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터주신(터주)은 집이 앉아 있는 터, 곧 울타리 안의 땅을 지켜 준다고 믿어 온 가신(家神)으로, 집안의 액운을 걷어 주고 재물 운을 관장하는 '집터의 주인'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터주」 항목(최길성 집필)은 터주를 "민간신앙에서 집의 터를 지켜준다는 가신"으로 정의하고, 집 뒤꼍이나 장독대 가까이에 짚가리를 만들고 항아리에 쌀을 담아 신체(神體)로 삼는다고 설명합니다. 터주를 높여 부르는 말이 터줏대감이며, 무당굿에서는 대감거리(대감놀이)에서 이 신을 모셔 재수를 빌어 줍니다. 오늘날 "우리 동네 터줏대감"이라고 할 때의 터줏대감도 바로 이 집터 신에서 나온 말입니다.
요즘은 아파트에 살다 보니 터주가리를 직접 본 분이 드뭅니다. 하지만 시골 할머니 댁 장독대 옆에 고깔 모양 짚을 씌운 작은 단지가 있었던 기억, 굿판에서 무당이 시루를 이고 마당을 돌며 "욕심 많은 대감"을 부르던 장면은 모두 터주신앙의 흔적입니다. 이 글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터주」, 「지신」, 「대감」, 「지신밟기」 항목과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의 「터주」 해설을 바탕으로 터주신의 뜻과 다른 이름, 터주가리 모시는 법, 터주 고사, 대감놀이, 지역별 차이까지 차례로 정리한 것입니다.
터주신 뜻 — 집터를 지키고 재물 운을 쥔 땅의 신
터주(터主)는 글자 그대로 '터의 주인', 또는 '터의 신주'라는 뜻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지신」 항목(김열규 집필)은 여기서 말하는 터가 집터, 즉 집안의 대지를 의미한다고 풀이합니다. 우리 민속신앙에는 대지와 땅의 힘을 인격화한 지신(地神)이 있고, 천신과 짝을 이루어 "천지신명"이라는 말로도 쓰입니다. 나라 단위에서는 사직단에서 토지신에게 제사를 올렸고, 마을 단위에서는 서낭신과 마을신이 땅을 지켰으며, 그 범위가 집안까지 좁혀진 것이 바로 터주입니다.
터주가 관장하는 영역은 집이 자리한 터, 곧 울타리 안 전체입니다. 「터주」 항목은 집 건물이 들어앉은 터도 포함되지만 건물 자체의 수호는 따로 성주신이 맡는다고 구분합니다. 집터의 운이 그 안에 사는 사람에게 미친다고 믿었기 때문에, 터주대감은 사람의 재수, 특히 재물의 운수를 맡는 신으로 여겨졌습니다. 우리역사넷 해설(정연학 집필)도 터주신을 "집터를 관장하고 집안의 액운을 걷어주고 재복을 주는 신"이라고 설명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집을 지키며 집안의 운수를 좌우하는 가신으로 성주신, 터주신, 조상신, 삼신, 조왕신, 문신, 업신, 측신 등을 듭니다. 「지신」 항목은 이 가운데 터주를 업주, 성주와 함께 "가장 두텁게 신앙이 바쳐지는 가신"이라고 평가합니다.
터줏대감·지신·철륭 — 터주신의 여러 이름
터주신은 지역과 기록에 따라 이름이 매우 다양합니다. 우리역사넷 해설에 따르면 터주는 터줏대감, 터대감, 후토주임(后土主任), 대주(垈主), 터주가리라고도 부르고, 호남 지방에서는 철륭, 영남 지방에서는 용단지라 부르기도 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지신」 항목은 지신, 철륭, 뒤꼍각시라는 이름을 함께 소개합니다.
1930년대 조사 문헌(무라야마 지준의 조사)을 인용한 우리역사넷 해설에는 터주가 택지(宅地)의 주재신이자 오방지신(五方地神) 가운데 중앙신이어서 나머지 사방신을 거느리고 집터의 안전을 관장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같은 기록은 토주대감(土主大監), 기주(基主), 후토주임, 대주, 지신 같은 이름도 전합니다.
일상어 '터줏대감'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은 터줏대감(터主大監)을 "한 지역에서 매우 오래 살았거나 어떤 집단의 구성원 중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으로 풀이하고, "그 할아버지는 이 동네에서만 50년 이상 살아온 동네 터줏대감이다" 같은 예문을 싣고 있습니다. 집터를 가장 먼저, 가장 오래 지켜 온 신이라는 이미지가 사람에게 옮겨 간 표현인 셈입니다.
