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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과 솟대 2편 — 나주·통영의 돌장승부터 장승 혼례를 올리는 공주 탄천 장승제까지

신이말했다조회 4

1편(「장승과 솟대 — 마을 어귀를 지켜 온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과 하늘을 잇는 새」(https://sinimalhaetda.com/board/all-about/994))에서는 장승이라는 이름의 내력과 오래된 기록, 남원 실상사 돌장승, 솟대의 뿌리를 둘러보았습니다. 이번 2편은 조금 더 발품을 팔아 보려 합니다. 장승을 어떤 재료와 모양, 어떤 글씨로 구분하는지 먼저 정리한 다음, 전라남도 나주와 경상남도 통영에 서 있는 돌장승을 직접 찾아가 보고, 마지막으로 충청남도 공주에서 지금도 이어지는 독특한 장승제의 하루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이번 글의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국가유산청 자료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 나무냐 돌이냐, 장승을 나누는 몇 가지 기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장승」 항목은 장승을 재료에 따라 목장승, 석장승, 그리고 흙이나 돌무더기에 솟대와 석인이 어우러진 복합장승으로 나눕니다. 나무 장승에는 주로 소나무나 밤나무를 썼다고 합니다. 나무 장승의 모양도 여러 가지여서, 장대 위에 새를 깎아 올린 솟대형, 통나무에 먹으로 얼굴을 그리고 글자를 써서 묶어 두거나 기대어 놓는 목주형, 사람 모습의 신장을 조각한 신장조상형이 있습니다. 돌장승은 선돌형, 돌무더기형, 비석형, 신장조상형으로 구분됩니다.

얼굴 생김새도 한 가지가 아닙니다. 대백과는 사람 얼굴을 닮은 인면형, 왕방울눈과 주먹코에 송곳니를 드러낸 귀면괴수형, 질박하면서도 자비로운 느낌의 미륵형, 남근형, 문무관형 등을 듭니다. 몸에 새기는 이름은 더 다양합니다. 천하대장군·지하대장군 계열이 있는가 하면, 상원주장군·하원당장군 같은 도교적 장군 이름, 동방청제장군·서방백제장군처럼 방위를 지키는 신장 이름, 불교의 영향을 받은 호법선신·금귀, 풍수와 결부된 진서장군·방어대장군 같은 비보장승 이름도 있지요. 그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역시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이라고 합니다.

세운 자리에 따라 맡은 일도 달랐습니다. 마을 입구의 마을장승은 마을을 지키고 잡귀와 재앙을 막으며 경사를 불러들이는 역할을, 절 입구의 사찰장승은 절의 경계를 표시하고 잡귀의 침입을 막는 역할을, 성문이나 병영, 관청 길에 선 공공장승은 이정표이자 길의 신 노릇을 했다고 대백과는 설명합니다. 이 기준을 머릿속에 넣고 나주로 가 보겠습니다.

■ 나주 다도면, 두 절 앞에 선 돌장승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안에는 입구에 돌장승을 거느린 절이 두 곳 있습니다. 운흥사와 불회사입니다. 두 곳의 석장승은 모두 1968년 12월 12일 국가민속문화유산(당시 중요민속자료)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운흥사 석장승은 암정리 운흥마을에서 절로 들어가는 길 좌우에 서 있는 전형적인 사찰장승입니다. 대백과에 따르면 남장승 앞면에는 '상원주장군', 여장승 앞면에는 '하원당장군'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상원주장군은 높이 약 2.7m의 큰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얼굴만 조각했는데, 툭 튀어나온 왕방울 눈과 뭉툭한 주먹코, 두 갈래 수염이 특징이지요. 하원당장군은 얇고 넓은 화강암 판석을 썼고 높이는 약 2.1m입니다. 두 눈썹 사이에 불상의 백호처럼 X자를 새기고, 미간과 콧등에 주름을 넣었으며, 전체적으로 미소를 머금은 익살스러운 인상을 줍니다.

