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시골 외갓집 가는 길, 마을 어귀에서 눈을 부릅뜬 채 서 있던 커다란 나무 얼굴을 기억하시나요. 왕방울 같은 눈에 주먹코, 귀밑까지 찢어진 입. 처음엔 무섭다가도 자꾸 보면 어딘가 웃음이 나던 그 얼굴이 바로 장승입니다. 그리고 그 옆, 긴 장대 끝에 나무 새가 앉아 있던 것이 솟대지요. 오늘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국가유산 기록을 따라, 마을의 입구를 지켜 온 장승과 솟대 이야기를 천천히 나눠 보려 합니다.
■ 마을 어귀의 문지기, 장승이란 무엇일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장승을 "통나무나 돌에 사람의 얼굴 모양을 새겨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운 목상이나 석상을 가리키는 신목(神木)"이라고 설명합니다. 마을을 지키는 수문신이자 수호신이었고, 동시에 사찰이나 고을 사이의 경계표, 길을 알려 주는 이정표 구실도 했습니다.
기둥 윗부분에는 사람이나 신장(神將)의 얼굴을 소박하게 그리거나 깎고, 아랫부분에는 '천하대장군', '지하대장군' 같은 글씨를 새깁니다. 보통은 남녀 한 쌍이 마주 서 있는데, 대백과에 따르면 남장승은 관을 쓰고 눈을 부릅뜬 채 덧니와 수염을 단 모습이고, 여장승은 관 없이 얼굴에 연지와 곤지를 찍은 모습으로 표현되곤 합니다. 남장승 몸에 붉은 칠을, 여장승 몸에 푸른 칠을 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장승은 홀로 서 있는 신이 아니었습니다. 대백과는 장승이 솟대, 돌무더기, 신목, 서낭당, 선돌과 함께 '동제 복합문화'를 이룬다고 말합니다. 마을 뒤편 산신당이나 서낭당이 윗당(상당)이라면, 마을 입구의 장승과 솟대, 돌무더기는 아랫당(하당)이 되어 함께 마을을 감싸 안았던 것이지요.
■ 벅수, 수살목, 돌하르방… 지역마다 다른 이름
같은 장승이라도 부르는 이름은 고장마다 달랐습니다. 대백과에 실린 현지 조사에 따르면 전라도와 경남 해안에서는 장승·장성·벅수·벅시·법수·당산할아버지, 충청도에서는 장신·수살막이·수살목, 평안도와 함경도에서는 댱승·돌미륵이라 불렀고, 제주도에서는 돌하르방·우석목·옹중석 같은 이름으로 전해졌습니다. 전국 장승 유적 가운데에는 장승·장성·장신이라는 이름이 가장 많고, 그다음이 벅수·벅시라고 합니다.
글자로 남은 기록도 흥미롭습니다. 신라와 고려 때 문헌에는 '장생(長生)', '장생표주', '국장생', '황장생' 같은 말이 보이고, 고려 후기부터 조선에 걸쳐 '장승(長丞·長栍)', '후(堠)' 등 여러 표기가 쓰였습니다. 특히 16세기 최세진이 지은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에 '후(堠)'를 '댱승 후'로 풀어 놓은 것을 보면, 이 무렵부터 '장승'이라는 이름이 널리 쓰였음을 알 수 있다고 대백과는 설명합니다.
■ 759년 기록부터 1085년 국장생 석표까지
장승이 언제 처음 생겼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대백과는 남근숭배에서 왔다는 설, 사찰 땅의 경계 표시에서 비롯됐다는 장생고표지설, 솟대·선돌·서낭당에서 나왔다는 고유민속 기원설, 그리고 북방이나 남방 문화와 비교하는 여러 설을 함께 소개하면서 고유민속 기원설과 비교민속 기원설이 함께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적습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전남 장흥 보림사의 보조선사 창성탑비입니다. 비문에 신라 경덕왕 18년, 곧 759년에 세운 '장생표주'가 언급되어 있다고 합니다. 실물로 남은 대표적인 예는 경남 양산의 '통도사 국장생 석표'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석표는 고려 선종 2년(1085)에 세워졌고,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비문에는 통도사의 보고에 따라 상서호부가 통첩을 내려 국장생을 고쳐 세우게 했다는 내용이 이두가 섞인 글로 새겨져 있습니다. '국장생'이란 나라의 명으로 세운 장생이라는 뜻이고,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에는 넓은 절 땅을 표시하고 산천을 비보하려고 모두 열두 곳에 세웠다고 전한다고 합니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길 표지로서의 역할도 법에 담겼습니다. 대백과에 따르면 『경국대전』은 10리, 30리마다 이수와 지명을 적은 '후(堠)'를 세우도록 정했고, 이 '후'가 차츰 장승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습니다. 16세기 이후에는 장승이 전국적으로 퍼져 흔한 풍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 남원 실상사 돌장승, 1725년의 얼굴
장승을 직접 보고 싶다면 전북 남원 산내면의 실상사 입구를 찾아가 볼 만합니다. 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남원 실상사 석장승'은 3기로, 1969년 12월 17일 지정되어 지금은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디지털남원문화대전은 '대장군'이라 새긴 장승의 받침돌에 옹정 3년, 곧 1725년 3월에 세웠다는 글이 있어 조성 연대가 밝혀진 귀한 장승이라고 소개합니다.
