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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산별신제 — 백제 장군의 넋을 달래고 마을의 안녕을 비는 부여의 마을 제사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9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에는 해마다 봄이 오기 전, 마을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준비하는 큰 제사가 있습니다. 바로 국가무형유산 은산별신제(恩山別神祭)입니다. 은산별신제는 백제를 지키다 억울하게 숨진 장군과 군사들의 넋을 달래고,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비는 마을 제사이자 축제입니다. 1966년 2월 15일 중요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으니, 우리나라 무형유산 가운데서도 꽤 이른 시기에 이름을 올린 셈이지요. 오늘은 은산별신제가 어떤 이야기에서 시작되었고, 어떤 신을 모시며, 어떤 순서로 치러지는지 차근차근 따라가 보겠습니다.

■ 은산별신제란? 백제의 넋을 위로하는 마을 제사

은산별신제는 은산리 주민들이 마을 사당인 은산별신당(恩山別神堂)에 모여 지내는 제사입니다. 디지털부여문화대전은 이를 "해마다 음력 2월에 전쟁에서 사망한 원혼을 위로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라고 정의합니다. 보통 100명 안팎의 인원이 참여하는 큰 행사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를 '마을축제'라고 소개하기도 합니다.

은산은 예로부터 부여읍에서 서북쪽으로 가는 첫 역원(驛院)이 있던 곳이라 인근 농산물이 모여들었고, 5일마다 큰 장이 섰다고 합니다. 사람과 물건이 모이는 장터 마을이었기에, 제사가 열리면 자연스레 온 동네가 들썩이는 잔치가 되었던 것이지요. 지정 이후 명칭도 시대에 따라 바뀌어, 2021년 11월 19일 지정 번호가 삭제되며 국가무형문화재로,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국가무형유산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 돌림병을 멈춘 꿈 이야기, 별신제의 기원 전설

은산별신제가 언제, 무슨 까닭으로 시작되었는지 고증할 만한 문헌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대신 마을에는 오래된 전설이 전해 옵니다.

옛날 은산 마을에 돌림병이 돌아 날마다 많은 사람이 죽어 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마을의 한 노인이 잠시 낮잠이 들었는데, 백마를 탄 장군이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백제를 지키던 장군인데, 많은 부하와 함께 억울하게 죽어 백골이 산야에 흩어져 있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 영혼이 편히 쉬지 못하니 잘 간수해 달라." 그렇게 해 주면 마을에서 역질을 쫓아 주겠다는 약속도 덧붙였지요.

노인이 마을 사람들과 꿈에서 일러 준 곳에 가 보니, 정말로 백골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유골을 정성껏 모아 무덤을 만들고 장사를 지내 주었고, 그러자 돌림병이 사라져 마을이 평안을 되찾았습니다. 그 뒤로 사당을 짓고 백제 장군을 모시며 "병마를 없애고 마을을 태평하게 해 주십사" 빌어 온 제사가 오늘의 별신제라고 합니다. 은산별신제보존회관에는 1937년과 1939년에 찍은 '은산별신제 기념사진'이 보관되어 있어, 이 제의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음을 보여 줍니다.

■ 별신당에 모신 세 분, 산신과 복신장군·토진대사

'별신'은 특별한 신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은산별신당은 당산 남쪽, 고목이 울창한 숲속에 자리한 한 칸 방과 마루로 된 기와집입니다. 당 안에는 세 분의 신이 모셔져 있는데, 가운데에 산신(山神)의 화상이, 좌우로 복신장군과 토진대사의 초상화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디지털부여문화대전에 따르면 복신은 백제 제30대 무왕의 조카인 귀실복신(鬼室福信)으로, 토진은 승려 도침(道琛)이 잘못 전해진 이름으로 추정됩니다. 두 사람 모두 백제가 무너진 뒤 나라를 다시 세우려 했던 백제부흥운동의 주역이었지요. 주신이 산신인 점으로 보아 본래는 마을의 산신제였는데, 후대에 두 인물을 함께 모시게 되면서 지금의 별신제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은산별신제는 나라 잃은 장군의 슬픔을 담은 '장군제(將軍祭)'라는 점이 큰 특징으로 꼽힙니다. 제의 중에는 중국과 우리나라 옛 명장들의 이름을 늘어놓는 장군축(將軍祝)이 있고, 말을 타거나 옛 군복인 융복을 입고 진을 치는 의식도 등장합니다.

