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는 남자 무당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박수무당이라고도 부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박수를 '중부 이북지방에서 남자무당을 가리키는 무속용어'로 정의하며, 무당의 종류나 실력 차이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성별에 따른 명칭일 뿐이라고 설명합니다. 한자로는 남자 무당을 격(覡), 여자 무당을 무(巫)라 하여 둘을 합쳐 무격(巫覡)이라고 썼습니다. 지역과 시대에 따라 남자 무당은 박수 외에도 화랑(화랭이), 양중, 낭중, 업중 같은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요즘에는 무당이라고 하면 당연히 여성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은 실제로는 남녀 무당이 모두 존재했고 호칭과 역할에도 차이가 있었다고 정리합니다. 이 글에서는 박수 뜻과 어원, 남자 무당을 부르던 여러 이름, 박수가 굿에서 보이는 특징, 그리고 강신무와 세습무 구분 속에서 박수가 어디에 속하는지를 출처를 바탕으로 차례대로 살펴봅니다.
박수 뜻과 어원, 박수무당이라는 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박수' 항목(최길성 집필)에 따르면 박수는 중부 이북지방, 곧 서울·경기와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쪽에서 남자 무당을 부르는 무속 용어입니다. 같은 항목은 박수라는 말이 무당의 종류나 질적인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무당 가운데 남성을 가리키는 성별 명칭에 불과하다고 강조합니다. 즉 박수라고 해서 여자 무당보다 신통하다거나 덜하다는 뜻은 전혀 담겨 있지 않습니다.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백과사전은 한자어 박사(博士), 박수(拍手), 복사(卜師)에서 나온 말이 아닌가 하는 표기가 있다고 소개하고, 일본 학자 아키바 다카시(秋葉隆)는 우랄알타이 계통 민족의 남자 샤먼을 가리키는 말에서 기원을 찾으려 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어느 쪽도 확정된 정설은 아니므로, 박수의 어원은 아직 학설이 나뉘어 있는 문제라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우리역사넷이 정리한 일제강점기 현지조사 자료를 보면, 남자 무당을 부르는 말로 박수와 함께 박사, 박시, 반수 같은 비슷한 소리의 이름이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역마다 발음이 조금씩 달랐던 셈입니다.
격, 화랭이, 양중… 남자 무당을 부르던 여러 이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무당' 항목(김태곤 집필)은 무당을 무인, 무, 무격, 무녀, 단골, 심방이라고도 하며, 특히 남자 무당을 가리킬 때는 격 또는 박수, 화랭이, 양중이라고도 한다고 설명합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이나 조선시대 문집에서 여자 무당은 여무(女巫) 또는 무녀(巫女) 정도로만 표기되는 데 비해, 남자 무당의 표기는 훨씬 복잡했습니다. 실록 같은 관찬 자료에는 격(覡), 남무(男巫), 무부(巫夫), 무사(巫師·巫士), 화랑(花郞), 양중(兩中), 낭중(郎中), 업중(業中)이 보이고, 호적 자료에는 무부, 무부군, 화랑, 광대, 업중, 재인, 취타수 같은 이름까지 나옵니다. 일제강점기 현지조사에서는 남무당, 숫무당, 박수, 봉사, 화랑, 재인, 광대, 경쟁이, 홑에비 등이 확인됩니다. 우리역사넷은 이렇게 남자 무당의 호칭이 여자 무당보다 다양했다는 점에서 그 역할도 더 다양했음을 엿볼 수 있다고 봅니다.
조선왕조실록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화랑' 항목은 조선시대 남자 무당 호칭이 지역에 따라 달랐다고 정리합니다. 함경도와 평안도에서는 사(師)라고 불렀고, 충청·전라·경상도, 곧 하삼도에서는 화랑, 양중, 낭중이라고 했습니다. 이 가운데 화랑은 남자 무당뿐 아니라 여자 무당의 남편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습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 정약용의 『아언각비』,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은 무당들이 신라 화랑에서 이름을 빌려 온 것으로 보았다고 합니다.
박수의 특징 · 호칭으로 부르고, 굿에서는 여장을 한다
박수라는 말에는 독특한 쓰임새가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무당이라는 말은 사람을 직접 부르는 호칭으로 쓰지 않지만, 박수는 호칭으로도 쓰인다고 설명합니다. 성에 붙여 '정 박수', '김 박수'처럼 부르거나, 사는 곳의 지명에 붙여 '안암동 박수', '동두천 박수'처럼 부르기도 했습니다.
