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개신교)

이화학당 — 1886년 정동 한 학생으로 시작된 한국 최초 근대 여학교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5

한국 개신교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교회와 병원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학교입니다. 1880년대 조선에서 여성은 제도적으로 배움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 때에 미국 북감리교 여선교사 한 사람이 서울 정동 자택에서 여학생 한 명을 맞이하며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날이 1886년 5월 31일입니다. 오늘은 이화여자대학교 공식 연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에 정리된 기록을 따라, 한 명의 학생으로 시작된 이화학당이 어떻게 한국 최초 근대 여학교로 자리 잡았는지 차분히 살펴보겠습니다.

■ 정동 언덕, 한 명의 학생으로 문을 열다

메리 F. 스크랜턴(Mary Fletcher Scranton)은 미국 북감리교 여선교부 선교사로, 의사였던 아들 윌리엄 스크랜턴 부부와 함께 1885년 조선에 도착했습니다. 우리역사넷은 그가 명문 북감리교 목사 집안 출신이었으며, 조선 여성 교육을 담당할 여선교사로 파견되었다고 전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가 선교사업의 중요한 분야로 한국 여성을 위한 교육기관을 세울 것을 결심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당시 서울에는 이미 남성 교육 기관들이 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이 남학생을 가르쳤고, 정부가 세운 육영공원도 양반 자제를 대상으로 했습니다. 그러나 여학생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학교는 없었습니다. 스크랜턴은 정동에서 학생을 모으려 애썼지만, 외국인이 규중의 부녀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고, 부모들도 딸을 선뜻 기숙학교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우리역사넷은 이웃들이 “서양인이 아이를 미국에 데려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겁을 주었다는 일화도 소개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스크랜턴이 어머니의 허락 없이는 십리도 데리고 나가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 주며 첫 학생을 맞이했다고 전합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연혁은 그날을 분명히 적습니다. 1886년 5월 31일, 서울 정동의 자택에서 한 명의 학생으로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작은 교실이 한국 근대 여성교육의 출발점이자 이화학당의 창립일로 기념됩니다. 학당 건물은 그해 완성되어 11월부터 사용되기 시작했고, 아펜젤러는 이곳을 ‘서울에서 가장 좋은 전망을 가진 집’이라고 표현했다고 우리역사넷은 전합니다.

■ 고종이 내려 준 이름, 이화학당

학교가 자리를 잡아가던 1887년 2월, 고종이 ‘이화학당(梨花學堂)’이라는 명칭을 하사했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리역사넷이 공통으로 확인하는 사실입니다. 배재학당과 마찬가지로 임금이 직접 교명을 정해 준 것은,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학교가 조선 사회에서 공인되었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이름에 담긴 뜻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황실을 상징하는 배꽃(梨花)이 여성의 순결성과 명랑성을 상징했기에 ‘이화’를 택했다고 소개합니다. 스크랜턴은 당초 ‘전신학교(Entire Trust School)’라 부르려 했으나, 고종의 은총에 화답하는 마음으로 ‘이화’를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우리역사넷은 정동 일대에 배밭이 많았고 학당 터에 이화정(梨花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합리적 유래로 꼽습니다. 어느 쪽이든, ‘배꽃 핀 골에 세운 학당’이라는 이미지는 이후 이화의 상징으로 오래 남았습니다.

현판이 내려진 뒤 학생 수는 조금씩 늘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887년 7명, 1888년 18명, 1893년 30명으로 늘어났다고 적습니다. 개화지사의 자녀와 부인 등 상류층과 서민 자녀가 함께 다니는 학교로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 ‘보다 나은 한국인’을 향한 교육

스크랜턴이 밝힌 교육 목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우리역사넷에 거의 같은 문장으로 남아 있습니다. 여아들을 외국인의 생활·의복·환경에 맞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을 보다 나은 한국인으로 만들고, 한국적인 것에 긍지를 갖게 하며, 그리스도와 그의 교훈을 통해 온전한 한국을 이루고자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와 교육이 한 자리에서 만난 이화학당의 이념이 여기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정해진 학년제가 없었습니다. 평균 열 살 전후의 학생이 들어와 결혼할 때까지 십여 년을 기숙사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우리역사넷은 전합니다. 교과는 한문이 큰 비중을 차지했고, 1897년에는 학생들이 남자들처럼 한문을 정규 과정에 넣어 달라고 요청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여선생이 교과를 담당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한문만은 남자 선생이 맡되 뒤돌아 앉아 질문에만 답하는 식으로 가르치기도 했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적습니다. 당시의 내외법과 풍속이 교실 안에도 그대로 스며들어 있었던 셈입니다.

