백과사전은 120평 정도의 소규모 성당으로, 정면 중앙에 종탑을 두고 양쪽에 측랑을 둔 라틴 십자형 삼랑식 구성이라고 설명합니다. 처마가 낮아 측면 창은 원형 아치로 남았지만, 정면 출입구와 측면 돌출 출입구의 창은 뾰족아치를 이뤄 고딕의 인상을 냅니다. 순수한 고딕은 아니더라도, 벽돌로 지은 고딕풍 성당으로서 이후 한국 교회건축의 모범이 되었다는 평가가 두 자료에 함께 실려 있습니다.

종탑은 본채보다 늦게 올라왔습니다. 대백과사전은 본채 준공 13년 뒤인 1905년에 종탑이 세워졌고, 1921년 내부 개조로 남녀 칸막이를 없애고 벽돌기둥을 돌기둥으로 바꿨다고 적습니다. 1974년 11월부터 1976년 4월까지는 오랜 세월에 훼손된 건물을 복원하는 큰 공사가 이어졌습니다. 국가유산 기록에는 1998년 본당 내부와 십자탑 일부가 불탄 화재, 2011년 스테인드글라스 보수, 2012년 문화재명 변경(약현성당→서울 약현성당) 등 이후의 보전 과정도 남아 있습니다. 1977년 11월 22일 사적 제252호로 지정된 뒤에도, 누수 지붕과 훼손 벽돌을 고치는 손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 서소문 밖이 내려다보이는 자리

약현성당의 의미는 벽돌과 아치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대백과사전과 국가유산 설명은 한목소리로, 박해 시대에 수많은 순교자를 낸 서소문 밖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다는 역사성을 강조합니다. 신유·기해·병인 등 큰 박해 때 서소문 형장에서 목숨을 잃은 신자들의 자리가, 언덕 위 성당의 창밖으로 이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중림동 약현성당 본당 자료도 신부들이 교우들에게 서소문 쪽을 지날 때 성호를 긋고 순교자를 기억하도록 가르쳤다고 전합니다. 성당을 ‘아름다운 건물’로만 보기보다, 기억의 푯대로 읽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 코스트 신부와 명동으로 이어진 건축의 맥

약현을 설계·감독한 코스트 신부는 훗날 명동대성당의 건축에도 깊게 관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약현이 먼저, 그리고 더 작은 규모로 세워진 뒤, 종현의 큰 성당이 오랜 공사 끝에 모습을 갖춘 흐름이 한국 천주교 건축사의 초기 장면을 이룹니다. 대백과사전이 약현을 “후세의 한국 교회건축의 모범”이라 부른 것은, 단지 최초의 벽돌 성당이라는 기록 때문이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질 성당들이 참고할 형식을 이 언덕에서 먼저 보여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 오늘, 약현을 걸을 때

약현성당은 서울 중구 중림로 인근, 서소문역사공원과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관광지로도 알려졌지만, 지금도 미사가 봉헌되는 살아 있는 본당입니다. 조용히 들어가 벽돌 벽의 온기와 창으로 드는 빛을 바라보면, 약초밭 고개가 성당 언덕이 되기까지 쌓인 시간을 조금은 느낄 수 있습니다. 신앙이 다르더라도, 박해의 자리를 내려다보며 공동체를 다시 세우려 했던 사람들의 선택은 누구에게나 생각할 거리를 남깁니다. 가을 햇살이 중림동 언덕을 비출 때, 그 작은 십자형 성당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춰 보시면 어떨까요.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울 약현성당」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8064 ,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서울 약현성당」 https://digital.khs.go.kr/heri/heriDetail.do?ctptNo=1331102520000&ctptUid=13898859676024300870 , 중림동 약현성당 본당 「성당 연혁」 http://www.yakhyeon.or.kr/app/intro/histor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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