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낙산사 —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만난 동해 바닷가 천년 관음성지, 불길 속에서 다시 일어선 홍련암과 의상대 이야기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6

강원도 양양의 바닷가, 오봉산 자락에 자리한 낙산사에는 해마다 가을이면 동해의 맑은 물빛과 소나무 그림자를 보러 찾아오는 발걸음이 이어집니다. 바다를 마주한 절벽 위에서 관세음보살을 모셔 온 이 절은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도량 가운데 하나로 꼽히지요. 오늘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삼국유사』, 국가유산청 자료, 그리고 당시 신문 보도를 바탕으로 천삼백 년 넘게 불타고 다시 일어서기를 거듭해 온 낙산사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 보겠습니다.

■ '보타락가'에서 온 이름, 관세음보살이 머무는 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낙산사는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 오봉산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입니다. 오봉산은 낙산이라고도 부르는데, '낙산'은 범어 보타락가(Potalaka)를 줄인 말로 관세음보살이 늘 머무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요. 이름부터가 관음보살의 집이라는 고백인 셈입니다.

낙산사는 강화 보문사, 남해 보리암과 함께 국내 3대 관음성지로 불립니다. 양양읍에서 북쪽으로 7㎞쯤 떨어진 이곳은 동쪽으로 바다와 맞닿아 있고, 낙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완만하게 내려오는 능선 위에 주요 전각들이 자리 잡고 있지요.

■ 의상대사와 한 쌍의 대나무, 낙산사가 세워지기까지

『삼국유사』는 671년(문무왕 11)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세웠다고 전합니다. 백과사전이 정리한 창건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당나라에서 화엄을 공부하고 돌아온 의상은 관세음보살의 진신이 낙산 동쪽 바닷가 굴 속에 머문다는 말을 듣고 그곳을 찾아갔어요. 굴 입구에서 7일 동안 몸과 마음을 가다듬자 팔부신장이 그를 굴속으로 이끌었고, 공중을 향해 예배하여 수정 염주 한 꾸러미를 받았으며, 동해의 용도 여의보주 한 알을 바쳤다고 합니다.

다시 7일을 재계한 끝에 관세음보살을 뵙자, 보살은 "산꼭대기에 한 쌍의 대나무가 솟아날 것이니 그 땅에 불전을 짓는 것이 마땅하리라"고 일러 주었다고 해요. 의상은 그 자리에 금당을 짓고 관음상을 모신 뒤 절 이름을 낙산사라 하고, 받은 두 구슬을 성전에 모셨다고 전합니다. 『삼국유사』에는 원효대사도 관음보살을 뵈러 이곳을 찾았지만, 길에서 만난 관음의 화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풍랑 때문에 굴에도 들어가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어요. 위대한 두 스님의 엇갈린 발걸음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 하룻밤에 하얗게 센 머리, 『삼국유사』 속 '조신의 꿈'

낙산사 관음상 앞에서는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은 이야기도 태어났습니다. 『삼국유사』 권3 「낙산이대성 관음 정취 조신」 조에 실린 조신 설화예요. 세달사의 땅을 관리하던 승려 조신은 명주 태수 김흔의 딸을 사모해 낙산사 관음보살 앞에서 몇 해 동안 인연을 빌었지만, 그녀는 이미 다른 이와 혼인하고 말았습니다. 원망하며 울다 잠깐 잠이 든 조신은 꿈속에서 그녀와 함께 고향으로 가 40여 년을 살며 다섯 자녀를 둡니다.

그러나 꿈속 삶은 가난과 떠돌이 생활의 연속이었어요. 열다섯 살 큰아이는 해현령 고개에서 굶어 죽고, 밥을 빌러 다니던 열 살 딸은 마을 개에게 물립니다. 결국 두 사람이 아이를 둘씩 나누어 헤어지려던 순간 꿈에서 깨어났는데, 아침이 되니 머리카락이 모두 하얗게 세어 있었다고 해요. 꿈에서 아이를 묻었던 자리를 파 보니 돌미륵이 나왔고, 조신은 그것을 이웃 절에 모신 뒤 사재를 털어 정토사를 세우고 수행에 힘썼다고 전합니다. 백과사전은 이 이야기를 한국 '꿈 문학'의 원조로 소개하며, 이광수가 이를 바탕으로 1925년 소설 「꿈」을 썼다고 적고 있습니다.

■ 몽골 침입부터 세조의 중창까지, 거듭 일어선 가람

낙산사의 역사는 불에 타고 다시 짓기를 되풀이한 역사이기도 합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창건 뒤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던 절을 858년(헌안왕 2) 범일국사가 다시 짓고 정취보살상을 모셨고, 1254년(고종 41) 몽골군이 침입했을 때는 관음보살상과 정취보살상을 양주성으로 옮겨야 했어요.

