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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소놀이굿 2편 —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과 마을 소먹이놀이로 넓혀 본 '소 굿놀이'의 세계

신이말했다조회 2

지난 1편([양주 소놀이굿 — 멍석 소와 마부가 마당에서 펼치는 경사굿](https://sinimalhaetda.com/board/all-about/1062))에서는 경기도 양주의 소놀이굿이 어떤 굿이고, 마부가 어떤 타령을 부르는지를 차례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소를 앞세운 놀이는 양주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소놀이굿」 항목은 이 굿놀이가 경기도 양주·파주·연천·고양·장단·포천은 물론, 황해도 연백·봉산·신계·곡산·금천·평산, 평안남도 평양, 강원도 원주, 서울의 왕십리·노량진·시흥에서도 전승되었다고 기록합니다. 경기도 장단에서 북쪽으로 올라가 황해도를 거쳐 평양까지 닿는 꽤 넓은 띠였던 셈이지요.

그 많던 소놀이 가운데 지금까지 무대에서 이어지는 것은 두 갈래뿐입니다. 같은 항목은 무당과 마을 주민이 함께 연행하는 양주 소놀이굿, 그리고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만이 남아 있다고 정리합니다. 그래서 2편에서는 시선을 조금 넓혀, 양주 소놀이굿의 '형제'라 할 만한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과, 굿이 아닌 마을 세시놀이로 전해 온 소먹이놀이를 나란히 놓고 보려 합니다. 비교해 보면 1편에서 본 양주 소놀이굿의 개성이 오히려 더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 무당 없이 노는 소, 정월과 한가위의 소먹이놀이

먼저 굿판 바깥의 소부터 만나 보겠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소놀이」 항목에 따르면 '소멕이놀이'라고도 부르는 이 놀이는 황해도·경기도·충청북도 등 중부 지역과 강원도 영서 지방에서 정월대보름과 한가위, 한 해에 두 번 벌어졌습니다.

소를 만드는 방법이 무척 소박합니다. 젊은이 둘이 엉덩이를 맞대고 서로 반대쪽으로 허리를 숙이면 그 위에 멍석을 덮습니다. 앞사람은 고무래 두 개를 나눠 쥐어 소머리 모양을 내고, 뒷사람은 작대기나 싸리비로 꼬리를 삼지요. 이렇게 만든 소를 주인과 머슴이 앞뒤에서 몰고, 농악대와 청장년들이 줄줄이 뒤따르며 집집을 찾아갑니다.

넉넉한 집 앞에 이르면 소가 "음메 음메" 울고, 몰이꾼은 옆집 누렁소가 싸리 꼬챙이와 쌀뜨물이 먹고 싶어 찾아왔다며 큰소리를 칩니다. 대백과는 여기서 싸리 꼬챙이는 산적을, 뜨물은 술을 가리키는 은어라고 풀이합니다. 주인이 술과 음식을 내오면 농악에 맞춰 소가 춤추는 시늉을 하고, 마지막에 몰이꾼이 그 집의 풍년과 평안을 비는 덕담을 늘어놓으며 흥을 끌어올립니다.

대백과는 대보름의 소먹이놀이를 그해 풍년을 미리 비는 기풍의례로, 한가위의 놀이를 거둔 풍년에 감사하는 의례로 봅니다. 그리고 양주 소놀이굿도 같은 성격을 지닌 놀이라고 하면서, 차이점을 분명히 짚습니다. 소놀이굿에는 농사뿐 아니라 사업과 자손이 잘되기를 바라는 재수굿의 성격이 강하고, 마을 사람이 아닌 무당이 굿을 이끌며, 무속의 제석거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지요. 같은 멍석 소라도 마을 놀이에서 굿놀이로 들어서면 그 역할이 달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 강화도와 인천으로 내려온 또 하나의 소,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

이제 굿판 안의 또 다른 소를 보겠습니다. 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황해도평산소놀음굿은 1988년 8월 1일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소재지는 인천광역시, 관리단체는 (사)국가무형문화재 황해도평산소놀음굿보존회입니다. 황해도의 굿이 어떻게 인천에서 이어지게 되었을까요.