■ 대장부터 화주까지, 100여 명이 함께하는 준비

별신제는 혼자서는 결코 치를 수 없는 행사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연말쯤 마을 원로와 유지들이 기성회를 꾸려 경비와 절차를 준비하고 임원을 뽑았습니다. 임원은 대장 1명, 중군 1명, 사령집사 1명, 선배비장 2명, 후배비장 2명, 통인 1명, 화주 1명, 육화주 1명, 별좌 3명, 축관 1명 등으로 꾸려지고, 여기에 무당, 꽃을 만드는 조화자, 악사, 농악수, 기수, 제물을 나르는 사람까지 더하면 100명 가까운 인원이 필요했습니다.

가장 명예로운 자리인 대장은 덕망과 재력을 갖춘 사람이 맡았고, 임원 모두가 부정 없는 깨끗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상을 당했거나 살생을 한 사람은 맡을 수 없었지요. 당굿을 할 때는 깃대 끝에 방울을 달아 두는데, 무녀가 가무를 해서 방울이 울리면 신이 응답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방울이 울리지 않으면 임원 가운데 부정한 사람이 있다고 보아, 추운 밤에도 은산천 얼음을 깨고 찬물에 다시 목욕재계를 했다고 합니다. 경비는 예전에는 집집을 돌며 곡식과 돈을 모으는 걸립으로 충당했고, 1986년 이후에는 법인으로 결성된 은산별신제보존회가 운영을 맡고 있습니다.

■ 물봉하기에서 장승제까지, 별신제의 순서

예전에는 보름 가까이 걸렸다는 별신제는 근래에 엿새 남짓으로 줄어 진행되어 왔습니다. 디지털부여문화대전이 소개하는 순서를 따라가 보면 이렇습니다.

첫날에는 은산천에 금줄을 둘러 제의가 끝날 때까지 물을 쓰지 못하게 하는 '물봉하기'와, 그 물로 술을 빚는 '조라술 담그기'로 문을 엽니다. 둘째 날에는 군진을 표시하는 대를 베어 오는 '진대베기'를 하는데, 수십 명이 산에 올라 나무를 베어 옵니다. 이날부터 임원들의 집을 돌며 부정을 쫓고 길운을 빌어 주는 집굿도 이어집니다.

셋째 날의 '꽃받기'는 신께 올릴 꽃을 받아 오는 절차입니다. 예전에는 부여읍까지 걸어가 꽃을 받아 왔지만, 근래에는 부소산의 삼충사(三忠祠) 등에서 받아 오기도 합니다. 넷째 날에는 제물과 꽃을 차리는 상당 행사를 하고, 저녁 9시 무렵 본제를 지냅니다. 다섯째 날 오전에는 별신당 앞마당에서 임원과 주민의 무사태평을 비는 상당굿을, 오후에는 수고한 임원들을 위로하는 뒤풀이 하당굿을 엽니다. 이때 꽃받기에서 받은 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잘 간직하면 다음 별신제까지 액을 막고 복을 부른다고 합니다. 마지막 날에는 마을 동서남북 길가에 장승을 세워 장승제를 지내고, 저녁에는 산신께 감사드리는 독산제(獨山祭)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 오늘의 은산별신제, 대제와 소제로 이어지는 봄 축제

지금의 은산별신제는 지역 주민이 함께하는 종합 문화예술축제로 커졌습니다. 은산별신제보존회가 주관해 짝수 해에는 모든 절차를 따르는 대제(大祭)를, 홀수 해에는 꽃받기와 진대베기 등 몇 가지를 생략한 소제(小祭)를 지내며, 대개 양력 3월 말이나 4월 초에 열립니다. 예컨대 2023년에는 3월 31일부터 4월 3일까지 나흘 동안 물봉하기, 집굿, 진대베기와 꽃받기, 상당굿과 하당굿, 장승제 순으로 치러졌습니다. 다만 시기와 주기는 기록마다 조금씩 달라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예전에는 3년에 한 번 정월에 지내는 일이 많았고 윤달에는 지내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별신제 때면 서커스단이 들어오고 연일 난장이 벌어져 학교가 임시로 쉴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떠들썩함은 많이 사라졌지만, 억울하게 스러진 이들을 잊지 않고 위로하며 마을의 내일을 함께 비는 마음만큼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년 봄 부여에 들르신다면, 은산천의 금줄과 별신당 숲을 떠올리며 1,300여 년 전 백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시는 건 어떨까요.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은산별신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831 , 디지털부여문화대전 '은산별신제' https://buyeo.grandculture.net/buyeo/toc/GC09001309 , 위키백과 '은산별신제' https://ko.wikipedia.org/wiki/%EC%9D%80%EC%82%B0%EB%B3%84%EC%8B%A0%EC%A0%9C

제작자: 신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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