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안동 봉정사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극락전과 엘리자베스 여왕이 찾은 천등산 산사 이야기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3

가을이 깊어 가는 10월, 경북 안동 천등산 자락의 봉정사는 단풍과 국화 향으로 조용히 물들어 갑니다. 규모로 보면 아담한 절이지만,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꼽히는 극락전이 서 있고, 1999년에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가장 한국적인 곳"을 보고 싶다며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2018년에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른 일곱 사찰 가운데 하나가 되었지요. 오늘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국가유산청 자료, 그리고 당시 신문 보도를 바탕으로 봉정사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 보겠습니다.

■ 종이 봉황이 내려앉은 자리, 천등산 봉정사

봉정사(鳳停寺)라는 이름에는 '봉황이 머물렀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세계유산 등재 추진위원회가 소개하는 창건 설화에 따르면, 이 산은 옛날에 대망산이라 불렸습니다. 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굴에서 젊은 능인대사가 10년 동안 수행하던 어느 밤,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함께 살자고 간청했지만 대사는 끝내 뜻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하늘로 오르며 "수행에 도움이 되도록 옥황상제의 등불을 남기고 떠난다"고 했고, 바위 위에 큰 등이 걸려 굴 안을 대낮처럼 밝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굴은 '천등굴', 산은 '천등산'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수행을 마친 능인대사는 절을 지을 곳을 찾으려고 종이로 봉황을 접어 날렸고, 봉황은 학가산을 거쳐 지금의 절 자리에 내려앉았다고 전합니다. 설화에서는 이때를 672년으로 이야기합니다.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종이학을 날렸더니 봉황으로 변해 이 자리에 머물렀다는 또 다른 이야기도 함께 전해 오는데, 한 학술 논문(KCI 등재)은 봉황은 화엄종의 전파를, 하늘의 등불은 깨달음의 빛을 상징한다고 풀이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역사 기록은 조금 더 신중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창건을 말해 주는 가장 이른 구체적 기록이 1625년(인조 3)에 쓴 극락전 상량문이며, 여기에 신라 때 능인이 처음 세운 뒤 여러 스님이 중수해 이어 왔다고 적혀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누가 세웠는지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고려 건국 이전에 이미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 극락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봉정사를 대표하는 건물은 단연 극락전입니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고, 정면 3칸·측면 4칸의 주심포계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정면 가운데 칸에만 판장문을 달고 양옆에는 작은 광창을 냈으며, 나머지 세 면은 벽으로 막아 아담하고 단단한 인상을 줍니다.

이 건물이 특별한 이유는 해체 수리 때 나온 기록 덕분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972년 해체 수리 과정에서 발견된 1625년 상량문에 1363년(공민왕 12)에 지붕을 중수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지붕을 고칠 정도라면 그보다 훨씬 전에 지어졌다는 뜻이니, 적어도 고려 중기인 12~13세기에 세워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임이 밝혀진 것이지요. 기둥머리와 소로의 굽이 안쪽으로 굽은 점, 대들보 위에 산 모양의 복화반대공을 올린 점 같은 옛 수법 때문에 양식으로는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앞선다고 보는 견해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극락전 안에는 아미타불을 모셨고, 불단 위에는 작은 집 모양의 닫집을 따로 짜 올렸습니다. 수백 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비바람을 견뎌 온 나무 기둥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세월이라는 말이 저절로 실감 나게 됩니다.

■ 대웅전과 영산회상 벽화, 고려의 숨결을 품다

극락전 옆에는 주불전인 대웅전이 있습니다. 정면 3칸·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석가모니불을 가운데 두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좌우에 모셨습니다. 보통의 불전과 달리 정면에 툇마루와 난간을 두른 것이 눈에 띄는 특징입니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국보로 승격되었습니다.

대웅전에서도 귀한 발견이 이어졌습니다. 1997년에는 고려 불화의 특징을 지닌 영산회상 벽화가 발견되었고(2009년 보물 지정), 1999년 해체 보수 때는 1435년에 쓴 「법당중창기」 등 네 가지 묵서가 새로 나왔습니다. 불단 상판 아래에서는 1361년에 탁자를 만들었다는 묵서도 발견되어, 대웅전의 건축 연대를 고려시대까지 올려 보는 견해도 있다고 합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봉정사는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지 않아 고려와 조선의 건축물, 불상, 불화가 잘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극락전·대웅전·화엄강당·고금당이 한자리에 모인 이 절은 '살아 있는 목조건축 박물관'이라는 평을 듣습니다.

