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고창 선운사 — 용의 못을 메워 세운 도솔산 천년 고찰, 도솔암 마애불과 1,500년 이어 온 보은염 이야기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3

전북 고창의 선운산 자락으로 가을이 내려앉기 시작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 절 앞을 흐르는 도솔천을 따라 걷다 보면, 검게 가라앉은 물빛 위로 나무 그림자가 겹겹이 비치는 길이 이어지지요. 그 길 끝에서 천사백 년 넘게 이 산을 지켜 온 절, 선운사를 만나게 됩니다. 오늘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디지털고창문화대전』, 국가유산청과 고창군의 안내를 바탕으로 선운사에 깃든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 보겠습니다.

■ 577년 검단선사, 용이 살던 못을 메워 절을 세우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선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입니다.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요. 하나는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내려놓은 뒤 도솔산의 굴에서 하룻밤을 묵다가 미륵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꾸고 중애사를 세웠다는 설입니다. 1707년에 쓰인 「도솔산선운사창수승적기」가 이 설을 따르고 있지요. 다른 하나는 577년(백제 위덕왕 24) 백제의 고승 검단선사가 창건했다는 설입니다. 당시 이 지역이 백제 땅이었다는 시대적·지리적 상황을 고려해, 오늘날에는 검단선사 창건설이 더 유력하다고 봅니다.

『디지털고창문화대전』은 검단선사의 창건 설화를 이렇게 전합니다. 본래 절터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는데, 선사가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못을 메우던 무렵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고 해요. 그런데 못에 숯을 한 가마씩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이 나았고, 이를 신기하게 여긴 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와 못이 금세 메워졌다고 합니다. 선사는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며 갈고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는 뜻을 담아 절 이름을 '선운'이라 지었다고 전합니다.

■ 도적을 소금 굽는 사람으로, 1,500년을 이어 온 '보은염'

선운사에는 소금에 얽힌 따뜻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옛날 선운산 일대에는 도적이 많았는데, 검단선사가 불법으로 이들을 교화하고 바닷가에서 소금 굽는 법을 가르쳐 살아갈 길을 열어 주었다고 해요. 새 삶을 얻은 사람들은 마을 이름을 선사의 이름을 따 검단(검당)이라 부르고, 해마다 봄과 가을이면 소금을 선운사에 바쳤습니다. 은혜에 보답하는 소금이라 하여 이를 '보은염(報恩鹽)'이라 불렀지요.

근대에 끊겼던 이 전통은 선운사와 인근 주민들이 함께 되살려 2006년부터 다시 이어지고 있고, 2008년부터는 선운문화제로 규모가 커졌다고 『디지털고창문화대전』은 소개합니다. 고창 심원면 사등마을에서 소금 굽던 벌막에 고사를 지낸 뒤, 주민과 탐방객이 이운 행렬을 이뤄 선운사 천왕문을 지나 대웅전까지 소금을 옮겨 공양을 올리는 모습이 지금도 이어진다고 해요. 도적을 벌하는 대신 생업을 가르쳐 준 스님, 그리고 그 은혜를 천 년 넘게 잊지 않은 마을 이야기가 참 정답게 느껴집니다.

■ 정유재란의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선 가람

선운사의 역사가 늘 평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후백제의 견훤이 이곳에 선불장을 열었고, 1472년부터 10여 년 동안 극유 스님이 절을 크게 중창했습니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어실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타 버렸고, 1608년부터 다시 10여 년에 걸쳐 중창이 이어졌다고 해요. 『디지털고창문화대전』은 1613년(광해군 5) 원준대덕이 화주가 되어 3년 동안 대웅전, 만세루, 영산전, 명부전 등을 지었다는 기록을 함께 전합니다.

전성기의 선운사는 승려 3,000여 명에 암자만 89개를 거느렸다고 하지만, 지금은 대웅보전·영산전·관음전·명부전·만세루 등 10여 동의 건물과 참당암·도솔암·동운암·석상암 네 암자가 남아 있습니다. 고창군 자료를 보면 대웅전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검단선사가 절을 짓고 남은 목재로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만세루도 2020년 보물이 되었어요. 만세루는 대웅전과 마주 보도록 탁 트인 강당으로, 요즘은 방문객이 차를 마시며 쉬어 가는 공간으로도 열려 있다고 합니다.

■ 도솔암 마애불과 내원궁, 바위에 새긴 거대한 부처님

선운사에서 도솔천을 거슬러 숲길을 따라 오르면 도솔암에 닿습니다. 걷는 길에는 진흥왕이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진흥굴과, 198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도솔암 장사송이 차례로 나타나지요. 도솔암에 이르면 칠송대라 불리는 바위 봉우리 남쪽 절벽에 새겨진 거대한 마애불이 내려다봅니다.

