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석신(제석님)은 집안 사람들의 수명과 자손, 운명, 농사를 맡는다고 믿어 온 무속의 가신(家神)이고, 제석굿(제석거리)은 재수굿이나 경사굿 같은 큰굿에서 이 제석신을 모시는 굿거리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석」 항목은 제석을 "집안 사람들의 수명, 자손, 운명, 농업 등을 관장한다는 가신"이라고 정의하고, 「제석굿」 항목은 제석굿을 여러 굿거리 가운데 불교적 색채가 가장 강한 거리라고 설명합니다. 제석거리에서는 제석신의 내력을 노래하는 무속신화 「제석본풀이」, 곧 '당금애기' 이야기가 불리며, 이 신화에서 당금애기는 아기를 점지하는 삼신이 되고 세 아들은 제석신이 됩니다.
무당 신당이나 굿판에서 고깔을 쓰고 흰 장삼을 입은 무당이 염주를 걸고 나오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제석거리입니다. 신점을 보러 간 점집에서 "제석님께 명과 복을 빌어야 한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이 글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석」(조흥윤)·「제석굿」(서대석)·「제석본풀이」(홍태한)·「서사무가」 항목과 울산역사문화대전 「제석거리무가」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1. 제석 뜻 — 하늘의 신이 불교식 이름을 얻다
제석(帝釋)이라는 이름은 불교의 신인 제석천(帝釋天)에서 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석」 항목은 한국 무(巫)의 신령인 제석의 기원을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인 제석에서 찾습니다. 한민족은 고조선 이래 봄과 가을에 모여 크게 천제(天祭)를 올렸고, 불교가 융성한 통일신라 시대에 이 천신이 제석이라는 불교식 이름으로 불렸다는 설명입니다.
같은 항목에 따르면 조선 시대에는 중국이 천자만 하늘에 제사할 수 있다며 조선 임금의 천제를 막았고, 천신으로서의 제석 신앙은 나라 제사에서 밀려났습니다. 그 대신 굿과 무를 믿는 단골 집안의 가신 신앙 속에서 줄기차게 이어졌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제석을 불사(佛師), 또는 도교식으로 천존(天尊)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제석굿」 항목도 같은 점을 짚습니다. 이름은 불교에서 왔지만 신의 기능과 성격은 불교의 신이라기보다 무속의 생산신, 그리고 목숨과 복을 맡는 수복관장신(壽福管掌神)이라는 것입니다. 불교의 영향은 형식과 겉모양에 나타날 뿐이라는 설명입니다.
2. 제석신은 무엇을 맡나 — 명과 복, 자손과 곡식
제석신이 맡는 영역은 사람 삶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입니다. 「제석」 항목은 제석이 산신(産神), 수명신, 생산신으로 신앙되면서 인간 생존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기능을 지닌 것으로 믿어져 왔다고 정리합니다. 울산역사문화대전 「제석거리무가」도 제석신을 재복을 관장하면서 특히 아이의 잉태와 출산, 성장을 맡는 신으로 이해한다고 소개하고, 출생을 담당하기 때문에 무당과 일반인 모두에게 가장 격이 높은 신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고 적었습니다.
농사와의 관계도 깊습니다. 「제석굿」 항목은 집안에서 곡식을 담아 모시던 '시준단지'·'제석단지' 같은 곡물 숭배 신앙을 보아도 제석신이 농경과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는 제석거리 후반에 소놀이굿이 이어지는데, 이 역시 제석거리가 농경 생산신에게 올리는 제사라는 점을 보여 준다고 합니다. 「회심곡」이나 무가·축원문에서는 제석신이 사람의 복록을 맡는 신으로 나타나므로, 제석신은 생산신이면서 동시에 복신(福神)이라는 것이 사전의 결론입니다.
제석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제석」 항목에 따르면 굿에서 제석을 청하는 대목 끝부분에 업제석, 복제석, 천궁제석, 천존제석, 일월제석, 용신제석, 고깔제석, 삼신제석, 부군제석, 도당제석, 몸주제석, 전안제석 등 여러 제석을 하나하나 부르는데, 이는 제석의 다양하고 구체적인 성격과 나타나는 자리를 말해 준다고 합니다.