운흥사 장승이 특히 귀한 이유는 뒷면 글씨에 있습니다. 하원당장군 뒷면에 화주승 변학과 신도들이 강희 58년, 곧 1719년(숙종 45) 2월에 세웠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어 만든 해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대백과는 다른 장승들의 내력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 만큼 장승 연구와 민속자료로서 매우 귀중하다고 평가합니다.

불회사 석장승은 절 입구에 한 쌍으로 서 있습니다. 남장승인 하원당장군은 높이 315cm, 둘레 170cm로, 목 아래에서 휘어진 턱수염을 왼쪽 옆구리까지 길게 땋아 늘어뜨렸고, 고사리 무늬와 네 줄의 코주름을 새긴 큰 코 때문에 귀신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고 합니다. 여장승인 주장군은 높이 180cm, 둘레 162cm로, 자연석을 그대로 살린 민머리에 왕구슬 같은 눈과 큰 주먹코, 달관한 듯한 미소를 지녔습니다. 대백과는 조각 수법과 형태로 보아 운흥사 장승과 같은 1719년 무렵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불교와 무속이 어우러진 빼어난 민속신앙 유물이라고 설명합니다.

■ 같은 장군, 다른 짝 — 이름이 엇갈린 나주의 장승

두 절의 장승을 함께 보면 재미있는 점이 하나 눈에 띕니다. 운흥사에서는 남장승이 상원주장군, 여장승이 하원당장군입니다. 그런데 불회사에서는 남장승이 하원당장군, 여장승이 주장군으로 되어 있지요. 대백과 「나주 운흥사 석장승」 항목도 두 절의 장승이 조각 기법에서는 비슷하지만 명문에서 남녀 장승의 이름이 크게 다르다는 점을 짚고 있습니다.

같은 고을, 비슷한 시기, 비슷한 솜씨로 만든 장승인데도 이름의 짝이 달랐다는 것은 장승이 정해진 틀대로만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장승의 몸에 새기는 이름은 천하대장군 계열부터 도교·불교·풍수 계열까지 폭이 넓었고, 마을과 절마다 사정에 맞게 골라 썼던 것이지요. 장승 앞에 서서 몸통의 글씨를 꼭 한번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 통영 세병관 길목의 외톨이 벅수

이번에는 바닷가 통영으로 가 보겠습니다. 경상남도와 전라남도에서는 돌장승을 '벅수'라고도 부릅니다. 국가유산청 자료에 따르면 통영 문화동 벅수는 세병관으로 오르는 길가 오른쪽에 서 있는 석장승으로, 1968년 11월 25일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벅수는 짝 없이 홀로 선 '독장승'입니다. 국가유산청은 이 지역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낮은 땅이어서 기운을 보강하고 마을의 평안을 빌려는 뜻으로 세웠다고 설명하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마을 사람들이 풍수상 동남쪽이 허하다고 여겨 재앙을 막고자 세웠다고 전합니다. 앞면에는 '토지대장군(土地大將軍)', 뒷면에는 광무 10년 병오년 8월에 동락동에서 세웠다는 글씨가 있어 1906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생김새는 험상궂으면서도 정이 갑니다. 벙거지를 쓰고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패었으며, 둥근 눈이 튀어나왔고 삼각형의 뭉툭한 코 아래 턱에는 굵은 세 가닥 수염이 새겨져 있습니다. 활짝 웃는 입가로 송곳니가 길게 삐져나와 익살스럽지요. 대백과에 따르면 높이는 201cm, 둘레는 155cm입니다. 흥미로운 일화도 있습니다. 1968년 지정 무렵 초라해 보인다는 이유로 울긋불긋 칠을 했다가 나중에 다시 벗겨 냈다고 합니다. 국가유산청 연혁을 보면 1979년 보호책을 설치했고, 2015년 '충무시 문화동 벅수'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2021년과 2024년에 보존 처리를 거쳤습니다. 대백과는 이 장승 자체에 대한 신앙 의례는 없다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 신랑 장승과 신부 장승의 혼례, 공주 탄천 장승제

장승은 세워 두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성껏 모시는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대백과는 장승제가 마을굿 때 장승을 새로 깎아 세우는 곳에서 크게 열리며, 대개 역질을 막고 잡귀를 물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액을 바깥으로 몰아내 마을을 깨끗이 하는 몫을 장승제가 맡았다는 것이지요.

