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깊어지면 서울 종로 거리에는 오색 연등이 하나씩 켜집니다. 음력 4월 8일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열리는 연등회는, 단순한 종교 행사를 넘어 누구나 함께 걸을 수 있는 봄의 축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등불을 밝히는 행위에는 ‘어둠과 무지를 지혜로 밝힌다’는 불교의 가르침이 담겨 있고, 그 빛이 이웃과 나라의 안녕을 비추기를 바라는 마음이 겹쳐 있습니다.
## 신라에서 시작해 오늘날의 축제로
연등의 역사는 아주 깁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경문왕 6년(866년) 황룡사에서 연등 행사를 구경하고 백관에게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국가 의례로도 이어졌고, 공민왕이 직접 초파일 연등을 열었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현대의 연등행렬은 한국전쟁 이후인 1955년, 조계사 부근에서 제등행렬이 열린 것을 중요한 출발점으로 봅니다. 1975년 사월 초파일이 국가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참여가 더 넓어졌고, 1990년대 이후에는 동대문에서 조계사로 이어지는 행렬과 전통문화마당, 회향 한마당이 갖춰진 국민 축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 국가무형유산에서 유네스코까지
문화재청은 2012년 4월 6일 연등회를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했습니다. 이어 2020년 12월 16일(한국 시간),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 제15차 회의에서 연등회가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습니다. 위원회는 국적·인종·종교·장애의 경계를 넘는 포용성, 그리고 사회적 경계를 잠시 허물고 기쁨을 나누며 위기를 극복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외교부 보도에 따르면, 등재 신청서는 무형유산의 가시성과 인식을 높이는 모범사례로도 언급되었습니다.
## 연등법회, 행렬, 그리고 회향
연등회는 보통 연등법회, 연등행렬, 회향으로 구성됩니다. 관불의식 뒤 참가자들이 직접 만든 연등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고, 행렬이 끝난 뒤에는 회향 한마당에서 화합을 나눕니다. 회향(廻向)은 자신의 공덕을 남에게 돌리거나 깨달음을 향해 돌린다는 뜻으로, 혼자만의 기원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마음에 가깝습니다. 대나무와 한지로 만든 전통등은 사찰과 거리를 장식하며, 보는 이에게도 ‘관등’—등을 보며 마음을 밝히는 시간—을 선사합니다.
## 서울 종로를 밝히는 오늘날의 연등행렬
최근에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서울 종로에서는 대규모 연등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등 불교 종단으로 구성된 연등회보존위원회가 주관하며, 흥인지문(동대문)에서 출발해 종각을 거쳐 조계사까지 이어지는 코스가 대표적입니다. 2025년에는 불기 2569년 부처님오신날(5월 5일)을 앞두고 4월 26일 행렬이 열렸고, 2026년에는 불기 2570년 부처님오신날(5월 24일)을 앞두고 5월 16~17일 종로 일원에서 연등회가 펼쳐졌습니다. 전국 사찰·불교단체·시민이 만든 연등이 밤거리를 밝히고, 전통문화마당 같은 체험 공간도 함께 열립니다. 종교를 떠나 누구나 등을 들고 걸을 수 있다는 점이, 연등회가 세계인의 축제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등을 하나 켜는 일은 작은 손길처럼 보이지만, 그 빛이 모이면 거리 전체가 환해집니다. 연등회는 바로 그 ‘함께 밝히는’ 마음을 1,200여 년 동안 이어 온 축제입니다.
출처: 국가유산포털(heritage.go.kr) 연등회 소개, 외교부 「연등회」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보도자료(202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연등회’, 동국대 불교문화포털 연등회 항목, 서울문화포털 2026 연등회 안내, 연합뉴스 연등행렬 보도(2025·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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