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의 모든것

명다리 뜻 — 아이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은 천을 신당에 거는 '명다리걸기', 아이를 무당에게 판다는 말과 신어머니·수양어머니 관계, 소창·실타래 만드는 법과 신굿 축원, 갱신과 정기 치성까지 정리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3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명다리는 아이의 무병장수를 빌기 위해 무명이나 명주, 소창 같은 천에 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 실타래와 함께 무당의 신당이나 절에 걸어 바치는 의례 도구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명다리」 항목은 이것을 "무당과 단골 관계를 맺기 위하여 바치는 공물 또는 신에게 바치는 제수를 가리키는 의례도구"라고 정의합니다. 명다리를 걸면 아이는 무당의 '신딸'이나 '신아들'이 되고 무당은 '신어머니'가 되며, 이 일을 흔히 "아이를 무당에게 판다"라고 표현했습니다. 한 번 걸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새로 만들어 바쳐야 영험이 이어진다고 믿었습니다.

점집이나 신당을 찾았다가 벽이나 신단 옆에 이름이 적힌 하얀 천이 여러 장 걸려 있는 것을 본 분이 있을 겁니다. 그것이 바로 명다리입니다. 이 글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명다리」 항목, 한국지역문화 콘텐츠의 「아이의 장수를 비는 경기지역의 명다리걸기 풍습」, 디지털양주문화대전 「명다리걸기」, 디지털시흥문화대전 「무속」, 디지털진도문화대전 「명다리굿」의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1. 명다리 뜻 — 목숨(命)을 잇는 다리라는 이름

명다리의 '명'은 목숨 명(命) 자입니다. 디지털양주문화대전은 명다리를 명건(命巾), 명교(命橋), 수명교(壽命橋)라고도 부른다고 소개합니다. 명교와 수명교라는 한자 이름에서 보듯, 아이의 목숨을 길게 이어 주는 다리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명다리를 거는 일 자체는 '명다리걸기' 또는 '명다리올리기'라고 합니다.

디지털진도문화대전 「명다리굿」 항목은 이 이름에 대해 또 다른 설명을 덧붙입니다. 무명베와 명(命)베의 발음이 비슷한 데서 명다리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천에 수명을 기원하는 글을 적어 바친다는 점에서, 실제 재료인 무명과 기원하는 목숨이 한 단어 안에 겹쳐 있는 셈입니다.

명다리는 무속만의 풍습도 아닙니다. 한국지역문화 콘텐츠와 디지털양주문화대전 자료를 보면 명다리는 무당집뿐 아니라 절에도 걸었고, 스님이 아이를 위해 수명장수를 빌어 주기도 했습니다. 무속과 불교가 함께 어우러진 민간 신앙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명다리는 어떻게 만들까 — 소창 한 필, 실 한 타래, 쌀

명다리의 기본 재료는 천과 실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대개 명주나 무명 헝겊에 이름과 생년월일 등을 적어 실타래와 함께 바치는 것이 예사라고 설명합니다. 실타래는 길게 이어지는 실처럼 아이의 명도 길게 이어지라는 뜻으로 함께 올리는 것입니다.

디지털양주문화대전에 따르면 명다리를 올릴 때는 대개 소창 한 필, 실 한 타래, 생쌀, 돈 등을 올리고 수명장수를 축원합니다. 소창에는 세로로 '북두대성칠원성군 무병장수 부귀길창 대발원' 혹은 '심신안동 수명장수 부귀공명 대발원'이라고 쓰고, 그 옆에 명다리를 올리는 자손의 생년월일과 성명을 적습니다. 그런 다음 실과 돈을 넣고 다시 개어 올린 뒤 쌀을 올리고, 쌀 위에 인등불을 밝히거나 큰 대초를 일주일 동안 켜 두었다고 합니다. 북두칠성을 가리키는 '칠원성군'이 발원문에 들어가는 것은 칠성신이 사람의 수명을 맡는다는 믿음과 이어져 있습니다.

지역마다 세부는 조금씩 달랐습니다. 한국지역문화 콘텐츠의 경기도 사례를 보면 구리시에서는 소창 7자 7치를 끊어 바치면 절이나 무당이 그 천에 이름을 써서 걸어 두었고, 남양주시에서는 쌀 1말에서 2말과 소창 1필을 바쳤습니다. 과천시에서는 소창 한 필을 바쳐 명다리로 걸고, 찾아갈 때마다 쌀을 올리고 절을 드렸다고 합니다.

3. 명다리는 언제, 누구에게 걸었나

명다리는 모든 아이에게 거는 것이 아니라 명이 짧을까 걱정되는 아이에게 주로 걸었습니다. 디지털양주문화대전은 아이가 단명할 것으로 보이거나, 신살이 강하거나, 자식이 없는 팔자인 집에 아이가 생겼거나, 손이 귀한 집에 자손이 생긴 경우 등에 "아이를 팔아 주라"는 말을 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대체로 15살 혹은 20살 이전에 명다리를 써서 무병장수를 기원했다고 합니다.

한국지역문화 콘텐츠에 실린 경기 지역 사례도 비슷합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 탯줄을 목에 감고 태어나거나 명이 짧다고 여겨지면 무당이나 스님에게 명다리를 걸었습니다. 광명시 가학동 노리실마을에서는 큰손자가 탯줄을 목에 감고 태어나자 이를 좋지 않은 일로 여겨 만신집에 명다리를 해 두고, 생일날이나 정월에 쌀이나 돈을 가져가 축원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 궁안마을에서는 아이를 낳기만 하면 자꾸 잃는 집에서 아기의 명이 길어지라고 마을 만신집에 명다리를 걸었다고 합니다.