세 장승의 이름은 '대장군', '상원주장군', '옹호금사축귀장군'입니다. 머리에 벙거지를 쓰고, 크고 둥근 눈에 뭉툭한 주먹코, 위로 삐져나온 송곳니 때문에 언뜻 험상궂어 보이지만, 입가에 번진 미소가 순한 마음씨를 드러낸다는 평을 듣습니다. 주민들 사이에는 큰 홍수 때 한 기가 급류에 떠내려가 원래는 네 기였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고 합니다.
대백과에 따르면 1999년 국립민속박물관 조사로 학계에 알려진 장승 유적지는 540여 곳이었지만, 그중에는 이미 사라진 곳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돌장승 한 기 한 기가 그래서 더 소중합니다.
■ 하늘과 마을을 잇는 새, 솟대
장승 곁에 자주 함께 서는 솟대는 무엇일까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솟대를 "성역이나 경계의 상징 또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세우는 신목"이라고 풀이합니다. 지역과 목적에 따라 짐대, 소줏대, 솔대, 거릿대, 수살목, 서낭대 등으로 불렸습니다. 솟대의 뿌리에 대해서는 『삼국지』 마한전에 나오는 소도(蘇塗)에서 비롯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하며, 민속학자 손진태는 「소도고」에서 소도를 큰 나무, 곧 오늘날 전해지는 솟대로 보았습니다.
솟대는 보통 긴 장대 끝에 세 갈래 나뭇가지를 얹고 그 위에 새 세 마리를 깎아 올립니다. 대백과는 이 새를 봉황이나 물오리라고 부르지만 특정한 새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빌기 위해, 혹은 과거에 급제한 이가 집안의 경사를 기념해 세우기도 했습니다.
강릉 강문동의 '진또배기'도 솟대의 한 모습입니다. 대백과에 따르면 높이 약 5m의 소나무 장대 꼭대기에 세 갈래 가지를 얹고 나무오리를 올렸는데, 마을의 세 가지 재난인 수재·풍재·화재를 막아 준다고 믿었고, 잘 모시지 않으면 벼농사가 안 된다는 말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 떠들썩한 장승제와 우리말 속 장승
장승을 모시는 의례는 장승제라고 부릅니다. 대백과는 장승제가 마을 동제의 일부로 치러지며, 잡귀를 물리는 의식이라 "매우 떠들썩하고 흥겹게" 지낸다고 설명합니다. 경기도 광주 엄미리에서는 2년마다 산신제 날 이른 아침, 마을 남자들이 오리나무를 골라 천하대장군·지하대장군 한 쌍과 솟대를 깎아 마을 입구에 세우고 고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무당을 불러 굿을 했지만 요즘은 주민들끼리 고사만 지낸다고 하고, 한밤에 조용하고 엄숙하게 올리는 산신제와 대조를 이룬다고 대백과는 적고 있습니다.
무당을 모셔 마을굿을 할 때는 산신을 모시고 마을을 한 바퀴 도는 굿(돌돌이, 고을맞이 등)을 하면서 장승도 함께 모셨습니다. 수원·인천·부천 등 경기 남부에서는 동방청제장군, 남방적제장군, 서방백제장군, 북방흑제장군 네 장승을 마을 사방에 세우고, 중앙황제장군은 깃발만 만든다고 합니다. 나무 장승은 비바람에 10년을 버티기 어려워 해마다, 또는 두세 해마다 새로 깎아 세우는 곳이 많았지요.
장승은 우리말 속에도 살아 있습니다. 키만 멋없이 큰 사람을 두고 "구척 장승 같다", 멍하니 서 있는 사람에게 "벅수같이 서 있다"라고 하고, "입이 크되 말 못하는 것은?" 같은 수수께끼도 전해집니다. 장승을 패어 땔감으로 썼다가 동티가 나 급살했다는 「변강쇠가」 이야기도 장승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던 옛사람들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다음에 마을 어귀나 절 입구에서 장승과 솟대를 만나면, 무섭게 부릅뜬 눈 너머의 따뜻한 마음을 한번 느껴 보시면 좋겠습니다. 잡귀와 역병을 막고 마을을 지켜 달라는 소박한 바람이, 수백 년 동안 그 자리에 함께 서 있었으니까요.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장승」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8619 , 「솟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0608 , 「강릉 강문동 짐대백이」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1074 , 「양산 통도사 국장생 석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9268 , 국가유산포털 「남원 실상사 석장승」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483500150000&pageNo=1_1_1_1&sngl=Y , 디지털남원문화대전 「남원 실상사 석장승」 https://namwon.grandculture.net/namwon/toc/GC00601505 , 디지털양산문화대전 「양산 통도사 국장생 석표」 https://www.grandculture.net/yangsan/toc/GC0140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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