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송광사 — 16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와 법정 스님의 불일암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2

가을이 깊어 가는 이맘때, 전라남도 순천 조계산 자락의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물 위에 지붕을 얹은 작은 다리 하나가 먼저 나그네를 맞아 줍니다. 그 다리를 건너면 우리나라 '삼보사찰' 가운데 하나인 송광사입니다. 부처님 사리를 모신 통도사를 불보사찰, 팔만대장경을 모신 해인사를 법보사찰이라 부르듯, 송광사는 '승보사찰'이라 불립니다. 부처님과 가르침에 이어 세 번째 보배인 '스님'을 품은 절이라는 뜻이지요. 오늘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국가유산청, 송광사의 기록을 따라 이 절에 얽힌 이야기를 천천히 들려드리려 합니다.

■ 왜 '승보사찰'일까 — 고려에서 조선 초까지 배출한 16국사

송광사가 승보사찰로 불리는 까닭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초까지 이 절에서 '16국사'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국사(國師)는 나라의 스승으로 받들던 스님에게 내리던 최고의 칭호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제1세 보조국사 지눌(1158~1210)과 제2세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을 비롯해 원감국사 충지, 혜감국사 만항, 각진국사 복구 등이 차례로 이어졌고, 조선 초 송광사를 다시 일으킨 고봉 법장(1350~1428)이 제16세로 모셔졌습니다.

같은 사전은 고려 시대 문헌에서 확인되는 국사가 모두 60여 명이고 그 가운데 무신난 이후 책봉된 이가 36명 정도라는 점을 들면서, 한 절에서 십여 명의 국사가 나왔다는 사실은 송광사가 당대 최고의 사찰이었음을 보여 준다고 설명합니다. 다만 '송광사는 승보사찰'이라는 말이 기록에 처음 나타나는 것은 훨씬 뒤입니다. 1828년 홍석주가 남긴 「연천옹유산록」에 "보조 이후 16국사가 배출되었기 때문에 승보라 한다"는 구절이 있어, 늦어도 19세기 초에는 이런 인식이 자리 잡았던 것으로 봅니다.

■ 신라 말 길상사에서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까지

송광사의 시작은 소박했습니다. 1207년 최선이 지은 중창기에는 신라 말 혜린선사가 절을 세우고 처음에는 '길상사'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절에 전해 오는 사적비에는 전염병이 돌던 시절 혜린대사가 돌부처 앞에서 기도하다 꿈을 꾸고, 한 노스님에게서 붉은 가사와 향나무 불상을 받아 송광산으로 왔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습니다. 백과사전은 이 이야기를 사실이라기보다 설화로 보고 있으니, 옛사람들이 절의 시작을 이렇게 아름답게 기억했다 정도로 들어 두시면 좋겠습니다.

고려 인종 때 석조라는 스님이 길상사를 다시 지으려고 장인과 나무를 모았지만,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뒤 길상사는 50여 년 동안 거의 폐허처럼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이 폐허 같은 절을 다시 살려 낸 사람이 보조국사 지눌입니다. 지눌은 1182년 개경 보제사 담선법회에서 동료 10여 명과 함께 선정(定)과 지혜(慧)를 함께 닦는 모임, 곧 결사를 맺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은 곧바로 이뤄지지 못했고, 1188년에야 팔공산 거조사에서 도반 몇 명과 함께 '정혜결사'를 시작했습니다. 1190년에는 「권수정혜결사문」을 지어 출가자뿐 아니라 일반 신도에게도 함께하자고 호소했지요.

그 뒤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홀로 수행하며 큰 깨달음을 얻은 지눌은 1200년 송광산 길상사를 결사하기 좋은 곳으로 여겨 이곳에서 결사를 새로 꾸렸습니다.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자 조정은 1204년 결사의 이름을 '정혜'에서 '수선(修禪)'으로 바꾸게 하고, 희종 임금이 직접 쓴 '수선사' 현판과 수놓은 가사를 내렸습니다. 이때 산 이름은 송광산에서 조계산으로, 절 이름은 길상사에서 수선사로 바뀌었고, 훗날 다시 송광사가 되었습니다. 이름을 바꾸게 한 것은 근처 계족산에 '정혜사'라는 절이 있어 헷갈릴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전란과 화재를 딛고 다시 선 절

