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화엄사 — 제22회 화엄문화제로 밝힌 지리산 천년고찰, 각황전·사사자탑·화엄석경 이야기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3

지리산 자락에 가을빛이 짙어지는 10월, 전라남도 구례의 한 산사에서는 해마다 특별한 축제가 열립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지리산 화엄사의 '화엄문화제'입니다. 올해로 22회를 맞은 이 문화제는 한글날 연휴였던 10월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 동안 '바람 속에 등불을 밝혀라'라는 주제로 열렸고, 축제가 끝난 뒤에도 지난 17일 보제루에서 해금 독주회가 이어지며 산사의 가을밤을 채웠습니다. 오늘은 남도일보·불교방송·헤럴드경제 보도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화엄사 관련 항목을 바탕으로, 올해 화엄문화제 소식과 함께 천년고찰 화엄사가 품어 온 이야기를 차분히 전해 드리겠습니다.

■ '바람 속에 등불을 밝혀라' — 제22회 화엄문화제의 사흘

불교방송 보도에 따르면 화엄사는 올해 문화제를 기억·전통·내면·예술·공동체·감사의 등불로 이어지는 하나의 이야기로 엮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공연을 나열하는 축제가 아니라, 사흘의 일정을 한 편의 서사처럼 이어 붙였다는 뜻이지요.

첫날인 9일 오전에는 한국전쟁 때 화엄사를 지켜 낸 고(故) 차일혁 경무관의 68주기 추모재가 각황전과 추모비에서 봉행됐습니다. 오후에는 국보 '화엄사 영산회 괘불탱' 진본을 모시는 괘불 이운과 괘불재가 열렸는데, 남도일보는 이 괘불이 높이 12m가 넘는다고 소개했습니다. 저녁에는 국가무형유산 구례향제줄풍류 공연이 보제루에서 펼쳐졌습니다.

둘째 날인 10일 아침에는 보제루 앞 특설무대에서 약 400명이 참가하는 제6회 지리산대화엄사 요가대회가 열렸고, 저녁에는 제22회 화엄음악제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남도일보에 따르면 음악제는 화려한 개막 선언 대신 죽비 세 번으로 고요하게 시작됐는데, 첫 번째는 '멈춤', 두 번째는 '깨어남', 세 번째는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어 '바람·소리·삶·몸·빛' 다섯 장면으로 생황 연주, 정가 가객 하윤주, 가수 최백호, 프로젝트 M의 현대무용, 록밴드 국카스텐의 무대가 차례로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날인 11일에는 구례 지역 동호인들이 함께한 제3회 구례군 라인댄스 동호인대회와, 연기조사의 효심을 새기며 오솔길을 오르는 제6회 '어머니의 길' 걷기대회로 사흘의 여정을 회향했습니다. 주지 우석스님은 "바람이 불지 않는 삶은 없으며, 중요한 것은 바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자신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쁘고 거친 하루를 보내는 우리에게도 오래 남는 말입니다.

해마다 화엄문화제의 문을 여는 추모재의 주인공은 차일혁 경무관(1920~1958)입니다. 헤럴드경제는 그가 빨치산 토벌 작전 중 상부로부터 "사찰과 암자를 소각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천년고찰을 태울 순 없다"며 버티다가, 결국 화엄사의 문짝들만 떼어 내 불태우는 묘책으로 지금의 국가문화유산을 지켜 낸 인물로 평가받는다고 전했습니다.

올해 추모재의 주제가 '한 사람이 지켜낸 천년, 우리가 이어갈 천년'이었다는 점도 마음에 남습니다. 오늘 우리가 각황전과 석탑을 볼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용기 있는 결정 덕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해 줍니다.

■ 연기조사는 언제 화엄사를 세웠을까

화엄사의 창건 이야기에는 오래된 수수께끼가 하나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636년 중관대사 해안이 쓴 사적기를 비롯한 여러 기록은 544년(신라 진흥왕 5년, 백제 성왕 22년) 인도 승려 연기조사가 절을 세웠다고 전합니다. 자장율사가 증축하고 의상대사가 장륙전을 지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 왔지요.

