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말명은 우리 무속에서 조상신에 해당하는 신령으로, 특히 무당으로 살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넋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말명을 "무속에서 조상신에 해당하는 무속신격"이라고 정의하며, 서울·중부지방 굿에서는 이 신령을 모시는 거리를 '말명거리' 또는 '말명굿'이라고 부릅니다. 말의 정확한 어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신라 김유신 장군의 어머니 만명(萬明)에서 왔다는 기록이 전해 옵니다. 무당들은 놋쇠로 만든 둥근 거울인 명두(명도)를 말명의 얼굴, 곧 신체(神體)로 여겨 신당에 걸어 둡니다.
신당에 들어서면 무신도 위쪽에 걸린 둥근 놋쇠 거울을 보고 "저게 뭘까" 궁금했던 분, 굿 영상에서 무당이 "대신말명", "조상말명"을 부르는 소리를 들어 본 분이 많을 것입니다. 오늘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말명', '말명굿', '무조신', '명두', '무구', '만명부인' 항목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 역주, 관련 학술 논문을 바탕으로 말명의 뜻과 유래, 굿에서 말명을 모시는 방식, 무당 신당의 명두 이야기까지 차근차근 정리해 보겠습니다.
말명 뜻 — 이름 모를 조상, 그중에서도 '무당이었던 조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말명' 항목(조흥윤 집필)에 따르면 말명은 무속에서 조상신에 해당하는 신격입니다. 다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조상'과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말명의 중심에는 무당으로서 세상을 떠난 이들이 있습니다.
중부지역 무당들은 노란 몽두리를 입고 방울과 부채를 든 할머니를 그린 무신도를 모시며 이를 '대신할머니' 또는 '대신말명'이라 부르고 무조(巫祖), 즉 무당의 조상으로 섬깁니다. 백과사전은 여기서 중요한 점을 짚습니다. 대신말명은 맨 처음 무당이 된 특정 인물이 아니라 무당으로서 죽은 이를 두루 일컫는 말이며, 대개 여성으로 상징된다는 것입니다.
말명의 범위는 여기서 더 넓어집니다. 굿을 의뢰한 집, 곧 제가집의 조상 가운데 이름은 전하지 않지만 무당이었던 이들도 말명으로 모십니다. 이렇게 개념이 넓어지면서 수많은 말명이 생겨났고, 굿에서는 만신몸주대신말명을 비롯해 대신말명, 제당말명, 상산말명, 용궁말명, 사신말명, 서낭말명, 부군말명, 반장말명, 불사말명, 대전말명, 도당말명, 업위말명, 조상말명, 부리말명 등 이름이 줄줄이 불립니다. 산·물·마을·집안 곳곳의 신령 이름 뒤에 '말명'이 붙는 셈입니다.
2023년 『도남어문학』에 실린 논문 「서울굿 말명 신격의 연구」는 말명이 그동안 여성과 조상에 관련된 하위 신격 정도로만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산 사람을 위한 재수굿과 죽은 이를 위한 천도굿 모두에 폭넓게 등장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논문은 말명이 혈연이 아니어도 함께 무업을 했던 선대 만신은 물론 악사, 시봉자처럼 무업 주변의 인물까지 '가족'으로 품는다고 보았습니다. 신을 받은 무당이 스승을 '신어머니', 제자를 '신딸'이라 부르는 무속의 관계가 말명이라는 신격에 그대로 녹아 있다는 해석입니다.
