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벅수 뜻: 벅수는 장승, 그중에서도 주로 돌장승을 경상남도와 전라도 지방에서 부르던 이름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벅수를 '복수(卜水)'가 잘못 전해진 말로 보며, 전국 장승 유적에서 장승·장성·장신 다음으로 많이 쓰인 이름이 벅수·벅시라고 적습니다.
이 글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장승」·「충무시 문화동 벅수」·「남원 서천리 당산」 항목과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의 통영 문화동 벅수 설명을 읽고 운영진이 확인한 내용만 옮긴 정보 글입니다. 높이와 연도 같은 숫자는 모두 이 자료에 적힌 그대로입니다.
남해안 여행길에 벙거지를 쓰고 송곳니를 드러낸 돌사람을 보고 '저게 장승이야, 벅수야?' 하고 묻는 분이 많습니다. 무당이나 점집 이야기를 찾다 보면 마을을 지키던 신앙물로 벅수가 자주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 글은 벅수라는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 지역마다 장승을 어떻게 달리 불렀는지,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표 벅수 두 곳은 어떤 모습인지를 차례로 정리합니다.
사진: 순천 낙안읍성의 장승. Bernard Gagnon 촬영, CC0(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벅수 뜻 — '복수(卜水)'의 와전이라는 풀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충무시 문화동 벅수」 항목은 '경상남도와 전라도 지방에서는 돌장승을 벅수라고도 하는데 이는 복수(卜水)의 와전인 듯하다'고 설명합니다. 단정하지 않고 '~인 듯하다'라고 쓴 점에서 보듯, 이름의 뿌리는 아직 학설 수준이라는 점을 함께 기억해 두면 좋습니다.
같은 사전 「장승」 항목의 현지 조사 정리를 보면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 해안에서는 장승을 장승·장성·벅수·벅시·법수·법시·당산할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전국 장승 유적 가운데 장승·장성·장신이라는 이름이 가장 많고, 그다음이 벅수·벅시라고 합니다. 남쪽 바닷가 마을에서 벅수는 결코 낯선 말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요약하면 벅수는 장승과 다른 별개의 신앙물이 아니라 같은 마을 수호 기둥을 지역 말로 부른 이름입니다. 다만 남해안 일대에서는 나무보다 돌로 깎은 장승을 가리킬 때 이 말을 즐겨 썼습니다.
지역마다 다른 장승 이름 — 수살막이, 돌미륵, 돌하르방
이름의 다양함은 장승 문화가 얼마나 넓게 퍼져 있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사전에 따르면 충청남북도에서는 장승·장신·수살막이·수살이·수살목, 경기도에서는 장승, 평안도와 함경도에서는 댱승·돌미륵이라 불렀고, 제주도에서는 돌하르방·우석목·옹중석·거오기·거액 같은 이름이 쓰였습니다.
문헌 속 이름은 더 오래됐습니다. 신라와 고려 시대 기록에는 장생·장생표주·국장생·황장생 같은 말이 보이고, 고려 후기부터 조선 시대에는 후(堠)·장승·장생우·장선 등이 쓰였습니다. 최세진이 『훈몽자회』에서 후(堠)를 '댱승 후'로 새긴 것을 근거로, 사전은 장승이라는 이름이 16세기 이후 일반화되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같은 돌사람을 두고 경남에서는 벅수, 충청에서는 수살막이, 제주에서는 돌하르방이라 부르는 일이 생깁니다. 이름이 달라도 마을 어귀에서 잡귀를 막고 길을 알려 주던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통영 문화동 벅수 — 1906년에 세운 '토지대장군' 독장승
가장 유명한 벅수는 경상남도 통영시 문화동 118-5번지에 있는 통영 문화동 벅수입니다. 1968년 11월 25일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됐고, 2015년 '충무시 문화동 벅수'에서 지금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국가유산청 설명에 따르면 세병관으로 오르는 길가 오른쪽에 서 있습니다.
