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무당 신당(神堂)은 무당이 자기 몸에 내린 신, 곧 몸주신을 모시고 날마다 섬기는 집 안의 성소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를 "무당 집안의 별채나 방에 만들어놓은 것으로 무신도·무구·무복·무악기들을 모셔두는 곳"이라고 설명합니다. 신내림을 받은 강신무에게는 거의 빠짐없이 신당이 있고, 신당 벽에는 신령을 그린 무신도와 둥근 놋쇠 거울인 명두가 걸립니다. 반대로 대를 이어 무업을 하는 남부지방 세습무는 몸주신이 없어 집에 신단을 따로 차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점집이나 신점을 보러 무당집에 들어섰을 때, 벽 가득 걸린 화려한 그림과 촛불, 방울과 부채가 놓인 방을 보고 "이곳이 정확히 어떤 곳일까" 궁금했던 분이 많을 것입니다. 오늘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신당', '무당', '몸주', '무신도', '강신무', '명다리', '단골' 항목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무신도 강좌 자료, 강신무 신당을 다룬 학술 논문을 바탕으로 무당 신당의 뜻과 종류, 신당 안에 모시는 것들, 그리고 신당을 찾을 때 알아 두면 좋은 이야기까지 차근차근 정리해 보겠습니다.
신당 뜻 — '신을 모시는 집'은 생각보다 종류가 많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당' 항목(장주근 집필)에 따르면 신당은 민간에서 신을 모시기 위해 사당 형태로 지은 종교건축물로, 당, 당산, 신사, 당집이라고도 부릅니다. 백과사전은 신당을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눕니다.
첫째는 굿당입니다. 서울의 할미당이나 국사당처럼 집이 빽빽한 도회지에서 요란한 굿판을 벌이기 어려워 인가에서 떨어진 산속에 지은 건물입니다. 조선 후기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국사당이 언급될 만큼 역사가 오래되었습니다.
둘째가 오늘의 주제인 무당 집안의 신당입니다. 무당이 사는 집의 별채나 방에 무신도와 무구, 무복, 무악기를 모셔 두는 곳입니다.
셋째는 약수터나 영천(신기한 약효가 있다는 샘)에 세운 용신당으로, 용신할머니·용궁부인·용궁애기씨 같은 신을 모십니다. 넷째는 산신도를 모신 산신각으로, 서울 평창동의 보현산신각이나 대관령 산신당이 그 예입니다.
다섯째는 마을을 지키는 동제당입니다. 전국에 가장 많이 퍼져 있어 흔히 신당이라고 하면 이것을 떠올리며, 경기·충청에서는 산신당·산제당, 강원과 동해안에서는 서낭당, 영호남에서는 당산, 서울 한강변 마을에서는 부군당이라는 이름이 많이 쓰입니다. 제주도에는 마을마다 본향당이 있고 굴을 신당으로 삼은 굴당도 많습니다. 이처럼 '신당'은 넓은 말이지만, 오늘날 점집이나 무당집에서 말하는 신당은 대개 둘째 유형, 곧 무당 개인의 신당을 가리킵니다.
무당 신당은 왜 생겼을까 — 몸주신과 강신무
무당 신당을 이해하는 열쇠는 '몸주'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몸주' 항목(이부영 집필)은 몸주를 "무당이 신병을 앓을 때 강신하여 영력의 주체가 되는 무속신격"이라고 정의합니다. 무당은 몸주신이 자신에게 영력을 준다고 믿기 때문에 자기 집에 신단(神壇)을 만들고 그 신을 모시며, 굿을 하거나 점을 칠 때 몸주가 내려 공수(신의 말)를 하거나 길흉화복을 예언한다고 여깁니다.
