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두고 사람들은 흔히 '신들의 고향', '신들의 나라'라고 부릅니다. 이 섬에는 1만8천에 이르는 신들이 사람의 길흉화복을 맡고 있다는 이야기가 오래도록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에요. 그 많은 신들을 한자리에 청해 모시고, 신들의 내력을 하나하나 노래로 풀어내며, 짧게는 이레에서 길게는 보름 가까이 이어지는 굿이 있습니다. 바로 제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무속의례, '제주큰굿'입니다. 오늘은 심방의 목소리로 이어져 온 이 오래된 굿 이야기를 천천히 나눠 보려 합니다.
■ 제주에서 가장 큰 굿, '제주큰굿'은 어떤 굿일까
국가유산청(당시 문화재청)은 2021년 12월 22일 제주큰굿을 국가무형문화재(지금의 국가무형유산) 신규 종목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제주큰굿은 제주에서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굿으로, 음악과 춤, 놀이가 한데 어우러지고 지역 사람들이 살아온 내력이 온전히 담긴 종합적인 무속의례예요.
규모도 남다릅니다. 보통 큰 심방을 포함해 다섯 명 이상이 함께하고, 짧게는 7일, 길게는 대략 보름 정도 굿이 이어진다고 해요. 여기서 '심방'은 제주에서 무당을 부르는 말입니다. 육지에서 '무당', '만신'이라 부르는 이들을 제주 사람들은 심방이라고 불러 왔지요.
국가유산청은 지정 이유로 오랜 역사적 내력을 지녔다는 점, 우리나라 굿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 제주 지역의 음악·춤·구비서사시·놀이를 두루 품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 신을 맞이하고, 즐겁게 하고, 다시 보내는 굿의 짜임
제주큰굿이 높이 평가받은 또 하나의 이유는 굿의 형식이 무척 짜임새 있다는 점입니다. 수많은 신들을 초대해 제청(祭廳)에 앉히는 의식에서 시작해, 신을 맞아들이는 영신(迎神), 춤과 노래로 신을 찬양하며 즐겁게 하는 오신(娛神), 굿을 마치고 신을 돌려보내는 송신(送神)까지, 제의가 갖춰야 할 흐름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는 것이 국가유산청의 설명이에요.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심방은 '초감제'라는 의식으로 굿을 열면서 천지개벽 신화인 '천지왕본풀이'를 읊습니다. 하늘과 땅이 어떻게 열렸는지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셈이니, 굿 한 판이 곧 세상의 처음부터 지금까지를 다시 불러내는 자리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 신의 근본을 푸는 노래, 열두본풀이
제주큰굿의 한가운데에는 '본풀이'가 있습니다. 본풀이는 '본(本)', 곧 근본을 푼다는 뜻으로, 심방이 제상 앞에 앉아 신의 내력을 읊는 서사무가를 말해요. 큰굿에서는 열두 개의 본풀이가 이어진다고 해서 '열두본풀이'라고 부릅니다.
연합뉴스가 소개한 본풀이만 보아도 그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어요. 천지개벽을 노래하는 '천지왕본풀이', 출산을 돕는 신 삼승할망의 '삼승할망본풀이', 제주 심방의 조상 격인 무조신 삼시왕에 얽힌 '초공본풀이',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신비한 꽃이 피는 서천꽃밭의 꽃감관 이야기 '이공본풀이', 농경신이 된 자청비의 이야기 '세경본풀이' 등이 이어집니다. 국가유산청은 이 열두본풀이에 제주 사람들의 천지창조와 삶, 죽음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어 지역민의 세계관을 온전히 확인할 수 있다고 평가했어요.
열두본풀이 말고도 제주 마을마다 신당에 얽힌 '당본풀이', 집안에 얽힌 '조상본풀이'가 따로 전해집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제주에서는 이런 본풀이가 굿 속에 원형 그대로 남아 심방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고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고 하네요.