사전은 1906년 마을 사람들이 풍수지리로 보아 동남방이 허하다고 여겨 재앙을 막고 평안을 빌려고 세웠다고 적습니다. 높이는 201㎝, 둘레는 155㎝입니다. 벙거지를 쓰고 이마에 주름이 있으며, 윗송곳니가 아래로 길게 나오고 수염 세 가닥이 비스듬히 패어 있습니다. 몸체 앞면에는 土地大將軍(토지대장군)이 새겨져 있고, 국가유산청은 뒷면 글씨 '광무십년병오팔월일동낙동 입'으로 건립 연대를 알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특이한 점은 남녀 한 쌍이 아니라 하나만 선 독장승이라는 것입니다. 국가유산청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낮은 지대라 기를 보강하려고 세운 것으로 보고, 유례가 드문 독장승이라 가치가 높다고 평가합니다. 지정 직후 초라해 보인다며 울긋불긋 칠을 했다가 다시 벗겨 냈다는 일화도 사전에 실려 있습니다.
남원 서천리 당산 — 부부싸움 끝에 목이 부러졌다는 돌장승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서천리에는 마을 사람들이 벅수라고 부르는 돌장승 한 쌍이 있습니다. 1970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원 서천리 당산'입니다. 마을 서쪽 길 양편에 마주 서 있는데, 한쪽에는 방어대장군(防禦大將軍), 다른 쪽에는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이 새겨져 있어 마을의 허한 서쪽을 막는 풍수 신앙에서 세운 것으로 봅니다.
방어대장군은 높이 220㎝, 너비 50㎝로 귀가 없고 수염 한 가닥이 있는 남신상이고, 진서대장군은 높이 195㎝, 너비 58㎝로 귀가 달린 여신상입니다. 두 장승은 벙거지 모양과 새긴 솜씨가 달라 만든 사람이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이 돌장승은 머리와 몸통이 떨어진 것을 다시 붙였는데, 마을에는 부부 장승이 어느 날 싸우다가 여신상의 목이 부러졌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마을에서는 동짓달 초 당산나무에 제사를 지낸 뒤 돌장승에게도 간단한 제를 올립니다. 당산나무·솟대·장승이 한데 어울려 마을을 지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벅수같이 서 있다' — 속담과 수수께끼 속 벅수
벅수는 말 속에도 남았습니다. 사전 「장승」 항목은 멍하니 서 있는 사람을 두고 '벅수같이 멍하니 서 있다'고 하고, 키만 멋없이 큰 사람을 '구척 장승 같다'고 한다고 소개합니다. 터무니없는 요구를 비꼬는 '장승 입에다 밀가루 발라 놓고 국수값 내라고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수수께끼로는 '입이 크되 말 못하는 것', '밤낮을 눈뜨고 있는 것', '바람이 불든 눈이 오든 밤낮없이 길을 가리키는 것'이 장승을 가리켰습니다. 무섭게 부릅뜬 눈과 주먹코가 보는 사람에 따라 어수룩하게도, 익살스럽게도 보였기에 이런 말이 생겼을 것입니다.
장승을 함부로 건드리면 동티가 난다는 믿음도 강했습니다. 판소리 계통 소설 「변강쇠가」는 장승을 패서 땔감으로 쓴 변강쇠가 동티로 급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장승이 단순한 이정표를 넘어 신앙의 대상이었다는 증거입니다.
벅수 앞에서 신점·점집을 떠올린다면 — 함께 읽을 글
벅수는 마을 공동체가 함께 모시던 수호신이라 특정 무당이나 점집과 직접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장승제나 당산굿을 무당이 맡던 마을도 있었기에, 무속을 이해하는 입문 자료로 읽기 좋습니다. 장승과 솟대의 기본은 장승과 솟대 정리에 있습니다.
무당과 신점, 굿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알고 싶다면 무당에 관한 기본 정리를, 점집을 고를 때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는 점집·신점 정보 글을 먼저 읽어 보세요. 한두 곳의 말만 듣고 큰 비용이 드는 굿을 결정하지 말고, 의례 이름과 목적, 총비용을 미리 글로 받아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장승」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8619 , 「충무시 문화동 벅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8137 , 「남원 서천리 당산」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2057 ,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통영 문화동 벅수」 https://digital.khs.go.kr/heri/heriDetail.do?ctptNo=1483800070000&ctptUid=13898859730457705495
사진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Jangseung_in_Naganeupseong_01.jpg (Bernard Gagnon, CC0)
마을신앙을 소개하는 정보 글이며, 특정 신앙물의 효험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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