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세습무(世襲巫)는 신내림(강신) 체험 없이 부모나 집안으로부터 무당의 신분과 직능을 물려받아 무당이 된 사람을 말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세습무를 "부모로부터 무당의 신분이나 직능을 물려받은 무당"이라고 정의하고, 신을 모시고 굿은 하지만 집 안에 신단을 차리거나 굿 도중 신탁(공수)을 내리는 일은 원칙적으로 없다고 설명합니다. 대표적인 세습무로는 전라도의 단골(당골), 경상도의 무당(지모산이), 제주도의 심방이 꼽히고, 경기 남부의 화랭이와 미지, 동해안별신굿을 맡아 온 김석출 일가도 세습무 집안입니다.
흔히 무당이라고 하면 신병을 앓다가 내림굿을 받고 신당을 차린 무당, 곧 강신무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남부 지방에서는 오랫동안 '피로 이어지는 무당'이 굿판의 주인이었습니다. 오늘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세습무」·「무속」·「단골」·「무당춤」·「경기도 도당굿」·「김석출」 항목과 울산·부산역사문화대전의 동해안 세습무 기록을 바탕으로, 세습무가 무엇인지, 강신무와 무엇이 다른지, 지금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차근차근 정리해 보겠습니다.
세습무 뜻 — 신이 내리지 않아도 무당이 되는 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세습무」 항목(최길성 집필)에 따르면 세습무라는 말은 강신무와 마찬가지로 학자들이 만든 학술 용어일 뿐, 일반인들이 실제로 부르던 이름은 아닙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냥 단골네, 당골에미, 무당, 심방이라고 불렀습니다.
세습무를 처음으로 '무당이 되는 과정(입무)'의 특징으로 분류한 사람은 일본 학자 아키바 다카시(秋葉隆)입니다. 그는 한국 전역, 특히 남부 지방에서 무직(巫職)의 세습이 성행하며, 무당 집안(무가)에서 태어난 자녀 대부분이 무당이 된다고 기록했습니다.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 역시 세습으로 무당이 된 이들은 부모와 조상 때부터 무속을 이어 왔기에 자손도 그 업을 물려받는다고 보았습니다.
핵심은 '강신 체험이 없다'는 점입니다. 같은 항목은 세습무에게 강신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강신입무(降神入巫) 과정이 약하거나 없으며, 부모가 무당이면 자녀가 자연스럽게 무당의 신분을 얻고, 평생 종사할 무업을 배워서 무당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세습무는 신이 '골라서' 되는 무당이 아니라, 굿을 '배워서' 되는 무당인 셈입니다.
세습무와 강신무 차이 — 신단, 공수, 무복, 춤과 음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무속」 항목(김태곤 집필)은 우리나라 중부와 북부에는 신이 내린 강신무가, 남부에는 조상 대대로 혈통을 따라 계승되는 세습무가 분포한다고 정리합니다. 두 유형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무당이 된 계기가 다릅니다. 강신무는 신의 뜻으로 무당이 되었다고 스스로 믿고, 강신으로 얻은 영력이 주된 기능입니다. 세습무는 사제권을 인위적으로 물려받으며, 영력과 관계없이 제의를 집행하는 사제 역할에 집중합니다.
둘째, 신단과 몸주신이 다릅니다. 강신무는 몸에 내린 몸주신을 모신 신단(신당)이 있고 영력으로 점도 칩니다. 단골형 세습무는 강신 체험이 없어 구체적인 신관이 확립되어 있지 않고 자기 집에 신단도 없습니다.
셋째, 굿판에서 신과 맺는 관계가 다릅니다. 강신무의 굿은 신이 내려 무당과 신이 하나가 되는 '일원적' 형식이고, 세습무의 굿은 무당이 신을 향해 일방적으로 기원하는 '이원적' 형식입니다. 그래서 세습무는 굿 도중 신의 말을 직접 전하는 공수를 원칙적으로 내리지 않습니다.
넷째, 겉모습과 예능이 다릅니다. 같은 항목에 따르면 세습무의 굿은 의식 절차가 더 체계화된 대신 무복(신옷)의 수가 극히 적거나 거의 없고, 강신무는 무복이 많고 화려합니다. 무악도 강신무는 타악기 위주인 데 비해 세습무는 타악기에 현악기가 더해지고, 춤 역시 세습무 쪽이 훨씬 예능화되어 영남 지역은 1장부터 6장까지 춤이 다양하다고 합니다. 「무당춤」 항목도 한강 이북 강신무의 춤은 활달하고 주술성이 강한 반면, 한강 이남 세습무의 춤은 부드럽고 축원적이며 신옷 대신 연희복을 입는다고 설명합니다.
지역별 세습무 — 전라도 단골, 경상도 무당, 제주 심방, 경기 화랭이
전라도의 세습무는 단골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단골」 항목은 단골을 호남 지역에서 혈통을 따라 세습되는 무당으로 정의하고, 단골네·단골에미·당골네·당골에미라고도 부른다고 적고 있습니다. 단골은 사제권과 함께 일정 지역을 맡아 굿을 하는 관할권인 '단골판'을 대대로 물려받았습니다.