또 같은 항목은 여자 무당에 비해 박수의 수가 적다는 점을 특징으로 듭니다. 흥미로운 것은 박수가 남성다운 모습으로 의례를 하기보다 오히려 여성적인 특징을 지니며 굿을 한다는 점입니다. 백과사전은 그 예로 굿을 할 때 여장을 하고, 목소리도 여성적인 음성을 내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서울굿이나 황해도굿 영상에서 남자 무당이 치마저고리와 무복을 갖춰 입고 굿거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전통과 이어져 있습니다.
강신무 박수와 남부의 경문쟁이·화랭이는 어떻게 다를까
한국 무당은 크게 강신무(降神巫)와 세습무(世襲巫)로 나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무당' 항목은 강신무를 강신 체험을 통해 무당이 된 사람, 곧 신내림을 받아 무업을 시작한 무당으로 설명합니다. 반면 세습무는 집안 대대로 무업을 이어받는 무당입니다.
'무속' 항목은 우리나라 무당을 일차적으로 중부와 북부의 전통적 강신무인 무당·박수류, 그리고 남부의 세습무인 호남의 단골, 영남의 무당, 제주도의 심방으로 정리합니다. 또 무당의 유형을 무당형, 단골형, 심방형, 명두형으로 나눌 때 무당형에는 주로 중부와 북부에 분포한 무당과 박수가 해당한다고 설명합니다.
'박수' 항목은 같은 박수무당이라는 이름이라도 지역에 따라 본질이 다르다는 점을 짚습니다. 중부 이북지방의 박수는 강신무이고, 남부지방에서 경을 읽는 경문쟁이는 학습무라는 것입니다. 남부 세습무 집단에서 남자는 굿판에서 장구와 징 같은 반주를 맡거나 특정 굿거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경기 남부의 도당굿에서 화랭이로 불리는 남자 무당이 그런 역할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박수=신내림 받은 남자 무당'이라는 설명은 중부·북부 전통에 한해 맞는 말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역사 속 남자 무당과 국무
남자 무당은 역사 기록 곳곳에 등장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무속' 항목은 조선시대 무당 칭호를 정리하면서 여자는 흔히 무녀라 했고, 남자 무당은 흔히 화랑, 낭중, 양중 등으로 불렸다고 설명합니다. 궁을 드나들거나 활인서, 성수청 같은 관청에 소속된 무당은 국무(國巫)라 했고, 지방 수령의 아내를 드나드는 무당은 아무(衙巫)라 불렀습니다. 같은 항목은 신이 내리면 무당이 된다는 생각이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조선의 관료와 유학자들은 무속을 음사(淫祀)로 규정하고 여러 방법으로 제약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사전 '화랑' 항목에 따르면 남자 무당인 화랑은 풍기를 문란하게 한다는 이유로 특히 문제 삼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남자 무당은 호적에까지 무부, 화랑, 업중 같은 이름으로 기록될 만큼 지역 사회 안에서 꾸준히 활동했습니다.
박수무당을 찾을 때 알아 둘 점
정리하면 박수는 남자 무당을 뜻하는 말일 뿐, 실력이나 영험함의 차이를 뜻하지 않습니다. 점집이나 신점을 알아볼 때 '남자 무당이라서 더 세다' 혹은 '여자 무당이 더 잘 본다'는 식의 이야기는 근거가 있는 기준이 아닙니다. 신점을 볼 무당을 고를 때는 성별보다 상담 방식, 점사비와 굿 비용을 미리 분명하게 안내하는지, 불안을 부추기며 고액의 굿이나 부적을 강요하지 않는지를 살피는 편이 훨씬 현실적인 기준입니다.
또 박수, 화랭이, 양중, 경문쟁이 같은 말은 지역 무속 전통의 차이를 보여 주는 이름이므로, 어떤 굿을 하는 무당인지 알고 싶다면 서울굿, 황해도굿, 경기 도당굿, 동해안별신굿처럼 굿의 갈래를 함께 확인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신이말했다 무속 게시판에서는 강신무와 세습무, 내림굿, 진적굿, 만신 뜻 등 관련 글도 함께 읽어 볼 수 있습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박수'(최길성), '무당'(김태곤), '무속' 항목,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무당의 여러 가지 이칭',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왕조실록사전 '화랑(花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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