몸주는 신병을 앓을 때나 무당이 되는 마지막 의식인 내림굿에서 정해집니다. 꿈이나 환상 속에 나타난 신령의 모습을 몸주로 모시기도 하고, 꿈의 계시에 따라 거울이나 방울 같은 무구를 찾아내면 그것을 몸주의 신체(神體)로 삼기도 합니다. 내림굿 도중 입에서 터져 나온 이름이 몸주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백과사전은 몸주의 예로 산신, 최영장군, 일광보살, 월광보살, 칠성신, 명도, 작도대신, 신장 등을 들고, 1930년대에는 최영 장군이나 임경업 장군처럼 억울하게 죽은 장수의 넋이 몸주가 되는 일이 잦았던 듯하다고 적었습니다.
'강신무' 항목도 강신무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신을 모시는 신단이나 신당을 갖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굿을 할 때가 아니더라도 신을 불러 점을 치는 등 신과 빈번히 교섭을 한다"는 점을 꼽습니다. 신을 모시는 일을 게을리하면 신벌을 받아 병을 얻는다고 믿기 때문에, 신당은 무당에게 일터이자 매일 정성을 드리는 기도처가 됩니다.
반면 '무당' 항목은 남부지방의 세습무가 신의 체험을 통한 몸주신이 없으므로 "신단을 만들어서 신을 봉안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호남의 단골, 제주의 심방도 자기 집에 신단을 두지 않는 유형으로 분류됩니다. 다만 '신당' 항목은 동해안 화랭이패처럼 신당을 모시지 않는 예외를 빼면 제주 심방들에게도 집 안에 무구와 무복을 모셔 두는 관습이 나타난다고 덧붙이고 있어, 지역과 집안에 따라 모습이 다양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관습은 고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노무편」에도 기록되어 있어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무당 신당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 무신도·명두·무구·무복
신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벽에 걸린 무신도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무신도' 항목(김태곤 집필)에 따르면 무신도는 무속에서 섬기는 신들을 그린 종교화로, 무당들은 실제로 '화분'이나 '족자'라고 부릅니다. 이규보는 「노무편」에서 늙은 무당의 집을 두고 "벽에는 울긋불긋 신상을 그려놓고, 칠원과 구요는 액자에 그려 붙였다"고 적었는데, 고려시대 무당 신당의 모습을 짐작하게 해 주는 귀한 기록입니다.
현재까지 보고된 무신도는 113종이며, 신의 계통으로는 천신, 일신, 월신, 성신, 산신, 용신, 장군신, 대감신, 불교신, 무조신 등 20여 종에 이릅니다. 크기는 대개 가로 60cm 안팎, 세로 110cm 정도이고, 고운 무명에 빨강·노랑·파랑을 기본으로 한 원색을 칠합니다. 백과사전은 그림을 그린 사람이 사찰에서 탱화를 그리는 금어(불화를 그리는 사람)였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무신도는 주로 중부와 북부지방에 분포하는데, 강신무는 몸주신을 신단에 모시기 때문에 신을 상징하는 그림이 필요하지만 세습무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무신도 강좌 자료는 서울 무당은 열 분 안팎, 황해도 무당은 스무 분이 넘는 신을 무신도로 모신다고 소개합니다.
무신도와 함께 걸리는 둥근 놋쇠 거울이 명두(명도)입니다. 우리말샘 풀이에 따르면 명도는 무당이 수호신으로 삼고 위하는 청동 거울로, 앞면은 불룩하고 뒷면에는 해·달·별 무늬와 '일월 대명두'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몸주' 항목은 경기 지방에서는 이 거울을 최영 장군의 얼굴로 여기는 곳도 있다고 전합니다. 이 밖에 신당에는 방울과 부채, 오방기 같은 점구와 무구, 굿 때 입는 여러 벌의 무복, 장구 같은 무악기가 함께 모셔집니다. '무당' 항목에 따르면 강신무의 무복은 거리마다 다른 신을 상징하는 옷이 있어 보통 12~20종에 이릅니다.
