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왕굿은 물을 다스리는 용왕신(사해용왕)을 모셔 바다에서 생길 수 있는 액을 막고 풍어와 뱃길의 안전을 비는 굿거리이며, 동시에 바다에서 죽은 넋(수중고혼)을 달래는 굿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용왕굿' 항목에 따르면 용왕굿은 굿당이 아니라 바닷가나 선창에 나와서 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동해안별신굿·서낭굿·위도 띠뱃놀이·제주도 영등굿 같은 마을굿의 후반부에 주로 들어갑니다. 제주도에서는 같은 굿을 '용왕맞이(요왕맞이)'라고 부르고, 내륙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우물이나 냇가에서 올리는 '용왕먹이기(용왕제)'라는 가정 의례로 이어졌습니다. 아래에서 용왕굿 뜻과 용왕신의 정체, 동해안별신굿 용왕굿의 순서, 무당이 물동이를 타는 '동이타기'와 공수, 제주 요왕맞이, 정월 용왕먹이기 방법, 그리고 용신신앙의 역사까지 차례로 정리합니다.
용왕굿 뜻 — 바다를 차지한 용왕신을 모시는 굿거리
용왕굿(龍王굿)은 글자 그대로 용왕을 위하는 굿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박계홍 집필)은 용왕굿을 "물을 관장하는 용왕신을 모시는 굿거리"로 정의하고,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비는 굿에서 행하는 제차(굿의 한 순서)의 하나로 바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액을 막고 복을 구하기 위해 한다고 설명합니다.
용왕굿이 다른 굿거리와 가장 다른 점은 장소입니다. 대부분의 굿거리는 마을 당이나 굿청 안에서 진행되지만, 용왕굿은 굿판을 바닷가나 선창으로 옮겨서 합니다. 같은 백과사전 '별신굿' 항목도 용왕굿은 용왕신을 모시는 거리로서 물에 빠져 죽은 원귀를 달래는 굿인데, 가설 굿당을 철거하고 바닷가에 뱃기를 꽂아 놓은 뒤 행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바다와 직접 마주한 자리에서 바다의 신을 부르는 셈입니다.
모시는 신의 모습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동해용왕·서해용왕·남해용왕·북해용왕의 사해용왕을 한꺼번에 모시기도 하고, 황해도 지역에서는 용왕을 '소당애기씨' 같은 여신으로 믿기도 했습니다. 제주도 무가에서는 동해 청룡왕, 서해 백룡왕, 남해 적룡왕, 북해 흑룡왕, 중앙 황룡왕처럼 방위에 따라 다른 용왕이 있고, 그 아래 여러 관원과 용왕차사가 있다고 노래합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용왕맞이', 현용준 집필).
동해안별신굿 용왕굿 순서 — 상차림부터 물밥 던지기까지
용왕굿의 모습이 가장 잘 정리된 예는 국가무형유산 동해안별신굿입니다. 동해안별신굿은 부산 동래에서 강원 고성까지 남부 동해안 어촌에서 정기적으로 하는 마을굿으로, 풍어제·풍어굿·골매기당제라고도 불리며 1985년 국가무형유산(당시 중요무형문화재)으로 지정됐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별신굿의 용왕굿이 생업과 직접 관련된 신을 모시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거리"라고 설명합니다. 백과사전에 실린 순서를 따라가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상차림입니다. 선주를 비롯해 바다 일을 하는 사람들이 집에서 각자 상을 차려 와 바닷가에 늘어놓습니다. 상에는 쌀과 메(밥), 어물과 채소, 삼실과, 술을 올립니다.
둘째, 청신과 축원입니다. 무당은 먼저 사해용왕을 청하고, 배 이름과 선주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축원합니다. 이어 고기를 많이 잡게 하고 사고가 없게 해 달라고 빕니다.
셋째, 만선 축원입니다. 어촌계장과 선주들의 머리를 창호지로 묶어 상투처럼 만드는데, 이는 만선이 됐을 때 배에 높이 꽂고 돌아오는 선왕기(船王旗)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넷째, 공수와 용선입니다. 무당은 물동이 위에 올라가 한 해 동안 바다 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예언하고 조심시키는 공수를 줍니다. 사람들은 굿청 안의 용선(용왕배 모형)에 돈을 넣고 한 번씩 흔들고, 용선에 광목필을 이어 주민 모두가 붙잡고 흔들며 뱃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다섯째, 개인 점사입니다. 무녀는 바닷가에 집집이 차려 놓은 상으로 가서 쌀을 집어 산(점괘)을 맞춰 보고 집안의 길흉을 말해 줍니다. 삼재가 들었거나 운이 나쁜 집은 이때 가장이나 가족의 속옷을 가지고 나와 태우기도 합니다.