3. 제석굿 순서 — 고깔·장삼·염주와 비린 것 없는 제물
제석굿은 지역마다 이름과 진행이 조금씩 다릅니다. 「제석굿」 항목에 따르면 중부 지방에서는 불사제석굿, 동해안에서는 시준굿, 함경도에서는 셍굿이라고 부릅니다. 중부 지방 큰굿 열두거리에서는 셋째 거리(오산)나 다섯째 거리(서울)에 제석거리가 들어가고, 「제석」 항목은 굿판에서 부정과 청배 같은 준비 과정을 마치면 제석이 가장 먼저 모셔진다고도 설명합니다.
무당의 차림은 불교 승려를 닮았습니다. 중부 지방 무녀는 노란색 대신 복에 흰 장삼을 겹쳐 입고 고깔을 쓰며 염주를 걸고 방울과 부채를 들고 나옵니다. 「제석」 항목에 따르면 황해도 제석거리에서는 여기에 백팔염주를 목에 걸고 바랑을 메며 육환장을 짚고 손에 바라를 든다고 합니다.
진행 순서도 지역에 따라 다릅니다. 서울에서는 「당금아기」를 노래하지 않고 제석청배, 제석노랫가락, 제석공수 순으로 진행합니다. 오산·화성·안성 같은 경기 남부에서는 제석신의 본을 푸는 「당금아기」를 구연한 뒤 제석공수, 바라팔이, 제석축원 순으로 이어집니다. 제물은 제석시루, 고양미(공양미), 북어, 삼색과일 등을 차리고 시루나 고양미 위에 고깔을 접어 얹으며, 다른 굿거리와 달리 비린 제물을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울산역사문화대전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제석거리를 할 때 큰 말(斗)에 쌀을 가득 담아 놓고 굿을 진행하는데, 이것이 제석신의 높은 격을 보여 준다고 적었습니다.
동해안 시준굿은 놀이성이 강합니다. 「제석굿」 항목에 따르면 무녀가 고깔과 장삼, 염주 차림으로 나와 당금아기를 구연하면서 중의 흉내를 우스꽝스럽게 연기하고, 바라춤을 춘 뒤 제주를 불러내 걸립을 시킵니다. 그다음 남자 무당이 나와 '중잡이놀이'를 하고 축원으로 끝을 맺습니다. 함경도 셍굿에서는 「제석풀이」를 비롯한 여러 신화가 구연되고, 호남 제석굿에서는 「제석풀이」에 이어 여러 축원과 덕담이 따릅니다.
4. 당금애기 이야기 — 제석본풀이 줄거리
「제석본풀이」는 당금애기를 주인공으로 전국 무당굿의 제석굿에서 불리는 무속신화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석본풀이」 항목은 지역마다 이름이 달라 평안북도 강계는 '성인노리푸념', 평양은 '삼태자풀이', 함흥은 '셍굿', 경기는 '제석본풀이'나 '당금아기', 동해안은 '시준풀이'·'당고마기', 충북은 '제석풀이', 전남은 '제석굿', 제주도는 '초공본풀이'라고 부른다고 소개합니다. 2022년 기준으로 80여 편의 이본이 조사·채록되었습니다.
울산 일산동에서 1991년 박경신 교수가 무당 김동연에게서 채록한 「제석거리무가」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아들 아홉을 둔 고귀한 부부가 산천에 빌어 딸 당금애기를 얻지만, 사주에 중에게 시집갈 팔자가 나옵니다. 부모와 오라버니들이 오래 집을 비운 사이, 소문을 들은 도승이 자물쇠를 채운 열두 대문을 도술로 통과해 들어와 시주를 청합니다. 중이 일부러 찢어 놓은 자루에서 쌀이 쏟아지고, 당금애기가 나무젓가락으로 쌀을 한 알씩 주워 담는 사이 해가 져 중은 하룻밤 묵게 됩니다. 병풍을 사이에 두고 잔 당금애기는 붉은 구슬 세 개가 치마폭에 떨어지는 꿈을 꾸고, 중은 세쌍둥이 아들을 낳을 꿈이라며 박씨 하나를 주고 사라집니다.