그 가운데서도 아주 특별한 장승제가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 소라실 마을에 전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공주 탄천 장승제」 항목에 따르면 이 장승제는 1989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습니다. 마을 앞산이 풍수상 늘 불기운을 내뿜는 자리라 화재가 잦았기에, 장승과 오릿대(솟대)를 세워 재앙을 막으려 했다고 합니다. 소라실은 동편의 매봉 마을과 서편의 삼태봉 마을로 나뉘는데, 두 마을을 각각 신랑 마을과 신부 마을로 여깁니다. 신랑 장승은 사모를 쓴 동방천원축귀대장군, 신부 장승은 족두리를 쓴 서방지원축귀대장군입니다. 장승 곁 오릿대의 오리는 나무로 깎은 붕어를 부리에 물고 있고, 모두 북쪽을 향해 있다고 하지요.

장승제의 순서는 이렇습니다. 음력 정월 초이튿날 두 마을 사람들이 집집을 돌며 걸립을 하고, 생기복덕을 따져 제관·축관·유사를 뽑습니다.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는 유사 집 우물에서 우물제를 지내고 풍물패가 집집을 돌며 샘굿을 칩니다. 대보름날 아침에는 농기를 앞세운 풍물패와 제관이 길한 방향의 산에 가서 장승 나무를 베어 오고, 한나절 동안 마을 공터에서 장승을 깎습니다.

저녁이 되면 드디어 혼례입니다. 남녀 장승을 베로 묶어 합궁을 시키는데, 이때 두 마을 사람들이 상대 장승이 먼저 굽히고 들어오라며 실랑이를 벌인다고 합니다. 이어 초례상을 사이에 두고 교배례와 합근례를 올리고, 초례상의 음식과 술을 나누며 꽹과리를 한바탕 칩니다. 그다음 각자 자기 마을 장승을 모시고 가서 장승제를 지내는데 축문을 스물한 번 읽습니다. 제가 끝나면 음복을 하고 방포 세 발을 쏜 뒤, 장수 횃불을 앞세우고 졸병 횃불과 풍물패가 뒤따르는 횃불놀이를 하며 마을로 올라옵니다. 횃불이 먼저 꺼지면 지는 것으로 친다고 하니 꽤 치열했겠지요. 마지막으로 두 마을 사람들이 풍물을 치며 만나 함께 노는 '합고'로 하루가 마무리됩니다. 대백과는 장승을 신랑과 신부로 여겨 혼례를 치러 주는 점, 그리고 횃불놀이와 합고가 두 마을의 화합과 결속을 다지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합니다.

1편에서 장승의 얼굴과 이름을 만났다면, 2편에서는 장승이 서 있는 자리와 그 앞에서 벌어지던 마을의 하루를 보았습니다. 다음에 장승을 만나시면 재료와 생김새, 몸통의 글씨, 그리고 그 장승을 해마다 새로 깎아 세웠을 사람들의 손길까지 함께 떠올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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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신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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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모두 직접 열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장승」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8619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나주 운흥사 석장승」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1498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나주 불회사 석장승」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1484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충무시 문화동 벅수」(통영 문화동 벅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8137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통영 문화동 벅수」 https://digital.khs.go.kr/heri/heriDetail.do?ctptNo=1483800070000&ctptUid=13898859730457705495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공주 탄천 장승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4506
- 참고(1편): https://sinimalhaetda.com/board/all-about/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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