여섯째, 물밥 던지기입니다. 축원이 끝나면 가족들이 밥을 한지에 여러 뭉텅이로 싸서 바다에 던지는데, 이는 물에서 죽은 수중고혼을 위로하는 뜻이라고 백과사전은 설명합니다. 같은 백과사전 '동해안별신굿' 항목은 용왕굿에서 축원 덕담 무가를 부르고,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용왕떡 등 제물을 바치기도 한다고 덧붙입니다.
거제 지역 사례도 비슷합니다. 디지털거제문화대전 '용왕굿' 항목은 바닷가에 대나무 신대(신간)를 세우고 집집이 '용왕상'이라는 간단한 제물을 차리면 무당들이 굿을 하며, 청신악·넋노래·대너리춤·불림무가·법성·수부잔 푸너리·송신악 순으로 진행한 뒤 소지를 올리고 흰 종이에 싼 '용왕 밥'을 바다에 던져 마무리한다고 기록합니다. 남해안별신굿을 잇는 세습무 정영학 집안이 거제에서 11대째 가업을 이어 왔다는 점에서, 이 용왕굿도 적어도 300여 년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동이타기 공수와 위도 띠뱃놀이 — 신령함과 놀이가 함께 있는 굿
신이 내린 강신무가 용왕굿을 할 때는 흔히 동이에 물을 담고 과일을 넣은 뒤, 신을 벗고 그 가장자리에 올라섭니다. 이를 '동이탄다'고 하는데, 물동이는 용궁을 상징한다고 믿습니다. 동이를 탄 무당은 그 위에서 공수, 곧 신의 말을 내립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용왕굿').
국가무형유산 위도 띠뱃놀이에서는 용왕굿의 또 다른 얼굴이 보입니다. 위도 띠뱃놀이는 크게 원당굿과 용왕굿으로 나뉘는데, 산 위 당에서 하는 원당굿이 신성한 종교성을 띠는 데 비해 선창에서 하는 용왕굿은 놀이성이 강하다고 백과사전은 설명합니다. 무당은 선창에 따로 차린 용왕상 앞에서 수중고혼들을 풀어먹인 뒤 주민들과 함께 선창을 오가며 물밥을 던지고, 「배치기」 같은 노래를 부르며 모두 흥겹게 놉니다. 백과사전은 이를 두고 용왕굿이 물의 신을 모시는 굿인 동시에 잡귀를 풀어먹이는 이중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고 정리합니다.
그래서 용왕굿에는 늘 두 가지 기원이 겹쳐 있습니다. 하나는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풍어와 무사고 축원이고, 다른 하나는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넋을 먹이고 달래는 일입니다. 바닷가 사람들에게 바다는 생업의 터전이면서 가족을 잃은 곳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제주 용왕맞이(요왕맞이) — 용왕이 오는 길을 치워 맞아들이는 굿
제주도에서는 용왕굿을 '요왕맞이'라고 부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용왕맞이' 항목(현용준 집필)에 따르면 요왕맞이는 큰굿의 한 제차로 하기도 하고, 바다에서 익사한 영혼을 건져 저승으로 보내거나 풍어를 빌기 위해 따로 하기도 합니다. 어느 경우든 중심은 용왕이 오는 길을 치워 맞아들이고 소원을 비는 것입니다.
제상에는 메, 시루떡, 도래떡, 계란, 채소, 과일, 쌀, 술 등을 올리는데, 바닷고기는 올리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수심방(큰 무당)이 초감제로 굿을 열고 군문열림, 요왕질침, 요왕다리 놓기, 요왕문열림 등을 차례로 합니다. '요왕질침'은 용왕이 오는 길을 치우는 제차로, 푸른 잎이 붙은 대나무 가지 여섯 개씩을 두 줄로 나란히 꽂아 '요왕문'을 만들고, 두 줄 사이를 용왕국으로 가는 길로 삼아 깨끗이 닦습니다. 익사자를 위한 굿이면 영혼이 오는 길도 함께 닦습니다.
