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와 성인의 차이는 공경할 수 있는 범위에 있습니다. 복자는 교황이 시복(諡福)을 선언해 특정 교구나 지역, 국가, 수도회 안에서만 공적으로 공경할 수 있는 분이고, 성인은 시성(諡聖)을 거쳐 전 세계 교회 어디서나 공경을 드릴 수 있는 분입니다. 성인이 되기까지는 하느님의 종, 가경자, 복자, 성인의 네 단계를 차례로 밟아야 하며, 순교자가 아닌 경우 시복에 기적 1가지, 시성에 시복 이후의 기적 1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한국 천주교에는 1984년 5월 6일 여의도광장에서 시성된 103위 성인과 2014년 8월 16일 광화문광장에서 시복된 124위 복자가 있습니다.
시복 시성 뜻 — 복자와 성인 칭호를 주는 교회의 선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시복시성운동을 "천주교에서 복자(福者)나 성인(聖人) 칭호를 부여하고, 공적인 공경을 바치도록 하는 선언을 얻기 위해 추진하는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시복과 시성은 성덕(聖德)이나 순교로 명성이 있는 사람에게 복자나 성인 칭호를 주고 그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일입니다. 이를 교황이 장엄하게 선포하는 예식을 각각 시복식, 시성식이라고 부릅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의 해설은 두 판결의 성격을 분명하게 나눕니다. 시복(beatificatio)은 하느님의 종의 성덕과 영광에 대해 제한된 공적 경배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교황의 판결입니다. 반면 시성(canonizatio)은 이미 복자로 선언된 하느님의 종이 천국에 계심을 선언하고, 교회 전체가 모든 종류의 공경 행위로 그를 기리도록 명하는 교황의 최종적이고 확정적인 판결입니다. 시복이 중간 단계라면 시성은 마지막 단계인 셈입니다.
교회법도 공경의 대상을 엄격히 정해 둡니다. 교회 권위가 성인이나 복자의 명부에 올린 하느님의 종만을 공적 경배로 공경할 수 있고, 아직 성인이나 복자가 아닌 하느님의 종에게는 사적인 공경만 허용됩니다. 그래서 신자 개인이 존경하는 분을 위해 기도하는 일과, 교회가 전례력에 축일을 정해 공식적으로 기념하는 일은 서로 다른 차원입니다.
하느님의 종, 가경자, 복자, 성인 — 성인이 되는 4단계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시성에 이르는 과정을 사다리에 비유합니다. 여러 단계를 거쳐 마지막에 이르는 자리가 성인이며, 대상자는 절차상 먼저 하느님의 종이 되고, 다음에 가경자, 그리고 복자가 되어야 합니다. 각 칭호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느님의 종(servus Dei)은 성덕이나 순교의 평판이 높은 가운데 세상을 떠난 분으로, 시복 시성 안건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가톨릭 신자를 가리킵니다. 둘째, 가경자(可敬者, Venerabilis)는 하느님의 종 가운데 순교나 영웅적 덕행이 교황에 의해 선언된 분입니다. 셋째, 복자(Beatus, Beata)는 시복된 하느님의 종입니다. 넷째, 성인(Sanctus, Sancta)은 시성된 하느님의 종입니다.
가경자가 된다는 것은 그분이 믿음, 희망, 사랑의 대신덕과 현명, 정의, 용기, 절제의 사추덕, 그리고 청빈, 정결, 순명, 겸손 같은 덕목을 보통 수준을 넘어 영웅적인 수준에서 실천했다고 교회가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순교자의 경우에는 그리스도교 신앙 때문에 참으로 순교했다는 사실이 인정되는 것입니다.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에 따르면 2017년부터는 세 번째 길도 열렸습니다. 신앙에 대한 증오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도, 영웅적 덕행을 오래 실천한 것도 아니지만, 다른 이들을 위해 스스로 자유롭게 목숨을 내놓아 지고한 사랑의 행위로 죽음에 이른 이들입니다.
복자 성인 차이 — 공경의 범위와 기적의 수
복자와 성인은 모두 교회가 공식 절차를 거쳐 선포한 분이라 공적으로 공경할 수 있다는 점은 같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복자」 항목은 둘의 차이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복자에 대한 공경은 그 범위가 특정 교구, 지역, 국가 또는 수도 단체 안으로 한정되지만, 성인은 전 세계 어디서나 공경을 드릴 수 있습니다.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역시 시복 선포 뒤에는 복자의 선종 기념일이나 특별히 중요한 날을 해당 교구 또는 수도회의 전례력 안에서 기념일로 지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두 번째 차이는 기적입니다. 시복 요건을 보면 순교자는 신앙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이 인정되면 곧바로 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순교자가 아닌 증거자(신앙을 증언했지만 목숨을 잃지는 않은 분)는 그분의 전구로 이루어진 기적 1가지가 조사되고 인정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자가 성인이 되려면 시복 이후에 일어난 두 번째 기적이 실제로 복자의 전구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이때 기적은 대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치유입니다. 교황청 시성부가 소집한 의학 자문 위원회가 신자와 비신자 전문가로 구성되어 판단하며, 치유가 완전하고 지속적이며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는지가 중요한 기준입니다. 의학 자문 위원회의 승인 뒤에는 시성부의 추기경과 주교들이 다시 판결하고, 교황이 이를 승인해야 교령이 선포됩니다.
시복 시성 절차 — 교구 단계에서 로마 단계까지
절차는 크게 교구 단계와 로마 단계로 나뉩니다. 먼저 대상자에게 성덕의 명성이 있어야 안건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를 알던 사람들이 그의 모범적인 생애, 긍정적인 영향력, 사도직의 열매, 감화를 주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평판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안건의 예비 심사는 관할 교구장의 소임이고, 합법적으로 선임된 청원인이 대상자의 생애와 성덕을 증명할 문서와 증거를 모읍니다.