『디지털고창문화대전』에 따르면 이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은 전체 높이 15.5m에 이르며, 1994년 5월 2일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높이는 자료에 따라 다르게 적혀 있기도 합니다). 백제 위덕왕이 검단선사에게 부탁해 암벽에 부처님을 새기고 동불암이라는 공중누각을 지었다는 전설이 있지만, 조성 시기는 고려 전기로 보는 견해와 조선 전기로 보는 견해 등으로 나뉜다고 해요. 가늘게 치켜 올라간 눈과 두툼한 일자 입술이 소박하고 익살스러워서, 바라보고 있으면 엄숙함보다 친근함이 먼저 느껴집니다. 이 마애불에는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해 마애불에 감춰진 비기(秘記)를 꺼냈다는 이른바 비기 탈취 설화도 전해 내려옵니다.

마애불 옆 계단을 오르면 상도솔암인 내원궁이 나옵니다. 이곳에 모신 금동지장보살좌상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백과사전은 턱 밑까지 내려온 귓불과 가슴의 영락 장식, 부드러운 옷 주름이 돋보이는 조선 초기 걸작 불상으로 소개합니다.

■ 봄엔 동백, 가을엔 꽃무릇과 단풍이 물드는 절

선운사는 사계절 꽃과 나무로도 사랑받는 절입니다. 대웅전 뒤 산비탈에는 폭 30m 안팎으로 길게 이어진 동백나무숲이 있는데, 넓이가 3만 5,596㎡에 이르고 1967년 2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어요. 이른 봄 붉은 동백이 송이째 툭툭 떨어지는 풍경은 많은 이들이 선운사를 찾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백과사전은 이 숲 아래에 사찰에서 흔히 가꾸는 석산, 곧 꽃무릇이 무성하다고 적고 있는데, 9월 무렵 도솔천 주변을 붉게 물들이는 꽃무릇도 바로 이 꽃입니다. 선운산 입구 바위를 덮은 고창 삼인리 송악 역시 1991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귀한 나무예요.

그리고 지금, 10월 하순부터 11월 사이에는 단풍의 계절이 찾아옵니다. 해마다 시기는 조금씩 달라지지만, 도솔천 물길을 따라 붉고 노란 잎이 물에 비치는 풍경은 선운산의 대표적인 가을 모습으로 꼽힙니다. 선운사는 2023년 5월부터 시행된 문화유산 관람료 감면 제도에 따라 관람료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사찰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떠나기 전 고창군이나 선운사 공식 안내로 최신 정보를 한번 확인해 보세요.

■ 도솔천 따라 천천히, 마음을 쉬어 가는 길

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는 약 3.2km로, 대부분 평탄한 흙길이라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 남짓이면 닿는다고 해요. 경내를 둘러본 뒤 만세루에서 차 한잔으로 숨을 고르고, 도솔천 물소리를 들으며 마애불까지 걸어 보는 하루라면 그 자체로 작은 순례가 될 것 같습니다. 법당은 지금도 스님들과 신도들의 수행 공간이니, 조용히 걸음을 옮기고 안내에 따라 촬영해 주시면 좋겠지요.

용이 살던 못을 숯과 돌로 메운 마을 사람들, 도적에게 소금 굽는 법을 가르친 스님, 그리고 그 은혜를 소금 두 가마로 갚아 온 사람들. 선운사의 이야기는 결국 서로를 살린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단풍이 짙어지는 이 계절, 도솔천 길 위에서 그 오래된 마음을 한번 만나 보시길 바랍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도솔산 선운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8831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도솔산 도솔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5728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 숲」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3982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선운사」 https://gochang.grandculture.net/gochang/toc/GC02801816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 https://gochang.grandculture.net/gochang/toc/GC02800506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선운사 검단선사 보은염선제」 https://www.grandculture.net/gochang/toc/GC02801314 , 디지털고창문화대전 「선운문화제」 https://gochang.grandculture.net/gochang/toc/GC02801315 , 국가유산포털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 숲」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363501840000 , 국가유산포털 「고창 선운사 도솔암 장사송」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363503540000 , 국가유산포털 「고창 삼인리 송악」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363503670000 , 국가유산청 전통산사문화재 「고창 선운사 보은염 이운행사」 https://www.heritage.go.kr/sansa/html/view_17.html , 고창군 문화관광 「선운사」·국가유산 현황 http://www.gochang.go.kr/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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