■ 대별왕과 소별왕, 이승과 저승이 나뉜 이야기
천지왕본풀이의 줄거리는 한 편의 대서사처럼 흥미롭습니다. 하늘의 천지왕과 인간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 대별왕과 소별왕은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라다 아버지를 찾아 먼 길을 떠나요. 천지왕의 시험을 통과한 형제는 각각 이승과 저승을 맡게 되지만, 형보다 능력이 모자란 동생 소별왕이 욕심을 부려 이승을 차지해 버립니다.
그 뒤 소별왕이 다스리는 인간 세상은 불평등과 질병, 범죄로 들끓게 되었다고 이야기는 전해요. 대별왕은 동생에게 인간 세상을 잘 다스려 보라며, 자신이 가는 저승의 법은 맑고 공정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연합뉴스는 이 이야기가 이승에서 겪는 고통 때문에 스스로를 탓하지 않도록 토닥여 주고, 저승에서는 공정하게 평가받으리라는 위안과 희망을 준다고 풀이했어요. TV도 연극 무대도 없던 시절, 제주 사람들은 심방이 들려주는 신들의 이야기에서 재미와 교훈, 위로를 함께 얻었던 것이지요.
■ 살아 있는 제주 방언 사전, 그리고 지켜 가는 사람들
국가유산청은 제주큰굿의 사설이 옛 제주 방언을 그대로 쓰고 있어 '살아 있는 제주방언 사전'이라 할 만큼 언어학적으로도 중요한 자산이라고 밝혔습니다. 굿을 듣는 일이 곧 사라져 가는 옛 제주말을 듣는 일이기도 한 셈이에요.
제주큰굿은 국가 지정 이전인 2001년 8월 16일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로 먼저 지정되어 있었고, 국가무형유산으로 승격된 2021년 12월 22일에 도 지정이 해제되었습니다(국가유산포털 기록). 국가 지정 당시 보유단체로는 2012년 9월 설립된 (사)제주큰굿보존회(대표 서순실)가 인정되었어요. 국가유산청은 제주큰굿이 1980년 11월 지정된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이후 41년 만에 제주에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무속의례라고 그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 지금도 이어지는 굿판, 공개행사 소식
제주큰굿은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열리는 굿입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에는 2013년 3월 24일 국립제주박물관 마당, 2015년 10월 17일 제주목관아 관덕정 광장에서 열린 공개행사 모습이 남아 있어요. 국가유산진흥원의 '2026 국가무형유산 공개행사' 일정에 따르면 올해는 6월 28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칠머리당영등굿전수관 공연장에서 제주큰굿 가운데 '삼시왕맞이'가 전석 무료로 공개되었습니다. 삼시왕은 앞서 말한 초공본풀이 속 심방의 조상신이니, 심방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대목이겠지요.
서울대 종교학과 유요한 교수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제주에는 전통 종교의 신화를 '참'으로 믿고 삶의 바탕으로 받아들이는 주민이 적지 않으며, 신화가 마을과 가정의 의례, 특히 굿과 이어져 많은 주민의 종교적 삶을 이룬다고 설명했습니다. 1만8천 신들의 이야기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붙들고 있다는 뜻일 거예요. 다음에 제주를 찾게 된다면, 바람 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심방의 노랫가락에도 한 번 귀 기울여 보시면 좋겠습니다.
출처: 국가유산청 보도자료 「'제주큰굿' 국가무형문화재 신규종목 지정ㆍ보유단체 인정」(2021.12.22) https://www.khs.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newsItemId=155703174&mn=NS_01_02 , 연합뉴스 「[제주의 굿] ②1만8천 신들의 이야기…굿에 특별함을 더하다」(2022.1.9) https://www.yna.co.kr/view/AKR20220107090600056 , 국가유산포털 「제주큰굿(濟州큰굿)」 제주특별자치도 무형유산 기록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Asno=00130000&ccbaCpno=2223900130000&ccbaCtcd=50&ccbaKdcd=22 , 국가유산진흥원 「2026 국가무형유산 공개행사 제주큰굿 - 삼시왕맞이」 https://www.kh.or.kr/cont/view/play/month/menu/265?idx=11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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