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음력 시월 초하루가 다가오면, 서울 용산구 용문동 골목에는 해마다 풍물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시장 골목을 지나 언덕 위 작은 사당으로 향하는 사람들, 말을 탄 장군과 깃발을 든 군졸들의 행렬, 그리고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굿 장단. 바로 서울특별시 무형유산 '남이장군사당제'입니다. 오늘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국가유산청, 서울문화포털, 연합뉴스의 기록을 따라, 스물여덟 살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한 장군이 어떻게 한 마을의 수호신이 되었는지 천천히 들려드리려 합니다.
■ 스물일곱에 병조판서가 된 젊은 장군, 남이
남이(1441~1468)는 조선 전기의 무신입니다. 본관은 의령이고, 할아버지는 의산군 남휘, 할머니는 태종의 넷째 딸 정선공주이니 태종의 외증손이 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그는 세조 대에 무과에 급제해 세조의 총애를 받으며 여러 무직을 거쳤고, 1467년 이시애가 함경도에서 난을 일으키자 대장이 되어 토벌에 나섰습니다. 그 공으로 적개공신 1등에 책록되고 의산군에 봉해졌습니다.
이어 서북 변경 건주위 여진을 칠 때에는 우상대장으로 나서 주장 강순, 좌상대장 어유소와 함께 만포에서 파저강 쪽을 공격했고, 여진의 우두머리 이만주를 베었습니다. 이 공로로 공조판서가 되었고, 1468년에는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겸하다가 병조판서에 올랐습니다. 백과사전의 「남이의 옥」 항목은 그가 27세에 공조판서가 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나라의 군사를 맡는 자리에 이렇게 젊은 장수가 앉은 것은 그만큼 그의 무공이 눈부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혜성 한 줄기와 '남이의 옥'
그러나 같은 해 세조가 세상을 떠나고 예종이 즉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강희맹이 한계희에게 남이의 사람됨이 군사를 맡기에 마땅치 않다고 말했고, 한계희가 이를 예종에게 아뢰어 남이는 병조판서에서 물러나 겸사복장으로 밀려났습니다.
그 무렵 궁궐에서 숙직하던 남이는 하늘에 혜성이 나타나자 "혜성이 나타남은 묵은 것을 없애고 새 것을 나타나게 하려는 징조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엿들은 병조참지 유자광이 역모를 꾀한다고 고변했고, 남이는 국문 끝에 강순 등과 함께 처형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역사에서는 '남이의 옥'이라고 부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백과사전은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남이를 난신으로 보았지만, 임란 이후 일부 야사에서는 유자광의 모함으로 꾸며진 옥사로 규정하며 남이를 젊은 나이에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은 영웅으로 그렸다고 설명합니다. 『연려실기술』이 인용한 『국조기사』와 『동각잡기』에는 유자광이 벽 너머에서 그 말을 엿듣고 거짓을 보태 아뢰었으며, 그때 남이의 나이가 스물여덟이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결국 1818년(순조 18) 후손인 우의정 남공철의 주청으로 강순과 함께 관작이 회복되었고, 시호는 충무(忠武)입니다.
■ 억울한 넋이 마을의 신이 되기까지
백과사전은 남이장군사당제를 조선 전기에 젊은 나이로 요절한 남이 장군의 원혼을 달래 주고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제의가 마을 축제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억울하게 스러진 장수의 넋을 위로하는 마음과, 그 장수의 큰 힘으로 마을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한 사당 안에 함께 모인 셈입니다.
남이장군당이 용문동에 자리 잡게 된 내력은 두 가지로 전해집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하나는 500여 년 전 남이 장군이 이곳 용문동에서 병사들을 길렀는데, 그 부하들이 훗날 그를 추모하려고 세웠다는 설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가 누명을 쓰고 한강변 새남터에서 처형되었다가 1818년 신원된 뒤, 그를 길이 추모하려고 이곳에 모셨다는 설입니다. 연합뉴스 보도에도 남이 장군이 용산 삼각지 부근에서 정병을 훈련시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원래 당은 원효로2가 당고개라 불리던 거제산에 있었는데, 장군이 꿈에 나타나 1904년 지금 자리로 옮겼다고 합니다. 사당 안 한가운데에는 남이장군 무신도가 걸려 있고, 그 곁으로 부군대감 내외, 최영 장군, 정추정 씨와 부인상, 산신령 내외, 토지관장, 천신대감, 맹인 내외 등의 무신도가 함께 모셔져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이 사당제가 약 300년 전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합니다.
■ 걸립에서 꽃등행렬, 장군출진까지
사당제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준비하는 축제입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당제 열흘에서 보름 전, 부정이 없는 깨끗한 사람을 골라 제주 1인과 집사 1인을 정합니다. 당제 사흘 전에는 제주가 제사에 쓸 술인 조라주를 담그고, 쌀 3되 3홉으로 팥시루떡을 쪄서 통시루째 올리며, 당굿에는 돼지 한 마리를 바칩니다.