국립국악원 국악사전에 그 사연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난 무녀 장보배(1915~1991)는 스물한 살에 입무해 신어머니에게 굿을 배웠고, 고향에서 하던 소놀음굿을 1947년 월남해 강화도에 자리 잡은 뒤에도 계속 연행했습니다. 이 굿은 이선비(1934~2019)에게 전해졌는데, 국악사전은 이선비가 장보배의 신의 동기였던 유씨 만신의 신딸이었고, 유씨 만신이 세상을 떠난 뒤 장보배를 신어머니처럼 모셨다고 설명합니다. 두 사람은 1958년 인천에서 평산 소놀음굿을 재현해 세상에 알렸고, 이후 서울놀이마당과 인천 등지에서 황해도 경사굿 발표회를 여러 차례 열었다고 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 항목은 두 보유자가 모두 작고했으며, 지금은 보존회가 전승과 연행을 맡고 전승교육사로 이상희(마부), 정금녀(만신), 이용녀(만신)가 활동하고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 칠성제석이 세상에 내려와 농사를 가르치다

평산 소놀음굿은 단독으로 열리지 않습니다. 대백과에 따르면 반드시 재수굿의 하나인 '철물이굿' 안에서 행해지는데, 이 철물이굿은 안반고사, 신청울림, 우물고사, 산천거리, 초부정 초감흥거리, 칠성제석거리, 영정물림, 성주거리, 소대감거리, 장군거리, 대신거리, 군웅거리, 먼산장군거리, 말명거리, 타살거리, 대감거리, 서낭거리, 조상거리, 마당거리까지 열아홉 거리로 짜여 있습니다. 소놀음굿은 여섯 번째인 칠성제석거리 다음에 이어집니다. 양주 소놀이굿이 제석거리 뒤에 붙는 것과 닮은 자리입니다.

내용은 양주와 사뭇 다릅니다. 대백과가 정리한 흐름을 따라가 보면 이렇습니다. 칠성제석이 삼신제석, 시언제석, 봉립제석, 신농씨, 마부, 약대(소), 애미보살, 지장보살을 거느리고 서천서역국에서 스물네 강을 건너 한강 줄기로 들어왔다는 노정기를 만세받이 장단에 부르며 굿이 열립니다. 일행은 각자 인간 세상에서 맡을 일을 확인한 뒤 오백 년 뒤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흩어집니다. 오백 년이 지나 칠성이 일행을 찾아다니다가 장구산에게 고깔을 내주는데, 막상 일행을 만나자 고깔이 없어 아무도 칠성을 알아보지 못하는 웃지 못할 장면이 벌어지지요. 고깔을 되찾아 씌워 주고서야 서로 반가워합니다.

그다음부터는 사람에게 살림을 가르치는 대목입니다. 집 짓는 법, 방아 찧는 법, 소 길들이는 법, 논밭 일구는 법, 곡식 거두는 법을 차례로 알려 주고, 약대가 낳은 송아지 이름을 지어 준 뒤 천자문까지 가르칩니다. 모든 일을 마친 칠성과 일행은 산염불을 부르며 서천으로 돌아갑니다. 국악사전은 이 과정을 천상놀이와 지상놀이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창세신화와 농경의 기원이 재담으로 펼쳐지고 인간 사회가 문명화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 준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합니다.

■ 둘이 주고받는 양주, 서른 명이 어울리는 평산

두 굿을 나란히 놓으면 무엇이 다를까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지금까지 조사된 소놀이굿을 네 가지로 꼽습니다.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 양주 소놀이굿, 우옥주 만신이 만구대탁굿에서 연행한 소놀이굿, 김금화 만신이 펴낸 무가집에 실린 소놀이굿입니다. 그리고 이 가운데 등장인물로 보면 평산이 가장 이질적이라고 말합니다. 양주를 비롯한 나머지는 만신과 마부의 재담이 중심이라 출연자가 적지만, 평산에서는 여러 인물이 저마다 배역을 맡은 것처럼 대사를 나눈다는 것이지요.

