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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별신굿 — '바다를 먹이는 굿'으로 풍어를 비는 통영·거제 어촌의 세습무 마을굿과 지동궤 이야기

신이말했다 운영진조회 2

겨울 바다가 가장 차가운 음력 정월, 경남 통영과 거제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는 장구와 징, 피리 소리가 바닷바람을 타고 울려 퍼집니다. 마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 해의 풍어와 무사고를 비는 '남해안별신굿'이 열리는 날이에요. 올해(2026년)에도 2월 18일과 19일, 거제시 거제면 죽림마을회관 앞마당에서 이 굿판이 펼쳐졌습니다. 오늘은 바다를 먹이고 마을을 하나로 묶어 온 남해안별신굿 이야기를 천천히 나눠 보려 합니다.

■ '개를 먹이는 굿', 남해안별신굿이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남해안별신굿은 음력 정월 초하루 무렵 통영시와 거제도를 중심으로 한산도·사량도·갈도 등 남해안 지역에서 행해지는 마을굿으로, 어민들의 풍어와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의입니다. 1987년 7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어요. 현지에서는 '별신'을 '별손·벨손·벨신'이라고도 부르고, 이 굿을 "개(바다)를 먹이는 굿"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디지털거제문화대전은 이 '개'가 갯벌을 가리키는 사투리로, 결국 '바다를 위하는 굿'이라는 뜻이라고 풀이해요. '별신'이라는 말이 신을 특별히 모신다는 뜻인지, 배의 신을 뜻하는지는 여러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고 덧붙입니다. 바다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바다에 먼저 정성을 올린다는 마음만큼은 이름 속에 분명히 담겨 있는 셈이지요.

굿은 보통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 사이에 열리고, 대개 3년에 한 번, 다시 말해 만 2년마다 벌어진다고 백과사전과 국립국악원 국악사전은 함께 전합니다.

■ 대를 잇는 세습무, 대모와 대사산이

남해안별신굿의 큰 특징은 굿을 이끄는 이들이 집안 대대로 무업을 이어 온 세습무라는 점입니다. 국악사전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는 남자 악사를 '산이(사니)' 또는 '고인수', 그 우두머리를 '대사산이'라 부르고, 여자 무녀는 '승방' 또는 '지모', 그 우두머리를 '대모'라고 불러요. 이름부터 다른 지역의 굿과 사뭇 다릅니다.

지금 남해안굿의 세습무 집안으로 남은 곳은 정씨 가계뿐이라고 해요. 국악사전은 1932년 일본인 학자 아키바 다카시의 현지조사 기록이 남해안별신굿에 관한 첫 문헌이며, 그 자료에 제보자로 등장하는 거제의 무부 정철주와 그의 아내가 현재 보유자 정영만(1956~)의 증조부와 증조모라고 소개합니다. 1987년 지정 당시에는 무녀 정모연과 악사 유동주가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고,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1996년 정영만이 보유자로 인정되었다고 백과사전은 기록하고 있어요.

디지털거제문화대전에 따르면 국가무형유산 지정 이후에는 세습무 집안이 아닌 학습무들도 무녀와 악사로 참여하게 되었고, 2025년 기준 보유자를 비롯한 전승교육사·이수자·전수자가 스물일곱 명에 이릅니다. 대를 이어 온 집안의 굿을 이제는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나눠 지고 있는 모습이에요.

■ 들맞이에서 용왕굿까지, 굿판의 흐름

굿은 마을에 도착한 무당 일행이 인사를 드리는 데서 시작합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먼저 악사들이 마을 입구에서부터 청신곡을 울리며 장승이 있는 곳들을 들러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들맞이'를 해요. 마을의 수호신에게 무당이 왔음을 알리고, 주민들에게는 별신굿이 곧 시작된다는 소식을 전하는 서장 같은 거리입니다.

이어지는 '당산굿(당맞이굿)'에서는 마을 이장이 마을의 호적과 임야 문서 등을 보관한 궤인 '지동궤'를 들고 와 당목 앞에 바칩니다. 해 뜰 무렵에는 당산에서 해를 향해 절하며 마을 사람들의 복과 수명장수를 비는 '일월맞이굿'이 열리고, 바닷가로 내려가서는 '용왕굿'으로 용왕님을 위하고 바다에서 숨진 어민들의 넋과 떠도는 잡귀를 달래며 해상의 안전과 풍어를 빕니다. 연고가 있는 집에서는 용왕상을 따로 차려 오고, 굿이 끝나면 소지를 올린 뒤 백지에 싼 용왕밥을 바다에 던진다고 해요.

굿판 뒤쪽에는 마마신인 손님을 맞아 위하는 '손굿(손님굿)'과 '손풀이', 망자가 극락으로 가기를 비는 '염불굿' 같은 거리도 이어집니다. 백과사전은 무녀가 부채와 무령(신방울)·신칼·손대를 쓰고, 악사 셋이 장구·징·꽹과리를 잡되 굿의 시작과 끝 무렵에는 대금만 쓰는 점을 특징으로 꼽아요. 국악사전은 남해안별신굿 음악에 삼현육각 반주가 쓰이는 것을 주목할 대목으로 들며, 통제영 취고수청 악사들의 삼현육각이 이 굿에 남아 있다고 설명합니다.

