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전주 전동성당 —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터에 세운 호남 최초의 로마네스크 성당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2

전주 한옥마을 어귀, 풍남문을 지나 조금만 걸으면 회색과 붉은 벽돌이 어우러진 성당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둥근 비잔틴풍 돔을 얹은 종탑과 아치형 창이 고운 곡선을 그리는 이곳이 바로 사적으로 지정된 전주 전동성당입니다.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영화 촬영지와 결혼식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아름다운 건물이 선 땅에는 한국 천주교회의 가장 첫 순교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천주교 전주교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의 기록을 따라 전동성당의 시간을 천천히 걸어 보려 합니다.

■ 풍남문 밖,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터

조선시대 전주에는 전라감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 박해 시기에 전주 남문, 곧 풍남문 밖은 자연스럽게 신자들이 처형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1791년(정조 15년) 신해박해 때 윤지충 바오로와 그의 외종형 권상연 야고보가 이곳에서 처형되었고, 1801년 신유박해 때에는 '호남의 사도'로 불린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윤지충의 동생 윤지헌 프란치스코 등이 이 자리에서 순교했습니다.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윤지충과 권상연의 처형을 "조선에서 천주교인에 대해 공식적으로 내린 첫 번째 처형"이라고 설명합니다. 전주교구가 전동성당을 '한국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성지'라고 소개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 진산 사건 — 제사와 신앙 사이에서 내린 선택

윤지충은 전라도 진산(현 충남 금산)의 선비로, 1783년 생원시에 합격한 양반이었습니다. 고종사촌인 정약용을 통해 천주교를 접했고, 1787년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1790년 북경 교구의 구베아 주교가 조선 신자들에게 조상 제사를 금지하자, 윤지충과 권상연은 이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1791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윤지충은 신주를 만들지 않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고, 이 일이 알려지며 큰 파문이 일었습니다. 이것이 흔히 '진산 사건'으로 불리는 신해박해의 시작입니다.

두 사람은 전라감영으로 옮겨져 심문을 받았습니다. 위키백과 등에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윤지충은 "양반 칭호를 박탈당해야 한다 해도 천주께 죄를 짓기는 원치 않는다"는 취지로 자신의 신앙을 밝혔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1791년 12월 8일(음력 11월 13일)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되었습니다. 당시 윤지충은 32세, 권상연은 40세였습니다. 효와 제례를 근간으로 하던 조선 사회와 새로 들어온 신앙이 정면으로 부딪친 아픈 순간이었고, 이후 제사 문제는 오랫동안 박해의 명분이 되었습니다. 이런 갈등은 1939년 교황 비오 12세 때 동양의 조상 공경 예식이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입장이 나오면서 비로소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 보두네 신부와 성벽의 돌로 쌓은 주춧돌

박해의 시대가 지나고 선교가 허용된 뒤, 1889년 프랑스 선교사 보두네(Baudounet) 신부가 전주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부임했습니다. 전주교구에 따르면 당시 전주에는 신자가 한 명도 없어 처음에는 완주 소양 대승리에서 사목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보두네 신부는 1891년 전주 남문 밖의 집과 터를 사들여 본당의 터전을 마련했고, 이곳은 훗날 '호남의 모태 본당'이 됩니다.

1908년 성당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설계는 서울 명동성당 내부 공사를 맡았던 프와넬(Poisnel) 신부가 했습니다. 마침 일제 통감부가 길을 내면서 전주읍성의 풍남문 인근 성벽을 허물었고, 보두네 신부는 그 성벽 돌을 사들여 성당의 주춧돌로 썼습니다.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그 돌 가운데 일부가 순교자들의 피가 스며든 돌일 것으로 추정한다고 전합니다. 전주교구는 보두네 신부 자신도 처음에는 그 자리가 순교터인 줄 몰랐다고 하면서, 이를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 호남 최초의 로마네스크 성당, 그 아름다움

전동성당은 1914년 외형 공사를 마쳤고, 1915년 8월 종 축성식을 가졌으며, 내부 공사까지 이어진 끝에 1931년 축성식을 올렸습니다. 회색과 붉은 벽돌로 지은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에, 중앙 종탑과 양쪽 계단탑에는 비잔틴풍의 돔을 올려 부드러운 곡선미가 돋보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성당이 서울 명동성당과 겉모습이 닮은 점이 많지만 건축 양식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문화유산 자료는 전동성당을 명동성당, 대구 계산성당과 함께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성당으로 꼽습니다. 참고로 국가유산청 자료에는 설계와 착공에 관해 조금 다른 기록도 있으니, 세부 연도는 여러 자료를 함께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전동성당은 1981년 9월 25일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함께 있는 사제관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937년부터 1957년까지는 천주교 전주교구의 주교좌성당 역할도 했습니다.

■ 230년 만에 찾은 첫 순교자의 유해

전동성당 이야기는 2021년에 뜻밖의 소식으로 이어졌습니다. 2021년 3월 11일 전북 완주 초남이성지의 바우배기를 성역화하던 중, 무연고 무덤을 옮기다 순교자의 이름이 적힌 백자사발 지석이 나온 것입니다. 바우배기는 유항검 일가의 묘지터로 알려진 곳입니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해부학 조사, 방사성탄소연대측정, Y염색체 부계 유전자 검사 등 정밀 조사를 거쳐, 2021년 9월 1일 이 유해들이 윤지충 바오로, 권상연 야고보, 그리고 신유박해 순교자 윤지헌 프란치스코의 유해라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순교한 지 약 23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앞서 2014년 8월 16일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를 복자로 선포했는데, 그 시복의 맨 앞자리에 있던 이름이 바로 윤지충이었습니다.

■ 전동성당을 찾아갈 때 — 마음으로 걷는 순례

전동성당은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51, 한옥마을 바로 앞에 있습니다. 관광객도 많이 찾지만, 미사가 봉헌되는 살아 있는 본당이자 성지라는 점을 기억하고 조용히 둘러보는 것이 예의입니다. 성당 한쪽에는 윤지충의 순교를 기리는 조형물도 있습니다. 근처 풍남문과 경기전, 그리고 완주 초남이성지까지 함께 걸어 보면, 아름다운 건축 너머에 쌓인 신앙과 역사의 층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신앙이 다르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 앞에서 끝까지 정직하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울림을 줍니다. 오늘 전동성당의 붉은 벽돌 위로 비치는 가을 햇살 속에서, 그 오래된 기억을 잠시 떠올려 보시면 어떨까요.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주 전동성당」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9684 , 천주교 전주교구 성지 안내 「전동성당」 http://www.jcatholic.or.kr/theme/main/pages/terrasanta02.php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관련 성지 https://cbck.or.kr/koreanmartyrs/Shrines/53 ,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전주 전동성당」 https://digital.khs.go.kr/heri/heriDetail.do?ctptNo=1333502880000&ctptUid=13898859676429300905 , 한국학중앙연구원 HeritageWiki 「전주 전동성당」 , 가톨릭신문 「한국교회 첫 순교자 무덤·유해 찾았다」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109070075810 , 연합뉴스 2021.9.1 보도 https://www.yna.co.kr/view/AKR20210901101100055 , 위키백과 「전동성당」·「윤지충」·「신해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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