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태석 신부(세례명 요한, 1962~2010)는 의사 출신 살레시오회 사제로, 2001년 12월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 부임해 약 8년 동안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하루 200~300명의 환자를 돌보다 2010년 1월 14일 대장암으로 만 47세에 선종했습니다.** 톤즈 사람들은 그를 '쫄리 신부님(John Lee)'이라 불렀고, 그의 삶은 2010년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가을이 깊어지는 이맘때면 누군가를 위해 자기 삶을 내어준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오늘은 위키백과와 연합뉴스, 수단어린이장학회와 이태석재단 관련 기사를 바탕으로, 부산 자갈치시장 골목에서 자라 아프리카 오지의 신부가 된 한 사제의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자갈치시장 삯바느질로 자란 열 남매의 아홉째
이태석 신부는 1962년 10월 17일 부산 서구 남부민동에서 10남매 중 아홉째로 태어났습니다. 송도성당에서 알로이시오 슈왈츠 신부에게 유아세례를 받았고, 초등학교 2학년이던 1970년 아버지를 여읜 뒤 어머니가 자갈치시장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어린 시절 성당에서 하와이 몰로카이 섬의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살다 간 다미안 신부의 영화를 보고 "저렇게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전해집니다. 학창 시절에는 송도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 복사로 지내며 신앙을 키웠습니다. 사교육을 받을 형편이 아니었지만 성당 오르간으로 음악을 독학했고, 중학생 때 지은 성가 '묵상'은 지금도 청소년 성가에 실려 있습니다.
의사 가운을 벗고 수도복을 입기까지
1981년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1987년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마치고 군의관으로 복무했습니다. 바로 그 시기에 사제가 되겠다는 뜻을 품었고, 청소년 교육에 깊은 관심을 두고 1991년 8월 청소년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살레시오회에 입회했습니다. 이어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공부하고 1994년 1월 첫 서원을 했으며, 1997년 로마 교황청립 살레시오 대학교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로마에서 그는 한국에서 20년간 선교하다 수단으로 파견된 공고미노 수사를 만나 수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999년 방학에 케냐로 선교 체험을 갔다가 인도 출신 제임스 신부를 따라 톤즈를 찾았고, 그곳 아이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2001년 6월 24일 서울에서 김수환 추기경에게 사제품을 받은 그는 그해 12월 7일 남부 수단 와랍주 톤즈에 부임했습니다.
톤즈의 '쫄리 신부님', 병원과 학교와 브라스 밴드
당시 톤즈는 오랜 내전으로 병원도 학교도 제대로 없는 곳이었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병실 12개짜리 병원과 진료소를 지어 하루 200~300명의 환자를 진료했고, 인근 80여 개 마을을 돌며 순회 진료와 예방접종을 했습니다. 한센병, 말라리아, 결핵 환자들이 밤낮없이 그를 찾았습니다.
그는 학교도 세워 초·중·고 12년 과정을 꾸리고 수학과 음악을 직접 가르쳤습니다. 학생들이 머물 기숙사를 짓고 '톤즈 브라스 밴드'를 만들어 총 대신 악기를 쥐여 주었습니다. 2005년 남북 수단이 평화협정을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슈쿠란 바바(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노래를 지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이곳까지 와서도 후회 없이 기쁘게 살 수 있는 것은 한센인들이 주님의 존재를 체험하게 해 주는 신비스러운 힘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Everything is good", 마지막 인사와 울지마 톤즈
2008년 11월 휴가차 한국에 들른 그는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아 끝내 톤즈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투병 중에도 톤즈 아이들을 먼저 걱정했고, 2010년 1월 14일 새벽 서울성모병원에서 동료 수도자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종했습니다. 동료들은 그가 떠나기 직전 "Everything is good(모든 것이 좋다)"이라고 말했다고 전합니다. 유해는 전남 담양 천주교 공동묘역의 살레시오회 묘역에 안장됐습니다.
그해 9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는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40만 관객을 넘었습니다. 이후 2011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됐고, 외교부는 '이태석상'을 제정했으며, 2018년에는 남수단 정부가 대통령 훈장을 추서했습니다. 2020년 1월 14일에는 고향 부산 서구 톤즈공원 안에 이태석 기념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신부님이 돌아온 것 같다, 의사가 된 제자들
이태석 신부가 뿌린 씨앗은 사람을 통해 자라고 있습니다. 연합뉴스 2025년 9월 보도에 따르면, 톤즈 브라스 밴드 출신 제자 토마스 타반 아콧 씨는 2009년 수단어린이장학회의 도움으로 한국에 와 스승의 모교인 인제대 의대를 졸업하고, 외과 전문의가 되어 인제대 상계백병원에서 간담췌외과 전임의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태석 신부님은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분"이라며 언젠가 아프리카로 돌아가 한국에서 배운 의술을 펼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태석재단 구수환 이사장은 2025년 11월 인터뷰에서 재단이 남수단 의대생 50명을 지원했고 그중 12명이 의사가 되어 한센인 마을과 지역 병원으로 돌아갔다고 밝혔습니다. 그들을 본 주민들은 "신부님이 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2025년 선종 15주기에는 편지 81통과 사진 110여 장을 담은 『이태석 신부 서간집』도 나왔습니다. 지금도 톤즈의 이태석기념병원은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문을 열고 환자를 맞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 살레시오회와 '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가 속한 살레시오회는 19세기 이탈리아의 성 요한 보스코(돈 보스코)가 세운 수도회로, 가난한 청소년 교육을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삼습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전 세계 130여 개국에서 1만 5천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천주교에서 두 번째로 큰 수도회입니다. 그래서 그는 '수단의 돈 보스코' 또는 '수단의 슈바이처'라는 별칭으로 불렸습니다.
톤즈는 남수단 수도 주바에서 북서쪽으로 약 525km 떨어진 오지 마을입니다. 남수단은 2011년 수단에서 분리 독립한 나라로, 지금도 분쟁과 가난 때문에 의료와 교육 여건이 매우 열악합니다. 이태석 신부의 이름을 내건 단체가 여럿 생기자 살레시오회는 그의 이름을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여러 차례 당부하기도 했으니, 후원을 생각하신다면 공식 단체인지 꼭 확인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태석 신부가 중학생 때 지은 '묵상'에는 굶주리고 피 흘리는 이들을 왜 보고만 계시냐고 십자가 앞에서 묻는 소년이 나옵니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들려온 대답은 "사랑, 사랑, 사랑, 오직 서로 사랑하라"였습니다. 그는 그 대답을 평생 몸으로 살아 냈습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내 자리에서 누군가의 '쫄리 신부님'이 되어 줄 수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올가을 「울지마 톤즈」를 다시 한 번 찾아보시거나, 부산 이태석 기념관에 들러 그의 흔적을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출처: 위키백과(한국어) 「이태석」 https://ko.wikipedia.org/wiki/이태석 , 연합뉴스 「[우리품의 아프리카인] ⑴이태석 신부 제자 토마스 "돌아가 한국 의술 펼칠 것"」(2025.9.24) https://www.yna.co.kr/view/AKR20250922073400898 , 연합뉴스 「'남수단 톤즈서 헌신' 이태석 신부 서간집 나와…선종 15주기」(2025.5.15) https://www.yna.co.kr/view/AKR20250515105300898 , ACN아시아콘텐츠뉴스 구수환 이태석재단 이사장 인터뷰(2025.11.23) http://www.ac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497 , 수단어린이장학회 「남수단 톤즈의 이태석기념병원에서 전하는 편지」(2025.6.5) https://frjohnlee.org/a/11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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