■ 마을의 역사를 품은 지동궤

남해안별신굿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동궤입니다. 디지털거제문화대전에 따르면 지동궤는 마을에서 별신굿을 할 때마다 일을 맡은 임원의 이름과 제물, 비용, 굿의 석수 등을 적은 문서를 넣어 둔 나무함이에요. 남해안별신굿의 흔적을 밝혀 준 지동궤 일곱 개 가운데 여섯 개가 죽림·다대·수산·망치·구조라·느태 등 거제 해안 마을의 것이어서, 남해안별신굿의 본류를 거제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거제신문은 올해 죽림마을 별신굿을 전하며 이 굿의 가장 중심이 지동궤를 열고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지동굿'이라고 소개했어요. 마을의 대소사와 조상들의 이름이 적힌 문서이니, 마을 사람들에게 지동궤는 조상의 신위와도 같은 존재라는 것이지요. 굿판이 곧 마을의 기록을 이어 가는 자리였다는 점이 참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 사라져 가던 굿판을 지켜 온 섬, 죽도

한때 남해안 곳곳에서 열리던 별신굿은 지금 대부분 맥이 끊겼습니다. 국악사전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꾸준히 굿을 이어 온 곳은 통영 죽도마을과 거제 죽림마을 정도이고, 통영 사량도 능양마을은 10년 단위로 굿을 하는데 인구가 줄어 전승 환경이 어렵다고 해요. 거제 양화마을은 2022년에 33년 만에 굿을 다시 열었다고 합니다.

통영 한산면의 작은 섬 죽도에서도 굿이 끊길 뻔했습니다. 한국경제 마켓인사이트에 실린 2019년 기사에 따르면 죽도 별신굿은 한때 존폐 위기에 놓였지만, 2003년 섬 주민들이 남해안별신굿보존회와 손을 잡으면서 되살아났어요. 2019년 굿판에서는 마을회관 팽나무 옆에 새로 세운 돌장승 한 쌍에 눈을 그려 넣는 점안식도 열렸는데, 통영에서는 장승을 '벅수'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뉴스로 보도에 따르면 2025년 2월 8~9일 열린 죽도마을 별신굿에는 관람객과 통영시·국가유산청 관계자 등 100여 명이 함께했고, 들맞이당산굿·부정굿·가망굿·제석굿에 이어 둘째 날 골메기굿·용왕굿·지동굿·손님풀이·군웅굿이 펼쳐졌어요.

■ 2026년 거제 죽림마을, 띠배에 실어 보낸 액운

올해는 거제 죽림마을 차례였습니다. 국악신문과 통영광장 보도에 따르면 (사)남해안별신굿보존회가 주관한 '2026 국가무형유산 남해안별신굿 공개행사'는 2월 18일 오후 3시 굿판을 정화하는 부정굿과 마을 입구의 들맞이당산굿으로 문을 열었어요. 19일에는 새벽 6시부터 뒷산의 산신제와 일월맞이, 마을 곳곳의 수호신을 모시는 골메기굿과 죽림마을만의 할미당굿이 이어졌고, '중광대놀음'·'할미광대놀음'·'적득이놀음'·'용선놀음' 같은 놀이마당이 흥을 더했습니다. 마지막은 마을의 액운을 띠배에 담아 바다 멀리 띄워 보내는 띠뱃놀이였어요.

구갑모 죽림마을 이장은 "올해는 특히 별신굿을 올리는 환년(還年)이라 더욱 벅찬 마음으로 준비했다"며 "죽림마을별신굿은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직접 이어가고 있는 살아있는 마을의 역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거제신문이 만난 한 주민도 "몇 년 만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굿판을 벌이니 마을에 생기가 도는 것 같다"고 소회를 전했어요.

바다를 먼저 먹이고, 조상의 이름을 다시 읽고, 서로의 한 해를 함께 비는 굿. 남해안별신굿은 무대 위 공연이기 전에 섬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지켜 온 방식이었습니다. 다음 정월, 남해의 작은 마을에서 들려올 장구 소리가 벌써 궁금해지네요.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남해안별신굿」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2286 , 국립국악원 국악사전 「남해안별신굿」 https://www.gugak.go.kr/ency/topic/view/1170 , 디지털거제문화대전 「마을이 하나 되는 날, 거제의 별신굿」 https://geoje.grandculture.net/geoje/toc/GC10001329 , 한국경제 마켓인사이트 「마을 안녕·풍어를 비나이다…죽도가 지켜낸 남해안별신굿」(2019.3) https://marketinsight.hankyung.com/article/2019031727471 , 뉴스로 「통영시, "그야말로, 태평성대로구나" 별신굿 행사」(2025.2.10) https://www.newsro.kr/articles/726034 , 국악신문 「거제 죽림마을서 '남해안별신굿' 공개행사 18-19일 개최」(2026.2.12) https://www.kukak21.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42162 , 통영광장 「국가무형유산 '남해안별신굿' 18~19일 거제 죽림마을에서 공개」(2026.2.15) https://www.tyib.kr/news/articleView.html?idxno=11862 , 거제신문 「거제 죽림마을, '별신굿'으로 새해 안녕 기원」(2026.2.20) https://www.geoj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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