경상도에서는 세습무를 그냥 '무당' 또는 '지모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세습무」 항목에 따르면 세습무 집안에서는 여자 무당이 주로 춤과 노래로 신을 모시고, 남자는 무악을 연주하는 악사를 맡습니다. 동해안 지방에서는 남자 무당이 굿 중간에 촌극(놀이)을 하기도 합니다.
제주도의 심방은 조금 특별합니다. 「무속」 항목은 심방이 혈통에 의한 세습무이면서도 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고, 직접 강신하지는 않지만 무점구(점을 치는 도구)를 매개로 신의 뜻을 묻는다는 점에서 세습무와 강신무의 중간형이라는 인상을 준다고 설명합니다.
경기 남부에도 세습무가 있었습니다. 「경기도 도당굿」 항목에 따르면 한강 이북은 주로 강신무가, 한강 이남은 세습무가 도당굿을 맡았고, 남무인 '화랭이'(산이)와 여무인 '미지'가 수원·오산·인천·시흥·안산 등지를 단골판으로 삼아 활동했습니다. 1970년대 조사 당시 한강 이남에 세습무 집안이 10여 집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작고하거나 연로해 겨우 명맥을 잇는 형편이라고 합니다.
세습무 집안의 삶 — 무당의 피, 동관끼리의 혼인, 그리고 예술
세습무 사회에는 독특한 관념이 있었습니다. 「세습무」 항목에 따르면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무당이면 자녀 모두가 무당의 신분이 되는데, 이는 '무당이 되는 피'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고 유전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분으로 태어난 사람은 같은 신분인 '동관'끼리 혼인하는 족내혼 경향이 있었고, 신분이 직업을 제한해 다른 일로 바꾸기도 어려웠습니다.
무엇보다 세습무는 전통 사회에서 천민 신분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오히려 무업이 더 독점적인 가업이 되었고, 여자들은 혼인 뒤 시집 식구들에게서 굿을 전수받았으며, 남자들은 어려서부터 굿판에서 무악과 무의를 배웠습니다. 신청(神廳)이 있던 지역에서는 판소리나 악기 연주도 익혔습니다. 같은 항목은 세습무가 굿을 전문으로 하면서 의례를 예술화하는 데 크게 공헌했고, 일부는 명창이나 가수가 되기도 했다고 평가합니다. 「무당춤」 항목이 무당춤을 한국 전통춤 전반의 뿌리라고 말하는 것도 이와 맞닿아 있습니다.
전통 사회에서는 단골네가 굿을 하고, 점쟁이나 점바치가 점을 치는 분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습무」 항목은 최근 이 분업이 약해져 점을 치던 강신무가 굿까지 맡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 주요 원인이 단골들이 천민 사회를 벗어나거나 폐업하면서 그 종교적 역할을 강신무가 대신하게 된 데 있다고 봅니다. 오늘날 "무당 추천", "점집"을 검색하면 대부분 신당을 둔 강신무가 나오는 것도 이런 변화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이어지는 세습무 — 동해안별신굿과 김석출 무계
세습무 집단이 거의 와해된 전라도나 경기도와 달리, 동해안에서는 지금도 세습무가 굿을 이끌고 있습니다. 울산역사문화대전 「동해안세습무집단」 항목은 동해안별신굿을 진행하는 무당들이 신이 내리지 않은 세습무이며, 크게 김해 김씨 김석출 무계, 은진 송씨 송동숙 무계, 신석남 무계의 세 무계로 나뉘었다고 기록합니다. 김석출 집안은 증조부 김천득에서 시작해 김범수·김성수·김영수 삼 형제, 다시 김호출·김석출·김재출 삼 형제로 이어지며 4대가 무업에 종사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석출」 항목에 따르면 김석출(1922~2005)은 경북 포항 환호동에서 대대로 무업을 이어 온 세습무 집안에서 태어나 7세에 굿판에 들어섰고, 12세부터 굿판에서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장구와 호적(태평소)에 뛰어났던 그는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2-가호 동해안별신굿의 예능보유자(악사)로 인정받았고, 2005년 명예보유자가 되었습니다. 장녀 김영희도 동해안별신굿 예능보유자가 되어 가업을 이었습니다.
부산역사문화대전 「동해안별신굿」 항목은 이 굿이 김석출 일가를 중심으로 한 세습무 집단이 진행하며, 3년 혹은 5년 주기로 짧게는 2~3일, 길게는 10일 동안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최길성의 『한국 무속지』를 인용해 김석출 일가의 별신굿이 동해안에 자리 잡은 지 약 150여 년이 되었다고도 전합니다. 다만 울산역사문화대전은 윗세대가 세상을 떠나고 자녀가 잇는 경우가 드물어 외부 사람들이 굿에 참여하면서 세습무 집단이 사실상 붕괴되기 시작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세습무는 신내림 대신 손과 목소리로 굿을 지켜 온 사람들입니다. 강신무가 신의 말을 전하는 무당이라면, 세습무는 수백 년 이어 온 굿의 노래와 춤, 음악을 다음 세대에 전한 무당이었습니다. 굿판에서 장구 장단과 무가 한 대목을 들을 때, 그 뒤에 대를 이어 온 집안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면 굿이 조금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세습무」(최길성)·「무속」(김태곤)·「단골」·「무당춤」·「경기도 도당굿」·「김석출」, 울산역사문화대전 「동해안세습무집단」, 부산역사문화대전 「동해안별신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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