디지털진도문화대전의 「명다리굿」은 사주팔자에 명이 짧다고 나온 어린아이를 위해 벌이는 의례로, 지앙굿의 성격을 띤다고 설명합니다. 사주를 중시해 온 민간 전통과 명다리가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또 아이만 대상이 된 것은 아닙니다. 디지털시흥문화대전 「무속」 항목은 단골 무당의 신당에 가족들의 안녕을 위해 생년월일을 적은 명다리를 걸어 놓고 절기마다 찾아가 기원하는 풍습을 소개합니다. 무당은 단골 집안 가족들의 생년월일을 광목에 적어 신당에 두고 매년 치성 때마다 기원해 주었다고 합니다.

4. 아이를 무당에게 판다는 말과 신어머니·수양어머니

명다리와 함께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아이를 판다"입니다. 실제로 아이를 넘기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써서 바치는 행위를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렇게 판 것을 바쳐 무당과 신자 관계를 맺으면 어린아이는 무당의 신딸·신아들이 되고 무당은 신어머니가 되는 단골 관계가 성립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어린이의 수명장수를 신력이 있는 무당이 책임진다는 신앙에서 나온 것입니다.

한국지역문화 콘텐츠는 이를 '수양을 건다'라고도 하며, 무당이나 스님을 수양엄마나 수양아버지로 삼아 준다고 정리합니다. 부천시에서는 '시영어머니'를 삼아 준다고 했고, 광명시 사례에서도 만신을 '시영엄마'로 삼았습니다. 단골 관계가 형성되면 아이 쪽에서는 그 무당이나 스님을 친부모처럼 모셔야 했고, 아이 부모는 정기적으로 무당집에 공양을 올리고 치성을 드렸으며, 절의 스님에게는 바랑(행낭)을 해 주었다고 합니다.

디지털시흥문화대전에는 계수동 가일마을 주민이 구시미에 사는 무당을 수양어머니로 삼아 정초마다 떡을 가지고 인사를 드렸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명다리 하나가 한 가족과 한 무당을 오랜 세월 이어 주는 끈이 된 것입니다.

5. 무당에게 명다리가 갖는 의미 — 단골 판도와 신굿

무당 입장에서 명다리는 책임이자 자산이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무당은 단골 아이들의 수명장수를 빌어 줄 의무가 있어서, 자신의 신당굿을 할 때는 반드시 이 아이들의 명다리를 가지고 춤을 춘 다음 축원을 합니다. 디지털양주문화대전도 양주의 만신이 신굿을 할 때마다 명다리를 내어 놓고 수양아들의 수명장수를 빌어 주었다고 기록합니다.

무당은 명다리를 잘 간수해야 했습니다. 명다리를 보면 그 무당의 단골 판도, 곧 어느 집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알 수 있고, 그 세력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무당이 이사를 하게 되면 명다리를 팔 수도 있고, 무당이 죽었을 때는 무계(巫系)를 이어받은 무당이 명다리를 인계받는다고 설명합니다. 한국지역문화 콘텐츠는 이를 승계받은 신딸이 명다리를 이어받는다고 표현합니다. 디지털시흥문화대전은 무당과 단골이 명다리를 매개로 하나의 종교 공동체를 이룬다고 정리합니다.

6. 명다리를 건 뒤에는 — 갱신과 정기 치성, 그리고 오늘날의 모습

명다리는 한 번 걸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한국지역문화 콘텐츠 모두 명다리는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다시 갱신해 새로 만들어 바쳐야 영험이 지속된다고 믿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명다리를 건 집에서는 명절이나 정해진 날에 찾아가 자손이 잘되기를 빌었습니다. 디지털양주문화대전에 따르면 절에 건 경우 4월 8일, 7월 7일, 9월 9일, 동지 같은 날에는 꼭 법당에 와서 자손을 위해 기원했고, 만신에게 건 경우에는 정월이나 칠석에 돈, 초, 쌀 등을 준비해 찾아갔습니다. 남양주시에서는 매년 정기적으로 명다리를 건 암자나 절을 찾아 치성을 드렸다고 합니다.

진도에서는 명건으로 마을과 마을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는 명다리굿이 전해졌고, 이후 남도문화제에 나가면서 놀이 형식으로 재구성되었다고 합니다(디지털진도문화대전).

오늘날에도 명다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디지털시흥문화대전은 지금도 명다리를 쓰는 무당이 있는 한편, 단골들의 생년월일을 종이에 적어 카드 형태로 신당에 모시는 무당도 있다고 전합니다. 신점을 보러 간 점집이나 신당에서 이름이 적힌 천이나 카드를 보게 된다면, 그것은 단골 가족의 무병장수를 비는 오래된 약속의 표시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정리하면, 명다리는 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은 천을 실타래와 함께 무당이나 절에 바쳐 목숨을 길게 이어 달라고 비는 풍습입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무당의 신딸·신아들이 되고, 무당은 신어머니로서 신굿 때마다 그 아이를 위해 축원하며, 명다리는 무당과 단골을 잇는 오래된 끈이 되었습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명다리' 항목, 한국지역문화 콘텐츠(nculture.org) '아이의 장수를 비는 경기지역의 명다리걸기 풍습', 디지털양주문화대전 '명다리걸기', 디지털시흥문화대전 '무속', 디지털진도문화대전 '명다리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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