신당의 또 다른 얼굴 — 명다리와 단골 관계
무당 신당 한쪽에 사람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힌 긴 천이 걸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면, 그것이 명다리일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명다리' 항목(최길성 집필)에 따르면 명다리는 무당과 단골 관계를 맺기 위해 바치는 공물로, 명주나 무명 헝겊에 이름과 생년월일 등을 적어 실타래와 함께 올립니다. 아이의 수명장수를 위해 신력이 있는 무당에게 '아이를 판다'고 표현하며, 이렇게 관계를 맺으면 아이는 무당의 신딸·신아들이 되고 무당은 신어머니가 됩니다.
무당은 자기 신당굿을 할 때 반드시 이 아이들의 명다리를 들고 춤을 춘 뒤 축원해 주어야 하고, 명다리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새로 만들어 바쳐야 영험이 이어진다고 믿었습니다. '단골' 항목은 명다리를 100여 장이나 지닌 무녀도 있었다며, 명다리가 무당의 활동 범위를 보여 주는 단서가 되고 이를 물려받는 신딸은 주요 수입원을 인계받는 셈이라고 설명합니다. 지역N문화의 경기 지역 사례를 보면 탯줄을 목에 감고 태어난 아이나 명이 짧다고 여겨진 아이를 위해 만신집이나 절에 명다리를 걸고, 생일이나 정월마다 쌀이나 돈을 가져가 축원을 받았다는 증언이 이어집니다. 신당은 무당 혼자 신을 섬기는 곳이면서, 단골 가족과 신을 잇는 공간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신당을 찾을 때 알아 두면 좋은 점
강신무의 신당을 연구한 학술 논문 「강신무의 신당이 지니는 종교적 함의」는 신당 안에 배치된 신체와 점구류가 신성성이 부여된 성물로 여겨져, 일반인이 함부로 만지거나 다루어서는 안 되는 금기의 대상으로 믿어진다고 설명합니다. 또 신앙자들은 신당을 찾은 목적에 따라 출산, 수명, 재수, 재복처럼 그 일을 맡은 신에게 소원을 빌기 때문에, 무당은 자신의 몸주신 외에도 그런 직능을 가진 신의 상징물을 함께 모셔 둔다고 분석합니다. 이 논문은 '무당(巫堂)'이라는 이름 자체가 '무가 신을 위해 제를 지내는 공간'이라는 뜻을 품고 있어 무당과 신당이 같은 개념으로 인식되기도 한다고 짚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하면, 신점을 보러 무당 신당에 들어갈 때는 무신도나 명두, 방울 같은 신당의 물건을 허락 없이 만지거나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이 기본 예의입니다. 신당마다 모시는 몸주신이 다르므로 어떤 신을 모시는지, 점사를 어떤 방식으로 보는지 미리 물어보면 대화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신당은 그 무당이 신내림을 받은 뒤 평생 정성을 쌓아 온 공간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처음 보는 낯선 풍경도 조금 더 편안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정리 — 신당을 보면 그 무당이 보인다
무당 신당은 몸주신을 모시는 강신무의 성소이자, 무신도·명두·무구·무복이 모인 작은 신전이고, 명다리로 맺어진 단골들과 신을 잇는 자리입니다. 고려 이규보가 본 울긋불긋한 신상 그림부터 오늘날 점집 벽의 무신도까지, 신당은 800년 넘게 모습을 바꿔 가며 이어져 왔습니다. 어느 신당에 어떤 신이 모셔져 있는지를 보면 그 무당이 어떤 신을 받았고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가 함께 보입니다. 말명, 세습무, 무당 공수, 오방기 같은 다른 무속 이야기도 신이말했다 무속 게시판에서 함께 읽어 보세요.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당」(장주근)·「무당」·「몸주」(이부영)·「무신도」(김태곤)·「강신무」·「명다리」(최길성)·「단골」, 우리말샘 '명도' 풀이, 한국학중앙연구원 「무신도, 신령과 눈맞춤」 강좌 가이드북, 「강신무의 신당이 지니는 종교적 함의」(KCI 등재 논문), 지역N문화 「아이의 장수를 비는 경기지역의 명다리걸기 풍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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