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 도덕고개를 내려오면 길 왼편으로 붉은 벽돌 성당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종탑이 하늘을 가리키고, 아치형 창문과 낮은 첨탑이 산골 풍경과 나란히 서 있는 이곳이 바로 풍수원성당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곳을 강원도 최초의 성당이자 대한제국기에 건립된 시도유형문화유산으로 소개합니다. 오늘은 그 기록과 한국천주교 성지 안내, 가톨릭신문, 정규하 신부 항목을 따라, 박해를 피해 모인 교우촌이 어떻게 벽돌 성당이 되었는지 천천히 들여다보려 합니다.
■ 산골 교우촌, 80년의 기다림
풍수원의 이야기는 성당 건물보다 먼저, 사람들의 피난에서 시작됩니다. 한국천주교 성지 안내에 따르면 신유박해(1801) 무렵 서울과 경기도 용인 등지에서 살던 교우들이 강원·충청의 산간으로 숨어들었고, 그중 신태보 베드로가 40여 명을 이끌고 횡성 풍수원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위키백과도 이 터를 한국 초기 천주교 신앙촌의 하나로 전합니다.
대백과사전은 1866년 병인박해 이후 신자들이 더 많이 모여 화전을 일구거나 옹기를 구워 생계를 이었다고 적습니다. 1886년 조불조약으로 신앙의 자유가 열리기까지, 성지 안내는 “목자 없이 평신도들만으로 80여 년 동안 신앙 공동체를 지켰다”고 요약합니다. 사제가 없어도 주일마다 모여 기도하고, 이웃을 돌보며 믿음을 이어 온 세월이었습니다.
■ 1888년, 강원도 첫 본당이 열리다
1888년 6월 20일, 풍수원은 강원도 최초의 본당으로 세워집니다. 대백과사전은 조선교구장 블랑 주교가 안변에서 전교하던 르 메르(Le Merre) 신부를 파견해 본당을 창설했다고 적고, 성지 안내도 같은 날 초대 주임으로 르 메르 신부가 부임했다고 전합니다. 처음에는 초가 여러 채를 이은 ‘초가 사랑방’이 성당이었습니다.
당시 본당은 춘천·화천·양구·홍천·원주·양평 등 넓은 권을 살폈고, 신자 수는 약 2,000명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성지 안내와 가톨릭신문에 남아 있습니다. 산골 작은 본당이 강원 천주교의 출발점이 된 셈입니다.
■ 정규하 신부, 한국인 사제가 지은 첫 서양식 성당
풍수원 이야기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가 2대 주임 정규하(아우구스티노, 1863~1943) 신부입니다. 대백과 「정규하」에 따르면 그는 1896년 4월 26일 서울 약현성당에서 강도영·강성삼과 함께 사제품을 받았고, 이날은 한국 땅에서 거행된 첫 천주교 사제 서품식이었습니다. 김대건·최양업 신부에 이은 세 번째 한국인 사제들이었습니다.
정 신부는 1943년 10월 23일 선종할 때까지 47년 동안 풍수원에만 머물렀습니다. 대백과사전은 그가 1910년 현재의 로마네스크·고딕 절충 양식 성당을 준공하고, 1913년 사제관을 신축했다고 적습니다. 성지 안내와 본당 기록에서는 착공·준공·봉헌 시기를 1905·1907·1909년으로 전하는 자료도 있어 연도가 자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공통된 줄기는 분명합니다. 신자들이 직접 벽돌을 굽고 나무를 나르며, 중국인 기술자와 함께 한국인 신부가 지은 첫 서양식 성당을 세웠다는 점입니다.
정면의 돌출 종탑, 아치형 출입구, 목조 열주에 벽돌 줄눈을 그린 내부 마감은 약현성당과 비슷한 규모로 대백과사전에 소개됩니다. 1982년 11월 3일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시도유형문화유산) 제69호로 지정되었고, 구 사제관은 2005년 등록문화재 제163호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 성체현양대회와 안나회, 마을을 돌본 신앙
건물을 세운 뒤에도 정 신부의 사목은 이어졌습니다. 대백과사전은 여성 신자 단체 안나회를 조직하고, 1920년 성체 거동(성체현양대회)을 열어 신심을 북돋웠다고 전합니다. 가톨릭신문에 따르면 이 대회는 6·25 전쟁 기간 3년을 제외하고 해마다 이어져, 원주·춘천교구를 넘는 성체 신심의 자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성영회로 고아를 돌보게 하고 삼위학당을 세워 신앙과 민족 교육을 함께 꾀했다는 기록도 대백과 「정규하」에 남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의병 지원에 대한 증언과 공식 서한의 뉘앙스가 자료마다 다르다는 점도 같은 항목이 솔직히 적고 있어, 역사는 한 줄로만 읽히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그럼에도 산골 본당이 학교·구제·전례로 이웃을 품으려 했다는 큰 흐름은 분명합니다.
■ 오늘 풍수원에서 듣는 이야기
1939년 춘천교구, 1965년 원주교구로 소속이 바뀌며 풍수원은 오늘도 원주교구 본당으로 미사와 순례객을 맞이합니다. 성당 뒤편 유물전시관과 역사관에는 박해 시절의 전례용품과 생활 유물이 남아 있고, 횡성군과 함께 유현 문화관광지(바이블 파크)를 가꾸어 온 흔적도 성지 안내에 소개됩니다.
풍수원성당은 “숨어서 믿던 사람들이, 스스로 벽돌을 구워 하늘을 가리키는 탑을 세운 자리”입니다. 사제 없이 80년을 견딘 평신도들, 47년을 한자리에 머문 한국인 신부, 해마다 이어진 성체행렬이 그 언덕에 겹쳐 있습니다. 이번 주말 가까운 성당 종소리를 듣거나 산길을 걸을 때, 횡성 산골에서 피어난 이 작은 성당의 이야기를 한 번 떠올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큰 도시가 아니라, 피난처에서 시작된 믿음이 공동체의 집이 되었다는 사실이 여전히 따뜻한 위로가 되어 줄 테니까요.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횡성 풍수원천주교회」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5619 , 「정규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0001 , 한국천주교 성지와사적지 「풍수원 성당」 https://app.catholic.or.kr/web/holyplace/?seq=2278 , 가톨릭신문 「원주교구 횡성 풍수원본당」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105040088699 , 가톨릭신문 「원주교구 풍수원성당」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50828500063 , 위키백과 「풍수원성당」 https://ko.wikipedia.org/wiki/풍수원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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