말명 유래 —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 설
말명이라는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자주 인용되는 설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신라의 만명(萬明)부인에게서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말명' 항목에 따르면, 조선 후기 학자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동국여지승람』에 군위현 서악에 신라 김유신사가 있는데, 그 어머니인 만명 역시 신령이 되었다"고 적었습니다. 근대의 이능화는 이 기록을 바탕으로 1927년 『계명』 제19호에 실은 「조선무속고」에서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이 신령이 되어 말명으로 불렸다고 보았습니다. '말명굿' 항목(최길성 집필)도 말명을 한자로 만명이라고 쓰며, 김유신 장군을 모신 사당에서 어머니도 함께 모시던 신앙에서 비롯되었다는 전설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만명부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만명부인' 항목에 따르면 그는 진흥왕의 동생 숙흘종의 딸로, 할아버지는 입종갈문왕입니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은 금관가야 왕족의 후손인 김서현이 길에서 만명을 보고 마음에 들어 중매 없이 '야합'했다고 기록합니다. 김서현이 만노군(지금의 충청북도 진천) 태수로 가게 되어 함께 떠나려 하자, 숙흘종은 둘의 결합을 반대해 딸을 다른 집에 가두고 지키게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집에 벼락이 떨어져 지키던 사람들이 놀라 흩어졌고, 만명은 그 틈에 빠져나와 서현과 함께 만노군으로 갔다고 합니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삼국사기』 역주는 숙흘종이 반대한 이유를, 같은 진골이라도 전통 김씨 왕족이 금관가야 왕족 가문과 혼인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으로 보는 견해를 소개합니다. 만명부인은 김유신, 김흠순, 그리고 태종무열왕의 왕비가 된 문명부인(문희)을 낳았고, 백과사전은 그가 젊은 김유신이 기생 천관에게 빠졌을 때 엄하게 타일러 관계를 끊게 했다고도 전합니다. 벼락 덕분에 갇힌 집을 빠져나온 왕족 여인, 삼국통일 영웅의 어머니라는 극적인 이야기가 훗날 무당들이 섬기는 여성 조상신의 이름과 이어졌다는 설명인 셈입니다. 다만 백과사전이 밝히듯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해 오는 기록과 해석이며, 어원이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함흥말명·말명할머니 — 지역마다 다른 '무당의 조상' 이야기
말명이 꼭 만명부인 한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함경도 함흥지방 무녀들 사이에서 '함흥마누라'라고도 불리는 함흥말명, 또는 함부인(咸夫人)을 무조로 보는 이야기가 전한다고 소개합니다.
'무조신' 항목(김헌선 집필)은 무당의 조상이나 시조에 해당하는 신격 가운데 내력을 담은 설화를 가진 신으로 처용랑, 법우화상, 바리공주, 제주의 무조 삼형제, 말명할머니, 계면할머니를 꼽습니다. 이 항목에 따르면 말명굿 무가 속 말명할머니는 구월맞이 굿을 올리려고 단골 집에 걸립을 나갔다가, 한 집의 아이가 기특해 그 집을 명당 터전으로 잡아 주려고 사흘 굿을 올려 줍니다. 그 뒤로 그 집은 큰 단골이 되어 다른 단골 집들이 그 집을 큰집으로 모시고 구월맞이를 드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무당과 단골(굿을 맡기는 집) 사이의 오랜 관계가 신화 속에 담겨 있는 것이지요.
백과사전은 무조신이 특정한 한 신으로 정해져 있지 않고 무당 각자의 성격에 따라 모셔지기 때문에, 무당의 조상신인 만큼 여러 신이 함께 나타나는 다신의 형태를 띤다고 정리합니다. 말명도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이름이라기보다 '무당의 계보를 잇는 앞선 넋들'을 부르는 이름에 가깝습니다.
말명굿·말명거리 — 굿에서 말명을 모시는 방법
서울과 중부지방 굿에서 말명을 모시는 순서를 말명굿 또는 말명거리라고 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말명굿' 항목에 따르면 말명굿은 독립된 거리로 하기도 하고, 불사거리나 본향가망거리에 딸린 부속거리로 하기도 합니다. 조선 후기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무당들이 말명신을 믿고, 민가에 병이 있으면 이 신에게 기도를 드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말명거리에서는 순서대로 세 갈래의 말명이 불려 나옵니다. 먼저 무당 자신이 모시는 말명, 다음으로 서울지역 굿당에 매인 말명, 마지막으로 굿을 하는 집안의 말명입니다. 무당의 계보, 굿을 하는 장소, 의뢰한 집안이라는 세 축의 조상을 차례로 모시는 구조입니다.
시대에 따른 변화도 있습니다. '말명' 항목에 따르면 일제강점기까지는 중부지역의 천신굿에서 마지막 거리인 뒷전 바로 앞에 말명을 모시는 거리가 있었고, 광복 이후에도 1960년대 말까지는 굿 앞부분의 가망거리에 이어 말명거리를 놀았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는 부정거리에서 잠시 이름을 부르는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말명굿은 죽은 이를 저승으로 보내는 사령굿(진오기굿)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백과사전은 무조신의 성격을 띠면서도 죽은 이의 넋을 달래는 데 말명굿의 제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령굿에서 부르는 바리공주 무가를 구송하는 일을 "말미 드린다"고 하는데, 백과사전은 이 '말미'와 '말명'이 서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입니다. 앞서 소개한 2023년 논문도 재수굿에서는 '본향-가망-말명-대신', 천도굿에서는 '시왕-중디-말명-사재삼성'으로 이어지는 구성을 통해 말명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무당 신당의 명두(명도)와 고리짝 — 말명의 '얼굴'과 '옷'
무당 신당에 가면 무신도 위쪽에 둥근 놋쇠 원판이 걸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명두(明斗) 또는 명도(明圖)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무당들이 이 명두를 말명의 신체로 여기고, 명두를 말명의 얼굴이라고 믿는 것 자체가 말명이 무조신이라는 증거라고 설명합니다.
