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개신교)

새문안교회 — 1887년 정동 사랑채에서 시작된 한국 장로교회의 어머니 교회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2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서대문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두 팔을 활짝 벌린 듯한 곡선의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한국 장로교회의 '모교회(어머니 교회)'로 불리는 새문안교회입니다. 1887년 가을, 선교사의 집 사랑채에서 열네 명의 한국인이 모여 드린 작은 예배가 그 시작이었지요. 오늘은 사랑채의 등불에서 시작해 130여 년을 이어 온 새문안교회의 이야기를, 확인된 기록을 따라 차근차근 들려드리려 합니다.

■ 1887년 9월 27일 밤, 정동 사랑채의 첫 예배

새문안교회의 생일은 1887년 9월 27일, 화요일 밤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이날 서울 정동에 있던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한국 이름 원두우) 목사의 사택에서 14명의 세례교인이 모여 한국 최초의 장로교회를 조직했습니다. 마침 만주에서 한글 성경 번역을 이끌던 존 로스(John Ross) 목사도 그 자리에 함께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날 장로 두 사람이 뽑혔고, 10월 2일 주일에는 이 두 사람이 언더우드 목사와 로스 목사로부터 장로 안수를 받았습니다. 같은 날 한국인 한 사람이 더 세례를 받아, 새문안교회의 첫 세례교인은 열다섯 명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세례교인과 장로를 갖춘 '조직교회'가 처음 세워졌다는 점에서, 새문안교회는 흔히 "한국 최초의 조직교회"로 소개됩니다. 첫 예배를 드린 사랑채는 지금의 예원학교 운동장 자리쯤이었다고 하니, 정동길을 걸을 때 한번 떠올려 보셔도 좋겠습니다.

다만 처음 뽑힌 두 장로가 누구였는지는 기록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해집니다. 백과사전은 이들이 의주 출신으로 서상륜의 사촌들이었다고 적고 있고, 다른 자료에서는 백홍준과 서상륜을 꼽기도 합니다. 창립일과 초기 사정에 대해서는 2023년에도 「1887년 새문안교회 창립일의 재검토」라는 연구 논문이 나올 만큼, 지금도 역사학자들이 꼼꼼히 들여다보는 주제입니다.

■ 의주와 소래의 상인들 — 먼저 복음을 품고 온 사람들

새문안교회의 첫 교인들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백과사전은 당시 15명의 세례교인이 모두 서울에 살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평안도 의주와 황해도 소래 출신의 상인들이었다고 설명합니다. 1882년 서상륜이 서울에 왔을 때, 복음을 드러내 놓고 전하기 어려운 시절이라 같은 고향 사람들에게 조용히 이야기를 전할 수밖에 없었고, 바로 그들 가운데서 첫 신자들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의 『신편 한국사』도 비슷한 흐름을 전합니다. 만주에서 개종한 뒤 성경을 팔며 복음을 전하던 매서인 서상륜, 백홍준 등이 국내로 들어와 활동하면서 세례를 바라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황해도 소래에서도 신앙 모임이 이루어졌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새문안교회는 선교사가 혼자 세운 교회라기보다, 먼저 복음을 받아들인 한국인들이 품고 온 씨앗이 선교사의 사랑채에서 싹을 틔운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 선교사와 한국인 신자가 함께 일군 첫 열매였던 셈입니다.

■ 정동교회에서 '새문안'으로 — 이름에 담긴 동네 이야기

처음부터 '새문안교회'라는 이름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교회 측이 소개하는 『새문안교회 100년사』의 내용에 따르면 초기에는 정동예배당 또는 정동교회로 불렸고, 1895년 서대문 안쪽 큰길가로 옮긴 뒤에는 정동교회와 서대문교회(West Gate Church)라는 이름이 함께 쓰였습니다. 1907년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1910년 벽돌 예배당을 지으면서 비로소 '새문안교회'라는 이름이 자리 잡았습니다.

'새문안'이라는 이름에는 서울의 옛 지명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한양도성의 서쪽 대문인 돈의문(敦義門)을 새로 세운 뒤 사람들이 이 문을 '새문'이라 불렀고, 그 안쪽 동네를 '새문안'이라 부르게 된 것이지요. 일제강점기에는 한자로 '신문내교회(新門內敎會)'라 적기도 했다고 하니, 교회 이름 하나에도 서울의 변화가 그대로 새겨져 있는 셈입니다.

