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개신교)

정동제일교회 — 덕수궁 옆 붉은 벽돌 벧엘예배당, 한국 감리교의 어머니 교회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4

서울 중구 정동길,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 보면 붉은 벽돌의 아담한 예배당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기독교대한감리회 정동제일교회예요. 1885년 아펜젤러 목사의 사택 성찬에서 시작해, 1897년 봉헌된 벧엘예배당까지 — 오늘 그 이야기를 따뜻하게 들려드릴게요.

■ 사택 응접실에서 시작된 교회

1885년 4월 5일 부활절,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가 조선 땅에 발을 디뎠습니다. 같은 해 10월 11일, 정동에 있는 한옥 사택의 응접실에서 조선 최초의 개신교 성찬 예식이 올려졌어요. 정동제일교회는 이날을 창립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정동에서 거행된 성찬이 곧 한국 감리교의 본질이자 교회 자체였다고 합니다. 1887년 가을에는 남대문 안 작은 한옥에 '벧엘'이라는 이름의 예배처를 따로 마련해 예배를 이어 갔지요.

■ 붉은 벽돌로 지은 벧엘예배당

교인이 늘어나자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배당을 짓기로 했습니다. 1895년 착공해 1897년 12월 26일 봉헌한 건물이 바로 지금의 벧엘예배당이에요. 붉은 벽돌의 고딕풍 교회당으로,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서양식 개신교 예배당입니다. 설계는 일본인 요시자와, 시공은 조선의 건축기사 심의석이 맡았다고 해요. 1916년과 1926년 증축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고, 1977년 11월 22일 사적 제25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6·25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복구되었고, 2001~2002년 문화재청 지원으로 대대적으로 복원되어 2002년 부활절에 재봉헌 예배를 드렸습니다. 지금도 예배 공간으로 쓰이는, 19세기에 남아 있는 소중한 교회 건물이지요.

■ 배재·이화와 함께한 정동의 선교

정동은 선교사 주거지와 함께 시병원·보구여관, 배재학당, 이화학당이 들어서며 한국 개신교의 발상지이자 근대화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 초대 교장으로 교육에 헌신했고, 1902년 성서 번역자 회의를 위해 목포로 가던 중 선박 충돌 사고로 순교했습니다. 뒤를 이은 첫 한국인 담임 최병헌 목사는 『성산명경』 등으로 유교적 토양 위에서도 복음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해요. 교회에는 한국 최초로 파이프 오르간이 들어와 성가대가 자랐고, 청년회는 계몽과 구국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 3·1운동과 함께한 믿음

1918년 부임한 이필주 목사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사택에서 기독교계 민족대표들이 모여 기미독립선언문에 서명했고, 전도사 박동완도 민족대표로 참여했어요. 이화학당 학생이자 정동제일교회 교인이던 유관순 열사는 천안 만세 시위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고, 1920년 10월 14일 정동제일교회에서 장례가 거행되었습니다. 민족의 아픔 한가운데서도 기도의 자리를 지키던 교회의 모습이 마음에 남습니다.

덕수궁 옆 붉은 벽돌 예배당은 오늘도 조용히 서 있습니다. 작은 응접실의 성찬에서 시작해 교육·음악·독립의 발자취를 남긴 정동제일교회 — 한국 감리교의 어머니 교회를 지나갈 때, 한 번쯤 발걸음을 멈춰 보시면 좋겠습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동제일교회'(encykorea.aks.ac.kr/Article/E0050108), '서울 정동교회'(E0050096) / 위키백과 '정동제일교회' / 서울역사편찬원 '2025년 9월 서울역사달력의 주인공, 정동제일교회'(history.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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