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교황 프란치스코 — 이름에 담긴 뜻, 2014년 한국 방문과 124위 시복식, 부활절 다음 날 선종까지 제266대 교황의 생애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2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교황 프란치스코(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1936년 12월 17일~2025년 4월 21일)는 2013년 3월 13일부터 2025년 4월 21일까지 12년 동안 재위한 제266대 교황입니다. 역사상 첫 남아메리카 출신이자 첫 예수회 출신 교황이었고, 시리아 출신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의 비유럽권 교황이었습니다. 2014년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4박 5일 동안 한국을 찾아 광화문에서 순교자 124위를 시복했고, 2025년 부활절 다음 날 바티칸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88세로 선종해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묻혔습니다.

화려한 금 십자가 대신 낡은 철제 십자가를 걸고, 궁전 대신 사제 숙소에서 지낸 교황으로 기억하시는 분이 많을 거예요. 오늘은 위키백과 「교황 프란치스코」 한국어·영어 항목과 영어 「Death and funeral of Pope Francis」, 「List of pastoral trips made by Pope Francis」 항목을 바탕으로 그의 생애와 이름의 뜻, 한국 방문, 마지막 길을 차근차근 정리해 보겠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민자 아들, 나이트클럽 경비원에서 예수회 사제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는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플로레스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마리오 호세 베르고글리오는 이탈리아 아스티현 포르타코마로 출신의 회계사였고, 어머니 레지나 마리아 시보리와의 사이에서 난 5남매 가운데 장남이었습니다. 누이 마리아 엘레나는 아버지가 이탈리아에 파시즘이 번지던 시절 아르헨티나로 건너왔다고 전했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축구 클럽 CA 산로렌소의 열성 팬이었고 탱고와 밀롱가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기술학교에서 화학 기술 자격을 땄고, 예수회에 들어가기 전에는 나이트클럽 경비원, 청소 관리인, 화학 실험실 연구원으로 일한 적도 있습니다. 21살 무렵 심한 폐렴으로 폐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는데, 이 때문에 훗날 미사 중 그레고리오 성가를 길게 부르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신학교에 들어간 그는 1958년 3월 11일 예수회에 입회했습니다. 신학생 시절 삼촌 결혼식에서 만난 한 여성 때문에 일주일 내내 마음이 흔들려 진로를 고민했다고 훗날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지요. 1969년 12월 13일 사제품을 받았고, 1973년부터 1979년까지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을 지냈습니다. 독일 유학 중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본 '매듭을 푸는 마리아' 성화에 깊이 감동해 평생 이 성모 신심을 간직했습니다.

버스를 타던 추기경, 그리고 다섯 번째 투표

1992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보좌주교가 된 그는 사목 표어로 '자비로이 부르시니(Miserando atque eligendo)'를 골랐습니다. 예수가 세리 마태오를 보고 제자로 부르는 장면을 풀이한 성 베다의 강론에서 따온 말입니다. 1998년 2월 대교구장이 되었고 2001년 2월 2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서 추기경으로 서임되었습니다.

추기경 시절 그는 화려한 주교 관저를 사양하고 작은 아파트에서 살며 직접 요리를 했고, 전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탔습니다. 성목요일 발 씻김 예식은 교도소와 병원 등에서 노인과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거행했고, 슬럼가에 머무는 사제 수를 두 배로 늘리는 등 빈민 지역 사목에 힘을 쏟았습니다.

2013년 2월 28일 베네딕토 16세가 고령을 이유로 스스로 물러나자 콘클라베가 열렸고, 그는 3월 13일 다섯 번째 투표에서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어 교황으로 뽑혔습니다. 첫 인사를 위해 성 베드로 대성전 발코니에 나설 때도 전통적인 붉은 모제타를 입지 않고 흰 수단만 입었으며, 군중에게 강복을 주기 전에 먼저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의 뜻 —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마십시오"

그가 이름을 고른 사연은 2013년 3월 16일 기자회견에서 직접 밝혀졌습니다. 개표가 3분의 2쯤 진행되어 선출이 확정되자 옆자리의 브라질 클라우디오 후메스 추기경이 그를 끌어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말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청빈의 성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떠올랐다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이 이름을 쓴 첫 교황이자, 913~914년 교황 란도 이후 처음으로 앞선 교황이 쓰지 않은 새 이름을 택한 교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황청 설명에 따르면 그의 이름 뒤에는 '1세'를 붙이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순금으로 만들던 어부의 반지는 도금한 은반지로 바꾸었고, 가슴 십자가도 추기경 시절의 철제 십자가를 그대로 썼습니다. 거처도 역대 교황이 살던 사도 궁전 대신 사제 숙소인 성녀 마르타의 집을 택해, 비오 10세 이후 처음으로 공식 관저 밖에서 지낸 교황이 되었습니다.