송광사의 역사는 다시 짓고 또 다시 짓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국가유산청 자료는 송광사가 정유재란, 1842년(헌종 8년)의 큰 화재, 6·25 전쟁 같은 숱한 재난을 겪었지만 여덟 차례의 큰 중창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소개합니다. 정유재란으로 크게 무너진 뒤에는 1609년 부휴 선수 스님이 400여 명의 제자를 이끌고 와서 절을 다시 세웠고, 이후 송광사는 조선 후기 불교의 한 줄기인 부휴계의 중심 사찰이 되었습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송광사가 조선 후기에 펴낸 불교 책이 48종으로, 한 절에서 낸 것으로는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가장 아픈 기억은 1951년 5월입니다. 송광사 기록에 따르면 전쟁 중 큰 불이 나 대웅전과 설법전 등 경내 중심부가 타 버렸고, 수백 년 동안 간직해 온 보조국사의 가사를 비롯한 많은 성보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1955년부터 금당 스님과 취봉 스님이 천일관음기도회를 열며 다시 불사를 일으켰고, 1969년 송광사가 선원·강원·율원 등을 두루 갖춘 종합 수행 도량인 '조계총림'으로 지정되면서 초대 방장 구산 스님의 뜻에 따라 1983년부터 1990년까지 30여 동의 전각을 새로 짓고 고쳤습니다.

■ 국보 국사전과 사라진 열세 점의 초상화

송광사에서 꼭 들러 보아야 할 곳이 승보사찰의 상징인 국사전입니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이 건물에는 16국사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는데, 지금의 초상화는 1780년(정조 4년)에 다시 그린 것입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백과사전은 주심포 양식 건축의 표준으로 평가할 만큼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연도 있습니다. 1990년 보물로 지정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은 1995년에 13점을 도난당해, 지금은 보조국사 지눌, 진각국사 혜심, 정혜국사의 진영 3점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송광사에는 이 밖에도 목조 삼존불감, 혜심고신제서, 화엄경변상도까지 국보 4점과 보물 28점을 포함해 국가 문화유산 33점이 전해 오니, 한국에서 손꼽히는 불교 문화유산의 보물 창고라 할 만합니다.

■ 법정 스님의 불일암, 그리고 '무소유'

송광사를 찾는 많은 분들이 일부러 발걸음을 옮기는 곳이 산내 암자인 불일암입니다. 원래 16국사 가운데 제7세 자정국사가 세운 자정암 자리였는데, 전쟁 뒤 허물어진 것을 1975년 법정 스님이 다시 짓고 '불일암' 현판을 걸었습니다. 스님은 이곳에서 17년 동안 머물며 1976년 『무소유』를 비롯해 『산방한담』, 『텅 빈 충만』 같은 책을 써 냈습니다.

2010년 스님이 세상을 떠나자, 그 유골은 스님이 1975년쯤 암자를 지으며 직접 심은 나무 아래 수목장으로 모셔졌습니다. 스님은 글에서 이 나무를 '후박나무'라 불렀지만, 실제로는 향목련(일본목련)이라고 합니다. 스님이 가장 아꼈던 나무 아래 잠들었다는 이야기만으로도, 필요 없는 것을 버리고 맑고 향기롭게 살자던 스님의 가르침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 송광사를 찾아갈 때 알아 두면 좋은 것들

송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이며, 2009년에는 '조계산 송광사·선암사 일원'이 국가 명승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남자와 여자 영가가 각각 몸을 씻는다는 아주 작은 두 전각 척주각과 세월각, 보조국사가 심었다는 전설이 깃든 마른 나무 고향수, 그리고 계곡 위에 걸린 우화각과 삼청교가 차례로 나타납니다. 서두르지 말고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한 걸음씩 걸어 보시길 권합니다. 불일암은 지금도 스님이 수행하는 공간이니 조용히 다녀오시는 것이 예의입니다.

800여 년 전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자던 한 스님의 다짐이 지금도 조계산 골짜기에 이어지고 있다는 것, 그것이 송광사가 '스님의 보배'를 품은 절이라 불리는 진짜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계산 송광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0662 , 「십육국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4008 , 「순천 송광사 국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0665 ,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0684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송광사 소개 https://www.heritage.go.kr , 승보종찰 조계총림 송광사 사찰 역사 https://www.songgwangsa.org/sub/sub_1_02.jsp , 동아일보 「법정 스님 '불일암 후박나무' 아래 안식」(2010.4.28) https://www.donga.com/news/People/article/all/20100428/27932559/1 , 오마이뉴스 불일암 기행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_w.aspx?CNTN_CD=A0002495810 , 에코저널 「필요 없는 것 버리는 '무소유'」 https://www.ecojournal.co.kr/m/view.php?idx=155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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