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산자락을 따라 걷다 보면 일주문에 ‘호서제일가람’이라는 현판이 눈에 띕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이곳 법주사(法住寺)는 신라 진흥왕 14년(553) 의신(義信)이 창건한 사찰로, 창건주가 서역에서 나귀에 불경을 싣고 돌아와 머문 데서 이름이 비롯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집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이자,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일곱 사찰 중 하나인 법주사. 오늘은 대백과와 국가유산 기록,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산사 세계유산 자료를 따라 그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가 보려 합니다.
■ 553년, 법이 머무는 곳에 뿌리를 내리다
대백과 「속리산 법주사」는 창건 시기를 553년으로 적고, 이후 진표의 제자 영심이 중창하며 미륵신앙의 중심 도량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삼국유사』 계열 전승에서는 진표가 속리산 길상초가 난 곳을 가리키고, 영심 등이 그곳에 길상사(吉祥寺)를 세워 점찰법회를 열었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습니다. 기록이 겹치는 지점마다 세부 주체가 조금씩 다르지만, 속리산 골짜기에 수행과 신앙의 터전이 일찍부터 자리 잡았다는 큰 줄기는 분명합니다.
고려·조선 시대에는 왕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숙종이 대각국사 의천을 위해 인왕경회를 베풀었고, 충렬왕·충숙왕·공민왕이 행차했으며, 조선 태조는 상환암에서, 세조는 복천암에서 법회와 요양을 했다는 기록이 대백과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산중 사찰이 왕실과 민중의 기도를 함께 받아 안은 자리였던 셈입니다.
■ 팔상전, 국내에 유일하게 남은 오층 목탑
법주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축이 국보 팔상전입니다. 대백과 「보은 법주사 팔상전」과 국가유산 기록은 이를 현존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목조 5층탑으로 소개하고, 1962년 12월 20일 국보(제55호)로 지정되었다고 적습니다. 이름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그린 팔상도(八相圖)를 봉안한 데서 왔습니다. 내부에는 팔상도와 함께 본존불·나한상이 모셔져 있어, 탑이면서 동시에 예배 공간이기도 합니다.
정유재란 때 소실된 뒤의 중건 경위는 자료마다 세부 연도가 조금씩 다릅니다. 대백과는 1605년(선조 38)부터 1626년(인조 4)에 걸쳐 유정(惟政, 사명대사)이 팔상전을 중건하고, 1624년(인조 2) 벽암(碧巖)이 중창했다고 전합니다. 국가유산청 디지털 자료는 조선 선조 30년 정유재란 소실, 1605년 중건, 1895년 중수, 1968년 해체 보수 등을 연표로 정리합니다. 우리역사넷은 1968년 해체 수리 때 나온 금동탑지를 바탕으로 1597년 소실, 1602년 중창 착수, 1605년 상고주 입주, 1626년 상량 등의 흐름을 소개합니다. 공통된 사실은 전쟁으로 불탄 목탑을 17세기 전반 승려들이 다시 일으켜 세웠고, 그 건물이 오늘까지 남았다는 점입니다.
■ 화엄과 미륵이 만나는 자리
산사 세계유산 자료(koreansansa)는 법주사의 가람 배치를 ‘화엄신앙의 대웅보전 축’과 ‘미륵신앙의 용화전 축’이 직각으로 교차하는 구조로 설명합니다. 두 축이 만나는 교차점에 오층 목탑 팔상전이 서 있고, 각 축은 수정봉과 관음봉을 향해 지형과 교리가 맞물린다고 전합니다. 화엄의 법신 세계와 미륵의 용화 세상을 한 경내에 겹쳐 둔 배치인 셈입니다.
대웅보전은 1624년 벽암 중창 때 건립된 다포식 중층 불전으로, 1987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대백과는 무량사 극락전·화엄사 각황전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불전으로 꼽힌다고 소개합니다. 옛 용화보전은 미륵 신앙의 중심 법당이었으나 1872년(고종 9) 헐렸고, 그 터에는 훗날 미륵대불이 들어서게 됩니다.
■ 미륵대불, 33미터의 청동 입상
대백과는 옛 용화보전 터에 1964년 시멘트 미륵입상이 세워졌다가 1986년 해체되고, 청동 160톤을 들여 1989년 사월 초파일에 높이 33미터의 청동미륵대불이 점안되었다고 기록합니다. 동아일보·경향신문 등 보도에 따르면 이 불상은 이후 개금불사를 거쳐 금동미륵대불로 불리게 되었고, 높이 33미터·무게 약 160톤이라는 규모는 대백과와 보도가 서로 맞물립니다. 경내에 들어서면 목탑의 고요함과 거대한 미륵의 존재감이 한눈에 겹쳐 보입니다.
같은 경내에는 국보 쌍사자 석등·석련지, 보물 대웅보전·원통보전·마애여래의좌상 등 다수 문화재가 있습니다. 대백과와 산사 자료는 법주사를 사적 제503호(2009년 12월 지정)로, 속리산 법주사 일원을 명승 제61호로 소개합니다.
■ 2018년, 세계유산이 된 일곱 산사 중 하나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따르면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은 2018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고, 통도사·부석사·봉정사·법주사·마곡사·선암사·대흥사 일곱 사찰로 구성됩니다. 국가유산청 보도자료는 바레인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2018년 6월 30일)에서 등재가 확정되었으며, 7~9세기 창건 이후 이어 온 지속성과 한국 불교의 역사성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로 평가되었다고 전합니다. 법주사는 그중 충북 보은을 대표하는 ‘살아 있는’ 산지 승원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 오늘, 속리산에서 듣는 법의 울림
법주사는 창건 설화의 나귀와 경전에서 시작해, 전쟁으로 불탄 목탑을 다시 세운 중창, 화엄과 미륵이 교차하는 가람, 33미터 미륵대불, 그리고 세계유산 등재까지 1,400년이 넘는 시간을 품어 왔습니다. 대백과가 정리한 대로 국보·보물·사적·명승이 겹겹이 쌓인 자리이면서도, 지금도 조계종 제5교구 본사로서 수행과 기도를 이어 가는 사찰입니다.
속리산 숲길을 걸을 때, 혹은 가까운 절집의 목탁 소리를 들을 때, 보은 골짜기에 남은 이 오층 목탑과 미륵의 이야기를 한 번 떠올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법이 머문다는 이름처럼, 오래된 믿음이 산과 함께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따뜻한 위로가 되어 줄 테니까요.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속리산 법주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2716 , 「보은 법주사 팔상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2741 , 국가유산청 디지털 「보은 법주사 팔상전」 https://digital.khs.go.kr/heri/heriDetail.do?ctptNo=1113300550000&ctptUid=13898859666219200046 ,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https://unesco.or.kr/%EC%82%B0%EC%82%AC-%ED%95%9C%EA%B5%AD%EC%9D%98-%EC%82%B0%EC%A7%80-%EC%8A%B9%EC%9B%90/ , 국가유산청 보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http://www.cha.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newsItemId=155700871&mn=NS_01_02§ionId=b_sec_1 , 산사 세계유산 「법주사」 http://www.koreansansa.net/ktp/sansa/sansa_020304.do , 우리역사넷 「법주사 팔상전」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r300505 , 동아일보 「법주사 미륵대불」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20603/78268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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