'명두' 항목에 따르면 명두는 중·북부지방에서 쓰는 원형 놋쇠 무구로, 지름은 20㎝ 안팎입니다. 앞면은 밥그릇 뚜껑처럼 약간 불룩하고 매끈하며, 뒷면에는 해와 달, 칠성, 범자(산스크리트 문자)가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고 가운데 고리에 무명끈을 맵니다. 중부지방에서는 큰무당인 신어머니가 여러 신딸 가운데 한 사람에게 대를 물려줄 때 그 상징으로 명두를 물려주며, 큰무당이 여러 개 가진 명두는 앞선 무녀들의 무령으로 여겨집니다. 굿 날짜가 두 집에 겹치면 한 집에서 굿을 하고, 다른 집 대청에는 명두만 걸어 두었다가 날을 다시 잡기도 했다고 합니다.
명두는 점구 구실도 합니다. '무구' 항목에 따르면 찹쌀을 가득 담은 나무 함지인 명두바릿대에 명두를 세워 꽂고 점치는 사람의 생년월일과 이름, 사연을 대며 축원한 뒤, 명두를 뽑아 안쪽에 붙은 쌀알을 털어 마지막에 남은 쌀알이 홀수면 길하다고 봅니다. '명두' 항목은 짝수로 떨어지면 불길하고 홀수로 끝나면 길한 괘로 믿는다고 적고 있습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 권주영의 논문 「조선시대 일월성신문경의 제작과 특징」은 해·달·별 무늬 거울 90점을 분석해, 이런 거울이 조선시대를 거치며 오늘날 무구 명도로 자리 잡았다고 보았습니다.
참고로 '명두'에는 전혀 다른 뜻도 있습니다. 백과사전의 또 다른 '명두' 항목은 불행하게 죽은 어린아이 신을 몸주로 모셔 아이 목소리로 공수를 전하는 복화술 무당을 명두(또는 태주)라고 부른다고 설명합니다. 같은 낱말이 무구와 무당 유형을 모두 가리키니 글을 읽을 때 구분해 두면 좋습니다.
말명의 또 다른 모습은 옷입니다. 무당들은 죽은 무당의 신복(神服)을 고리짝에 담아 굿당에 모셔 두고 이것을 말명이라 부르고, 이 개념이 넓어져 단골로서 죽은 이의 옷도 신당이나 굿당에 모셔 말명이라 합니다. 일반 민가에서도 죽은 이의 옷을 고리짝에 담아 방 윗부분에 두는 것을 말명이라 했고, 굿을 할 때 무당이 이 옷을 꺼내 입거나 들고 춤을 추기도 합니다. 그래서 백과사전은 말명이 조상신이면서 사령굿에서는 개인을 위하는 몸주신 구실도 한다고 봅니다.
정리 — 말명을 알면 서울굿과 무당 신당이 보인다
말명은 화려한 큰 신은 아니지만, 무당이 누구에게서 신의 길을 이어받았는지, 굿을 맡긴 집안의 이름 모를 조상까지 어떻게 챙기는지를 보여 주는 신격입니다.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 이야기, 함흥말명과 말명할머니 무가, 신당에 걸린 명두와 고리짝 속 옷까지 모두 '앞서 간 사람을 잊지 않고 모신다'는 무속의 조상 신앙으로 이어집니다.
신점을 보러 점집이나 무당 신당에 갔을 때 무신도 위의 둥근 놋쇠 거울이 눈에 들어온다면, 그것이 그 무당이 신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말명의 얼굴일 수 있다는 점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굿 영상에서 "대신말명", "조상말명"이라는 소리가 들린다면 이제 그 뜻이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질 것입니다. 바리공주, 세습무, 무당 공수 같은 다른 무속 이야기도 신이말했다 무속 게시판에서 함께 읽어 보세요.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말명」(조흥윤)·「말명굿」(최길성)·「무조신」(김헌선)·「명두」(무구, 복화무 두 항목)·「무구」·「만명부인」·「김유신」,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 역주, 「서울굿 말명 신격의 연구」(『도남어문학』 43, 2023), 권주영 「조선시대 일월성신문경의 제작과 특징」(국립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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