교구에서는 대상자를 알았던 사람들의 구술 증언을 듣고, 그가 남긴 문서와 저작물을 수집합니다. 저작물에 신앙과 미풍양속에 어긋나는 내용이 없는지, 덕행이나 순교의 평판이 실제로 있는지, 시복 절차 전에 공적 경배가 이루어지지 않았는지도 확인합니다. 조사가 끝나면 자료를 봉인해 로마 교황청 시성부로 보냅니다.
로마 단계에서는 로마 주재 청원인이 교구에서 수집한 증거를 요약한 심문 요항(Positio)을 작성합니다. 이를 시성부의 신학 자문 위원들이 검토하고, 목격 증인이 없는 오래된 안건이라면 역사 자문 위원들도 검토합니다. 평가가 긍정적이면 시성부의 위원 추기경과 주교들이 다시 판단하고, 최종 재가는 교황이 내립니다. 이 소송에는 대상자의 성덕을 입증하는 청원인과, 증거와 문서를 면밀히 따지는 신앙 촉구관이 함께 참여하는데, 신앙 촉구관은 흔히 '악마의 변호인'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위원회는 이 절차가 보통의 사법 절차보다 더 엄격하다고 설명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예전에는 교구장 주교가 시성식을 거행하기도 했지만 남용 사례가 많아지자 주관자가 교황으로 바뀌었고, 교회법이 정비되면서 시복과 시성이 구분되었습니다. 지금은 목격 증인이 있는 경우를 '새로운 시복 시성건', 목격 증인이 없는 경우를 '옛 시복 시성건'으로 나눕니다.
한국 천주교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
한국 천주교의 103위 성인은 두 차례에 걸쳐 먼저 복자가 되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838년부터 1846년 사이에 순교한 한국인 76명과 프랑스인 선교사 3명이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866년부터 1867년 사이에 순교한 한국인 17명과 프랑스인 선교사 7명이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로마에서 시복되었습니다. 이 103위는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맞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거행한 시성식으로 성인이 되었습니다. 한국인 93명(신부 1명, 평신도 92명)과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10명(주교 3명, 신부 7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백과사전은 성인이 되려면 보통 두 번 이상의 기적이 필요하지만 한국의 경우 교황청이 예외적으로 시성을 승인했다고 전합니다.
124위 복자는 그 뒤에 추진된 시복 안건입니다. 1997년 10월 주교회의가 시복 시성을 통합해 추진하기로 결정했고, 2001년 10월 18일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2002년 3월 7일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가 시복 추진 대상자로 확정되었고, 2004년 7월부터 2008년 11월까지 35차례 시복 법정이 열렸습니다. 2009년 6월 3일 시복 청원서가 교황청에 제출되었고, 2013년 3월 이후 포지시오가 역사·신학 위원회와 추기경·주교단 심의를 차례로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교황 프란치스코가 직접 시복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교황청 발표에 따르면 이들은 1791년부터 1888년 사이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은 한국 천주교의 첫 세대 신자들이며, 그날 미사에는 80만 명이 넘는 신자가 함께했습니다.
124위 가운데에는 신유박해(1801년) 순교자가 53명으로 가장 많고, 최연소는 12세 이봉금, 최고령은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75세)라고 당시 보도는 전합니다. 시대로 보면 1984년의 103위 성인보다 앞선 분들이지만 당시 시성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고, 103위 시성 30주년이 되는 2014년에 복자품에 올랐습니다.
축일과 기념일 — 9월 20일과 5월 29일
복자와 성인의 차이는 축일에서도 드러납니다. 가톨릭신문에 따르면 103위 성인의 공식 명칭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고 대축일은 9월 20일입니다. 시성 전에는 9월 26일을 '한국 순교 복자 대축일'로 지냈으나, 1984년 103위 성인이 탄생하자 한국 주교단은 이 날을 없애고 9월 20일을 103위 성인 대축일로 정했으며, 9월 복자 성월도 순교자 성월로 바꾸었습니다.
124위 복자의 공식 명칭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이고 기념일은 5월 29일입니다. 시복식에서 교황은 이들을 앞으로 복자라 부르고 법으로 정한 장소와 방식에 따라 해마다 5월 29일에 축일을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이 날짜는 대표 순교자 윤지충이 전주교구 순교자인 점을 고려해, 전주 숲정이에서 이일언, 신태보, 이태권, 정태봉, 김대권 5위가 1839년 기해박해 중 순교한 날을 택한 것입니다.
정리하면, 시복은 복자로 선언해 일정 지역 안에서 공경을 허락하는 중간 단계이고, 시성은 복자를 성인으로 선언해 전 세계 교회가 공경하도록 하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한국 교회는 지금도 여러 교구에서 순교자와 증거자의 시복 시성을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청주교구가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시복 시성을 추진해 온 사례를 소개합니다. 성인의 이름이 세례명으로 쓰이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신이말했다 천주교 게시판의 세례명 뜻과 정하는 법(https://sinimalhaetda.com/board/catholic/1791) 글을, 모든 성인을 함께 기리는 날이 궁금하다면 모든 성인 대축일 뜻(https://sinimalhaetda.com/board/catholic/1925) 글도 함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시복시성운동」·「복자」·「천주교 103위 성인」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시복 시성 절차 요약」·「시복 시성 절차 해설」(cbck.or.kr) · 교황청 프란치스코 교황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 강론」(2014.8.16, vatican.va) · 교황청 공보실 2014.8.16 발표 · 가톨릭신문 「124위 복자 기념일은 왜 5월 29일일까」(2024) · MBN 「프란치스코 교황,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복자 선포」(201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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