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동인천역에서 신포시장 쪽으로 걷다 보면, 언덕 위로 붉은 벽돌 성당의 세 종탑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1897년에 처음 축성된 인천 답동성당입니다. 인천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가톨릭 건축물이자, 지금은 천주교 인천교구의 주교좌성당이지요. 그런데 올해 2026년 7월 1일, 인천 중구 내륙과 동구가 합쳐져 '제물포구'가 새로 출범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답동성당이 1889년 처음 문을 열 때 이름이 바로 '제물포 본당'이었습니다. 137년 만에 동네 이름이 성당의 옛 이름으로 돌아온 셈이에요. 오늘은 천주교 인천교구와 굿뉴스 성지 자료(한국가톨릭대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가유산청 자료를 바탕으로 답동성당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 보겠습니다.
■ 개항장 제물포에 세운 첫 본당
천주교 인천교구 본당 소개에 따르면, 19세기 말 제물포에 성당을 세우기로 한 것은 당시 조선교구장 블랑 주교의 결정이었습니다. 제물포는 서울의 관문이자 외국 무역의 거점이 될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맺어져 개항지에서 땅을 사고 성당을 짓는 일이 가능해지자, 교구는 1888년부터 성당 터를 물색했습니다.
그리고 말레이반도 페낭 신학교에 있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빌렘(J. Wilhelm, 한국 이름 홍석구) 요셉 신부가 초대 주임을 맡아, 1889년 7월 1일 인천 지역 첫 본당인 제물포 본당을 세웠습니다. 일주일 뒤인 7월 8일, 임시 성당으로 마련한 가옥에서 첫 미사가 봉헌되었는데, 인천교구 자료는 한국인 59명과 일본인 25명, 모두 84명이 참석했다고 전합니다(한국가톨릭대사전은 85명으로 적고 있습니다). 빌렘 신부는 이듬해인 1890년 지금의 성당 자리인 답동 언덕에 대지 3,212평을 마련했습니다.
이 빌렘 신부는 훗날 황해도에서 사목하며, 안중근의사기념관 자료에 따르면 1897년 청계동의 안태훈 일가와 주민들에게 세례를 준 사람이기도 합니다. 안중근 의사의 세례명 '도마'도 이때 받은 것이지요. 인천의 첫 본당을 연 신부가 한국 근대사의 큰 인물과도 이렇게 이어져 있습니다.
■ 청일전쟁을 넘어 1897년 축성되기까지
성당을 짓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빌렘 신부가 1890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로 옮기자, 2대 르비엘 신부가 이웃 야산을 더 사들이고 1891년 7월 임시 성당 겸 경리부 건물을 완성했습니다. 성당 건립 기금을 모으고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 수녀 파견을 요청한 것도 그였지만, 병으로 홍콩에 휴양을 떠나게 됩니다.
본당이 자리를 잡은 것은 1893년 4월 부임한 3대 주임 마라발(J. Maraval, 서약슬) 요셉 신부 때였습니다. 그는 코스트 신부에게 성당 설계도를 받아 기초 공사를 시작했고, 1894년 8월 수녀원이 완공되자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 두 명이 와서 제물포 분원을 열었습니다. 이들이 시작한 보육과 무료 진료가 훗날 '해성보육원'과 '해성병원'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1894년 7월 청일전쟁이 터졌습니다. 인천투데이 기사에 따르면 일본이 인천 전역을 병참기지로 쓰면서 항구가 통제되어 건축 자재를 구하기 어려워졌고, 공사는 한동안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1895년 8월 11일 정초식을 다시 올린 뒤 공사는 이어졌고, 마침내 1897년 7월 4일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축성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국가유산청 「월간 문화재사랑」 글은 종탑 위에 처음엔 종이 없었고, 1900년 초 신자들의 기부금으로 외국에서 종 세 개를 주문해 들여와 인천 하늘에 울렸다고 전합니다. 같은 해 9월 1일 마라발 신부는 박문소학교(지금 박문초등학교의 전신)도 세웠습니다.
