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김수환 추기경 — 옹기장수 집안 막내에서 한국 최초 추기경으로, 명동성당을 지킨 '바보'의 생애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2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김수환(金壽煥, 세례명 스테파노, 1922년 7월 2일~2009년 2월 16일) 추기경은 한국인 최초의 가톨릭 추기경입니다. 1969년 3월 28일 교황 바오로 6세에게 추기경으로 서임될 때 나이는 마흔일곱 살로, 당시 세계 최연소 추기경이었습니다. 1968년부터 1998년까지 30년 동안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냈고, 2009년 선종한 뒤 명동대성당을 찾은 조문객은 약 4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2024년 6월에는 교황청이 시복 추진에 '장애 없음'을 승인해 '하느님의 종' 칭호를 받았습니다.

성당에 다니지 않는 분들도 '바보야'라고 적힌 동그란 얼굴 그림이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인사말은 한 번쯤 보셨을 거예요. 둘 다 김수환 추기경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오늘은 위키백과 「김수환」 항목과 그 안에 인용된 당시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옹기장수 집안 막내아들이 '혜화동 할아버지'가 되기까지의 생애를 차분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순교자 집안의 막내, 옹기장수 아버지와 엄한 어머니

김수환은 대구 남산동에서 5남 3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본관은 광산이고, 아호는 옹기입니다. 집안은 대대로 천주교를 믿었는데, 할아버지는 1868년 무진박해 때 관군에게 잡혀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버지 김영석은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나 다른 신자들처럼 옹기를 팔며 전국을 떠돌았고, 1895년 무렵 서중하와 결혼했습니다. '옹기'라는 아호는 이 가난한 옹기장수 집안의 기억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네 살 때 경북 군위로 이사했고, 군위공립보통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며 자식들을 엄하게 키웠다고 합니다. 어린 김수환의 꿈은 뜻밖에도 상인이었습니다. 읍내 가게에서 장사를 배워 독립하고 스물다섯에 결혼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어머니가 넷째 형 김동한과 함께 불러 사제가 되라고 권하면서 삶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여덟 남매 가운데 실제로 사제가 된 사람은 김동한과 김수환 두 사람이었습니다.

"황국신민이 아니어서 소감이 없다" — 학창 시절과 학도병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1935년에 마친 그는 서울의 동성상업학교로 진학했습니다. 졸업반 수신 시간에 '황국신민으로서 소감을 쓰라'는 시험 문제를 받자 "황국신민이 아니어서 소감이 없다"고 적었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당시 교장이던 장면(훗날 국무총리)이 그를 불러 꾸짖었지만, 이는 큰 재목을 잃지 않으려는 배려였다고 전해지며, 이후 대구교구 장학생으로 일본 도쿄의 조치(上智)대학에 진학하는 데에도 장면의 추천이 있었다고 합니다.

1944년에는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되어 사관후보생 훈련을 받았는데, 일본군 상관에게 조선인 차별을 말했다가 후보생 자격을 박탈당했습니다. 광복 뒤 귀국해 성신대학에 들어가 1950년에 졸업했고, 1951년 9월 15일 대구 계산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서품을 앞두고 한 여인의 청혼을 받아 크게 흔들렸지만 "한 여인을 온전히 사랑할 자신이 없고, 그보다 많은 사람을 돕는 일이 좋겠다"며 사제의 길을 택했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습니다.

안동성당에서 서울대교구장까지, 세계 최연소 추기경

첫 사목지는 안동성당이었습니다. 이후 대구교구장 비서, 김천 성당 주임, 성의여고 교장을 거쳐 1956년 독일 뮌스터대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독일에 일하러 온 한국인 노동자들을 돌보느라 학위는 끝내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1964년 귀국해 가톨릭시보사 사장을 맡았고, 1966년 2월 마산교구 초대 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었습니다.