■ 교회를 낳는 교회 — '어머니 교회'라 불리는 까닭

새문안교회가 '한국 장로교회의 모교회'라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채 시절 약 30명을 수용하던 예배 처소는 금세 좁아졌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과 1895년 청일전쟁을 거치며 교인 수가 크게 늘어 새 예배당을 지어야 했습니다. 이 무렵 새문안교회는 1893년 곤당골의 승동교회, 1894년 연못골의 연동교회, 1896년 서교동교회, 1906년 노량진교회 등을 개척하며 서울 곳곳에 새로운 교회를 세워 나갔습니다.

교회 밖으로도 영향이 컸습니다. 1886년 언더우드가 세운 고아원은 훗날 경신학교와 연세대학교의 뿌리가 되었고, 독립운동가 김규식은 언더우드 고아원에서 자라 새문안교회의 장로가 되었습니다. '봉선화'의 작곡가로 잘 알려진 홍난파(홍영후)가 이 교회 찬양대에서 활동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 때에는 김영주 담임목사가 납북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백과사전은 새문안교회가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한국 장로교회의 모교회로서 여러 연합 사업을 이끌었고, 교회와 사회에 기여한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고 정리합니다. 감리교의 정동제일교회와 함께 '한국 개신교의 어머니 교회'로 나란히 불리는 것도 이런 역사 덕분입니다.

■ 두 팔 벌린 어머니의 품 — 2019년 여섯 번째 예배당

새문안교회는 사랑채 이후 여러 차례 예배당을 새로 지었습니다. 1910년 벽돌 교회당, 1949년 고딕식으로 증축한 예배당, 1972년의 모더니즘 양식 교회당을 거쳐, 2019년에 여섯 번째 예배당이 완공되었습니다. 새 예배당 건축은 1980년대부터 창립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논의되었고, 2007년 건축위원회를 꾸린 뒤 2014년 옛 예배당을 철거하고 2015년 공사를 시작해 마무리되었습니다.

국민일보와 기독일보 보도에 따르면 새 예배당은 '한국의 어머니 교회'라는 뜻을 담아, 어머니가 두 팔을 벌려 세상을 품는 모습을 형상화했습니다. 'H' 모양 건물의 가운데를 곡선으로 설계했고, 부채꼴 모양의 대예배실은 원목으로 마감해 따스한 분위기를 냈습니다. 1층과 교회 마당은 시민에게 열린 공간으로 내어놓겠다는 계획도 함께 밝혔지요. 2019년 4월 21일 부활주일에는 새 성전에서 첫 공식 예배를 드렸고, 이듬해인 2020년에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70개 교단 대표가 이곳 대예배실에 모여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를 온라인 영상예배로 드리기도 했습니다.

■ 마치며 — 작은 사랑채에서 시작된 이야기

열네 명이 모인 사랑채의 밤 예배가 130여 년 뒤 광화문 한복판의 '어머니의 품'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신앙의 유무를 떠나 그 자체로 한 편의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화려한 시작이 아니라 고향 사람에게 조용히 건넨 말 한마디, 낯선 땅에서 문을 열어 준 사랑채 하나가 오랜 역사의 출발점이 되었던 것이지요.

광화문이나 정동길에 들르실 일이 있다면, 옛 예배당이 있던 서울역사박물관 맞은편 길과 지금의 새문안교회 앞을 천천히 걸으며 '새문안'이라는 옛 이름을 떠올려 보시면 어떨까요. 오래된 동네 이름과 교회 이야기가 서울이라는 도시를 조금 더 따뜻하게 보이게 해 줄지도 모릅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새문안교회'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7446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신편 한국사』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46_0030_0040_0020_0010 , 새문안교회 교회 역사 https://saemoonan.org/church/Sub_02_01.aspx , 국민일보 「새문안교회, 새 성전 첫 공식 예배 드려」(2019.4.21) https://w3.kmib.co.kr/article/20190421500259 , 기독일보 「새문안교회, '어머니' 모습의 새 예배당 완공」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82764 , 위키백과 '새문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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