임신 사실이 알려지자 당금애기는 뒷산 바위 굴에 갇히고, 그곳에서 세쌍둥이를 낳습니다. 아이들이 자라 아버지를 찾자 박씨를 심었고, 끝없이 뻗은 박줄을 따라 금강산까지 가서 중을 만납니다. 중은 당금애기와 세 아들에게 각각 신직을 주었고, 당금애기는 삼신으로 좌정합니다. 「제석굿」 항목은 이 신화에서 세 아들 신이 농경 생산신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5. 바리공주와 함께 전국에 전해지는 신화
「제석본풀이」가 중요한 이유는 전승 범위 때문입니다. 「서사무가」 항목에 따르면 지금까지 채록된 서사무가 가운데 전국적으로 전승되는 것은 「제석본풀이」(당금아기)이고, 제주도를 제외한 전역에서 전승되는 것은 「바리공주」입니다. 「제석본풀이」 항목은 바리공주가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무조신의 일대기라면, 당금애기는 삼신의 유래와 자손의 재수와 복을 맡는 삼불제석의 일대기라고 비교하면서, 삶과 죽음이 사람에게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는 뜻이라고 풀이합니다.
신화의 뼈대도 주목할 만합니다. 「서사무가」 항목은 제석본풀이의 신화적 골격이 하늘 계통의 남성과 땅 계통의 여성이 결합해 새로운 신이 태어나는 과정이며, 경기도 오산의 「시루말」과 제주도의 「천지왕본풀이」도 하늘 아버지와 땅 어머니의 결합으로 시조가 태어나는 이야기라고 설명합니다. 「제석」 항목도 천신인 제석이 당금애기로 상징된 지모신과 결합해 삼신을 낳았다는 것이 줄거리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북한 지역 이본에는 하늘과 땅이 갈라지고 석가와 미륵이 인간 세상을 차지하려 다투는 창세 무가의 내용이 앞에 붙어 있어, 이 신화가 인간 세상의 기원과도 이어져 있음을 보여 준다고 합니다. 또 당금애기의 시련은 「바리공주」·「자청비」와 함께 여성 수난 이야기의 한 유형으로, 「숙향전」·「춘향전」 같은 고전소설에까지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합니다.
6. 오늘날의 제석 신앙 — 사라진 제석단지와 이어지는 굿
제석 신앙은 시대 변화 속에서 큰 굴곡을 겪었습니다. 「제석」 항목에 따르면 일제의 탄압과 광복 이후 서양 합리주의와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면서도 굿은 생명력을 잃지 않아 제석거리는 지금도 놀아지고 있습니다. 반면 단골 집안에서 모시던 제석 신앙은 주거 환경의 변화와 미신타파운동에 밀려 1970~1980년대를 거치며 거의 소멸했습니다.
사전은 제석거리가 아직 행해지고는 있지만 그 신격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1996년 말 제석에 대한 바른 인식과 전통 제석굿 보존을 위해 서울에서 전통제석굿보존회가 결성되고 전통제석굿발표회가 열리는 등 복원 움직임도 있다고 소개합니다. 울산 일산동 별신굿에서는 건강한 자식의 잉태와 출산, 사회적 성공이 여전히 중요한 바람이기 때문에 「제석거리무가」의 전승이 활발하다고 합니다.
정리하면, 제석신은 하늘의 신에서 출발해 불교식 이름을 얻고, 집안의 명과 복, 자손과 곡식을 지키는 신으로 자리 잡은 무속의 높은 신령입니다. 굿판에서 고깔 쓴 무당이 당금애기 이야기를 노래하는 장면을 만난다면, 아이를 점지하는 삼신과 제석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한국에서 가장 넓게 퍼진 무속신화를 듣고 있는 것입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석'(조흥윤)·'제석굿'(서대석)·'제석본풀이'(홍태한)·'서사무가' 항목, 울산역사문화대전 '제석거리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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