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성 김대건 안드레아 — 한국 최초 사제, 순교와 시성으로 남은 믿음의 발자취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3

1821년 충청남도 솔뫼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 어머니 고 우르술라. 집안은 이미 1801년 신유박해로 큰 시련을 겪은 뒤였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김대건, 세례명은 안드레아. 오늘은 한국 천주교가 기리는 성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삶을 차분히 따라가 보려 합니다. 처음 사제로 서품된 길, 바다로 열리려 했던 선교의 길, 그리고 새남터에서 멈춘 숨까지, 기록에 남은 사실만을 곁에 두고 이야기합니다.

■ 솔뫼에서 마카오로, 열여섯의 선택
김대건은 16세이던 1836년, 최양업 토마스·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고향을 뒤로하고 낯선 땅으로 향한 그 발걸음은, 훗날 한국 교회가 스스로 사제를 세우는 첫 이정표가 됩니다. 박해의 그늘 아래에서도 신앙을 지키던 집안의 기억과, 젊은 신학생들이 품었던 희망이 그 길에 겹쳐 있습니다.

■ 상하이에서 받은 서품, 조선으로의 귀국
1845년 8월 17일, 김대건은 상하이 진쟈상(金家巷)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사제였습니다. 서품 후 그는 조선으로 돌아와, 서해 해로를 통해 선교사들이 입국할 길을 열려고 애썼습니다. 육로가 막힌 시대에 바다로 복음의 통로를 찾으려 했던 시도는, 그의 짧은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 체포와 순교, 새남터의 기록
그 길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1846년 6월, 백령도 해역의 순위도에서 체포되었고, 같은 해 9월 16일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했습니다. 스물다섯의 짧은 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끝은 한국 천주교의 기억 속에 ‘처음 사제’이자 ‘순교자’로 남았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의 이름은 교회가 기리는 성인 목록의 앞에 자리합니다.

■ 시복·시성, 그리고 수호자로 선포되다
1925년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에서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 순교자 103위와 함께 시성했습니다. 김대건과 정하상 바오로는 한국 교회의 대표 성인으로 불립니다. 1949년 11월 25일에는 비오 12세가 그를 한국에서 전교하는 모든 성직자의 수호자로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교회는 순교자 현양을 위해, 과거 대축일이었던 7월 5일에 신심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주교회의 2019 추계 총회).

■ 2025년, 유해가 다시 이야기하다
2025년은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시복 100주년이었습니다. 이 해를 맞아 김대건 신부의 발뼈 유해와 유해 증명서가 처음으로 공개되었습니다. 증명서는 1925년 12월 16일자이며, 2025년 2월 19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주교회의 중앙협의회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세기 전의 문서와 유해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일은, 순교의 기억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조용히 보여 줍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삶은 ‘처음으로’라는 단어와 자주 만납니다. 첫 사제, 첫 순교의 한 장면, 그리고 시성과 수호성인으로 이어진 현양. 솔뫼에서 시작해 마카오와 상하이를 거쳐 새남터에 이른 그 길을 떠올리며, 믿음이 한 사람의 짧은 생을 어떻게 남겼는지 함께 기억해 보면 좋겠습니다.

출처: https://missa.cbck.or.kr/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매일미사 / 성 김대건 신심 미사 안내), https://www.newsis.com/view/NISX20250703_0003237238 (뉴시스 유해 공개 보도), https://www.catholictimes.org/ (가톨릭신문 103위 시성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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