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이 오면 교회 마당에는 흰 백합이 피어나고, 성도들은 '그분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고백을 함께 노래합니다. 부활절(復活節)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가장 큰 축일입니다. 오늘은 날짜가 어떻게 정해지는지부터, 사순절과 성주간, 그리고 한국 개신교가 1947년부터 이어 온 부활절 연합예배 이야기까지 따뜻하게 짚어 볼게요.
■ 춘분 뒤 첫 보름달, 그다음 일요일
서방교회(가톨릭·개신교)에서는 춘분 당일 혹은 춘분 직후의 만월(滿月) 다음 첫 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정합니다. 그래서 해마다 날짜가 달라지고, 대략 3월 22일부터 4월 25일 사이에 자리합니다. 영어 Easter, 독일어 Ostern은 '봄'과 연결되고, 로맨스어권의 Pascha는 유대교 유월절(페사흐)과 맥이 닿아 있어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이 유월절 무렵과 겹치면서, 많은 이들이 부활절을 기독교의 유월절로 여기게 되었답니다.
■ 사순절에서 부활 성야까지
부활절을 앞두고는 사순절(四旬節)이 이어집니다. 부활 주일 전 약 40일 동안 교인들은 광야에서 금식하시며 시험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길을 되새기며 단식과 성찰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 정점은 성주간과 부활 성야(Easter Vigil)예요. 어두운 밤, 부활초(paschal candle)가 켜지며 죽음의 어둠 속에서 빛이 이기는 장면을 예배로 그립니다. 부활절 달걀·토끼·백합·새끼 양·흰옷은 각각 새 생명, 풍요, 순수함, 그리스도의 상징, 새로운 삶을 나타낸다고 전해집니다.
■ 한국 개신교와 1947년 남산의 연합예배
한국 개신교에서는 20세기 들어 부활절 예배가 널리 자리 잡았고, 1947년 4월 6일에는 교파를 넘어선 '부활절 연합예배'가 처음 열렸습니다. 장소는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의 상징이던 서울 남산 조선신궁 터였어요. 해방 후 종교의 자유를 되찾은 교회가 재건과 교파 연합의 뜻을 담아, 한국기독교연합회(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전신)와 주한미군이 함께 마련한 자리였고, 약 1만 5천 명의 성도가 모였다고 합니다. 6·25전쟁 때는 부산에서 3년간 이어졌다가 1954년부터 다시 남산에서 모였지요.
■ 분열과 다시 하나 됨을 반복해 온 길
1962년 장로교 분열 이후 진보·보수 진영이 따로 예배를 드리기도 했고, 1973년에는 남산 야외음악당에서 다시 합쳐 드리며 10여 년의 갈등을 풀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장충체육관·상암 월드컵경기장·잠실 올림픽주경기장 등에서 대규모로 열렸고, 2000년대 이후에는 연합기관 주최와 교단 중심 방식이 번갈아 이어지며 형태는 바뀌어도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마음은 이어지고 있어요. 오늘날에도 대도시별로, 또 여러 연합 모임으로 부활절 예배가 드려집니다.
추운 겨울을 지나 꽃이 피듯, 부활절은 '절망이 끝이 아니다'라는 희망을 해마다 되새기게 합니다. 올봄 교회 종소리가 들리면, 그 오래된 고백—다시 사신 분의 이야기—에 잠시 귀 기울여 보셔도 좋겠습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부활절'(encykorea.aks.ac.kr/Article/E002461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부활절 연합예배'(encykorea.aks.ac.kr/Article/E0076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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