그런데 1978년 신라 경덕왕 때 만들어진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이 발견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이 사경의 발문에 연기가 황룡사의 승려로서 754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화엄경 사경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었던 것입니다. 백과사전은 이를 근거로 창건 시기가 진흥왕 때가 아니라 경덕왕 때이며, 현존 석조물의 양식도 8세기 후반에서 9세기에 걸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다만 그보다 앞선 어느 때부터 이 터에 절이 있었고, 연기조사 대에 이르러 큰 가람으로 확장되었다고 볼 여지도 있다고 덧붙입니다. 전설과 기록이 서로를 비추며 역사를 조금씩 또렷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 숙종이 이름을 내린 각황전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등

화엄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는 건물이 각황전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각황전은 본래 장륙전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5,000여 칸에 이르던 화엄사 전각 대부분과 함께 불에 탔습니다. 1630년 벽암대사(각성)가 중건을 시작했고, 그 제자 계파 성능선사가 1702년(숙종 28년) 장륙전을 다시 세웠습니다. 완공 뒤 숙종이 직접 쓴 '각황보전(覺皇寶殿)' 편액을 내리면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각황전은 정면 7칸, 측면 5칸의 다포계 중층 건물로, 현존하는 중층 불전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며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안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아미타불과 다보불의 3여래, 보현·문수·관음·지적보살의 4보살이 모셔져 있습니다. 각황전 앞마당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높이 약 6.4m의 석등이 서 있는데, 백과사전은 이 석등이 현존하는 국내 석등 가운데 가장 크다고 소개합니다. 이 석등 역시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 어머니를 머리에 인 탑, 사사자 삼층석탑과 효대

각황전 뒤편 언덕, '효대(孝臺)'라 불리는 높은 터에는 국보 사사자 삼층석탑(1962년 지정)이 서 있습니다. 높이 5.5m의 이 탑은 상층기단 네 귀퉁이에 앉은 네 마리 사자가 탑을 떠받치는 독특한 모습으로, 백과사전은 불국사 다보탑과 함께 우수한 걸작으로 손꼽힌다고 설명합니다. 아래층 기단에는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고 꽃을 바치는 천인상 12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사자들 가운데에는 합장한 채 서 있는 승려상이 있는데, 이는 연기조사의 어머니인 비구니의 모습이라고 전해집니다. 탑 바로 앞 석등 아래에는 무릎 꿇은 승려상이 있어, 어머니께 효성이 지극했던 연기조사가 차 공양을 올리는 모습이라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효대라 불렀다고 하지요. 올해 문화제 마지막 날 '어머니의 길' 걷기대회가 연기조사의 효심을 새기며 걷는 길로 꾸며진 것도 이 이야기와 이어져 있습니다.

■ 1만 4천 조각으로 남은 화엄경, 화엄석경

화엄사라는 이름처럼, 이 절은 『화엄경』과 떼어 놓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옛 장륙전의 사방 벽은 화엄경을 돌에 새긴 화엄석경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의상대사가 만들었다는 전승이 있지만, 석경에 797년 번역된 40권본 화엄경이 포함되어 있어 시기가 맞지 않고, 글씨체가 최치원이 쓴 쌍계사 진감국사비와 닮아 통일신라 말에 조성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이 석경은 임진왜란 때 장륙전이 불타면서 산산조각 났고, 한국전쟁 때 정리해 둔 상자마저 파손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1961년 다시 정리한 결과 남아 있는 조각은 1만 4,000점에 이르며 163상자로 분류되었고, 1990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부서진 조각 하나하나에도 경전을 새기던 신라 사람들의 정성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면, 유물을 바라보는 마음이 사뭇 달라집니다.

■ 지금도 이어지는 산사의 음악, 보제루 해금 독주회

축제가 끝난 뒤에도 화엄사의 가을은 계속됩니다. 헤럴드경제에 따르면 지난 17일 오후 화엄사 보제루 특별무대에서 '제1회 최서호 해금 독주회-영산회상'이 열렸습니다. 전라남도문화재단 예술활동지원사업의 하나로 마련된 이 공연에서 해금 연주자 최서호는 가야금 오예진, 장구 도경한과 함께 전통 정악의 대표곡 '영산회상'을 연주했습니다. 영산회상은 본래 불교적 배경에서 출발해 오랜 세월 기악 중심의 정악으로 발전한 음악이라, 산사의 목조 누각과 특히 잘 어울렸다고 합니다. 관람객들은 보제루 마룻바닥에 앉아 선율을 감상했다고 전해집니다.

단풍이 더 깊어지는 이번 가을, 지리산 화엄사를 찾으신다면 각황전 앞 큰 석등과 효대의 사자탑, 그리고 화엄석경 조각들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춰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바람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작은 등불 하나를 마음에 품고 돌아오실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남도일보 「지리산 가을밤에 들려오는 '천년의 울림'…화엄사, 제22회 화엄문화제」(2026.9.20) https://www.nam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23997 , 불교방송 「지리산 화엄사, '제22회 화엄문화제' 개최…'바람 속에 등불을 밝혀라'」(2026.9.15) https://news.bbsi.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06594 , 헤럴드경제 「"천년 문화유산에서 현대예술까지"...제22회 화엄문화제 성료」(2026.10.12)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899082 , 헤럴드경제 「최서호 첫 해금독주회 전통 정악과 산사의 어울림」(2026.10.18)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906031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지리산 화엄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4785 , 「구례 화엄사 각황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4786 ,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4794 ,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5731 , 「연기」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6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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