■ 영산암, '꽃비가 내리는 누각'을 지나 만나는 작은 정원

봉정사 동쪽으로 100m쯤 떨어진 언덕에 부속 암자인 영산암이 있습니다. 디지털안동문화대전에 따르면 19세기 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응진전과 삼성각, 송암당, 관심당, 우화루 등이 마당을 'ㅁ'자로 감싸고 있습니다. 2001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지금은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입니다.

입구의 누각 우화루(雨花樓)는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는 이야기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이 현판은 원래 극락전 입구에 걸려 있던 것인데, 1969년 보수 때 극락전 출입문과 담을 헐면서 지금 자리로 옮겼다고 합니다. 낮은 누하문을 지나면 바위 위로 굽어 자란 소나무와 배롱나무가 어우러진 아담한 마당이 펼쳐집니다.

이 마당은 영화 팬들에게도 익숙합니다. 헤럴드경제의 사찰 기행 기사에 따르면 1989년 배용균 감독의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촬영지이며, 「동승」(2003), 「나랏말싸미」(2019)도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합니다.

■ 엘리자베스 여왕이 걸은 길, 그리고 국화차

1999년 4월 21일, 국빈으로 한국을 찾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73번째 생일을 맞아 안동 하회마을에 들른 뒤 봉정사를 찾았습니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여왕은 극락전이 고려시대에 세워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는 설명을 듣고 "거대한 나무 조각 같다"며 감탄했고, "대웅전의 부처님은 세 분인데 극락전에는 왜 한 분뿐이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극락전 앞뜰 돌탑에 돌 하나를 얹었고, 불교신문 보도로는 범종을 세 번 치고 기와불사에 이름도 적었다고 합니다.

20년 뒤인 2019년 5월 14일에는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가 어머니의 발자취를 따라 같은 길을 걸으며 극락전을 둘러보고 범종을 쳤습니다. 안동시는 하회마을에서 농산물도매시장을 거쳐 봉정사까지 이어지는 32km 길을 '퀸스 로드'에서 '로열 웨이(The Royal Way)'로 새로 이름 붙였습니다.

이때 봉정사가 내놓은 국화차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헤럴드경제 보도에 따르면 봉정사는 국화차를 처음 만들어 보급한 곳으로 소개되며, 부속 암자인 지조암의 돈수스님이 국화차를 처음 개발했고, 그 영향으로 안동 서후면이 국내 최대의 국화차 생산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국화가 피는 지금 같은 계절에 봉정사를 찾는다면 한 잔의 국화차가 더 각별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 세계유산 산사로 찾아가는 길

봉정사는 2018년 통도사, 부석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와 함께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산사의 세계유산 가치는 건물이 오래되었다는 데에만 있지 않고, 수행과 의례, 공동체 생활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살아 있는 불교 유산'이라는 데 있습니다. 현재 봉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주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입니다. 극락전과 대웅전, 영산암까지 천천히 돌아보는 데는 넉넉히 한두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다만 법당 안에서는 예불 중인 분들이 계실 수 있으니 조용히 머물고, 사진 촬영이 허용되는지 안내를 먼저 살피는 것이 좋겠습니다. 종이 봉황이 내려앉았다는 그 자리에서, 800년 가까운 시간을 견딘 나무 기둥 앞에 잠시 서 보시길 권합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봉정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002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동 봉정사 극락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004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동 봉정사 대웅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005 , 국가유산포털 「안동 봉정사 극락전」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2C00150000%2C37&pageNo=1_1_1_1 ,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봉정사」 http://www.koreansansa.net/ktp/sansa/sansa_020607.do , 디지털안동문화대전 「봉정사영산암」 https://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805 , 연합뉴스 「세계유산 등재된 산사 7곳, 역사와 특징은」(2018) https://www.yna.co.kr/view/AKR20180630042400005 , 한국일보 「하회마을에 여왕오셨네」(1999.4.22)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199904220050243411 , 불교신문 「영국여왕 봉정사 방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4892 , 불교신문 「봉정사를 찾은 영국왕실의 앤드류왕자」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73865 , 헤럴드경제 「앤드루 영국 왕자도 감탄한 안동봉정사 국화차」 https://biz.heraldcorp.com/article/2002667 , 헤럴드경제 「유네스코 산지승원 안동 봉정사 [정용식의 사찰 기행]」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588699 , KCI 「봉정사 창건 설화의 두 서사적 층위와 스토리텔링의 방향성」 https://www.kci.go.kr/kciportal/landing/article.kci?arti_id=ART00250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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