재위 중에는 교황청 직원 보너스 관행을 없애고 재무원을 신설하는 등 교황청 개혁과 재정 투명성 강화에 나섰습니다. 회칙 「신앙의 빛」(2013), 권고 「복음의 기쁨」(2013), 지구를 '공동의 집'으로 돌보자는 회칙 「찬미받으소서」(2015), 형제애를 다룬 회칙 「모든 형제들」(2020)을 반포했고, 2015~2016년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했습니다. 2018년에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고쳐 사형제를 "용납될 수 없다"고 명시했습니다. 2014년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는 양국 정상에게 편지를 보내 중재한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2014년 한국 방문 — 세월호 유가족, 광화문 124위 시복식, 해미와 명동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14일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를 계기로 서울공항에 도착해 닷새 동안 한국에 머물렀습니다. 역대 교황으로는 세 번째 방한이었습니다. 도착한 날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을 따로 만났고, 청와대 연설에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생각하며 이곳에 왔다"고 말했습니다.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는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약 5만 명이 함께한 첫 공개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8월 16일에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4위 시복 미사를 거행했는데, 위키백과 영어판은 이날 약 80만 명이 모였다고 전합니다. 해미 순교자 인언민 마르티노, 김진후 비오, 이보현 프란치스코도 이때 복자가 되었습니다.

8월 17일에는 충남 서산 해미순교성지를 찾아 아시아 주교단과 만나고 해미 순교자 3위의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했습니다. 마지막 날인 18일에는 명동대성당에서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며 방한 일정을 마쳤습니다.

마지막 부활절과 선종, 산타 마리아 마조레에 묻히다

2025년 2월 교황은 기관지염으로 로마 제멜리 병원에 입원했고, 호흡기 복합 감염과 양쪽 폐렴으로 한때 위중한 상태에 빠졌다가 3월 23일 퇴원했습니다. 4월 20일 부활절에는 성 베드로 광장에 나와 마지막 부활절 메시지를 전하며 가자지구 휴전을 호소했습니다.

바로 다음 날인 4월 21일 부활절 월요일 현지 시각 오전 7시 35분(한국 시각 오후 2시 35분), 그는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향년 88세로 선종했습니다. 교황청이 밝힌 사인은 뇌졸중에 이은 되돌릴 수 없는 심정지였고, 선종 소식은 교황청 궁무처장 케빈 패럴 추기경이 발표했습니다. 이후 아홉 날 동안의 애도 기간이 이어졌고 장례 미사는 4월 26일 거행되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조문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2022년 6월 29일 작성한 영적 유언에 따라 그는 바티칸이 아닌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묻혔습니다. 이 성당에 교황이 안장된 것은 1669년 클레멘스 9세 이후 처음입니다. 유언은 "내 삶의 마지막 부분을 채운 이 고통을 주님께 바칩니다. 세상의 평화와 인류의 형제애를 위하여"라는 말로 끝납니다. 뒤를 이어 5월 8일 콘클라베에서 미국 출신 로버트 프랜시스 프리보스트 추기경이 레오 14세로 선출되었습니다.

엇갈린 평가도 함께 기억하기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미국 경제지 『포춘』이 꼽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1위에 오를 만큼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아르헨티나 군사독재 시절 예수회 관구장으로서의 처신을 두고 의혹이 제기되었고 교황청은 이를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2018년 칠레 성추문 은폐 의혹 주교를 두둔했다가 비판이 커지자 중대한 실수였다며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한 일도 있었습니다. 가난한 이들 곁에 서려 했던 목자의 모습과 함께 이런 논란까지 함께 알아 두면, 그의 12년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위키백과 「교황 프란치스코」(한국어), 「Pope Francis」·「Death and funeral of Pope Francis」·「List of pastoral trips made by Pope Francis」(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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