터주가리·터주단지 — 장독대 옆에 모시는 법
터주에게는 사람처럼 그린 그림이나 신상을 두지 않고, 곡식을 담은 단지를 신체로 모시는 것이 특징입니다. 「지신」 항목에 따르면 터주의 신체는 항아리에 쌀을 비롯한 곡식 낟알을 넣고 짚으로 덮은 모습이며, 항아리 대신 병을 쓰기도 해서 '터주단지' 또는 '터주병'이라 부릅니다. 단지에 짚을 씌운 것을 '터주까리'라고도 하는데, 이 '가리'는 벼낟가리의 가리와 같은 말로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우리역사넷 해설은 모시는 모습을 더 자세히 전합니다. 집 뒤 울타리 안이나 장독대 옆에 작은 항아리를 놓고 쌀을 담은 뒤, 빗물이 스미지 않도록 고깔 모양의 짚 주저리를 덮습니다. 주저리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왼새끼 줄을 터주 허리에 두르고, 앞쪽에는 한지를 잡아매어 둡니다.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는 '터주신 내외분'이라 하여 터주가리 두 개를 세우고 할아버지 터주, 할머니 터주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단지 안에는 벼를 넣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근래에는 쌀 대신 동전을 넣거나 쌀과 동전을 함께 넣기도 합니다. 경기도에서는 쌀을 단지에 가득 채우지 않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래야 다음 해에 터주신이 쌀을 채우려고 농사를 풍년 들게 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터주가 집터의 신이면서 농사와도 깊이 이어져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터주 고사 — 시월 상달에 '옷 입히는' 날
「터주」 항목에 따르면 터주단지에는 매년 햅쌀을 갈아 넣는데, 그냥 갈아 넣기도 하지만 무당을 불러 굿을 하면서 행하기도 합니다. 해마다 고사나 굿이 있을 때는 물론이고 평소에도 간단히 치성을 드리는 집이 있었습니다.
우리역사넷 해설은 경기도의 풍습을 이렇게 전합니다. 시월 상달이 되면 묵은 터주가리를 벗겨 내고 새 짚으로 주저리를 트는데, 이를 '옷 입힌다'고 표현합니다. 헌 주저리는 산에 버리거나 마을 성황당에 걸쳐 두어 자연스럽게 없어지도록 하고, 때로는 불에 태우거나 논의 거름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단지 안의 쌀도 햇곡으로 바꾸고, 묵은쌀로는 밥이나 떡을 해 먹으며 복을 빌었습니다.
터주 제사는 일반적으로 10월에 길일을 택해 콩떡과 돼지머리를 올려 지냅니다. 씨를 뿌릴 때,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 마음이 불안할 때도 시루떡을 해서 터주에 바치고 빈손(두 손을 비비며 비는 것)을 했습니다. 시루떡 대신 죽을 쑤어 풀거나 돼지머리만 올리는 집도 있었습니다. 「지신」 항목은 집안 토지신에게 올리는 고사가 대보름, 삼짇날, 칠석, 유두, 추석, 시월상달 같은 명절 외에도 집안에 일이 있을 때마다 필요에 따라 행해졌고, 집안의 평안부터 병구완, 재수, 복덕까지 다양한 바람이 담겼다고 설명합니다.
대감놀이 — 무당굿 속 터줏대감과 대감타령
무당굿에서 터주의 성격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대목이 대감거리입니다. 「터주」 항목은 흔히 알려진 대감놀이가 터주대감을 모시는 거리로, 무당이 시루를 이고 술을 마시며 집안, 특히 안마당과 뒤꼍을 돌아다닌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대감신이 자기가 관장하는 영역을 둘러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때 무당은 대감신이 내려 부르는 「대감타령」을 부르는데, '욕심이 많은 대감', '탐심이 많은 대감'이라는 구절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집필자는 이것이 한국인의 재산에 대한 소망을 솔직하게 반영한 것으로 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감」 항목(조흥윤 집필)에 따르면 대감은 인간의 재복과 집안의 평안, 번영을 담당하는 무속 신격으로 흔히 터주 또는 터줏대감이라고도 하며, 서울·경기와 그 이북 지역에서 주로 모시고 충청·전라·경상·제주에서는 거의 신앙되지 않았습니다. 대감의 '감'은 신을 뜻하는 옛말 '검'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아 유래가 오래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서울·경기 굿에서 대감거리는 윗대감(안대감)과 아랫대감(바깥대감)으로 나뉘고, 아랫대감에서 마을신 도당대감, 대문을 지키는 수문장대감과 함께 터대감을 놀립니다. 제물로는 팥떡시루에 쇠족 두 개를 놓고 그 사이에 막걸리 한 사발을 올린 대감상을 차립니다.