조선에 들어서는 왕실이 법회를 여는 절이 되었습니다. 1467년(세조 13) 세조가 낙산사에 향을 올리고 중건을 명했고, 1469년(예종 원년)에는 아버지 세조를 위해 예종의 명으로 동종이 만들어졌지요. 국가유산청 설명에 따르면 원통보전 앞의 칠층석탑도 창건 때 3층이던 것을 1467년에 지금의 7층으로 올린 것으로, 높이 6.2m에 고려 석탑의 여운이 남아 있어 1968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절 입구의 무지개 모양 홍예문은 세조 때 강원도 26개 고을에서 돌을 하나씩 내어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요. 이후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때 다시 불탔다가, 1953년 원통보전을 새로 지으며 또 한 번 일어섰습니다.

이때 원통보전에 모셔진 분이 지금의 건칠관음보살좌상입니다. 국가유산청 자료에 따르면 본래 양양 영혈사에 있던 조선 초기 불상으로, 한국전쟁 중 계곡에 버려졌던 것을 한 보살이 집 벽장에 숨겨 지켰고, 1953년 낙산사 복원 때 옮겨 모셨다고 해요. 2003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 2005년 4월 5일, 산불이 삼킨 천년 고찰과 다시 울린 종소리

2005년 4월 5일, 강원 동해안을 휩쓴 대형 산불이 낙산사를 덮쳤습니다. 당시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경내 전각 16채 가운데 10채가 불탔고, 원통보전과 홍예문 누각, 그리고 보물이던 낙산사 동종까지 녹아내렸어요. 동종은 결국 그해 보물 지정이 해제되었습니다. 다행히 바닷가 절벽의 의상대와 홍련암, 보타전, 해수관음상은 불길을 피했다고 합니다.

폐사 위기 앞에서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약 1년 6개월 동안 발굴조사를 벌여 통일신라 인화문토기 조각과 고려청자, 명문기와 등을 찾아냈고, 이를 토대로 2007년까지 원통보전과 범종루, 홍예문 누각 등을, 2009년에는 설선당과 빈일루 등을 새로 지었습니다. 불탄 동종도 이듬해 다시 태어났어요. 주철장 원광식 장인이 14개월여에 걸쳐 사진 자료를 분석해 밀랍 주조로 원형을 재현했고, 불탄 종과 같은 비율(구리 83%, 주석 16%)로 금속을 배합했으며, 종 안쪽에는 소실과 복원 과정을 적은 복원기를 새겼다고 합니다. 낙산사 일원은 2008년 12월 18일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 의상대와 홍련암, 바다 위 법당에서 듣는 파도 소리

낙산사에 가면 꼭 걸어 보아야 할 길이 있습니다. 의상대사가 좌선했다는 해안 암벽을 기념해 세운 정자 의상대에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300m쯤 가면, 바닷가 석굴 위에 홍련암이 앉아 있어요. 백과사전에 따르면 의상이 파랑새를 따라가다 새가 사라진 석굴 앞에서 7일 동안 기도하자 바다 위로 붉은 연꽃이 솟고 그 가운데 관음보살이 나타나, 그 자리에 암자를 짓고 홍련암이라 불렀다고 전합니다.

홍련암 법당 마루에는 작은 구멍이 있어 그 아래로 출렁이는 바닷물을 내려다볼 수 있는데, 의상에게 여의주를 바친 용이 법문을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요. 의상대에서 홍련암에 이르는 해안 구간은 빼어난 풍광과 동해 일출 명소로서 2007년 명승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언덕 위에는 1977년에 세운 해수관음상이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고, 그 앞 해수관음공중사리탑은 2005년 수리 과정에서 1692년에 봉안된 사리와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어 보물로 지정되었지요.

불길이 삼킨 자리에 다시 전각을 세우고, 녹아내린 종을 다시 부어 울린 낙산사. 그 모습은 꿈에서 깨어나 새 마음으로 수행을 시작한 조신의 이야기와도 닮아 있습니다. 바닷바람이 선선해지는 이 계절, 홍련암 마루 아래 파도 소리를 들으며 저마다의 소원을 조용히 빌어 보시면 어떨까요. 법당은 지금도 기도와 수행의 공간이니, 조용한 걸음과 안내에 따른 촬영으로 함께 지켜 주시면 좋겠습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오봉산 낙산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1589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양양 낙산사 일원」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0978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낙산 홍련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4043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2339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꿈」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1278 , 한국고대사료DB 『삼국유사』 조신 조 https://db.history.go.kr/id/sy_003r_0020_0190_0050 ,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양양 낙산사 칠층석탑」 https://digital.khs.go.kr/heri/heriDetail.do?ctptNo=1123204990000&ctptUid=13898859670304200384 , 국가유산포털 「양양 낙산사 건칠관음보살좌상」·원통보전 아미타불도 해설 https://www.heritage.go.kr/DATA1/heritage/hub_img/html/cul_2113201800000.html , 중앙일보 「잡히던 불길 되살아나 낙산사 덮쳐」(2005) https://www.joongang.co.kr/article/13311 , 중앙일보 「불탄 낙산사 동종 복원했어요」(2006)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77666 , 한국NGO신문 「화마의 흔적을 지운 관동팔경 낙산사」(2021) https://www.ngo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28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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