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의 모든것

김금화 만신 — 작두 위에서 평생 굿판을 지킨 나라만신, 서해안 배연신굿과 영화 「만신」 이야기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2

'만신(萬神)'이라는 말을 들어 보신 적 있으신가요? 황해도와 서울 지역에서 여자 무당을 높여 부르던 말로, 만 가지 신을 모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름이 누구보다 잘 어울렸던 한 사람이 있어요. 평생 굿판을 지키며 '나라만신', '큰무당'으로 불렸던 김금화 선생입니다. 2019년 2월 23일 여든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지켜 낸 서해안 굿과 그의 삶을 담은 영화 「만신」은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이야기를 건넵니다. 오늘은 칼날 같은 작두 위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한 만신의 삶을 차근차근 따라가 보려 합니다.

■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넘세', 무병을 앓던 소녀

김금화 선생은 1931년 황해도 연백의 가난한 집안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국립무형유산원이 펴낸 전승자 구술 자서전에는 음력 8월 31일생으로 적혀 있어요. 어린 시절 이름처럼 불리던 별명이 '넘세'였는데, 훗날 그가 펴낸 자서전 제목 『비단꽃 넘세』(2007)에도 이 이름이 들어갑니다.

열두 살 무렵부터 그는 심한 무병(巫病)을 앓았습니다. 구술 자서전에 따르면 밤마다 호랑이가 찾아오는 꿈에 시달리고 허리가 몹시 아팠다고 해요. 일제강점기 말, 열서너 살의 나이에 처녀 공출을 피하려고 서둘러 시집을 갔지만 시집살이의 박대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친정으로 돌아왔습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던 소녀에게 그 시절은 무척 외롭고 고단한 시간이었을 거예요.

■ 외할머니 김천일 만신에게 받은 내림굿

결국 그는 열일곱 살에 외할머니이자 만신이었던 김천일 씨에게 내림굿을 받고 무당의 길에 들어섭니다(구술 자서전에는 열여덟 살로 적혀 있어요). 신내림으로 무당이 되는 이를 '강신무(降神巫)'라고 하는데, 김금화 선생이 바로 그런 강신무였습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그날을 이렇게 돌아봤다고 해요. "나는 일어나 춤을 추었다. … 그 순간 내 몸 안으로 신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환영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설움과 배고픔, 아픔이 뜨거운 눈물이 되어 하염없이 흘렀다고 적었습니다. 그 뒤 실력을 빠르게 인정받아, 나라굿과 대동굿을 혼자 주재할 수 있을 만큼 되어 열아홉 살에 독립했어요. 황해도 옹진과 해주, 연백 등지에서 마을의 안녕을 비는 대동굿을 이끌었다고 합니다.

■ 전쟁과 '미신 타파'의 시절을 건너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고향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전쟁 중에는 남과 북 어느 쪽에서도 의심을 받아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전해져요. 인천에 자리를 잡은 뒤에는 이북 출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던 덕적도, 용호도, 강화도 같은 섬을 오가며 배연신굿과 대동굿, 풍어제를 열었고, 1965년 무렵 서울로 활동 무대를 옮깁니다.

하지만 1960~70년대는 굿이 '미신'으로 몰리던 때였습니다. 특히 새마을운동과 함께 미신 타파 바람이 거세지면서 무당은 셋방 한 칸 얻기조차 어려웠고, 숨어서 굿을 하며 생계를 꾸려야 했어요. 그런 시절에도 그는 굿판을 접지 않았습니다. 1972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해주장군굿놀이'로 개인연기상을 받으며 민속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요.