대감 공수에는 "오냐, 재수 열고 몸수 건강하고 일수 대길하게 상덕 물어주마" 같은 덕담이 있는가 하면, 텃대감이 화가 나면 "대문도 붙잡고 흔들흔들 방문도 붙잡고 흔들흔들" 한다며 잘 섬기라고 겁을 주는 대목도 있습니다. 같은 항목은 근대화 이후 물질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대감신앙도 커져 '차 대감', '사무실 대감' 같은 새 대감이 생겨났고, 예전에 대감을 모시지 않던 남부 지방 굿에도 대감거리가 끼어들고 있다고 전합니다.
지역별 차이와 지신밟기, 오늘날의 터주신앙
터주신앙은 지역마다 모습이 다릅니다. 우리역사넷 해설은 터주신앙이 경기도를 비롯한 중부 지방에서 넓게 나타나지만 충청도를 경계로 남쪽으로 갈수록 점점 희미해진다고 설명합니다. 2009년 발표된 터주신앙의 쌀 봉안의례와 문화권역 연구(DOI 10.17068/lhc.2009.11.12.2.135)는 명칭과 모시는 방식에 따라 전국을 호남의 철륭문화권, 충청·경기·강원 일부의 터주문화권, 강원 일부·영남의 텃고사문화권, 제주도의 터신제문화권으로 나누었습니다. 이 연구는 제주도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터주를 여성이 집 뒤안이나 장독대에서 모셔 왔다는 점은 공통이라고 밝힙니다.
터주와 관련된 대표 민속놀이가 지신밟기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지신밟기」 항목에 따르면 지신밟기는 음력 정초에 지신을 진압해 악귀와 잡신을 물리치고 마을의 안녕과 풍작, 가정의 다복을 비는 놀이로, 마당밟이·매귀·걸립 등으로도 불립니다. 풍물패가 당산굿을 시작으로 집집마다 돌며 대청, 조왕, 우물, 장독, 마구간, 뒷간, 사립문의 지신을 차례로 풀어 주고, 집주인은 고사상을 차리고 곡식이나 돈을 내어 마을 공동비용으로 씁니다. 「지신」 항목은 이를 "가신인 터주에게 바치는 민속적인 굿놀이"라고 표현합니다.
오늘날 아파트 생활에서는 터주가리를 두는 집이 거의 없지만, 이사나 개업 때 고사를 지내거나 굿에서 대감거리를 청하는 형태로 터주신앙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점집이나 신당에서 터주 고사나 재수굿을 권유받는다면, 어떤 순서로 진행되는지, 비용과 준비물이 무엇인지 충분히 묻고 확인한 뒤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나치게 서두르게 하거나 큰 비용을 강요한다면 신중하게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정리하면, 터주신은 집터와 울타리 안을 지키며 재물 운을 쥔 가신이고, 터줏대감·지신·철륭·용단지 등으로 불리며, 장독대 옆 쌀단지에 짚 주저리를 씌운 터주가리로 모셔 왔습니다. 시월 상달에 햅쌀을 갈고 '옷을 입히며' 고사를 지냈고, 무당굿의 대감놀이에서는 술과 시루를 즐기는 흥겨운 대감으로 등장합니다. 성주신, 조왕신, 업구렁이, 재수굿 같은 다른 가신·무속 이야기도 신이말했다 무속 게시판에서 함께 읽어 보세요.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터주」(최길성)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9144, 「지신」(김열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4279, 「대감」(조흥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3989, 「지신밟기」(강용권)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4281,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터주」(정연학) https://contents.history.go.kr/front/km/view.do?levelId=km_033_0060_0020_0010_0060,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터줏대감」, 터주신앙 쌀 봉안의례와 문화권역 연구(2009) https://doi.org/10.17068/lhc.2009.11.12.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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