국악사전은 평산 소놀음굿에 마부와 약대(어미 소·송아지), 제석님, 삼신제석, 애미보살, 지장보살, 신농씨, 팔선녀, 지경 닫는 사람, 방아 찧는 사람, 장구산 등 서른여 명이 함께 나온다고 소개하며, 우리나라 소놀이굿 가운데 극적인 형식이 가장 잘 드러나는 사례이자 여러 사람이 여러 역을 맡는 '다인다역극'의 형식을 갖췄다고 평가합니다.

음악도 다릅니다. 국악사전에 따르면 평산 소놀음굿을 연행할 때는 선율 악기가 들어가지 않고 장구·징·제금만 씁니다. 재담이 중심이고 그 사이사이 상황에 맞는 짧은 노래만 부르는데, 신들이 삼천리 강산을 지나는 장면에서는 「난봉가」를 부른다고 합니다. 소의 모습도 조금 다릅니다. 원래는 소머리를 종이로 만들어 대합 껍데기나 조가비로 눈을 붙이고 짚신으로 귀를 달았으며, 어미 소 몸통은 조짚으로, 송아지는 멍석을 뒤집어써서 꾸몄고, 최근에는 볏짚과 덕석을 쓴다고 합니다.

■ 상달의 경사굿, 그리고 지금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곳

두 굿이 놓인 계절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국악사전은 황해도 경사굿이 대개 음력 정월, 삼월, 시월에 많이 열렸고, 특히 시월 상달에는 햇곡식을 맞이하는 신곡맞이로 감사의례를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합니다. 전통적인 경사굿은 집 안에서 해 질 녘에 시작해 동틀 무렵까지 이어졌고, 굿거리에 따라 마루와 안방, 마당, 마구간을 옮겨 다녔다고 하지요. 칠성제석거리는 마루나 안방에서, 소놀음굿은 마당에서 펼쳐졌습니다.

국악사전은 한편으로 과거에 마부와 여러 인물의 역할을 무녀와 동네 사람들이 나눠 맡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는 어려워졌다고 기록합니다. 대백과도 본래는 재담에 능한 마을 주민이 마부를 맡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지금은 소놀음굿을 하는 마을이 없어 만신이나 굿판에서 활동하는 이가 마부를 맡는다고 적었습니다. 마을과 굿이 함께 숨 쉬던 시절의 모습이 조금씩 무대의 형태로 옮겨 가고 있는 셈입니다.

양주 소놀이굿은 1980년 11월 17일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사)국가무형문화재 양주소놀이굿보존회가, 황해도평산소놀음굿은 1988년 지정되어 인천의 보존회가 각각 맡고 있습니다(국가유산포털). 마을 놀이였던 소먹이놀이, 무당과 마부가 주고받는 양주 소놀이굿, 서른 명이 어울려 세상의 시작을 연기하는 평산 소놀음굿. 세 갈래의 소를 함께 떠올려 보면, 소 한 마리에 한 해 살림을 걸었던 옛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넓고 다채롭게 표현되었는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다음에 공연 소식을 접하신다면, 1편과 2편을 떠올리며 두 굿의 차이를 직접 견주어 보셔도 즐거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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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신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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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모두 직접 열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소놀이굿」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9986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소놀이」(소멕이놀이)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9985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5388
- 국립국악원 국악사전 「평산소놀음굿(황해도평산소놀음굿)」 https://www.gugak.go.kr/ency/topic/view/1178
- 국가유산포털 「양주소놀이굿」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273100700000
- 국가유산포털 「황해도평산소놀음굿」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7%2C00900000%2C23&pageNo=1_1_1_0 (상세 페이지 직접 열람: 지정일 1988.08.01, 소재지 인천광역시, 관리단체 (사)국가무형문화재 황해도평산소놀음굿보존회 확인)
- 참고(1편): https://sinimalhaetda.com/board/all-about/1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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