체조를 둘러싼 소동도 유명합니다. 여학생들이 손을 들고 발을 벌리며 뛰는 체조가 윤리 문제로까지 비화했고, 학부형들이 딸을 데려가거나 한성부가 체조 중단을 통고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1899년 5월 창의문 밖으로 꽃놀이를 간 일은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에 “여학원의 화류는 500년 이래 처음”이라고 기록될 만큼 큰 변화였습니다. 1908년에는 창립기념과 함께 제1회 운동회가 열렸고, 김윤식은 여학생 백여 명의 발맞춤과 경기를 보고 “가르침의 힘”이라고 남겼습니다.

■ 중학과에서 대학과로, 이화여전에서 이화여대로

학제가 본격적으로 갖춰진 것은 1904년이었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연혁과 우리역사넷에 따르면 그해 중학과(중등과)가 설치되었고, 4년제 과정에 정원 80명, 입학 연령 14~22세의 학칙이 만들어졌습니다. 교과에는 국어·한문·산술·역사·지리·성경·영어·이과·도화·생리·음악·작문습자·재봉·체조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1908년 6월에는 제1회 중등과 졸업식이 열렸고, 그해 가을 초등과와 고등과도 더해져 초·중·고등 과정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1910년에는 대학과가 신설되었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연혁이 확인하는 날짜입니다. 이후 식민지 시기 교육령의 제약 속에서도 여성 고등교육의 불씨는 이어졌고, 1925년 4월 24일 이화여자전문학교(이화여전)가 인가되었습니다. 학교법인 이화학당 연혁과 이화 140주년 자료가 이를 전합니다. 앨리스 아펜젤러 당장이 대학과와 대학예과를 독립 개편하여 조선에서 여성 최고 학부로 자리 잡게 한 것입니다. 1927년 3월에는 이화여전 제1회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8월 15일, 이화는 문교부 제1호 종합대학교 인가를 받아 이화여자대학교로 설립되었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연혁과 140주년 기념 자료가 공통으로 밝히는 사실입니다. 한 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정동의 교실이, 60년 만에 대한민국 최초의 종합대학교 인가를 받은 여대로 이어진 것입니다.

■ 정동에서 신촌으로 이어진 배꽃의 이야기

이화학당 이야기는 개신교 선교가 이 땅에서 교육으로 뿌리내린 방식을 보여 줍니다. 설교단보다 먼저 교실이 열렸고, 한 명의 여학생을 가르치겠다는 작지만 끈질긴 결심이 한국 여성교육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고종이 내려 준 ‘이화’라는 이름은 배꽃처럼 피어나 오늘날 이화여대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오늘 정동 거리를 걷거나, 신촌 캠퍼스의 배꽃을 바라보는 순간, 140여 년 전 정동 자택에서 첫 수업을 열었던 스크랜턴과 그 한 명의 학생을 한 번 떠올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배움의 문이 닫혀 있던 이들에게 교실의 불을 켜 준 손길이, 한 나라의 여성교육과 신앙의 역사를 함께 열었다는 사실이 잔잔한 위로가 되어 줄 것입니다.

출처: 이화여자대학교 「이화학당시대」 https://www.ewha.ac.kr/ewha/intro/history01-1.do , 이화여자대학교 「학교법인 이화학당」 https://ewha.ac.kr/ewha/intro/foundation.do , 이화여자대학교 「종합대학교 확립기」 https://www.ewha.ac.kr/ewha/intro/history01-4.do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화학당」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6618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근대 여성 교육의 기틀을 세우다」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code=kc_age_40&levelId=kc_o402410 , 이화여자대학교 140주년 「HISTORY」 https://140.ewha.ac.kr/ewha140/history/history.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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