■ 레비스트로스도 감탄한 굿, 세계 무대로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1981년 한국을 찾은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방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으로 김금화 선생의 '만수대탁굿'을 꼽았다고 합니다. 노인의 만수무강과 극락천도를 비는 굿이에요. 이듬해인 1982년에는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 문화사절단으로 미국에 건너가 로스앤젤레스, 워싱턴, 뉴욕 등 7개 도시에서 두 달 동안 순회공연을 펼쳤고, 이 무대들이 호평을 받으며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후로도 2004년 백두산 천지에서의 대동굿, 독일 베를린과 프랑스 파리 공연이 이어졌고, 사도세자·백남준·윤이상을 위한 진혼굿,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진혼제, 2014년 인천평화축제의 세월호 희생자 추모위령제도 그가 이끌었습니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서슴없이 작두에 올랐다고 하니, 그 기개가 짐작되지요.

■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의 보유자

1985년, 김금화 선생은 국가무형문화재 제82-2호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보유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이 종목은 같은 해 2월 1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어요. 황해도 해주와 옹진, 연평도 일대에서 해마다 행해지던 굿으로,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비는 의례입니다.

두 굿은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배연신굿'은 선주가 배의 안전과 풍어, 집안의 번창을 비는 개인 뱃굿으로, 바다에 배를 띄우고 그 위에서 굿을 하는 것이 특징이에요. 연희적인 요소가 많고 아기자기하며 해학적이라는 평을 듣습니다. '대동굿'은 마을 공동의 제사로 음력 정월이나 2~3월에 주로 열리며, 무당이 하는 굿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큽니다. 산에서 당굿을 올리고, 마을 집집을 도는 세경굿, 바닷가를 도는 강변용신굿으로 이어지며 마을 전체가 굿판이 된다고 해요.

그는 굿을 지키기 위해 1996년 무가집을 펴냈고, 2000년에는 서해안풍어제보존회 이사장을 맡았습니다. 2005년에는 고향이 지척으로 보이는 인천 강화도에 무속 전수관 '금화당'을 열어 제자를 길렀어요. 조카 김혜경 씨가 이 종목의 이수자로 맥을 잇고 있습니다.

■ 영화 「만신」, 그리고 "남의 덕을 빌어주려면"

2014년 3월 6일 개봉한 박찬경 감독의 영화 「만신」은 김금화 선생의 삶을 다큐멘터리와 재연 드라마를 섞어 풀어낸 104분짜리 작품입니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에 따르면 김새론 배우가 어린 시절의 '넘세'를, 류현경 배우가 열일곱 살 새만신 금화를, 문소리 배우가 1970년대 중년의 금화를 연기했고, 김금화 선생 본인도 직접 출연했어요. 이 영화는 토론토 릴 아시안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장편영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보다 앞선 2013년에는 다큐멘터리 「비단꽃길」도 그의 삶을 다뤘지요.

국립무형유산원이 2017년 펴낸 구술록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당은 됨됨이가 제일 중요하다. 남의 덕을 잘 빌어주려면 내가 먼저 덕이 있어야 한다." 굿이 멸시받던 시절부터 국가가 지키는 유산이 되기까지, 평생 산 자와 죽은 자의 아픔을 함께 달래 온 사람의 말이라 더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혹시 무속과 굿이 궁금해지셨다면, 영화 「만신」으로 그 첫걸음을 떼어 보셔도 좋겠습니다.

출처: 연합뉴스 「하늘로 떠난 큰무당…배연신굿 보유자 김금화 별세(종합)」(2019.2.23) https://www.yna.co.kr/view/AKR20190223035951065 , 경향신문 「'서해안 배연신굿·대동굿' 큰무당, 천상의 굿판으로 떠나다」(2019.2.24) https://www.khan.co.kr/article/201902242104025 , 동아일보(뉴스1) 「서해안배연신굿 보유자 김금화 별세…영화 만신 실제 모델」(2019.2.23) https://www.donga.com/news/People/article/all/20190223/94258062/1 ,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지식새김 「전승자 구술 자서전(020)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 김금화」 https://www.iha.go.kr/service/search_all_item_view.nihc?content_type_=GT01000002&contentid=12165&filetypeid=0&itemid=515&media_type=text , 인천투어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국가무형유산) 보유자(김금화)」 https://itour.incheon.go.kr/ssst/ssst/detail.do?cotId=ITD21122814362018781 , 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만신」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A/05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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