1968년 4월 서울대교구장 대주교에 임명된 그는 이듬해 1969년 3월 28일 추기경에 서임되었습니다. 한국 천주교 역사상 처음이었고, 마흔일곱이라는 나이는 당시 전 세계 추기경 가운데 가장 젊었습니다. 사목 표어는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였고, 문장(紋章)에는 순교자들의 피 위에 세워진 한국 교회와 삼각산(북한산)에 둘러싸인 서울을 담았습니다. 1975년부터는 평양교구장 서리도 함께 맡았습니다.

성탄 미사 강론과 명동성당 —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지주

김수환 추기경의 이름이 일반 시민에게 깊이 새겨진 계기는 군사정권 시절의 발언이었습니다. 1971년 성탄 자정 미사 생중계에서 그는 사전 검열 원고에 없던 내용으로 대통령 비상대권 입법을 비판하며 "이런 법을 만들면 오히려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 국가안보에 위협을 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1974년에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금된 지학순 주교의 석방을 위해 박정희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는 미사에서 "너희 국민의 한 사람인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는 물음에 책임을 피하는 정권의 태도를 두고 "바로 카인의 대답입니다"라고 꾸짖었습니다. 6월 항쟁 당시 명동성당에 들어온 시위대를 연행하려 경찰이 투입되려 하자 "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 그 뒤에 수녀들이 있을 것"이라며 막아선 일화는 지금도 자주 인용됩니다. 한편 2000년대에는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국가보안법 존치 지지 등으로 진보 진영 일부 신부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는 점도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 곁의 교회, 종교를 넘어선 만남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가난하고 봉사하는 교회'를 강조했습니다. 1987년 서울대교구에 빈민사목위원회를 두었고, 재임 기간 복지기관 150여 곳을 세웠다고 보도되었습니다. 2001년 1월에는 서울구치소를 찾아 사형수를 포함한 재소자들과 미사를 드리며 사형제와 생명 경시 풍조에 반대하는 뜻을 밝혔습니다.

종교 간 화합에도 마음을 썼습니다. 1998년 2월 법정 스님이 명동성당에서 특별 강연을 했고, 같은 해 12월 김수환 추기경은 성북동 길상사 개원 법회에 참석해 축하했습니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스스로를 '혜화동 할아버지'라 부르며 신자들이 게시판에 올린 편지에 2년 가까이 일일이 답장을 썼습니다. 2007년 동성고 개교 100주년 전시에는 '바보야'라는 글을 적은 자화상 드로잉을 내놓았고, 판매 수익은 장학기금으로 쓰였습니다.

각막 기증과 '바보의 나눔', 그리고 하느님의 종

2008년 7월부터 노환으로 입원 치료를 받던 그는 2009년 2월 16일 오후 6시 12분경 강남성모병원에서 86세로 선종했습니다. 장례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정진석 추기경을 특사로 임명하면서 교황장으로 치러졌고, 조문객들은 명동성당에서 퇴계로 일대까지 3㎞가 넘는 줄을 서서 평균 3시간 넘게 기다렸다고 합니다. 2월 20일 장례 미사 뒤 용인 천주교 공원묘원 성직자 묘역에 안장되었고, 묘비에는 시편 23편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이 없어라"가 새겨졌습니다.

그는 1990년에 장기 기증을 서약했고, 선종 뒤 각막을 두 사람에게 기증했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진 뒤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에는 평소보다 10배 많은 기증 희망자가 몰렸다고 보도되었습니다. 서울대교구는 2009년 3월 '바보야' 자화상과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를 새긴 스티커 50만 장을 나눴고, 2010년 2월에는 자화상 이름을 딴 공익법인 '바보의 나눔'이 창립되었습니다. 그리고 2024년 6월, 교황 프란치스코 재위 중 교황청이 시복 추진을 승인하면서 '하느님의 종'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옹기처럼 투박하게, 그러나 많은 사람을 담아낸 삶이었습니다. 명동대성당을 지나거나 '바보야' 그림을 보게 된다면, 가난한 옹기장수의 막내아들이 남긴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인사를 한 번쯤 떠올려 보셔도 좋겠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김수환」 https://ko.wikipedia.org/wiki/김수환 (연합뉴스·동아일보·한겨레·경향신문·조선일보 등 2009년 보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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