풍어를 비는 요왕맞이는 여기서 중심 제차가 끝나지만, 익사자의 넋을 위한 요왕맞이는 이어서 혼을 건져 오는 '초매장'을 합니다. 짚으로 허수아비처럼 만들고 고인이 입던 옷을 입힌 가시체(假屍體)를 '메치메장'이라 부르며, 마지막으로 저승 가는 길을 닦아 영혼을 위로해 보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용왕굿' 항목도 제주도 용왕맞이에서는 긴 천을 깔아 바다에서 굿청까지 신이 올라오는 길을 만들고 그 길을 깨끗이 치우는 데 힘을 쏟는다고 설명합니다.
용왕먹이기·용왕제 — 정월 대보름 우물과 냇가에서 올리는 가정 의례
용왕 신앙은 바닷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내륙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 무렵 집안 여성이 우물·냇가·강·못에 가서 용왕에게 가족의 평안을 비는 '용왕먹이기'를 했습니다. 디지털고령문화대전은 이를 '용신먹이기'라고도 부르며, 정월 대보름의 것은 풍년을 비는 '농사용왕', 정해진 날 없이 객지에 나간 자식의 무탈을 빌 때 하는 것은 '내가 위하는 용왕'이라고 구분합니다. 상에는 밥과 나물, 과일, 술을 올리고 가족 수대로 소지를 올리며, 산신을 먼저 먹인 다음 용왕을 먹이는 집이 많았습니다. 마을에 초상 같은 부정한 일이 생기면 용왕을 먹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구역사문화대전(달성)은 같은 의례를 '용왕제'라고도 부른다고 하고, 정월 대보름이나 매달 초이레(7일)·열이레(17일)에 주부가 비는 사례를 소개합니다. 개울 상류 쪽을 보고 상을 차린 뒤 소금을 네 방향에 뿌려 부정을 물리고, 초를 켜 비손을 한 다음, 밥과 나물을 세 번씩 떠서 물에 넣는 방식입니다. 충남 서천에서는 공동 우물에 지내는 샘제를 '요왕제'라 불렀는데, 하루 전 우물을 청소하고 금줄을 치며 진입로에 황토를 뿌렸고, 제를 마치면 제관이 우물에 밤과 대추를 넣어 주민들이 서로 건지려 했다고 디지털서천문화대전은 기록합니다. 같은 서천이라도 바닷가 마을의 용왕제는 선창이나 갯골에서 바다 용왕에게 풍어를 빌었습니다.
용신신앙의 역사 — 문무왕 호국용에서 사해용왕까지
용왕굿의 뿌리는 용신신앙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용신신앙' 항목은 용신을 풍운 조화를 일으키고 비를 내리며 바다를 관장하는 신으로 설명하고, 고대의 물 신앙이 삼국시대 불교 전래와 함께 용신신앙으로 바뀐 것으로 봅니다. 신라 문무왕이 죽은 뒤 호국대룡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이야기, 명랑법사가 문두루 비법으로 당나라 배를 가라앉혔다는 이야기, 『삼국유사』 보양이목조에서 용의 아들 이목이 가뭄에 비를 내려 준 이야기가 대표적인 기록입니다.
백과사전은 바다 권역마다 용왕이 있다는 사해용왕 관념이 도교의 신 위계와 직능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으로 보고, 파도와 싸워야 했던 어민과 뱃사람들이 파도를 일으키고 잠재우는 용왕을 신성시해 용왕제를 지냈다고 설명합니다. 마을의 우물과 샘도 용신이 사는 곳으로 여겨졌고, 정월 보름 새벽에 남보다 먼저 우물물을 떠 오는 '용알뜨기' 풍속에서는 용신이 생명을 주는 신으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용신은 나라를 지키는 신, 비를 내리는 농경의 신, 풍파를 다스리는 바다의 신으로 수천 년 동안 폭넓게 모셔졌고, 그 믿음이 오늘날 바닷가 용왕굿과 용왕 기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용왕 기도나 용왕굿을 하려고 무당이나 점집을 찾을 때는 굿의 목적(풍어·사업 재수·수중고혼 천도)과 절차, 비용을 미리 분명히 묻고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용왕굿'(박계홍)·'용왕맞이'(현용준)·'별신굿'·'동해안별신굿'·'용신신앙', 디지털거제문화대전 '용왕굿', 디지털고령문화대전 '용왕먹이기', 대구역사문화대전 '용왕먹이기', 디지털서천문화대전 '요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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