■ 옛 성당을 감싸 안은 1937년의 개축
신자가 늘어 1933년 무렵 1,500명에 이르자 성당이 좁아졌습니다. 가장 오래 재임한 4대 주임 드뇌(E. Deneux) 에우제니오 신부는 놀라운 방법을 택했습니다. 1897년의 옛 성당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둔 채, 파리외방전교회 시잘레 신부의 설계에 따라 바깥을 벽돌로 둘러쌓아 넓히는 개축이었지요. 1935년 시작된 이 공사는 1937년 6월 30일 서울교구장 라리보 주교의 축성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무렵 드뇌 신부가 휴양을 떠나면서 보좌였던 임종국 바오로 신부가 답동 본당 최초의 한국인 주임 신부가 되었습니다. 그는 1959년까지 20년 넘게 머물며 해방과 한국전쟁을 신자들과 함께 견뎠습니다. 일제 말기에는 성당 종을 빼앗기는 아픔도 있었는데, 해방이 되자 신자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이 그 종을 찾아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 세 개의 종탑과 붉은 벽돌, 빛의 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답동성당의 평면을 라틴십자형 삼랑식, 양식을 로마네스크로 설명하며 전주 전동성당과 외관이 흡사하다고 적고 있습니다. 붉은 벽돌이 주재료이지만 출입구와 창 둘레처럼 의장적으로 중요한 곳에는 화강석을 썼다는 점이 특이하지요. 정면 가운데 큰 종탑과 양옆의 작은 종탑 꼭대기에는 팔각의 북 모양 탑이 얹혀 있고, 가운데 출입구 위로는 장미 문양의 창이 있습니다.
인천 중구 문화관광 안내는 처음 지어질 때는 뾰족한 첨탑이 특징인 고딕풍이었지만 1937년 개축으로 아치와 둥근 돔이 특징인 로마네스크 양식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성당 안에 들어서면 1979년 본당 설정 90주년을 맞아 만든 유리화가 빛을 뿜습니다. 굿뉴스 자료에 따르면 제대 뒤 15점에는 장미 문양이, 좌우 창 16점에는 예수의 수난과 피에타, 부활의 영광 같은 성경 주제가 추상적인 선과 강렬한 색으로 담겨 있습니다.
■ 주교좌성당이 되기까지, 그리고 지금
1958년 10월 인천과 부천, 인근 섬 지역이 서울교구에서 분리되어 '인천 감목대리구'가 되었고, 사목은 메리놀 외방전교회에 맡겨졌습니다. 1961년 6월 6일 인천 대목구로 승격되며 맥노튼(나길모) 주교가 초대 교구장이 되었고, 답동 본당은 주교좌 본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8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국가유산청 기록을 보면 이후에도 2004~2005년 성당 보수, 2007~2008년 종탑 세 곳의 종과 지붕 보수, 2020년 지붕과 창호 보수 등 꾸준한 손길이 이어졌습니다. 2002년에는 박문초등학교가 연수구로 옮겨 간 옛 교사가 교구청사로 새로 태어났고, 성당 마당은 지역 주민 누구나 쉬어 갈 수 있는 공원처럼 꾸며졌습니다.
■ 답동 언덕에 올라 보신다면
답동성당은 신자가 아니어도 그 앞마당에 서면 개항기 인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청일전쟁의 포성 속에서도 멈췄다 다시 이어진 공사, 옛 성당을 허물지 않고 감싸 안은 개축, 빼앗긴 종을 되찾아 온 신자들의 마음까지, 붉은 벽돌 한 장 한 장에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미사나 전례 중에는 조용히 예를 지켜 주시고, 방문 전에는 본당 안내를 한 번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제물포라는 이름이 다시 돌아온 올가을, 신포시장 나들이 길에 언덕 위 세 종탑을 한번 올려다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출처: 천주교 인천교구 「답동 주교좌 본당 소개」 http://www.caincheon.or.kr/church/church_jigu.do?churchIdx=14001&step1=01 , 굿뉴스 성지정보 「답동 주교좌성당」(한국가톨릭대사전 제3권, 차기진) https://maria.catholic.or.kr/mobile/sa_ho/list/view.asp?ctxtOrgNum=2866&menugubun=holyplace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천 답동성당」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7072 ,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인천 답동성당」 https://digital.khs.go.kr/heri/heriDetail.do?ctptNo=1332302870000&ctptUid=13898859676418300904 , 국가유산청 월간 문화재사랑 「답동성당, 빛과 구조의 미학」 http://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bbsId=BBSMSTR_1008&nttId=13858 , 인천 중구 문화관광 「답동성당」 https://www.icjg.go.kr/tour/cttu0101a11 , 인천투데이 「[오늘의 인천소사] 인천 최초 천주교 미사 열려」 https://www.incheon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304998 , 인천투데이 「[인천건축문화재] 천주교 답동성당과 감리교 여선교사합숙소」 https://www.incheon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564 , 안중근의사기념관 「종교(신앙) 활동」 https://www.ahnjunggeun.or.kr/kwa-47083 , 인천일보 「인천 첫 통합구 제물포구 출범」(2026.7.1) https://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326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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