제사 비용은 '걸립'으로 마련합니다. 걸립패가 풍물을 울리며 집집마다 찾아가 집안의 번영과 무병장수를 빌어 주고, 주민들은 정성껏 비용을 보탭니다. 예전에는 남이장군 가장행렬과 용을 그린 당기, 백지를 매단 걸립기를 앞세우고 용문시장 일대를 도는 '걸립돌기'가 장관이었다고 합니다. 걸립이 끝나면 산천동 부군당에서 꽃을 받아 오는 '꽃받기'를 했는데, 지금은 이것이 '꽃등행렬'로 발전했습니다. 서울문화포털에 따르면 100여 개의 행렬등이 남이 장군의 첫째 부인을 모신 산천동 부군당에서 출발해 용문시장을 거쳐 남이장군사당까지 행진합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순서는 '장군출진'입니다. 남이 장군이 군병을 훈련시켜 여진을 토벌하러 출진하던 모습을 재현하는 행사로, 2024년 제42회 때는 보존회기를 앞세우고 용기, 대취타, 도원수기, 장군, 부장, 영기, 군졸, 연등 등 200명 가까운 행렬이 사당에서 효창공원 입구, 숙명여대, 용산경찰서 앞, 원효로2가 사거리를 돌아 사당으로 돌아왔다고 연합뉴스는 전합니다.
■ 열두 거리 당굿과 사례제
사당제 본 제사는 분향, 헌주, 독축, 소지, 음복의 순서로 유교식으로 지냅니다. 그 뒤 날이 밝으면 당굿이 열립니다. 백과사전이 정리한 당굿은 가망청배, 부정치기, 호구거리, 말명거리, 조상거리, 상산거리, 별상거리, 대감거리, 창부거리, 제석거리, 군웅거리, 황제풀이, 뒷전으로 이어지는 서울굿의 거리들입니다. 억울하게 처형된 장군의 넋을 달래고, 마을의 재물과 복, 집집의 안녕까지 두루 비는 자리입니다.
오랫동안 예능보유자 이명옥 선생이 의례를 주관해 왔고,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명옥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 2024년부터는 한영서 선생이 당주를 맡아 당굿을 이끌고 있습니다. 굿이 이어지는 동안 사당 아래에서는 국수와 음료를 나누며 주민들이 함께 어울립니다.
굿이 끝난 다음 날에는 제주와 화주, 마을 어른들이 다시 당에 모여 '사례제'를 지냅니다. 여러 사람이 드나들며 경내를 어지럽힌 것을 사죄하고, 무사히 큰일을 치렀음에 감사드리는 제사입니다. 사례제가 끝나면 제물을 내려 대동잔치를 열고, 제관과 임원들은 경기도 화성시의 남이장군묘에 가서 간단히 제를 올리고 돌아온다고 합니다.
■ 끊어졌다 다시 이어진 마을의 약속
이 전통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예전에는 음력 4월 1일과 10월 1일에 당제를 지내고, 3년마다 4월 1일에 큰 당제와 굿을 했지만, 1972년 대제 행사가 중단되고 제사만 모시게 되었습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1982년 서울시의 당제 조사 보고를 계기로 복원이 추진되었고, 1983년 11년 만에 대제를 되살려 제1회 행사를 치렀습니다. 이후 남이장군사당제보존회가 해마다 행사를 이어 왔고, 1999년 7월 1일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습니다.
지금은 음력 10월에 대제와 당굿을 지냅니다. 2025년 제43회 사당제는 11월 17일부터 21일까지 걸립, 꽃등행렬, 당제, 장군출진, 당굿, 사례제, 대동잔치 순으로 닷새 동안 열렸습니다. 서울문화포털은 이 사당제를 약 40년간 이어져 온 용산구 대표 주민 밀착형 마을축제로 소개합니다. 올해 일정은 용산구나 보존회 공지를 통해 확인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스물여덟 해의 짧은 삶, 그리고 오백 년 넘게 이어진 기억. 남이장군사당제는 억울한 넋을 외면하지 않고 끝내 마을의 품으로 모셔 온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올가을 용문동 골목에 풍물 소리가 들리면, 장군의 행렬을 따라 그 오래된 마음을 한번 느껴 보셔도 좋겠습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남이장군사당제」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7098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남이」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2096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남이의 옥」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2102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남이장군사당제」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22%2C00200000%2C11&pageNo=5_1_1_0 , 서울문화포털 「제43회 남이장군사당제」 https://culture.seoul.go.kr/culture/festival/borough/view.do?festivalId=331&menuNo=200029&pageIndex=1 , 연합뉴스 「용산구, 제42회 남이장군 사당제 개최 지원」(2024.10.28) https://www.yna.co.kr/view/RPR20241028001500353 , 연합뉴스 「용산구서 '남이장군 사당제' 개최…20일 장군 출진 행렬」(2025.11.19) https://www.yna.co.kr/view/AKR20251119033900004 , 한국고전종합DB 『연려실기술』 「남이의 옥사」 https://db.itk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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